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145화 (145/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45화>

“드디어 20 플로어 입성이네요!”

이호성이 마지막 계단을 뒤늦게 밟으며 말했다.

그는 눈 밑이 검게 죽은 채로 하하 웃었다.

“20층까지 올라왔긴 한데…… 마인한테 죽는 것보다 졸려서 죽을 것 같은데요?”

그의 말대로, 식사를 위해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탑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민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은 별달리 잠의 영향을 받을 일이 없었으나, 이호성만큼은 달랐다.

적어도 이 파티 안에서 이호성은 가장 평범한 인간에 가까웠으니까.

비틀-

이호성은 결국 졸음에 의해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이대로 가다가 특성 마인이 나타나면, 버서커고 뭐고 간에 이호성의 죽음은 기정사실이었다.

“쉬어라.”

이를 지켜보던 민성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호성은 스스로를 짐짝으로 취급하는 듯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그로서도 별수 없었다.

자신의 몸 상태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바가지가 불침을 서고.”

“네, 주인님.”

“수면 시간은 3시간으로 제한한다.”

“감사합니다.”

이호성이 곧 넘어갈 것 같은 얼굴로 기둥에 등을 대고 털썩 주저앉았다.

“아…, 이왕 쉴 거라면 버서커가 되는 게 좋겠다.”

그 말에 이호성이 멍한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예?”

“버서커가 되면 체력이 재생된다. 세 시간 동안 잔다면 쿨타임도 다시 돌아올 테니까.”

“그, 그 말씀은…….”

“푹 자라.”

민성이 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내 이호성에게 난폭하게 걸어갔다.

“어, 어어……? 헌터님!”

민성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호성의 명치에 오리하르콘 단검을 찔렀다.

푸북!

불쾌한 소리와 함께, 살을 찢고 내장을 찌르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컥……!”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버서커로 진화합니다.]

이호성의 머리카락이 붉게 변하고, 송곳니가 자라며, 눈이 붉어지고, 근육이 부풀었다.

민성은 담담한 시선으로 이호성이 버서커 과정을 밟아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이호성이 광포하고 흉포한 울음을 짐승처럼 내뱉었다.

민성은 이호성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가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와아?”

쏠은 이호성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고, 바가지는 마치 고양이를 발견한 쥐처럼 현장을 달아났다.

“크르르, 크르르르, 푸흐!”

이호성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민성을 쏘아보자, 민성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버서커가 되면 공격성밖에 남지 않는다.

의식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데, 어째서 공격하지 않지?

자세히 보자 이호성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호성은 민성을 노려보다가 주변을 초조해 보이는 모습으로 두리번거렸다.

마치 막다른 길에 몰린 나약한 짐승처럼 보였다.

“크와아아아!”

이호성이 이내 타깃을 변경해 민성이 아니라 쏠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민성이 빛처럼 쏘아 나가 주먹으로 이호성의 옆구리를 때렸다.

묵직한 소리가 나면서 이호성이 탑의 벽면으로 날아가 부딪쳤다.

우르르!

벽에서 가루 같은 것이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뿌연 먼지가 내려앉아 이호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쪽으로 민성이 걸어갈 때, 이호성이 먼지를 뚫고 튀어나왔다.

손에는 데스나이트의 검이 들려 있었다.

이호성은 폭발적인 스피드로 공격을 시작했다.

헬 파이어 능력이 폭발하면서 허공에 불꽃이 쾅쾅 터졌지만, 민성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데스나이트의 검은 아슬아슬하게 허공만을 베었다.

민성은 이호성의 공격을 마치 춤을 추듯 편안하게 흘려 내며 피했다.

그러다 적당히 시간이 무르익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를 재워 주기로 했다.

어차피 대미지는 곧 경험치로 환산된다.

다만 너무 많은 대미지를 주면 버서커가 풀리고 깨어났을 때 전투에 지장이 생기니, 적당한 수준으로.

콰아아아아아아앙!

민성의 주먹이 이호성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쿨럭!”

이호성은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하며 바닥에 철퍽 떨어져 내렸다.

“크워어어어어……!”

그가 입 밖으로 피와 침이 섞인 타액을 흘리며 고통에 의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민성은 손목에 찬 최고급 랭귀지 워치를 내려다보았다.

8분이 지났다.

“곧 버서커 종료인가.”

민성이 그렇게 말했을 때, 이호성의 버서커 상태가 풀리며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숨어 있던 바가지가 기둥 밖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민성이 턱짓으로 이호성을 가리키자, 바가지가 타박타박 뛰어와 이호성의 옆에서 불침 경호를 섰다.

쏠은 이호성이 편안한 표정인 것을 보고 빵긋 웃은 다음, 이호성의 옆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서 함께 잠들었다.

* * *

“계속 불이 켜지는군.”

삼천교 헌터 중 하나가 마인의 탑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하나둘 삼천교 헌터들이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없는 속도다.”

“속도보다 올라가고 있다는 게 더 놀라워.”

“어쩌면 이대로 정말 탑을 클리어할지도 몰라.”

“탑을 클리어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모든 던전이 사라지게 되는 건가?”

“알 수 없는 일이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전력이 강해…….”

삼천교 헌터들이 마인의 탑에 밝혀진 플로어 불빛을 무거운 눈빛으로 보았다.

“그래서 전략을 세우지 않았나.”

한 삼천교 헌터의 말대로 회의 끝에 전략은 분명해졌다.

만약 정말 마탑이 한국의 헌터 강민성에 의해 클리어된다면, 그가 지쳐 있을 때 암습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피해를 줄이고, 그를 제거할 확률을 높이는 것에 암습보다 좋은 것은 없다.

방심하게 만들고, 목을 빼앗는다.

삼천교에서는 지긋지긋하게 겪어 왔던 일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경험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삼천교의 헌터들은 불안감을 쉽사리 떨쳐 내지 못했다.

상대가 상대인 데다, 이번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임무였다.

만약 던전이 사라지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그 평화를 독점할 수 있는 건 삼천교여야 한다는 것이 교주의 지론이었다.

세상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

그것이 삼천교의 목표.

이번 임무에 성공하면 자신들은 삼천교에서 영웅이 된다.

하지만 실패는 곧 죽음이랑 직결된다.

양날의 검인 셈이었다.

반드시 성공하고 말 것이라는 각오와 의지가 삼천교 헌터들의 눈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 * *

이호성이 잠에서 깨어나자 다시 위층을 향해 출발했다.

지루한 과정이 반복되었다.

적어도 민성에게는 그랬다.

마인을 죽이고 플로어를 한 계단, 한 계단 넘어서 올라가는 과정은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고, 그런 만큼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성은 조금도 표정을 구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40 플로어를 넘었음에도 어째서인지 특성 마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외려 점점 난이도가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탑을 올라가는 건 쉬웠다.

물론 바가지가 마인 열 마리와 샤먼을 부리게 된 것으로 인해 사냥 속도가 빨라진 것도 있지만, 그 부분을 차치해도 어쩐지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플로어 공략이 너무 쉬운 게 민성의 기분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탑은 마치 ‘폐가’처럼 고요했다.

“헌터님…… 앞으로도 체력이 빠지면 절 찌르실 건가요?”

이호성이 해쓱한 얼굴로 물었다.

“왜? 두렵나?”

“무서운 게 당연한 거죠. 좀 지쳐 보인다 싶을 때마다 칼로 찌른다고 생각해 봐요. 그게 정상적인 멘탈로 견딜 수 있나.”

“견딜 수 없다면 포기하고 떠나라. 그런 놈은 내게 필요 없으니까.”

“됐습니다, 됐어요. 그냥 찡얼거려 본 거예요. 으으, 하여튼 냉정하시다니까, 정말.”

이호성은 앞으로가 막막해서 해탈한 것 같은 표정으로 먼 곳을 보았다.

그러다 휙 민성을 보았다.

“그런데 헌터님. 이런 속도라면 마인의 탑을 머지않아 정복하겠는데요? 마인의 탑이 클리어 된다면 앞으로-”

“마인의 탑은 이게 끝이 아니다.”

“……네?”

이호성이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민성은 소름 끼칠 정도로 깊은 심연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끝낼 놈들이 아니야.”

“…….”

“시작에 불과하다.”

마치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는 민성의 이야기는 이호성을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늘 여유롭고 자신만만했던 강민성이지만, 그가 마인을 대할 때만큼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이토록 강하고, 이토록 손쉽게 마인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민성은 마인을 경계했다.

마치…… 한번 삐걱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것만 같이.

신으로 보일 정도로 강해 보이는 강민성이 왜 그렇게 마인을 경계하는지, 이호성은 아직은 이해할 수 없었다.

* * *

불쾌한 기분이 점점 더 짙어졌다.

탑을 오르고 또 올라도 난이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공장의 인부가 단순 노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련의 과정이 계속됐다.

적어도 탑을 올라가는 동안 특성 마인이 더 나타났더라면 이런 기분은 덜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다렸다.

특성 마인이 언제 나타날지.

어떤 놈이 나타날지.

그 기다림으로 지겨움을 버텼다.

민성은 마인의 피로 물든 바닥을 철퍽철퍽 밟으면서 이호성과 바가지를 흘깃 돌아보았다.

생존과 상향에 대한 의지가 깃들어 있는 눈으로 걸음을 이어 가고 있는 이호성.

검은 혼불 같은 안광을 활활 태우며 자신에게 복종하는 바가지.

그리고 새로 합류하게 된 쏠.

아직 많이 부족할지는 몰라도 이 정도라면 충분히 잘해 주고 있다.

……하지만.

민성은 어두운 탑의 길을 시야에 담았다.

머지않아 깨어나게 될 것이다.

놈들의 본성이, 놈들의 습성이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과 다를 터.

그리고 이 세상은 무너지기 시작하겠지.

이 평화로운 세상이 종말과도 같은 모습으로 무너져 가는 건, 식당이 무너지는 건, 유능한 요리사가 죽는 건-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솟아오르는 일이었다.

이호성과 바가지를 강하게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인으로부터 대항할 쓸 만한 인재가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급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생각 없이 시간을 뭉갤 수도 없는 일이라고 민성은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