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44화>
“곧 시작될 거다.”
민성이 앞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마인들을 뚫고, 샤먼부터 상태 이상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다음 마인들을 정리할 때 샤먼을 먹어라.”
그러곤 뇌전을 튀기는 오리하르콘 단검을 들고서 전방으로 난폭하게 걸어갔다.
그 기세에 지켜보는 이호성도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공기가 찌그러지는 듯했다.
답답한 압박감.
민성의 존재감이 만들어 낸 위력이었다.
구르르르르르.
그때, 탑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놈들이 오는 소리였다.
낮고 어두운, 텁텁한 소리.
익숙한 소리다.
민성은 냉정한 표정으로 그 익숙한 감각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더 빠르게.
그리고 어둠을 가르며 마인들이 악령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민성이 뇌력을 머금은 마기를 발출시켰다.
그에 밀려 들어오던 마인들이 마치 증발하듯 사라지며 길이 생겼다.
민성은 남은 마인들은 무시하고, 중앙의 비어 있는 길로 전속력으로 쇄도해 달렸다.
주술을 사용하는 샤먼부터 찾아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투가 길어질 수 있다.
하급 마인들에게 등을 내주더라도, 샤먼부터 죽이는 게 먼저다. 짧은 시간 안에 샤먼을 찾아서 상태 불능으로 만들어야 했다.
민성은 달려드는 마인들을 피하며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민성과 마인들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민성의 시야에 샤먼이 보였다.
온몸에 타투처럼 글자를 새긴 마인.
샤먼이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민성은 샤먼을 향해 달려들었다.
샤먼이 눈부신 속도로 뛰어드는 민성을 보며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몸에 새겨진 글자에서 빛이 나며 동시에 지팡이에서부터 강대한 힘이 흘러나왔다.
눈을 멎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빛.
그 빛에서 시커먼 악령들이 나타나 민성을 향해 날아갔다.
샤아아아악-!
하지만 민성은 그런 샤먼의 주술 능력을 보고 비웃음을 흘렸다.
샤먼의 주된 능력은 공격력이 아니다.
속박과 둔화, 착란과 같은 잡기술에 불과하다.
물론 그 능력이 끔찍하게 여겨진 때가 있었지만, 그건 과거의 이야기.
더군다나 이 정도 규모를 운영하면서 이 정도로밖에 거리를 조절하지 못하는 샤먼은 그저 민성의 먹잇감일 뿐이었다.
민성이 검은 악령들을 나무줄기를 자르듯 잘라 내며 순식간에 샤먼과 거리를 좁혔고, 이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샤먼의 이마에 박아 넣었다.
오리하르콘 단검의 검신이 하얗게 번쩍이자 그 뇌력을 머금은 마기의 힘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샤먼의 몸이 반 이상 액체처럼 흘러내리며 철퍽 엎어졌다.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뽑았을 때.
360도 방향에서 마인들이 민성을 뒤덮듯이 뛰어들었다.
결과에 변수는 없다.
사방에서 달려들던 마인들이 마치 풍선이 터지듯 피를 뿌리며 흩어졌다.
그사이 민성의 명령대로, 이호성과 바가지는 샤먼에게 달려갔고, 아이템들이 떨어지는 광경을 빵긋 웃는 얼굴로 보던 쏠은 눈부신 속도로 아이템들을 자신의 주머니 안에 챙겨 넣어 갔다.
그리고 민성은.
남아 있는 마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이러다 부활하겠어! 제대로 좀 해 봐, 바가지! 특성 마인을 언데드로 부릴 거라며!”
이호성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바가지는 열심히 주문을 외우며 샤먼을 언데드로 부리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종속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지속되는 동안, 샤먼이 부렸던 마인들은 모두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 의해 소멸했다.
민성은 지루한 반복 작업이 끝난 일꾼처럼, 바가지와 이호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옴과 동시에 오리하르콘 단검을 샤먼의 등에 박았다.
푹!
오리하르콘 단검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자, 샤먼은 전신을 파르르 떨며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아악!
비명 소리는 끔찍했지만 그 소리는 점차 잠이 들 듯 조용해졌다.
이를 본 바가지의 검은 안광이 활활 불타올랐다.
몽글몽글한 검은 연기가 샤먼의 피부 세포 안으로 스며들어 가려고 노력했다.
마치 그것은 단단한 겉면을 꿰뚫고 들어가는 바늘과 같았고, 굳이 다른 비유를 하자면 체력이 계속해서 차오르는 몬스터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는 듯했다.
그만큼 샤먼을 언데드화 시키는 건 쉽지 않았으나 바가지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노력 끝에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민성의 얼굴 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마법 인형 바가지가 ‘샤먼 마인’을 자신의 언데드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멸을 앞두고 있던 샤먼이 부활의 단계를 거쳤다.
죽어 가던 몸이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내, 완성 형태의 샤먼이 바가지 앞에 복종하듯 섰다.
바가지는 눈에 불을 켜며 신이 난 듯 샤먼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뛰어다녔고, 쏠은 타박타박 느릿하게 걸어가 샤먼 마인을 올려다보며 와아-? 하고 빵긋 웃었다.
이호성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무거운 숨을 뱉어 냈다.
반면 민성은 여전히 감정의 동요가 없는 차가운 눈으로 다음 스텝을 밟아 나갈 준비를 했다.
* * *
“핫도그 하나 먹자.”
16층으로 올라갈 나선형 입구 계단 앞에서 민성이 말했다.
“배가 고픈 건 아니니까 올라가기 전에 간단히 먹으면 좋을 것 같군.”
그에 고개를 끄덕인 이호성이 벽을 보고 있는 쏠을 불렀다.
“야, 쏠. 이리 와.”
“…….”
하나 쏠은 여전히 벽에 그려진 문양들을 구경하며 이호성의 말을 무시할 뿐이었다.
“야, 쏠! 오라니까?”
쏠은 여전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헌터님이 불러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호성이 한숨을 쉬며 민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쏠.”
민성이 부르자, 쏠은 그제야 해맑은 표정으로 홱 돌아서며 곧바로 총총 뛰어왔다.
“냉동 핫도그 꺼내.”
“핫도그?”
민성의 명령에 쏠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켜보던 이호성이 핫도그에 대해 설명했다.
쏠은 주머니를 열어 이것저것 뒤지더니 음식 하나를 꺼냈다.
“아니야. 그건 냉동 만두잖아.”
쏠이 다른 음식을 꺼냈다.
“응, 아니야.”
쏠이 또 다른 음식을 꺼냈다.
“그건 오이잖아. 아니라고. 훨씬 더 두껍고…… 야, 그건 애호박이잖아!”
순간 쏠이 울기 시작했다.
입을 벌린 채 소리 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쏠을 보며, 이호성은 답답한 한숨을 쉬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야, 뭘 또 울고 그래…….”
이호성이 쏠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그 와중에 바가지는 이번에도 떨어지는 금 눈물을 밑에서 받아 챙기고 있었다.
“넌 진짜 그러고 싶냐?”
이호성이 바가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빨리 찾아라.”
이를 지켜보던 민성이 다소 짜증이 스며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이호성은 서둘러 쏠을 달랜 뒤, 다시 핫도그를 찾아 나섰다.
잠시 후, 드디어 민성이 원하던 냉동 핫도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 이거야, 이거!”
이호성이 엄지를 들어 보이며 칭찬하자, 쏠은 언제 울었냐는 듯 빵긋 웃었다.
이호성은 마치 애를 달랜 아빠 같은 얼굴로 민성에게 핫도그를 갖다 바쳤다.
민성은 비닐 안에서 핫도그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마기의 힘으로 단숨에 먹기 좋게 핫도그를 구웠다.
새하얀 마기에 휩싸인 핫도그는 그 열기에 의해 열을 모락모락 피워 올렸다.
민성은 뜨끈한 핫도그에 케첩을 지그재그로 뿌렸다.
핫도그 위에 올라간 새빨간 케첩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민성이 핫도그를 한입 먹었다.
우물.
따뜻하고 부드러운 핫도그 빵의 맛이 가장 먼저 느껴지고, 그다음으로 더 뜨거운 온도를 가진 소시지의 맛이 느껴졌다.
그 위로 케첩이 핫도그의 맛을 극대화시켜 줬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정말 맛있는 간식이었다.
옛날에 어릴 적, 떠올려 보면 사실 좀 지저분하지만, 빵만 먹고 소시지를 마지막에 남겨 두고 아껴 먹은 적이 있다.
민성은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핫도그를 맛있게 먹었다.
케첩의 짭조름한 맛과 부드러운 빵과 소시지의 콤보는 마인조차도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훌륭했다.
역시 맛있어.
핫도그를 절반 정도 먹었을 때, 민성은 시선을 느끼고서 옆을 보았다.
이호성이 입을 헤- 벌린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시선에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딴 곳을 보았다.
“이호성.”
“네, 헌터님.”
이호성이 민성을 향해 팩 돌아섰다.
“먹어라.”
민성이 왼손에 들고 있던 핫도그가 들어 있는 비닐을 던졌다.
그에 이호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비닐을 착 낚아채곤, 얼른 핫도그 하나를 꺼내 바가지에게 내밀었다.
“야야! 바가지. 익혀 줘.”
이호성이 기대감이 물든 얼굴로 말했다.
“싫어.”
하지만 바가지는 이호성을 무시한 채 쏠이 눈물로 흘린 금으로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었다.
“야, 그러지 말고 하나만 익혀 달라니까.”
“싫다고.”
바가지는 이내 완성된 금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걸고서는 신이 난 듯 엉덩이를 휘휘 흔들었다.
“위대하신 리치여. 부디 핫도그를 익혀 주시길 간청드리옵니다.”
이호성이 눈을 지그시 감고서 머리를 숙인 채 핫도그를 정중히 내밀었다.
그러자 바가지가 칵칵 웃으며 뼈로 된 손가락을 딱 튕겼다.
순간 화아악! 하고 검은 불길이 핫도그를 훑고 지나갔다.
“오! 감사!”
이호성이 잘 익은 핫도그에 헤벌쭉 웃으며 케첩을 뿌리고 한입 깨물었다.
빠득!
핫도그가 너무 단단하게 익어서 이가 나갈 뻔했다.
“이 해골바가지 자식아-!”
이호성이 바가지를 향해 딱딱하게 속이 타 버린 핫도그를 집어 던졌다.
바가지가 칵칵 웃으며 그림자 보드를 타고 이호성을 피해 도망 다녔다.
핫도그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서글픈 이호성이었다.
* * *
마인의 탑은 일정 위치를 지나자 난이도가 플로어마다 제각각이었다.
마치 미궁처럼, 수가 적어서 쉽게 클리어되기도 했고, 특성 마인이 나타나 갑자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성은 외려 그편이 편했다.
그래야 탑을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지니까.
이왕 식재료를 모두 챙기고서 들어온 마인의 탑인 만큼, 최대한 빠르게 마인들을 죽여 탑을 정리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무한한 아이템을 챙길 수 있는 황금 고블린 쏠도 있고, 이호성과 바가지의 성장도 순조로웠다.
다만 탑이 너무 높다는 것이 짜증스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