<귀환자의 삼시세끼 160화>
“데려와.”
민성이 말했다.
그리고 민성의 뒤쪽에 있는 계단 위로, 불규칙적인 발소리와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설마 하며 휠체어 사내 정유태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바짝 들어 위를 보았다.
그는 잔뜩 긴장한 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들려오는 소리는 절뚝이는 발소리 같기도 했고, 쇠사슬이 서로 부딪치고, 바닥에 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질척한 느낌이 가득한 쇠사슬 소리에 휠체어 사내 정유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이호성이 계단 위에서 고아원 출신의 세 아이 중 막내 김민호를 데리고 나타났다.
휠체어 사내는 막내를 올려다 보며 눈에 물기가 가득 찼다.
막내 김민호는 눈이 천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온몸에는 마법으로 된 쇠사슬에 휘감겨 있었다.
또한 그동안 삼천교주가 둘째인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을 협박하기 위한 용도로, 고문의 행적이 막내 김민호의 온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휠체어 사내 정유태는 비틀거리며 부축받고 있는 막내를 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간의 고생이 얼마나 많았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만한 수준이었다.
“기억을 지워 줄 것이다.”
민성이 말했다.
휠체어 사내 정유태가 민성을 빠르게 돌아보았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바가지.”
민성이 바가지를 나직이 불렀다.
바가지는 꾸물꾸물 민성의 주머니에서 기어 나와 바닥에 탁 착지한 후 한 계단 아래에서, 자신의 주인인 민성을 올려다보며 졸린 듯 눈을 비볐다.
“김민호의 기억을 삭제해라.”
민성이 말했다.
바가지가 계단 위에 있는 김민호를 보았다가 다시 민성을 보았다.
“한 시간 정도의 최근 기억을 삭제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억의 대부분을 삭제해야만 해요.”
바가지가 자신 없어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없어. 모두 지워.”
민성이 정유태를 보며 말을 이었다.
“동의하는 거겠지?”
그렇게 물었다.
정유태는 절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죽어서도……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유태가 진심을 담아 소리쳤다.
그때 정유태의 목소리를 듣고, 마법 사슬에 묶여 있는 막내 김민호가 갑자기 걸음을 옮기려다 발이 꼬여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그는 몸이 묶여 있고, 안대에 눈이 가려져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형인 정유태를 찾기 위해 애썼다.
“마지막 만남을 위해, 안대를 풀어 줄 수도 있다.”
민성이 말했다.
하지만, 세 형제의 첫째.
휠체어 사내 정유태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의 아픔 없이, 편안히 쉬었으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안대를 뚫고, 막내 김민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바닥을 뚝뚝 적셨다.
“바가지.”
민성의 부름에.
“으으으…… 으어……!”
세 형제 중 막내 김민호는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 울음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바가지가 황급히 마법 사슬에 몸이 묶여 있는 김민호를 향해 계단 위로 타닥타닥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를 보며 등에 메고 있던 자그마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바가지가 흑마법을 캐스팅하자 검은 기운이 서서히 김민호에게 스며들기 시작했고.
바가지의 안광에 검은 불이 확 타오르는 순간, 김민호는 의식을 잃으며 바닥에 머리를 탁! 떨구었다.
“바가지. 마법 사슬을 해제하고, 김민호를 침전으로 옮겨라.”
“네, 주인님.”
바가지가 뒤뚱뒤뚱 계단을 올라가, 흑마법으로 마법 사슬을 파앙-! 깨부수고, 그림자 보드에 김민호를 태워 태화전을 떠났다.
민성이 천천히 전체 계단의 중턱에서 일어서며 템창에서 무기를 꺼냈다.
콰지지직!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뇌전이 튀겼다.
“……사치스러운 죽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휠체어 사내 정유태가 눈을 감고 말했다.
민성은 말없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휘둘렀다.
서걱!
헌터로서 각성하지 못한, 세 형제 중 첫째.
휠체어 사내 정유태가 둘째인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을 따라 피를 흩뿌리며 절명했다.
민성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동굴만큼이나 깊은 눈으로, 세 형제 중 첫째인 휠체어 사내를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긴 정적이 지난 후.
“교주 꺼내.”
민성이 휠체어 사내, 정유태의 죽음을 보며 지독히도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호성이 계단을 내려와 중턱에 앉아 있는 민성에게 꾸벅 인사한 뒤, 아래 대광장 홀로 내려갔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관의 뚜껑을 열어 거기서 삼천교주를 꺼내 일으켜 세웠다.
그의 몸에는 마법 사슬도 아닌 낡은 밧줄이 꽁꽁 묶여 있었다.
이호성이 계단 앞쪽에서 그의 무릎을 꿇렸다.
“교주.”
민성이 서늘한 눈으로 삼천교주 양영학을 내려다보며 그를 부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부터 질문을 할 건데. 네가 진실을 말하든 거짓은 말하든 상관없다. 내가 보기에 만약 거짓 같으면 네가 전에 겪었던 악몽을 다시 꾸게 될 거다. 이번엔 좀 길 거야.”
양영학이 고개를 바짝 들어 긴 계단의 중턱에 앉아 있는 민성을 공포에 물든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는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그저 입술만을 오물거렸다.
당시의 고통을 겪었던 상상만으로 삼천교주 양영학은 이미 두려움에 의해, 몸에 독이 퍼진 듯 바짝 굳어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민성을 보지 못하고 머리를 아래로 훅 숙였다.
“첫 번째 질문.”
민성이 낮은 목소리로 질문의 말문을 열었다.
“환단 부작용을 억제하는 진정제 제조법은 어디 있어?”
민성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삼천교주 양영학을 보며 물었다.
“문연각(文淵閣). 문연각에 있다!”
양영학이 전신을 가늘게 떨면서 빠르게 대답했다.
그는 마치 악마의 신을 마주한 듯 당장이라도 실신할 듯 공포에 떨었다.
“주기적으로 진정제를 복용하지 않고, 한 번에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삼천교주 양영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불가하다. 환단 안에는 극기생(極寄生)이라는 벌레가 있는데, 한번 인간의 몸에 들어가면 시체가 되어도 그 벌레는 인간의 살점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머물게 되니까.”
“전염성은?”
삼천교주 양영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느릿하게 삼천교주 양영학을 내려다보며 계단에서 한 발씩 천천히 내려왔다.
“흐이익!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어! 모두 진실만을 말했다! 정말이라고!”
삼천교주 양영학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감히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몸이 바짝 굳어 오줌을 지리며 확장된 동공으로 민성을 보았다.
이내 민성이 계단에서 내려와 삼천교주 양영학의 부근 앞쪽에 섰다.
그리고 삼천교주 양영학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헉……! 허억! 허억!”
삼천교주 양영학은 민성의 시선을 맞받으며 숨이 넘어갈 듯 헐떡였다.
민성이 천천히 다리를 굽혀 삼천교주 양영학과 시선을 같은 위치로 맞추었다.
삼천교주 양영학은 경기를 일으킬 듯 몸을 떨었다.
“어서 나를 죽여 줘. 나를 죽여 달란 말이다!”
삼천교주 양영학이 온몸에 힘을 주고 커다랗게 외쳤다.
“네 비급서 덕분에 재밌는 걸 배웠어. 마기의 소모가 조금은 특이한 방식이더군……. 예컨대.”
민성이 손을 살짝 들자, 삼천교주 양영학이 흠칫 놀라며 턱을 바짝 들었다.
민성이 그를 보며 펼쳤던 손을 서서히 오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콰드드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악!”
삼천교주 양영학의 두 다리가 민성의 무형지기(無形之氣)로 인한 압력에 마치 압축기에 찌그러지듯 다리가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수련이 깊은 탓에 삼천교주 양영학은 오러를 운용할 수 없었음에도 정신력이 깊었다.
그런 탓에 기절하지 않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장점이자, 죽을 수 없다는 단점이기도 했다.
하나 그에게 있어, 민성이 보여 준 악몽에 비하면 이깟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윽고 삼천교주 양영학이 초췌해진 얼굴로 민성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민성이 입술을 열었다.
“비급서를 확인해 봤는데, 딱히 네 도움이 없어도 비급서를 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워낙 해석이 친절하게 되어 있었으니까.”
삼천교주 양영학은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거짓말이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 만든 비급서.
그것은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진 비급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지금의 상황에 별달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삼천교주 양영학이 기대가 섞인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이 팔을 뻗어 검지 손가락으로 세 형제 중 첫째.
지금은 목숨을 거둔, 휠체어의 사내였던 정유태를 검지로 가리켰다.
“네가 한 짓을 봐.”
그를 보고 삼천교주 양영학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어떻게 생각해?”
“저딴 쓰레기 알 게 뭐야! 비급의 해석이 끝난 거라면 내 도움은 필요 없는 거겠지! 이제 그만 약속대로 나를 죽여라!”
삼천교주 양영학이 핏발 선 눈으로 말했다.
민성이 그의 목을 콱 틀어잡았다.
“헉?! 콜록! 주, 죽여 준다고 하지 않았나! 대 삼천교주의 교주인 내가 설거지도 했고 비급에 대해서도 협력 했어. 그런데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삼천교주 양영학이 공포에 눌려 버둥거렸다.
“그래. 저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밟으며 꼭두각시로 조종했던 일, 네가 날 죽이려고 했던 것까지 등등. 그런 건 대부분 그냥 널 단순히 죽이는 걸로 끝낼 수 있는 문제다. 시답잖은 이유로 시간 낭비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대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삼천교주 양영학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
“너 같은 놈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늘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민성의 손에서 마기가 서서히 흘러나오며, 그의 눈이 귀신같이 번쩍였다.
“식당과 요리사는 건드리진 말았어야지.”
“크륵! 무, 뭣……?!”
악몽이 시작됐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삼천교주 양영학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들기 시작하고, 살이 쭉쭉 빠졌다.
길었던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후두두둑 떨어진다.
피부가 바싹 마르고, 살이 튼다.
얼굴은 순식간에 노화 현상이 시작되며 눈에서 피가 흐르고 몸 일부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재생의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망가졌던 몸이 다시 재생되면서, 그 구간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이호성. 진정제 제조서를 가져와라.”
민성이 삼천교주에게 마기를 흘려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이호성은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문연각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