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53화>
한재혁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꿇었던 몸을 일으켰다.
오러의 기운이 한재혁의 전신에 응축되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재혁의 투박한 박도에 민성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대 출력의 오러가 강렬하게 소용돌이쳤다.
민성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아주 미약한 감탄이었다.
구그그그그그그―!
땅이 진동하고, 바람이 한재혁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들어와 봐.”
민성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한재혁의 목과 얼굴, 팔에 핏줄이 터질 듯이 돋았다.
팔 끝이 팽창되어, 근육이 꿈틀거렸다.
한재혁이 이를 갈며, 커다란 박도를 아래에서 위로 끌어 올리듯이 휘둘렀다.
쿠그그콰콰콰콰콰!
빌딩 한 채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만한 출력의 오러가 한재혁의 박도에 의해 발출되었다.
민성을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커다란 마력의 오러를 보며 템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냄과 동시에 이기어검술이 출두되었다.
콰르르르릉!
오리하르콘 단검이 마치 물을 가르듯 한재혁이 발출한 오러의 파동을 찢어 냈다.
한재혁이 발출한 검기는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린 한재혁의 이마 앞에…… 오리하르콘 단검이 허공에 뜬 채로 뇌력을 파지직 뿌리며 서 있었다.
한재혁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옷이 펄럭였다.
그는 마치 몸이 딱딱하게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민성이 가늘게 떨면서 서 있는 한재혁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이마를 겨눈 채, 허공에 떠 있는 오리하루콘 단검을 잡아 템창에 던져 넣었다.
“뭘 넋 놓고 있어?”
민성이 그렇게 묻고서, 주먹을 휘둘렀다.
쾅!
한재혁의 입에서 이빨 3개가 후둑 튀어나와 떨어졌다.
바닥에 철퍽 주저앉은 그의 복부를 민성이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한재혁의 몸이 바닥을 긁으며 밀려났다가 데굴데굴 굴렀다.
“쿨럭! 컥!”
한재혁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가 힘든지 동공이 흔들렸고, 몸은 두려움이 아닌 물리적인 신체적 반응으로 덜덜 떨렸다.
한재혁의 위로 그림자가 생겼다.
민성의 그림자였다.
한재혁이 멱살을 틀어잡혔다.
민성이 주먹을 그의 얼굴에 무차별적으로 꽂아 넣기 시작했다.
* * *
민성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을 내려다보았다.
집결지에는 바람 소리만이 휭휭 들렸다.
현장은 고요했지만 민성이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민성은 보여 준 것이다.
월드 헌터들에게, 그리고 삼천교 헌터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그런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집결지의 현장에서 누구 하나 숨소리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그만큼 민성의 존재는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민성이 침묵을 깨며 말을 이었다.
“김지유는 왜 안 죽인 거냐. 너라면 충분히 실수 없이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민성이 건조한 눈으로 한재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에게 대답할 의지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민성은 쓰러져 있는 한재혁 앞으로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아 그의 눈을 직시했다.
“이상하잖아. 어울리지 않게, 네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는 게.”
한재혁은 그런 민성을 보며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민성은 차가운 눈으로 한재혁을 보며 턱짓했다.
“저울질을 한 거겠지. 삼천교와 나 둘 중에서.”
“…….”
“확신이 없다는 건, 뭔가를 지키고 싶은 뭔가가 있다는 거겠지.”
한재혁의 한쪽 눈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민성이 하얗게 식은 눈으로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 질문에 답을 해라. 답을 하지 않으면 네가 그토록이나 지키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반드시 제거할 것이다.”
민성의 그 말에 한재혁의 한쪽 눈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공포가 배어 들기 시작했다.
입술이 빠짝 말라 부르트고, 눈 밑은 두려움으로 검게 변했다.
그의 눈에는 지독한 두려움이 빠르게 파고들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본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다른 종류의 불안감이었다.
“삼천교 교주. 어디 있나?”
민성이 쇄기를 박았다.
한재혁은 삼천교와 강민성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던 한재혁의 눈이 길을 잃기 시작했다.
* * *
태화전 뒤편에 위치한 전각.
중화전(中和殿).
공식 행사를 치르기 전, 휴식을 취하거나 평소 보고를 받아 일을 처리하는 내실 공간에 삼천교의 교주가 커다란 도포를 입고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교주는 자신 앞에 납작 엎드려, 집결지의 상황을 보고 한 사내를 보며 턱에 난 수염을 손으로 매만졌다.
생각에 잠길 때면 하던, 오랜 습관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7인의 무사들은 물론, 한재혁까지 당했다는 말인 것이냐?”
“죽여 주십시오.”
사내가 엎드려,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가늘게 떨면서 말했다.
“그 녀석들이라면 충분할 줄 알았건만. 못 본 새에 월드 헌터도 많이 컸군. 그런 놈이 다 나타나고.”
삼천교 교주는 헛웃음을 끌! 하고 흘렸다.
“어떻게 할까요?”
사내가 엎드린 채로 물었다.
삼천교 교주가 가느다랗게 웃었다.
“잠자코 기다려 보도록 하지. ……아주 기대가 돼. 강민성이라는 한국의 헌터가.”
교주가 먼 곳을 보며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었다.
엎드려 있던 사내가 바닥에 대고 있던 이마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바닥에 지그시 누르듯이 절을 올렸다.
* * *
민성은 딜레마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한재혁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내 그의 눈에 결심이 섰다는 것이 보였다.
한재혁이 찢어지고 부르튼 입술을 열었다.
“죽여라.”
한재혁이 지친 눈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체념이었다.
“하나만 묻지. 네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뭐야?”
민성이 물었다.
한재혁의 하나의 눈이 또다시 흔들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한재혁이 뭐라 말하기 전에 민성이 먼저 선수를 쳤다.
“결국 둘 중 하나다. 삼천교주, 그리고 나. 결정해라.”
한재혁의 눈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말해.”
민성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동생……. 동생이다.”
“이름은?”
“김……민, 호.”
한재혁이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쥐어짜 내듯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동생의 이름 김민호.
김민호.
한국의 이름.
그것은 곧, 그가 조국을 버리면서까지 인질로 잡혀 있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삼천교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는 얘기였다.
한 명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끔찍한 짓을 저질러 왔을 것이라는 건 굳이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
민성은 한재혁을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언을.”
한재혁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온 힘을 다해 버티며 몸을 떨었다.
“다 잊으라고……. 다 잊으라고.”
한재혁이 말했다.
민성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민성이 템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내 한재혁의 목을 촤악 그었다.
이어 천천히 일어서서 6인의 삼천교 헌터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이 흠칫 어깨를 떨었 다.
민성의 차가운 눈이 삼천교 헌터들을 훑었다.
“삼천교주의 위치는?”
민성이 마기를 풀풀 풍기며 물었다.
6인의 삼천교 헌터들은 서로 긴박하게 눈빛을 주고받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릉!
앞쪽에 있던 3명의 삼천교 헌터들 몸이 종이처럼 잘려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3명이 반응하기도 전에 죽었다.
남은 3명의 삼천교 헌터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죽음이 목전에 와 있다는 사실에 그들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민성이 천천히 걸어 3명의 삼천교 헌터들 앞에 섰다.
삼천교 헌터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크게 뜬 눈으로 굳었다.
“다시 묻는다. 삼천교주의 위치는?”
“마,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소!”
“말할 것입니다!”
3명이 서로 너나 할 것 없이 다급하게 말했다.
민성이 중앙에 서 있는 삼천교 헌터의 목에 오리하르콘 단검을 푹 박았다.
“컥!”
민성이 그의 목에 박았던 오리하르콘 단검을 내리그었다.
삼천교 헌터 하나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머리 굴리지 말고 위치를 말해.”
민성이 스산하게 말하며 단검을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삼천교 헌터 두 명이 몸을 덜덜 떨었다.
두 명 중 한 명이 입술을 오물거릴 때,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서걱!
뒤쪽에 서 있던 삼천교 헌터가 민성의 마기에 의해 찢겨져 나갔다.
“호, 호, 호남성 형산!”
마지막 삼천교 헌터가 눈알을 터질 듯이 굴리며 소리 지르듯 외쳤다.
민성이 잠시 그를 보다가, 이호성을 불렀다.
“네, 헌터님.”
“차 가져와.”
“……알겠습니다.”
이호성이 숨을 크게 삼키고 대답했다.
* * *
월드 헌터들의 차량 중 하나인 세단을 타고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민성이 바가지와 쏠과 함께 뒷좌석에 타고, 조수석에 여전히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는 마지막 한 명의, 삼천교 헌터가 탔다.
운전석은 이호성이었다.
“교주에게 죽을 것인지 내게 죽을 것인지 고민하지 마라.”
민성이 말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삼천교 헌터가 흠칫 몸을 떨었다.
민성이 말을 이었다.
“수작만 부리지 않는다면 산다. 하지만 머리를 굴려, 만약 삼천교주 쪽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 한다면…….”
민성의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어두워졌다.
“단순히 죽는 걸로 끝나지 않아. 단언컨대, 죽어서도 후회하게 될 거다. 약속하지.”
덜덜덜덜덜덜!
삼천교 헌터가 당장이라도 경기를 일으킬 듯 몸을 떨어 댔다.
* * *
바가지는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쏠의 기억을 삭제시켜주었다.
그러자 빵긋 웃으며 두리번거리는 쏠이었다.
그사이 세단이 워프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이호성이 먼저 내렸고, 조수석의 삼천교 헌터는 마치 죽을 날이 결정된 죄수처럼 불안한 얼굴로 구부정하게 차에서 내렸다.
민성이 차에서 내리면서 앞장서서 걸었다.
“시설에서 씻고 내려온다. 잘 감시하고 있어.”
민성이 말했다.
“예, 편히 씻고 내려오십시오.”
이호성이 예민해져 있는 민성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바가지와 쏠이 민성을 쫄쫄 따라갔다.
* * *
마인과 마신의 마른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옷을 집어 던지고 샤워를 했다.
피 냄새를 깨끗하게 지우고, 샤워를 마친 뒤 머리를 말리고 깨끗한 옷을 입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워프 게이트 건물 내에 있는 최고급 시설의 객실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민성은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그 포스터에 시선이 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