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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48화 (148/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48화>

* * *

민성은 마신이 왕좌에 앉아 있는 걸 보며 50플로어까지 참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마인의 탑이 끝을 앞두고 있었다.

민성은 마무리를 짓기 위해 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천천히 꺼냈다.

콰지지지직!

오리하르콘 단검이 여느 때보다 훨씬 격렬한 마기의 힘으로 출렁였다.

그에 눈을 감고 있던 마신이 천천히 눈을 떴다.

마신의 눈은 마인처럼 새빨간 핏빛이 아니었다.

모두 검었다.

“……검은 학살자.”

마신이 쇳소리와도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

그러자 탑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바닥과 벽, 천장까지 온통 마계어로 된 시커먼 마법 문자가 사방에 가득 채워졌다.

이윽고 마신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점점 큰 소리로 울려 퍼졌다.

이호성이 윽 하고 신음을 흘렸다.

단순히 웃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그의 심장을 콱 움켜쥐고서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이호성은 가슴을 움켜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지진과도 같은 울림이 멎고, 왕좌에 있던 마신이 민성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민성과 약 5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겨 두고 마신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오랜만이군.”

“글쎄, 딱히 내 기억에는 없어서.”

민성의 덤덤한 말에, 마신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곧 표정을 풀고 비대칭으로 피식 웃었다.

“나는 72 마신 중 하나인 ‘데오피란트’다. 처음 검은 학살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사실…… 믿지 못했지. 하지만 지금 이렇듯 대면을 통해 정말 살아 있음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기분이 묘하군. 지난 추억이 난 아직도 생생해. 너도 그럴 테지.”

마신이 민성을 보며 낮게 웃었다.

심연을 파고드는 끔찍한 웃음소리.

이호성은 귀를 틀어막았다.

고막이 터질 것만 같고, 온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바가지도 고개를 떨구고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떨고 있지 않은 건 민성과 홀을 구경하고 있는 쏠뿐이었다.

쏠은 두려움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반면 이호성은 마신을 다시 한번 흘깃 보고 너무 두려운 나머지 눈을 질끈 감았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짓이겨질 것만 같았다.

“대체 뭐냐? 이 허술한 마인의 탑이라는 건?”

민성이 내부를 훑어보며 물었다.

“인간들의 말을 빌리면, 일종의 테스트 서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랄까…….”

“테스트?”

민성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그래서 본 게임은?”

“머지않아 시작될 것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이 피를 흘리고 피를 토하며, 사지가 찢어지며 죽어 갈 것이다. 온 세상은 피로 물들 것이며, 죽음과 공포, 그리고 대혼란이 온 거리를 휩쓸 것이다.”

민성이 마신을 보며 가늘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두진 않지.”

“빛이 사라지고 그 위로 인간의 시체와 피, 그리고 울음과 비탄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왜.”

“…….”

“여긴 왜 왔지?”

민성보다 세 뼘은 더 큰 마신이 민성을 향해 웃었다.

시커먼 이빨과 잇몸이 드러났다.

“우리가 왜 이곳을 찾은지는 누구보다 네놈이 가장 잘 알 텐데.”

순간 민성의 머릿속에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생지옥.

그곳이 마계였다.

물이 없어 피를 마셔야 했고, 식량이 없어 생살을 뜯어 먹어야 했다.

그곳에 사는 자들이라 해서 안식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계의 생명체는 모두…… 탐욕스러웠다.

“너희들은 거기에 제일 잘 어울려. 애초에 너희 세계잖아, 거기가.”

민성의 말에 마신의 검은 눈이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인간의 시체와 피가 산을 이루는 곳이야말로 우리에겐 더할 것이 없는 세계. 인간계는 우리가 지배할 것이며, 인간의 생살을 뜯어 몬스터의 먹이로 주고, 피에 술을 섞어 축제를 벌일 것이다. 혼돈과 죽음이 빛을 덮으…….”

“같은 말 자꾸 하지 말고. 그만 가자. 귀 아프다.”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에 마기를 집중시키며 한 걸음 내디뎠을 때였다.

“……묻고 싶은 게 있다. 대체 어떻게 인간계에서 다시 삶을 이어 갈 수 있게 된 거지? 넌 분명 마계에서 죽었을 텐데.”

“나도 몰라.”

고개를 젓던 민성의 눈에 살심이 파고들었다.

마신 하나를 상대하는 건 오히려 쉽다.

한 놈이니까.

전투를 벌이기 직전.

마신이 팔을 들어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마신 데오피란트다. 그렇게 쉽게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인간계와 마계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지. 그만큼 우리에겐 성장할 여유가 있다. 너도 잘 알 테지. 우리가 얼마나 피와 전쟁에 미쳐 살고 있는지. 시간이 흐른 만큼 나는 더 강해졌고…….”

“시끄럽다. 좀.”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휘둘렀다.

뇌력을 머금은 새하얀 마기가 마신을 향해 질주했다.

쐐애애애애애액!

콰과과과과과, 콰쾅,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쏟아졌다.

마신의 왼쪽 팔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하지만 그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마신은 회복된 왼팔을 흔들며 웃었다.

“한마디만 더 하지. 나는 내 아이들이 네 손에 참혹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네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수많은 마인과 마신들을 죽여 나갔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

“그래. 넌 여전히 강하군. 착각했다.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었어. 네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힘을 다 쓰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라니. 그래, 너는 분명 날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지금의 이 마인의 탑은 그저 테스트용에 불과한 것. 인간계는 곧 마계의 영역이 될 것이다.”

민성이 지친 눈으로 마신 데오피란트를 보았다.

“한마디가 아니잖아.”

“나는 대마신 데오피란트. 테스트용으로 만들어진 이 마인의 탑에서 나는 충분히 나의 역할을 다했다. 검은 학살자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을 일궈 냈다고 할 수 있지.”

“…….”

“난 네가 날 살려 두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

“하나 내가 죽는 건 오늘이 아니다. 우린 곧 다시 만나야만 한다. 현 시점에 네게 죽을 수는 없다. 나 대마신 데오피란트는!”

“그러니까 네 요점이…….”

“살려 주세요.”

“……”

둘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 * *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이 말했던 대로 월드 헌터들을 따로 불러 모아 상황을 설명했다.

삼천교가 강민성을 죽이려고 하고 있고, 우리는 그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자, 월드 헌터들은 참담한 심정이 되어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환단을 먹은 이상 삼천교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걸 알지만, 강민성 같은 거물을 상대로 작전을 짜고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강민성이 탑을 클리어하고 집결지에 도착하면 월드 헌터 A팀이 이호성과 펫을 떼어 놓도록 유인해야 한다. 수색조와 전위조가 A팀이 되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에단이 손짓으로 팀을 갈랐다.

“후위조는 B팀이 되어 강민성의 시야를 막으면서 시선을 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라.”

월드 헌터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걱정이 담긴 시선이 섞여 들었다.

“우리가 전투에 가담할 일은 없다. 역할을 마치면 바로 자리를 벗어나라.”

그 말에 월드 헌터들은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된 듯한 표정이 되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어떻게 강민성의 파티를 분산시킬지, 그리고 그의 시야를 막을 수 있을지 그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

에단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삼천교가 지면…… 환단을 먹지 못하는 우린 모두 죽는다.”

월드 헌터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높은 지대 위에서 마인의 탑을 보고 있는 김지유의 얼굴은 주변의 날씨만큼이나 흐렸다.

김지유가 서 있는 낭떠러지 아래로 파도가 거칠게 출렁였다.

꽈르릉!

천둥 벼락은 쉴 새 없이 내리쳤다.

벌써 마인의 탑에 50플로어의 불이 밝혀졌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김지유는 양손을 꼭 맞잡아 쥐고서 마인의 탑을 응시하다가 집결지 쪽을 돌아보았다.

50플로어의 불이 밝으면서 집결지의 분위기가 변했다.

결코 우호적으로 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진즉에 눈치챘다.

집결지에서 김지유의 접근은 차단되어 있었다.

굳은 얼굴로 집결지 쪽을 보고 있던 중,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산 중턱쯤에 위치한 인적이 드문 곳이다.

그런데 누가……?

김지유는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부스럭-!

“당신은…….”

김지유가 확장된 동공으로 자신 앞에 나타난 사내를 보았다.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이었다.

그가 덮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감겨 있는 한쪽 눈에 길게 난 흉측한 상처가 훤히 드러났다.

하나의 이리 같은 눈이 김지유의 시선과 마주쳤다.

김지유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찔 떨며 뒷걸음질 쳤다.

낭떠러지 밑으로 흙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아찔한 아래를 한번 돌아보았다가 다시 빠르게 한재혁을 쏘아보았다.

“……뭐죠?”

한재혁은 한쪽 눈으로 김지유를 느슨하게 보면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입술을 열었다.

“강민성이 집결지로 돌아오면 죽일 것이다. 이미 계획은 세웠고, 실행만이 남았지.”

그 말에 김지유의 사나운 눈이 한재혁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그 전에 나를 제거하겠다?”

한재혁은 대답 대신 템 창에서 박도를 꺼내 들었다.

김지유가 이를 악물었다.

“나는 한국의 헌터장입니다. 나를 죽이는 건…….”

“상관없어.”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조가 없는 기계적인 어투로 말을 이었다.

“네가 누구든, 그런 건 관심 없다.”

“이유가 뭐지? 나를 죽이려는 이유.”

“변수를 제거하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힘을 합쳐야 할 시기에 같은 헌터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탑을 클리어한 영웅을…….”

김지유가 이를 악물었다.

“부끄럽지도 않아?!”

그리고 목을 붉히며 격하게 소리쳤다.

“영웅……?”

한재혁이 낮게 읊조리다 이내 자조적으로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건 살아남은 이들에게나 붙이는 이름이지.”

김지유는 코웃음을 흘리며 쓰게 웃었다.

“강민성, 그는 홀로 마인의 탑 클리어를 앞두고 있어. 그런 그를 쉽게 이길 수 없을 거야.”

“많이 지쳤을 것이다.”

한재혁의 말에 김지유의 눈이 흔들렸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플로어의 최상층까지 뚫고 나온 거라면 분명 지쳤을 테지.”

그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기회를 틈탄다면 충분히 가능한 싸움이야. 그도 인간이니까. 그리고 삼천교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김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한재혁을 보며 호흡이 가빠졌다.

“아니. 그는 너희 같은 놈들에게 당하지 않을 거야. 인류보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짐승 같은 너희들에게 그가 당할 리 없어.”

한재혁은 김지유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곧 보내 줄 테니 저승에서 그를 기다려라.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에 김지유가 템 창에서 은빛의 레이피어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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