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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58화 (158/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58화>

휘이이-

일순 내실에 차가운 바람이 부는 듯했다.

“……밥?”

삼천교주가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배가 고파졌다. 이런 곳이라면, 식사 정도는 꽤 괜찮게 할 테지. 양보다 질이다. 많지 않아도 된다. 여기 내 옆에 있는 인간까지 2인분으로 훌륭한 식단으로 준비하도록.”

민성이 그렇게 말하고, 책상에 있던 또 다른 무공 비급 하나를 허공섭물의 능력으로 당겨 손에 탁! 잡았다.

삼천교주는 멍하니 민성을 보다가 세상 근심을 다 짊어진 표정으로 땅을 보았다.

민성이 무공 비급 첫 장을 펼치려다 다시 비급을 덮고 벌떡 일어나 ‘하얀 팬티’만 입고 있는 삼천교 교주에게 걸어갔다.

교주는 본능적으로 움찔 몸을 떨며 어깨를 움츠렸다.

“진수성찬 같은 거 말고. 여기서 가장 자신 있는 음식으로. 빨리.”

민성이 삼천교주 바로 코앞에서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하얀 팬티 차림의 삼천 교주는 발아래에 정갈하게 잘 개어져 있는 붉은 용포를 손으로 가리켰다.

“다 좋은데 옷만 좀 입으면 안 되겠나?”

삼천교주가 눈치를 살피면서 ‘이 정도는 좀 봐줘라.’ 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호성.”

민성의 부름에 정신없이 무공 비급서를 읽고 있던 이호성이 고개를 바짝 들었다.

“예 헌터님!”

“감시하면서 동행해라. 음식에 독을 타는지도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 괜찮을까요?”

이호성이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너한테도 진다.”

민성의 말에 삼천교주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상처받은 얼굴이 되었다.

이호성은 그런 삼천교주를 불쌍하다는 듯이 보았다.

삼천교주는 그런 이호성의 눈길에 상처가 두 배로 불어난 얼굴로 민성의 눈치를 살피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 * *

삼천교주 양영학은 이호성과 함께 문화전을 나섰다.

본래라면 전음이라든지 단순히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부를 수 있었지만, 오러의 운용 자체가 막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또한 늘 주변에서 경호하듯 각성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없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삼천교주 양영학은 허탈감에 쓴웃음을 지었다.

권세를 누릴 때만 해도, 황제 못지않게 살아갈 수 있었던 몸이었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한국의 각성자를 만난 이후로 자신이 패하자 ‘권세’는 마치 한때의 신기루였던 것처럼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인생이란 참 ‘덧’ 없군.

삼천교주 양영학은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었다.

정말 저…… XXX XXXX XX에게 옷까지 벗으면서 모욕을 당한 수치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놈은 자신이 무공 비급에 대한 언질을 해 주지 않겠다고 하자 그는 실로 무자비한 수를 썼다.

아아…… 빌어먹을.

웬만한 고문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라 자신하는 본인이었지만 놈의 수는 악독해도 너무 악독했다.

놈이 자신의 목을 틀어잡고 마기가 주입되자 악몽이 펼쳐졌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듣도 보도 못한 고통이 펼쳐졌다.

심마에 빠지면 주화입마에 걸려 차라리 의식을 잃기라도 하지, 놈의 수는……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끼쳤다.

난데없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악몽은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완연한 어둠.

그 어둠 안에서 삼천교주는 허우적거렸다.

악마의 웃음소리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사방에서 울렸다.

악마의 웃음소리가 심장을 저밀 듯이 귓속으로 파고드는 데다,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악마의 손과 같은 것이 온몸을 더듬고 자신의 생살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가장 충격적인 공포는 이곳을 결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무한함 앞에 선 절망감이었다.

단순히 물리적 통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독한 어둠.

아니, 그것은 고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 인간을 지옥 속으로 밀어 넣는 짓이었다.

삼천교주 양영학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 밑은 검게 죽었으며 피부가 바짝 마르는 듯했다.

이어 그 두려움에 질려, 그토록 강대했던 자신이 ‘벌’이랍시고 옷을 벗고 팬티 바람으로 서 있었던 기억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왜 자신은 미치지 않는가?

그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삼천교주 양영학은 더 생각을 하지 말자며 머리를 좌우로 훅훅 휘저었다.

그때였다.

“힘내세요.”

이호성이 말했다.

삼천교주 양영학은 이호성을 보면서 깊게 한숨 쉬었다.

이제 저런 것한테 저런 소리까지 듣는구나.

그는 이내 서글퍼진 표정으로 화낼 힘도 없어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패배자로서의 기운을 사정없이 뿜어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냐?”

삼천교주 양영학이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건강식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중요한 건 맛이니까.”

삼천교주 양영학은 그동안 자신이 먹어 온 음식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무공을 연마하는 데만 미쳐 있어 음식에 대해서는 애초에 별달리 관심이 없었다.

더불어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 늘 소식을 했으며, 근력을 늘이기 위해 식단에 맞춰 육류 고기를 먹거나 보조제와 같은 약품을 먹는 게 주식이었다.

그런 탓에, 어떤 음식이 맛있는 음식이고 그가 만족할 만한 음식인지 삼천교주 양영학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 메뉴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있으니까.”

이호성이 눈치를 채고 삼천교주의 고민을 시원하게 긁어 주었다.

그럼에도 교주는 그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한숨 너무 쉬지 마세요. 그러다 헌터님한테 또 맞아요.”

그 말에 또다시 한숨을 쉬려다, 그 숨을 가까스로 삼키는 삼천교주였다.

* * *

어차선방(御茶膳房) 부근에 이르렀다.

삼천교주 양영학이 사람 하나를 따로 불렀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야 하며,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이호성이 지켜볼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차선방의 직원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재료를 급히 준비해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린다며 인사를 올리고 어차선방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본대 병력과 주요 인사들은 삼천교를 떠났지만, 돈을 받고 일하는 요리사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사이, 이호성은 일하는 사람들 모두 현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다가 삼천교주 양영학을 보며 짧게 한숨 쉬었다.

“저기, 아저씨.”

아저씨라는 말에 삼천교주 양영학이 깜짝 놀라며 이호성을 보았다.

그는 가슴에서 불이 확 치솟았지만, 일전과 달리 태산 같았던 그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애초에 강민성 때문에, 오러를 쓸 수 없는 몸이 됐으니, 일반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뭘 또 그렇게 눈에 힘을 줘요. 아니, 그보다 그 옷은 도대체 뭡니까?”

이호성이 한심하다는 듯이 삼천교주 양영학의 위아래를 훑었다.

붉은색의 비단에 용이 자수된 용포를 보고 이호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남들은 다 현대 옷을 입는데 왜 혼자 그러고 있어요? 보는 사람이 다 창피하네.”

삼천교주 양영학은 퀭한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이호성은 자신이 너무했다 싶은지 헛기침을 했다.

“아니, 그 취향은 존중하는데 좀 너무 오바한 거 아닌가 싶어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삼천교주 양영학은 완전히 실의에 빠진 얼굴로 이내 무릎을 철퍽 꿇더니,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이호성은 발광하듯 소리 지르는 그를 보면서 화들짝 놀랐다.

“어어? 아저씨 왜 그래요? 내가 미안하다니까요? 알았어, 알았어. 어울려. 멋있어. 멋있다니까요?”

이호성이 당황해서 그를 달래 봤지만, 소용없었다.

삼천교주 양영학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꽥꽥 지르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이호성은 불편함이 가득한 얼굴로 짧게 한숨 쉬며 그를 보았다.

“…….”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짠하게 만드는, 실로 처참한 말로였다.

* * *

이호성은 삼천교 안에서 식사를 담당하는 어차선방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어차선방이라는 이 주방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가진 요리사들이 수두룩했다.

삼천교는 돈이 많은 만큼 최고의 요리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력이 마냥 좋다고만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강민성에게는 그를 대접하기 위한 식사가 아닌,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

이호성은 어차선방 안에서 요리사들을 진두지휘했다.

이런 조합으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이호성은 막힘없이 음식에 대한 오더를 명확하게 피력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꼼꼼히 지켜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래전부터 어차선방을 담당한 우두머리처럼 보일 정도여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삼천교주 양영학은 흙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어차선방 출입문 옆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 * *

민성은 비급서를 읽으면서 눈으로 비급서에 나와 있는 테크니컬한 측면의 기술을 모두 습득했다.

처음 읽었던 기본적인 내용들은 별달리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지만, 기술서라고 볼 수 있는 비급들은 모두 유용했다.

적은 출력으로도 마치 스킬처럼 다양한 능력들을 쓸 수 있었다.

이 비급 내용들은 상당히 훌륭하다.

많은 고민 끝에, 실험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빠르게 비급서를 읽고, 중급을 지나 상급의 비급서로 넘어갔다.

상급의 비급서부터는 주로 깨달음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무공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곧 새로운 의식으로 새로운 방식의 접근, 새로운 한계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민성은 비급서를 읽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가 마기의 출력을 올리는 데만 집중했다는 사실이었다.

마기가 높아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마계의 몬스터를 먹으면서였을 것이다.

놈들을 말 그대로 씹어 삼키면서 그대로 놈들의 마기를 흡수한 것이, 마기의 출력으로 이어진 것이겠지.

하지만 확실히 이 비급서의 설명대로 단순히 출력에만 의존해서는 그 성장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영역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접근.

그 의식의 변화가 필요했다.

민성이 그런 생각에 곰곰이 잠겨 있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들어와.”

민성이 비급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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