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46화>
* * *
“……이제 올라가면 49층이네요.”
이호성이 나선형 계단 입구 앞에 서면서 말했다.
민성은 시간 끌 것 없다는 듯 곧장 계단을 밟고 상위 플로어로 향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서 갑작스레 공포 영화처럼 나타난 마인을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으로 베어 내며 가볍게 무찔렀다.
이호성은 민성이 단숨에 마인 한 마리를 찢어발기는 걸 보고 숨을 삼켰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강민성은 오러의 출력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헌터 한 명의 오러 출력이 1이라고 쳤을 때, 강민성의 출력은 얼마나 될까?
500? 800? 1,000?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자동차 마력도 아니고…….
자동차로 치면 인간 라페라리네, 어휴.
그는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앞을 보자 민성은 묵묵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드디어 49 플로어에 도달.
정말이지 정신없이 올라왔다.
무슨 마인의 탑을 고속도로 달리듯 뚫고 올라오다니.
이호성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고 현실감도 없었다.
그때, 민성이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이호성은 얕은 호흡을 빠르게 쉬고 있다가 민성의 시선을 느끼고 숨을 멈추었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저, 저 안 지쳤어요. 아직 안 지쳤다니까요? 진짜예요. 아직은 괜찮아요.”
민성이 그를 빤히 응시하자, 이호성은 초조한 얼굴로 자신의 바짝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어차피 이미 49층 올라왔잖아요. 그렇죠? 여기서 괜히 다시 새 체력 만든다고 헌터님 칼 맞고 버서커가 되는 건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작업입니다. 언제 마인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고요.”
“배가 고파졌어.”
민성의 말에 이호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난 또! 하아…… 놀래라……. 헌터님, 그렇게 말없이 보고 있지 말아 주세요……. 하실 얘기 있으면 빨리 얘기 좀 해 주세요. 듣는 사람은 잠도 안 자는데 가위 눌릴 것 같으니까.”
“밥 먹고 간다.”
민성이 앞쪽 시야를 한 번 더 확인했다가 쏠을 손짓으로 불렀다.
* * *
“긴장을 해서 그런지 잊고 있었는데, 확실히 밥때가 훨씬 지났네요.”
이호성이 재료를 손질하면서 말했다.
민성은 대답 없이 팔짱을 끼고서 이호성이 음식 준비하는 걸 조용히 지켜보았다.
빨리 식사나 준비하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이호성은 입을 닫고 음식 준비를 서둘렀다.
49 플로어에서 먹게 될 이번 한 끼는 간단히 먹기 좋은 음식으로 결정됐다.
바로, 맑은 어묵 탕이었다.
무, 대파, 양파, 청양 고추, 다시마, 다진 마늘, 멸치, 국 간장, 맛술, 소금을 이용해 육수를 만들었다.
건더기를 걸러낸 육수를 바가지에게 팔팔 끓이라고 부탁했다.
바가지의 마법은 일반 불꽃보다 훨씬 고온이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육수를 팔팔 끓일 수 있었다.
육수가 끓자 이호성은 실제 생선살이 포함되어 있는 고급 어묵과 미리 썰어 놓은 홍고추와 파, 그리고 양파를 투하했다.
이제 한 소끔 끓이기만 하면 끝.
장웅의 레시피는 간단하면서도 그 맛이 최고여서 좋았다.
“완성입니다, 헌터님!”
이호성이 밝은 얼굴로 외쳤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깔아 놓은 돗자리 위에 앉았다.
“아, 맞다, 국자.”
이호성이 쏠의 황금 주머니에서 국자를 찾아, 민성이 먹을 만큼의 어묵을 덜었다.
“여기 있습니다, 헌터님.”
어묵 탕이 담긴 그릇을 내밀자, 민성이 이를 받아 어묵 탕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김이 솔솔 올라온다.
맑고 시원한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고급 어묵인 만큼 여러 가지 색깔과 여러 가지의 형태, 여러 가지의 맛을 갖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예쁜 어묵들을 보면서 민성은 빨간 색소에 물든 어묵 하나를 푹 찍어 입에 넣었다.
“호옵.”
입 밖으로 뜨거운 입김이 훌훌 나온다.
어묵은 잘 익어서 한없이 부드러웠다.
몰캉몰캉한 어묵엔 육수가 잘 배어들어 있어 시원한 맛까지 느낄 수 있었다.
민성은 빨간 색상의 동그란 어묵을 씹으면서 그릇째 들어 국물을 마셨다.
“후루룩!”
꿀꺽-!
“하아…….”
입김이 마치 수증기처럼 흘러나온다.
온몸이 따뜻해지고 피가 빨리 도는 것 같다.
열량을 이렇게 즐겁게, 맛있게 흡수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마법이었다.
정말 시원하군.
고추의 매운 향과 농도 짙은 어묵 탕의 깊은 국물 맛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민성은 이호성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술 있나?”
“소주, 위스키, 보드카, 꼬냑 등등 종류별로 다 챙겨 놨습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민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묵탕엔 소주지.’ 하고 말했다.
이호성이 빙긋 웃었다.
“이제 헌터님도 척하면 척이네요.”
그가 쏠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소주 꺼내. 병으로 된 건데 투명하고 초록빛 나는…….”
쏠이 황금 주머니에서 소주로 보이는 것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건 참기름이고.”
쏠이 다른 걸 꺼내며 빵긋 웃어 보였다.
이호성은 화를 내려다가 일전에 쏠이 울음을 터트렸던 걸 기억하고선 숨을 삼켰다.
“그건 올리브오일.”
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소주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소주를 찾아냈다.
“그래, 이거야!”
이호성이 웃으며 쏠의 엉덩이를 툭툭 쳐 주었다.
그에 쏠은 입을 크게 벌리며 와아- 하는 입모양으로 빵긋 웃었다.
이호성은 쏠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인 후, 민성에게 소주를 전달했다.
민성이 병을 받았을 때.
“아차, 바로 잔을 찾아 드리겠…….”
“됐다.”
민성은 소주 뚜껑을 까고 그대로 병째 들이켰다.
꿀꺽꿀꺽, 꿀꺽-!
이호성은 오…… 하는 표정으로 민성을 보았고, 민성은 절반가량 비운 소주병을 내려놓고 다시 어묵에 집중했다.
목이 화끈화끈하다.
민성은 알코올로 인해 가슴이 살짝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아이보리 색깔의 자그마한 어묵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음……?”
알코올이 가슴에 화끈함을 주면서 머무르는 가운데 먹는 어묵의 맛이 정말이지 굉장했다.
민성은 미간을 구기며 그 맛을 음미했다.
이번에 먹은 어묵은 처음 먹은 빨간 색소의 동그란 어묵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입에서 그냥 녹아내린다.
아마도 방금 먹은 그것이 생선살이 가장 많이 들어간 어묵 같았다.
부드럽고 맛있으며, 어묵의 달콤한 향이 콧속으로 강하게 들어왔다가 나갔다.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맛있다.
민성은 다소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어묵 탕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식기 전에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서둘러 젓가락을 놀렸다.
이번엔 스탠다드한 형태의 어묵.
방금 전에 먹었던 어묵들과는 다르게 약간의 씹는 감각이 살아 있는 어묵이었다.
쫄깃쫄깃하고 탱탱함을 맛볼 수 있었다.
정말 맛있어.
민성은 소주병을 들어 가볍게 몇 모금을 더 마시고, 즐거운 표정으로 어묵을 즐겼다.
“바가지, 국물 식는다. 조금 더 데워 줘. 너무 센 불로 말고 작은 불로.”
바닥에 엎어져 있던 바가지가 뒤뚱거리며 뛰어와 불을 켜 주었다.
검은 불꽃이 타닥타닥 아주 작게 튀었다.
“오호- 야, 바가지. 몇 번 하더니만 벌써 불 쓰는 실력이 늘었는데?”
이호성의 칭찬에 바가지가 칵칵 웃었다.
“더 드릴까요?”
이호성의 물음에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을 넘겼다.
이호성이 김이 솔솔 올라오고 있는 어묵 탕을 조금 더 덜어서 민성에게 주었다.
“일부러 많이 담지 않았습니다. 식으면 맛이 없으실 것 같아서요.”
“알고 있다.”
그 대답에 이호성은 머쓱하게 웃으며, 자신도 먹기 위해 국자를 들었다.
그가 국자로 어묵을 퍼 올렸을 때, 쿵- 쿵- 하고 바닥이 울렸다.
이호성은 국자를 든 채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족히 1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덩치의 마인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마, 마인입니다!”
이호성이 국자를 버리듯이 놓으며 벌떡 일어나 템 창에서 데스나이트의 검을 꺼내 들었다.
바가지도 활활 타오르는 안광으로 거대한 마인을 쏘아보았다.
쏠은 와아? 하고 놀란 눈으로 커라단 마인을 보았다.
그중 유일하게 민성만이 마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어묵 탕에 담담히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 * *
마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체력과 근접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마인이 ‘챔피언’이다.
챔피언이라는 이름은 민성이 마계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기억하기 쉽게, 분류를 해 놓은 것이다.
챔피언 마인은 민성과 그 주변의 생명체들을 보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민성은 그런 챔피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어묵을 먹었다.
챔피언 주변의 득실거리는 마인들이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챔피언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저 쏘아볼 뿐이었다.
민성은 마지막으로 남은 어묵 하나를 먹은 후에야 젓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챔피언에게 시선을 돌렸다.
순간 챔피언이 움찔! 하고 아주 잠깐 몸을 떨었다.
“몇 층까지 있는 거냐? 이 마인의 탑이라는 건.”
민성이 마계어로 물었지만, 챔피언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콰지직! 소리와 함께 검은 형체의 검이 챔피언의 손에 생겨났다.
“뭐, 별로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건 아니고.”
민성이 바지의 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일어선 뒤 챔피언을 응시했다.
“그냥 좀 지루해서.”
민성의 공허한 눈을 본 챔피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사형수가 집행을 당하기 직전의 감정이 호흡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챔피언에게 있어 민성은 사형 집행자였다.
“탑의 끝이 어디 있는지 말 안 할 거면-”
민성이 서늘한 눈으로 챔피언을 보며 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냈다.
콰지지지지지직!
챔피언의 빨간 눈에는 소멸에 대한 순수한 공포감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포감이 싸움을 멈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이제 그만 가라.”
민성이 챔피언과 마인들을 보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힘이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에 챔피언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은 형체의 무기를 집어 던졌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그것을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건 민성뿐.
민성은 무기의 방향이 이상하다고 잠시 생각하다가, 재빨리 지면을 박차고 뛰어 나가 오리하르콘 단검으로 무기를 쳐 냈다.
콰아아아아아앙!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번지며 시야를 가렸다.
‘……타깃이 내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