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52화>
* * *
민성에게 말을 걸었던 월드 헌터가 잠시 눈치를 살핀 후 민성을 포기하고 이호성에게 붙었다.
“이호성 씨, 우리와 함께 가시죠. 늘씬한 미녀들과 술상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호성은 슬플 정도로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그를 보며 한숨 쉬었다.
‘너희들은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하고 쏘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다.
하지만 괜히 시끄럽게 굴었다간 민성에게 혼날 수 있었기 때문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그를 밀어내고, 민성을 뒤따랐다.
작전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잠시 삼천교와 월드 헌터들 간에 혼선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붕 뜨는 듯했으나, 그 분위기는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의 명령으로 빠르게 정리됐다.
월드 헌터들이 눈짓을 받고 전투에서 빠지기 위해 뒤로 물러났고, 그와 동시에 삼천교 헌터들이 템창에서 무기를 꺼냈다.
작전이 들킨 이상, 강민성의 체력이 빠져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
그런 그들의 태도에도 민성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삼천교 헌터 6명이 민성의 주변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민성은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오른손으로 템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냈다.
콰르르르르릉!
거칠게 울리는 천둥 소리에 삼천교 헌터들이 흠칫 놀랐지만 그들은, 공격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삼천교 헌터 6명.
그 총공격이 민성에게 향했다.
사방에서 공격 기술이 쏟아졌는데, 민성은 그 공격을 보면서 그 찰나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삼천교 헌터 한 명을 죽일 때도 느낀 거지만, 지금까지 봐 왔던 공격의 형태와는 상당히 달랐다.
마치, 무협 소설에서 봤던 무공의 형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러를 그런 식으로 응용하여 개발한 건가?’
단순히 스킬이라고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법.
민성은 그것이 흥미로웠다.
360도 방향에서, 빈틈없이 들어오는 공격은 꽤나 화려했다.
반경 20여 미터의 바닥이 으깨지면서, 오러의 빛이 다채롭게 번쩍이며 자신에게로 향했다.
민성은 몸을 한 번 비트는 것으로 그들이 찌른 검을 모두 피했다.
삼천교 헌터들의 6개의 각양의 무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부딪쳤다.
차차차차차창!
민성은 어깨로 포개어져 있는, 오러가 맺힌 6개의 무기들을 힘으로 밀어냈다.
파앙!
삼천교 헌터들의 무기가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민성의 힘에 의해 그들이 뒷걸음질 쳤고, 그들은 다시 자세를 잡고 민성에게 달려들었다.
민성은 그들이 무기를 사용하는 방식이 꽤나 정교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휘두르는 게 아니라, 모두 기본기가 있고 방식이 있다.
즉, 배운 검술.
가르침이 있는, 기술적인 접근들이 민성의 눈에 보였다.
민성은 그게 재밌었다.
신기했고, 이렇게 공부하듯이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보니 아주 오래전 마계에 적응해 나가던 때의 자신이 떠올랐다.
독학으로 검을 깨우친 자신과 그들의 방식은 다르기에, 그래서 더 재밌게 느껴졌다.
‘대상’을 죽이는 데 최적화된 교과서적인 경로.
하지만…….
민성의 흥미가 시들해지기 시작한 건, 그들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출력이 약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민성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중국의 헌터들이 대단하다고 해서 기대했건만.
민성은 짧게 혀를 찼다.
* * *
‘대체 뭐야 이 괴물은…?!’
‘마인의 탑을 혼자서 클리어했다. 체력과 마력 소비가 바닥이어야 정상일 텐데. 하다못해 지친 기색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빌어먹을……!’
‘우리를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어.’
삼천교 헌터들은 공격을 하면서도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이미 총 전력을 개방하였으나, 체력이 빠지고 있는 쪽은 그들뿐이었다.
민성은 마치 공기처럼, 유유자적하게 자신들의 공격을 흘려 냈다.
또한 민성은 피하기만 할 뿐 공격을 하지 않았다.
이쯤되자 삼천교 헌터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
놈이 마음을 먹는 순간 자신들은 죽는다는 것.
공포가 끔찍하게 명치끝으로 소름 끼치게 파고 들어왔다가 뇌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공포는 순식간에 현실과 가까워졌다.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삼천교 헌터들의 어깨와 허리, 그리고 등을 가볍게 그었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편안하게 휘두른 공격에 삼천교 헌터들은 피를 뿌리며 휘청였다.
이를 악물고, 다시 공격을 시행했지만 이미 데미지를 입어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월드 헌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민성은 그 시점부터 시작해 일방적으로 삼천교 헌터들에게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은 삼천교 헌터들의 몸에 아주 얇은 상처를 만들어 냈다.
베여 나가는 상처가 점점 많아지고, 바닥에 떨어지는 피의 양은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월드 헌터들은 그 광경을 보고 숨을 삼켰다.
그들도 느끼고 있었다.
지금 강민성이 보란 듯이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삼천교 헌터들을 서서히 죽여 가고 있다는 사실을.
“크읏!”
“크윽!”
사방에서 신음이 빗발쳤다.
민성은 닿을 듯 닿지 않게 그들의 공격을 피했고, 그 사실이 삼천교 헌터들에게 끝없는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치욕과 수치, 패배감과 절망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무겁게 그들의 뇌리를 눌렀다.
잠시 후.
팔이 무거워진 삼천교 헌터들의 공격이 잠시 멈췄다.
삼천교 헌터들은 마법 방어 주문이 새겨진 옷이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있었고, 온몸에서 피를 뚝뚝 흘렸다.
“헉…… 허억! 헉!”
“허억. 크윽.”
“후욱!”
삼천교 헌터들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눈은 초췌했으며, 가쁜 숨을 내쉬느라 어깨와 가슴이 쉬지 않고 들썩였다.
반면 민성의 호흡은 처음과 같이 변화가 없었다.
마인과 마신의 피를 머금은 민성과, 민성에게 당한 삼천교 헌터들이 피를 흘리며 대치하고 있는 모습은, 월드 헌터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동안 체감하지 못했던, 강민성이라는 헌터의 강함이 피부를 뚫고 뼛속으로 침투했다.
월드 헌터들은 전율하듯 몸을 가늘게 떨었고, 삼천교 헌터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필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중심을 지탱하고 서 있었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났다.
“빠져.”
삼천교의 행동대장,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이 삼천교 헌터들을 물렸다.
민성은 한재혁을 보았다.
그는 오른손에 투박한 무기인 박도를 들고 있었다.
후드를 벗자, 눈에 난 긴 상처와 한기가 감도는 한쪽 눈이 드러났다.
공허한 눈빛이다.
두려움 같은 건 느끼지 못하는 눈이었다.
스스로의 강함에 대한 오만함 같은 종류가 아니었다.
그의 눈 안에는, 죽음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츠츠츠.
오러로 인해 주변의 공기가 뒤틀리는 듯한 착각이 잠시 들었다.
대치 상황에서 잠깐의 정적.
시작은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이었다.
그가 평범한 보폭과 평범한 속도로 한쪽 눈을 빛내며 걸어왔다.
민성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오리하르콘 단검을 템창에 던져 넣었다.
감정의 변화가 없었던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의 입매가 일그러진 자존심을 표현하듯 비틀렸다.
박도가 웅웅!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시퍼런 오러를 출렁출렁 뿜었다.
민성은 한눈에 봐도 상당한 출력을 뿜어내고 있는 한재혁의 퍼포먼스에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왼손을 빼지 않았다.
눈부신 속도로 뛰어온 삼천교의 행동대장, 한재혁의 박도가 허공을 가르며 민성의 머리로 내리쳐 왔다.
민성이 바닥을 가볍게 차면서 뒤로 몸을 뺐다.
박도가 바닥을 찍었다.
일순 바닥이 울렁거리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사방으로 커다란 지진처럼 집결지의 바닥에 금이 가면서 깨지고, 이어 울퉁불퉁하게 터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한재혁이 눈부신 속도로 민성을 뒤쫓았다.
목을 날리기 위해, 가로로 패도적으로 날아오는 박도의 칼날.
민성은 그 것을 보면서 접근을 위해, 한재혁의 몸 안 쪽으로 파고들었다.
휘두른 팔을 살짝 밀어내듯 쳐 내며, 팔꿈치로 놈의 턱을 가격하려 했으나.
이형환위(移形換位).
잔상이 남는 듯하더니 한재혁이 민성의 등 뒤에 위치했다.
박도가 민성의 등을 향해 박도를 대각선으로 내리그었다.
빈틈이 열렸고, 완벽한 찬스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민성은 비웃기라도 하듯 한재혁보다도 더 빠른 이형환위를 시전했다.
어느새 한재혁의 옆에 바짝 붙어선 민성이 손바닥으로 그의 옆구리에 장(掌)을 찍었다.
쿠웅!
한재혁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가 입 밖으로 울컥 피를 토하며,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철퍽 쓰러지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한재혁은 바로 일어섰지만 후유증이 남아 뒷걸음질 치면서 휘청 휘청 몸이 휘었다.
한재혁이 손으로 입을 가렸을 때.
“쿨럭-.”
한 움쿰의 피가 튀어나왔다.
민성이 별달리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한재혁을 보며 뚜벅뚜벅 걸었다.
한재혁이 피로 물든 이빨을 꽉 깨물고 다시금 민성을 향해 지면을 차고 뛰어 들었다.
주변 공기가 비틀렸다.
오러의 빛이 번졌다.
거대한 파동의 검기가 민성에게 향했다.
민성은 어깨를 틀면서, 잔상이 남도록 옆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민성을 맞추지 못하고 지나간 한재혁의 검기가.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친 바닷물을 갈랐다.
민성은 뒤를 돌아보았다.
한재혁의 검기에 의해, 파도치던 바다가 출렁이면서 좌우로 크게 갈라지는 게 보였다.
“……!”
꽤 놀랄 만한 출력.
민성이 다시 한재혁을 보았다.
‘아직 본 실력을 다 꺼내지 않았다는 건가?’
잠시 그의 몸이 흔들린다 싶더니 측면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박도를 휘둘렀다.
민성은 왼손을 꺼내, 놈의 손목을 쳐 내면서 오른 주먹으로 그의 가슴에 정타를 묵직하게 때렸다.
인간의 몸을 때려서 난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났다.
호신강기를 두른 육체는 단단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량의 충격이 들어간 탓에 한재혁은 무릎 꿇고 엎드려 걸쭉한 피를 연거푸 토했다.
민성은 자신의 왼손을 한 차례 내려다보았다.
왼손을 꺼낸 건 위기감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왼손을 쓰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조금 놀랍기는 했다.
민성은 시선을 들어 한재혁을 보았다.
무릎을 꿇은 채, 핏발 선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한재혁에게 걸어가면서 민성은 오른 손목을 스트레칭하듯 돌렸다.
민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히 그의 눈에는 공포나 죽음의 두려움이 없다.
‘삼천교에 대한 충성심이 그 정도로 깊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