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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49화 (149/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49화>

파르르!

레이피어에서 푸른 오러가 흘러나와 출렁였다.

한재혁은 그녀의 레이피어에 모여든 오러의 파동을 보다 김지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도망갈 줄 알았는데. 하긴.”

한재혁이 잇새로 웃음을 흘렸다.

“환단을 먹지 않았을 때부터 너라는 것에 대해 알 것 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네가 환단을 먹었든, 먹지 않았든 삼천교가 세계를 장악하는 건 마찬가지. 결국 모든 건 애당초 결정된 사안이다. 네가 말한 그 영웅이라는 이름은, 삼천교라는 이름 위에 덧칠 되겠지. 그게 현실인 거다.”

김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욕망에 삼켜진 짐승은 신념을 가진 자들을 이길 수 없어. ……절대로.”

그녀가 한재혁을 파랗게 일렁이는 눈으로 쏘아보았다.

한재혁은 그런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군. 위에서 지켜봐라. 이 세상이 삼천교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데 얼마나 걸릴 것인지.”

한재혁의 눈빛이 냉엄하게 변했다.

김지유도 레이피어를 꽉 쥐고 전력을 폭발시켰다.

차가웠던 주변의 온도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김지유가 먼저 선공을 위해 달려들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한재혁은 속으로 씁쓸함을 삼켰다.

‘멍청하긴. 차라리 도망을 선택했어야지.’

김지유의 얇고 날카로운 레이피어가 오러를 머금고서 한재혁의 목으로 향했다.

한재혁은 박도로 레이피어를 거칠게 쳐 냈다.

카아아앙-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한 검격음이 퍼졌다.

단 한 수의 방어에, 김지유의 레이피어는 튕겨지듯 위로 솟구쳤다.

레이피어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지만, 김지유의 가드(Guard)가 열렸다.

김지유의 동공이 확장되었고, 비어 있는 그녀의 몸으로 박도가 날아들었다.

한재혁의 박도에서 흘러나온 강한 검기가 김지유를 베었다.

서걱!

김지유의 방어 갑옷이 깨지면서 살이 찢어지고 피가 훅! 하고 허공에 뿌려졌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그녀가 피를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한재혁이 마무리를 하려고 김지유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김지유가 아래로 훅 하고 떨어지면서 한재혁의 시야에서 그녀가 사라졌다.

한재혁은 굳은 얼굴로 걸어가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첨벙!

그녀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듯했다.

파도 위로 핏물이 빨갛게 올라오는 게 보였다.

철썩! 소리를 내며 거칠게 치는 파도와 그에 섞인 피가 한재혁의 눈에 머물렀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한재혁은 짧은 한숨을 쉬며 마인의 탑을 보았다.

여전히 50플로어에 불이 밝아 있다.

잠시 마인의 탑을 응시하던 한재혁은 후드를 덮어쓰며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 * *

김지유의 몸이 바닷물 아래로 점점 가라앉았다.

그녀의 주변으로 붉은 피가 퍼지고 있었다.

김지유는 점점 가라앉고 있는 바닷물 속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지독했던 고통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죽기 직전에 느끼는 엔도르핀 같은 걸까?

아니.

죽어 가고 있는 거다.

빠르게 육체가 죽어 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감각이 무뎌진다.

이제부터 뇌가 굉장한 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걸 예고하는 셈이다.

죽기 직전에 보이는 것은 지난 삶의 파노라마가 아니었다.

현재 보이는 것은 오로지 한국의 안위와 미래, 그리고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마지막으로 강민성을 더 확실하게 서포트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다.

그 아쉬움만이 그녀의 머리와 가슴에 묵직하게 남았다.

의식이 옅어지고 심장 맥박이 불규칙해지면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그때.

풍덩! 풍덩! 풍덩!

뭔가가 바닷물 속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마치 노이즈 화면처럼 옅은 시야 안에 몇몇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김지유는 의식을 잃었다.

* * *

“살려 주세요라…….”

민성은 마신을 보며 엷게 비웃었다.

놈들에 대해 민성은 잘 알고 있었다.

습성과 성격까지도.

마인은 무리를 이루게 되면 각성 효과가 일어난다.

피와 전쟁이라는 본능에 충실해지고, 분노가 더해져 증오가 용솟음친다.

마신이라는 리더의 지휘 아래에서 움직이는 마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뛰어든다.

하지만 지휘관의 입장을 가진 마신은 다르다.

그건 이미 마계에서 겪은 바가 있다.

마신의 욕망은 지독하게 깊고, 그건 곧 그들의 약점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힘 앞에 쉽게 굴복했다.

자신 앞에서 목숨을 구걸했던 수많은 마신들처럼, 자신을 데오피란트라고 밝힌 눈앞의 마신도 마찬가지였다.

힘 앞에 그는 간단히 굴복했다.

“……솔직히 살고 싶어.”

마신이 우울한 표정으로 땅이 꺼질 듯 한숨 쉬며 말했다.

그에 민성이 고개를 들어 마신을 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난…… 이렇듯 테스트 서버를 맡게 된 만큼 최하위 마신이란 말이야……. 이렇게 테스트 서버만 맡았다가 검은 학살자인 너한테 죽어서 소멸당하고 싶지 않다고…….”

마신이 땅을 보며 힘없이 말했다.

민성은 그런 마신을 한심하게 보지 않았다.

누구보다 놈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다음의 기회를 도모한다.

그게 지휘관의 역할이었고, 마신은 마계의 지배 종족인 만큼 자신을 아꼈다.

마인이라는 것들도, 마신이라는 것들도- 하나같이 지독한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었다.

그 생각은 민성의 머릿속에 뿌리처럼 박혀 있었다.

“내가 검은 학살자라는 걸 알면서도 머리를 그렇게 굴려 대면 곤란하지. 내가 널 살려 줄 거라고 생각하나?”

울적한 표정이던 마신 데오피란트의 얼굴이 다시 흉악하게 악귀처럼 변했다.

“네놈은 정말 징글징글해. 인간인 주제에…….”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징글징글한 건 피차일반이야.”

민성이 검을 들었다.

전투의 예고에, 마신은 일그러진 얼굴로 기다란 손톱을 허공에 그었다.

샤아아악.

종이가 베이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공간이 열렸다.

마신은 그 공간에 다리를 반쯤 걸치고서 히죽 웃었다.

“내가 네놈이랑 싸울 생각을 했다면 오산이야. 내가 바보냐? 혼자서 네놈이랑 싸우게? 애당초 싸울 생각일랑 없었어. 난 다시 돌아온다. 네놈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지구라는 인간계는 그럴 수 없을 거다. 시체와 피, 그리고 혼돈 속에서 인간들은 울부짖을 것이다. 또 보자, 검은 학살자여.”

마신이 검은 공간 속으로 사라지려고 몸을 돌렸을 때였다.

“누구 마음대로.”

민성의 손끝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이 허공으로 부양되었다.

이기어검술.

눈으로 좇을 수 없는, 빛보다 빠른 속도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마신을 향해 튀어나갔다.

그리고 이내, 마신의 등을 뚫고 그대로 앞가슴을 꿰뚫었다.

“푸우!”

마신이 입 밖으로 피를 뿌렸다.

비틀거리던 그가 몸을 공간의 틈 사이에 힘없이 걸쳤다.

꿰뚫린 상처가 회복되고 있었지만, 오리하르콘 단검에는 민성의 마기가 실려 있었다.

그로 인한 파장이 마신의 육신 재생을 더디게 만들었다.

바가지가 검은 안광을 불태우며 마신을 향해 그림자 보드를 타고 달려들려고 할 때, 민성이 팔로 막았다.

“나서지 마라. 마신은 언데드로 부릴 대상이 아니다.”

민성이 명령하자 바가지가 곧장 뒤로 물러났다.

민성은 공간의 틈 사이에 너저분하게 걸려 있는 마신을 향해 걸었다.

저벅저벅-

가슴이 뚫린 채인 마신이 민성을 보며 얼굴을 구기고 이를 바드득 갈았다.

“빌어먹을 인간 새…… 끼, 여전히 더럽게 강하…….”

민성이 마신의 뿔을 잡아 끌어당겼다.

마신은 힘없이 민성의 손에 뿔이 잡힌 채 질질 끌려 나왔다.

“빌어먹을 검은 학살자! 대체 인간 주제에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거냐!”

민성은 뿔을 꽉 잡고서 마신을 내려다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만 찍찍거리고 본체를 드러내라.”

민성의 눈이 하얗게 번쩍였다.

콰르르르릉!

민성이 역수로 돌려 잡은 오리하르콘 단검이 우렁찬 천둥소리를 냈다.

오리하르콘 단검이 마신의 심장에 푹! 틀어박혔다.

“쿨럭!”

마신이 피를 물컥물컥 흘리며 축 늘어졌다.

이를 보며 이호성이 살짝 다가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물러서라.”

민성이 그렇게 말하며 무기를 뽑자, 이호성은 민성의 말대로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성은 마신을 주시했다.

이는 곧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예고하는 것이었다.

마신은 몸을 휘적 뒤집으며 바닥을 질질 기었다.

그가 꾸물꾸물 기어간 자리에는 시커먼 피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크학!”

마신이 한 움쿰의 피를 토했다.

민성은 그런 마신을 지루함이 섞인 눈으로 지켜보았다.

“크큭, 젠장….”

마신이 기어가던 행위를 멈추고 바닥에 이마를 쿵 찍었다.

“젠장. 빌어먹을. 하필 검은 학살자라니……. 크크큭.”

자조적으로 웃던 마신이 시커먼 눈으로 민성을 돌아보면서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내 갈 때 가더라도, 절대 곱게 가진 않을 것이다. 네놈의 미래는 피와 시체로 울음과 분노, 증오로 가득할지어니.”

마신의 외형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머리에 난 뿔이 먼저 자라기 시작했고, 뒤이어 경련하듯 엄청난 속도로 마신의 육신이 떨리며 순식간에 그 부피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민성보다 몇 뼘 정도밖에 크지 않았던 마신은 본체를 이루게 되면서 순식간에 거대화가 진행되었다.

민성은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각성하여 변태 과정에 들어섰을 때는, 물리적 공격이 별달리 효용을 보지 못한다.

때문에 변태 과정이 끝나고 완성체가 되면 죽이는 게 훨씬 편했다.

더군다나 마계와 달리 이곳은 한정적인 공간이었고, 개체 수는 한 마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여유로웠다.

다만, 놈이 완성체가 되면 한 번에 대미지를 줄 수 있도록 미리 오러의 힘을 오리하르콘 단검에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민성의 단검에 거대한 마기의 힘이 소용돌이쳤다.

이내 완성체를 이룬 마신이 포효했다.

탑 전체가 곧 무너지기라도 할 듯이 흔들렸다.

벽과 바닥에 쩌저적 금이 갔고, 마기의 파동에 의해 중력이 훨씬 더 무겁게 변했으며, 그랜드 홀 전체가 새빨간 피를 칠한 듯한 마법 문자로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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