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51화>
이호성이 물기를 다 짜내고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모터 보트가 다시 출발했다.
민성은 난간에 걸터앉아 먼 곳을 보며 바람을 맞았다.
그가 풍경에 취한 사이, 이호성은 몰래 템창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칙 붙였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다행히 역방향으로 분다.
담배 냄새가 불쾌하게 민성에게 가지는 않으리라.
그래도 싫어할까 봐 초조한 심정으로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서 거대한 마인의 탑이 멋진 빛의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것을 조용히 감상했다.
요란스럽게 치던 천둥이 서서히 멎더니 먹구름이 서서히 개고 있었다.
“오…….”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며 그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아주 오랫동안 먹구름이 드리웠던 곳에 아주 서서히 햇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이호성은 담배를 바다에 버리고, 흩어지는 마탑의 파편을 보며 짧게 한숨 쉬며 웃었다.
“굉장히 긴 모험이 될 줄 알았고, 죽을까 봐 걱정 많이 했었는데. 하하, 헌터님이 워낙 강하셔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훨씬 빨리, 그것도 간단하게 끝이 났네요.”
이호성이 말했다.
“마신이 말했다시피 저건 테스트에 불과하다. 머지않아 ‘진짜’가 온다. 준비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을 거다. 넌.”
민성이 바람을 맞으며 말했다.
이호성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민성을 보며 입맛을 쩝 다셨다.
‘악담을 해도 참. 차라리 저주를 퍼부으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탁탁!
“……음?”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옆을 보자 자신의 어깨를 두드린 건 황금 고블린 쏠이었다.
“왜?”
이호성이 묻자 황금 고블린 쏠이, 마인의 탑이 부서지면서 파편이 눈처럼 흩어지고 있는 풍경을 가리켰다.
이호성은 쏠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픽 하고 웃었다.
“좋냐?”
이호성이 물었다.
쏠은 이호성을 보지도 않고, 벚꽃처럼 흩날리고 있는 파편을 보며 웃었다.
쏠을 보며 짧게 웃던 이호성은 한쪽 방향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십 대의 보트가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멀리 있지만, 헌터의 시력은 좋기 때문에 보트에 탄 인물이 가슴팍에 한국의 중앙 기관 배지를 달고 있는 것을 이호성은 볼 수 있었다.
중심부에 위치한 한 대의 보트를 중심으로, 그 주변을 엄호하듯이 수십 대가 함께 물을 가르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헌터님, 중앙 기관인데요?”
이호성이 말했다.
먼 곳을 보던 민성은 이호성이 말한 방향을 돌아보았다.
“한국의 중앙 기관은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러니까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뭘까요? 왜 중앙 기관 헌터가 여기 있지? 오면 제가 바로 물어보겠습니다.”
잠시 후, 한국의 중앙 기관 헌터가 타고 있는 보트가 도착했다.
한국의 중앙 기관 헌터들 중 중심부 전위에 서 있던 남자가 민성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중앙 기관 소속 최고 군단장입니다. 총군주님의 명령으로, 긴급하게 드릴 보고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군단장이 집결지 쪽을 한 번 돌아보고 곧장 준비된 보고를 민성에게 올렸다.
“현재 삼천교 쪽에서 강민성 헌터님을 제거하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삼천교에서는 총군주가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살해를 시도했었습니다. 그 말인 즉슨, 삼천교에서 분명 강민성 헌터님을 노릴 가능성이 다분…….”
“시도를 했었다는 건, 그리고 총군주의 명령이라는 건 김지유가 살아 있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총군주는 김지유를 구할 수 있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유령……?”
민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 바가지가 꾸물꾸물 나와 칵칵 웃었다.
민성이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너냐?”
민성이 물었다.
바가지가 ‘나 잘했죠?’라는 표정으로 민성을 보았다.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은 하고 다녀.”
민성의 핀잔에 바가지가 시무룩하게 주머니 안으로 다시 꾸물꾸물 큰 머리를 집어넣었다.
“아…… 헌터님의 도움이셨군요. 그런 거였구나!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군단장이 감격한 얼굴로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내가 아니라 바가지다.”
“……네?”
군단장이 숙였던 머리를 들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됐고……. 삼천교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김지유를 제거하려 들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 척하고 그만 돌아가라.”
민성이 말했다.
군단장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수긍했다.
“……그럼.”
군단장이 인사를 올리고 방향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출발.”
민성이 집결지 쪽을 보며 말했다.
이호성이 집결지 쪽을 보며, 보트의 시동을 걸었다.
* * *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은 입매를 비틀었다.
한국의 중앙 기관 병력이 집결지까지 와서, 강민성에게 접촉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경계가 올라가겠어.’
하지만 기회는 강민성이 체력이 빠진 지금뿐이다.
상황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감수해야 했다.
늘 최적의 환경에서 일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두 번의 기회는 없을 테니까.
‘그보다… ….’
한재혁은 고민했다.
지금 바로 공격 명령을 그냥 시행해 버릴 것인지, 아니면 예정대로 작전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시간이 없는 만큼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은 변화 없이, 예정된 전략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사인으로 손짓했다.
주변이 곧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 * *
김지유가 신음을 흘리며 침상에서 바닥에 다리를 내려놓았을 때 병실문이 열렸다.
5성 군단장이었다.
김지유가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어떻게 됐어요?!”
군단장이 가까이 가서 목례로 인사를 올렸다.
“다행히 타이밍이 맞아, 잘 전달했습니다.”
김지유는 짧은 안도의 숨을 뱉었다.
“그보다 벌써 거동하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김지유가 희미하게 웃었다.
“의사랑 얘기했어요. 힐 치료도 잘됐어요. 저를 일찍 구해 주신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김지유의 감사 인사에 군단장이 멋쩍게 뒷목을 긁적였다.
“저, 그것이…….”
“……?”
군단장이 말끝을 흐리자 김지유가 그를 의아하게 응시했다.
“강민성 헌터 쪽에서 도와준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강민성 씨가 가지고 있는 그 해골 소환수.”
“바가지를 말하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바가지. 그 소환수 덕분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때 그 유령이, 바가지라는 소환수의 스킬 중 하나였던 모양입니다. 총군주님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건 그 이유였던 것이죠.”
김지유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바가지는 강민성과 함께 마인의 탑 안에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신을 감시, 보호할 수 있는 망령술이 가능하다는 건가?
김지유는 새삼 바가지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또 신세를 지게 됐네요.”
김지유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군단장이 김지유를 보며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김지유가 고개를 들어 군단장을 보았다.
군단장이 말을 이었다.
“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총군주님의 도움으로, 강민성 씨는 삼천교의 의중을 눈치챘으니까. 그에게 큰 도움을 드린 겁니다.”
김지유가 먼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그에겐 미안한 게 많아요.”
“…….”
“같은 헌터로서, 너무 많은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 같아서. 여전히 조금도 도움이 못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김지유의 눈에 쓸쓸함이 담겼다.
“총군주께서는 늘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다만, 환경이 여의치 못했기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유가 바닥을 보며 무겁게 미소 지었다.
“총군주님은 늘 국가를 생각하며 인내하셨고, 인명을 소중히 생각하셨으며, 타인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신념을 지켜 오셨습니다. 본인의 자긍심보다 국가와 인명을 먼저 생각한 총군주님을…….”
군단장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존경하고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총군주님.”
김지유가 그를 향해 애써 슬픔을 지우는 환한 웃음을 내보였다.
“고마워요. 제가 인복이 많습니다.”
“총군주님의 덕이 만든 결과 아니겠습니까? 하하.”
군단장이 너스레를 떨듯이 말했다.
김지유는 긴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내야죠.”
따뜻한 햇볕이 병실을 가득 채우는, 오후.
김지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약해지려는 마음에 덧칠을 하고 단단한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 * *
이호성은 민성을 훔쳐보았다.
민성은 여유로웠다.
김지유의 최측근인 중앙 헌터 기관 군단장의 간부가 미리, 삼천교 놈들의 의중을 설명해 주었음에도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어 보일 만큼, 그는 편안했다.
마치 그냥 어딘가 산책이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호성은 민성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삼천교와 월드 헌터가 작당 모의를 해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그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다.
고요한 호수 같았다.
저 인간은 화를 내는 타이밍을 알 수가 없어….
그래서 더 무섭다.
그의 성격을 짐작해 보면 한 방에 삼천교고 월드 헌터고 싹 다 죽일 것 같지만, 의외로 그는 명분을 중요시 여기는 걸까?
아니면 그저 닥치는 대로 죽이면 인류의 씨가 마를까 봐?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호성은 침묵했다.
* * *
“정말 대단하군요!”
“솔로잉으로 탑을 무너트리다니.”
“새로운 위인의 탄생입니다!”
“대체 얼마나 강해야, 저 엄청난 탑을 혼자서……! 경이롭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월드 헌터들이 민성 주변을 둘러싸다시피 하며 가식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민성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삼천교 헌터들과 월드 헌터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민성이 그렇게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자 집결지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월드 헌터들이 곁눈질로 서로를 보며 눈치를 살폈다.
“길 열어.”
민성이 자신의 파티를 둘러싸고 있는 월드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일전에 만족하셨던 미슐랭 셰프가 요리하게 될, 좋은 식당을 세팅해 놓았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월드 헌터 한 명이 민성의 앞쪽으로 나오며 말했다.
“헛짓거리할 생각하지 말고 길 열어라. 다 죽는다.”
민성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 말에 의해 집결지의 공기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월드 헌터들의 얼굴이 전원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민성이 걸음을 옮기자, 월드 헌터들이 뒷걸음질을 치며 길을 터 주었다.
월드 헌터들이 열어 준 길 너머에, 6명의 삼천교 헌터들이 서 있었다.
민성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