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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47화 (147/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47화>

챔피언의 타깃은 이호성과 바가지였다.

죽음을 각오하고, 파티의 숫자를 하나라도 줄이겠다는 뜻.

기감을 펼쳐 감각을 극대화시키자, 감각의 거미줄에 살기를 품은 먹잇감이 걸려들었다.

현재 위치에서 1시 방향.

뿌연 연기를 뚫으니 챔피언이 이호성을 향해 무기를 내려찍으려는 게 보였다.

이호성이 죽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머릿속에 바로 계산이 섰다.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두꺼운 양의 마기가 마치 춤추듯이 발출되었다.

새하얀 뇌력을 머금은 마기가 어둠을 가르고 빛이 되어 나아갔다.

슈슈슈슉!

챔피언은 이호성을 찌르지 못하자 공격에서 방어로 태세를 전환했다.

챔피언의 오른팔에 방패를 닮은 것이 생겨났고, 그 방패에 민성이 발출한 마기가 직격되었다.

콰지지지지직!

챔피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민성의 마기를 버텨 내고 있었다.

둑이 깨지면 물이 단숨에 흘러넘치듯, 위태위태함이 보였다.

그사이 챔피언의 수하인 마인들이 민성을 향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민성은 발출해 낸 마기를 멈추고 몸을 회전시켰다.

단 두 바퀴 반을 회전하면서 휘두른 공격에 추풍낙엽처럼 마인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그때-

챔피언이 다시 이호성을 공격하려 했지만, 바가지가 샤먼을 소환하여 공격한 탓에 이호성은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버서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즉사할 만큼의 대미지를 입게 되면 그대로 죽어 버리고 만다.

특성 마인의 앞에서 이호성의 버서커 능력은 무적이 아닌 방탄조끼 같은 역할밖에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 무리를 이끄는 마인은 부담이라고 할 수 없다.

민성의 눈이 빛났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이 기술을 쓰는 건 조금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빨리 끝내는 데 이만한 건 없다.

민성은 챔피언을 찌를 듯이 보면서 이기어검술을 사용했다.

오리하르콘 단검이 민성의 손을 떠났다.

천천히 부유하던 오리하루콘 단검이 어느 순간 공간 이동과도 맞먹을 법한 속도로 퍽! 하고 마인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다란 키의 챔피언이 자신의 뚫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직!

새하얀 뇌력의 마기가 챔피언의 뚫린 가슴 주변으로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챔피언의 몸이 한여름에 노출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바가지, 먹어라.”

민성이 말했다.

바가지는 검은 안광을 활활 불태우며 부활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한데 바가지의 손끝에서 부활 스킬이 발동하기 직전-

“으랏찻차아아아아-!”

이호성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휘둘렀다.

서걱-!

챔피언의 허리가 잘려 나가고.

그토록 발동 확률이 낮았던 데스나이트 검의 특성인 헬 파이어가 터졌다.

콰아아아아앙!

뜨거운 열기와 함께 거대한 불꽃 폭발이 일어났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챔피언이 귀를 찢는 비명을 지르며 이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질퍽한 피 위로, 아이템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호성은 그 광경을 보며 환희의 미소를 지었다.

“헌터님! 제가 특성 마인을 먹었습니다! 이 경험치 제가 먹었다고요, 으하하! 야, 바가지 부럽…….”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신이 난 듯 흥분하여 말하던 이호성이 민성의 표정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민성이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성 마인은 바가지보고 먹으라 하지 않았나?”

이호성이 민성을 보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선을 피해 눈알을 바깥쪽으로 굴렸다.

“그, 그, 글쎄요. 못 들은 것 같은데. 진짜예요. 못 들은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민성이 저벅저벅 걸어 이호성 가까이에 섰다.

“이호성.”

“예, 예예. 헌터님.”

이호성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감히 민성을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앞으로 당분간 특성 마인은 바가지가 먹는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바가지가 특성 마인을 먹어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투로 활용 가능한 범위 지대가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억해라.”

“……예, 헌터님.”

민성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본래 챔피언이 거느린 마인들은 더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챔피언이 죽자 당황했는지 마인들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마인을 모두 죽여야만 다음 플로어로 가는 문이 열리는 건 아니다.

그들을 모두 죽여야 열린 적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

민성은 흥건한 피를 밟으며 다음 플로어로 가기 위해 출입구를 찾아 나섰다.

쏠은 이미 아이템을 모두 챙긴 뒤였고, 바가지는 활활 불타오르는 눈으로 이호성을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이호성은 헛기침을 하며 바가지의 시선을 회피했다.

“미안해.”

이호성이 사과했지만 바가지는 여전히 화가 잔뜩 난 것만 같은 눈길로 쏘아보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했잖아. 진짜 몰랐어! 몰랐다니까?”

그에 바가지가 말없이 커다란 가분수의 머리를 팩 돌리며 주인을 쫓아 뒤뚱거리며 뛰어갔다.

이를 보던 쏠은 이호성 옆으로 와서 으응? 하며 올려다보았다.

이호성은 한숨을 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묵 탕 그릇과 수저가 엉망이었다.

그릇과 수저의 여분은 충분히 챙겨 놨다.

하지만 앞으로는 얼마나 식기가 이렇게 더러워지거나 부서질지 모르니 더 구비해 놔야겠다고 생각하며, 이호성은 우울한 얼굴로 쏠과 함께 터벅터벅 걸었다.

* * *

탑을 헤맨 끝에 다음 플로어로 가는 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봤던 나선형 계단 입구와는 그 생김새가 상이하게 달랐다.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의 벽에는 마인의 조각이 있었고, 그 위로는 아치형 팀파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은 마법 글자가 새겨진 반투명한 형태였다.

민성은 그 문을 손으로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라스트 플로어’라는 검은 글자가 허공에 천천히 새겨졌다.

츠츠츠!

문을 통과하지 않았음에도 사위가 어두워졌다.

이내 주변의 공간이 어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흔들리는 시야로 인해 이호성은 어지러움이 느껴져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렸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는 바가지와 쏠.

민성만이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오롯하게 서 있었다.

잠시 후, 서서히 어둠 속에서 빛이 밝았다.

넓은 홀.

중세 시대의 그랜드 홀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었다.

검은 카펫이 길게 이어진 끝에는 해골로 만들어진 왕좌가 있었다.

그 왕좌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

어리벙벙한 얼굴이던 이호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왕좌에 앉아 있는 대상을 보고 바짝 얼어붙었다.

바가지는 활활 불타는 검은 눈으로 그것을 응시했고, 쏠은 해맑은 얼굴로 이곳저곳을 구경 다녔다.

“굉장하게 생겼네요. 벌써 라스트 플로어라는 것도 놀랍고요.”

이호성의 말에 민성은 물끄러미 왕좌를 보았다.

왕좌에 앉아 있는 건 민성이 잘 알고 있는 유형의 몬스터였다.

생김새는 마인과는 조금 달랐다.

머리에 짧은 뿔이 나 있고, 백인보다도 창백한 피부에, 검은 손톱이 길게 나 있었으며, 팔다리에는 파충류의 비늘과도 같은 것이 있었다.

마계의 지배 종족 중 하나.

마신(魔神)이었다.

* * *

검은 로브의 사내 한재혁은 집결지에서 한쪽 눈으로 마탑을 올려다보았다.

47…… 48…… 49…… 50.

50플로어의 불빛이 드디어 밝았다.

더 이상 마탑에 빛이 생길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즉 플로어의 끝에 도달했다는 의미.

강민성이라는 한국의 헌터가 마지막 플로어의 문을 개방한 것이다.

한재혁은 마탑을 보다가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 곧장 회의장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장 안에서 늘어지게 앉아 있던 삼천교 헌터들이 한재혁이 들어서자 몸을 바로 세웠다.

의문이 담긴 삼천교 헌터들의 시선에, 한재혁은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한국의 헌터 강민성이 탑 최상층부에 도달했다.”

이를 들은 삼천교 헌터들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이었다.

놀란 얼굴을 한 자도 있었고,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은 자도 있었으며, 불편한 표정을 짓는 헌터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마음은 모두 하나로 모여들었다.

불안감.

혼자서 탑을 뚫고 최상층부에 도달했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삼천교의 헌터들이라고는 해도 혼자서 탑을 뚫은 인간은 비상식적으로밖에 보일 수 없었고, 이에 따라 그들의 마음이 불안감으로 통일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무서운 이유는 지금과 같을 때다.

불안하고 두려워도 그 임무를 실행하여 결과를 달성한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수록 집중력은 더 올라간다.

삼천교 헌터들이 맹수들처럼 야생적으로 돌변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침착하면서도 공격 본능이 다분히 담겨 있었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요.”

삼천교 헌터 한 명이 말했다.

그에 한재혁이 템 창에서 박도를 꺼내 박도의 끝을 테이블에 툭! 하고 찍었다.

두꺼운 나무테이블에 금이 쩌저적! 가더니, 한순간 테이블이 완전히 박살이 나 무너져 내렸다.

“기상(起床).”

삼천교 헌터들이 또랑또랑한 눈으로 곧바로 일어섰다.

“놈이 마탑을 클리어하든, 라스트 플로어에서 무너지든 우린 움직여야 한다. 마탑을 클리어하면 강민성을 기습 암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한국의 헌터 강민성이 죽으면 마탑을 끝내러 들어간다.”

“예.”

삼천교 헌터들이 동시에 군기가 잡힌 채로 대답했다.

“에단을 불러와.”

삼천교 헌터 하나가 미국의 헌터장 에단을 찾기 위해 회의장을 나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에단을 데리고 돌아왔다.

에단은 한재혁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섰다.

“에단. 작전은 미리 들었겠지?”

에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들에게 지금 바로 내 지시 사항을 전달해라.”

“일전에 말했던 작전을 말하는 거요?”

“아니.”

에단의 의문이 담긴 눈이 한재혁을 보았다.

“강민성이 탑을 클리어하고 집결지에 도착하면 월드 헌터 A팀이 강민성의 하수인들을 떼어 놓도록 하고, B팀은 강민성의 시야를 막으면서 시선을 끌어라.”

“우리는 그것만 하면 되는 거요? 전투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오?”

“너희들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알겠소.”

에단이 회의실을 나갔다.

삼천교 헌터 한 명이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에단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한재혁을 돌아보았다.

“월드 헌터는 버리는 겁니까?”

“혼자서 마탑을 클리어한 헌터다. 월드 헌터들 한 놈씩 잡아서 방패로 쓰든 알아서들 해. 한 타이밍에 폭딜을 넣지 못하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한재혁의 말에 더 이상의 이견이 없었다.

“지금부터 마탑을 집중 감시하도록.”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삼천교 헌터들이 흉흉한 눈을 빛내며 회의장 천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재혁은 서늘한 눈으로 박도를 내려다보았다.

회의장 천장에 달린 금빛 조명에 박도의 두꺼운 날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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