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42화>
* * *
대저택의 입구.
만수드는 손수건으로 눈에서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바가지와 헤어지는 것도 못내 아쉽고, 황금 고블린이 떠나는 것도 아쉬운 표정이었다.
이호성이 만수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바가지도, 그리고 저 황금 고블린 쏠도.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멋지게 살아갈 테니까.”
만수드가 울음을 꼭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원할게. 꼭 지구를 지켜 줘야 해! 안녕 바가지! 즐거웠어!”
만수드가 손수건을 흔들며 소리쳤다.
민성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가지와 황금 고블린 쏠을 데리고 차에 탔다.
“곧 멋지게 활약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될 거야.”
이호성이 만수드의 어깨를 토닥여 주곤 비서와 마지막 악수를 나누고 차로 돌아갔다.
“휴- 한 건 했네요. 어려울 줄 알았는데, 황금 고블린도 이제 우리 가족이 됐고.”
그가 차에 타면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한데 민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황금 고블린 쏠을 보고 있었다.
“음?”
이호성이 민성의 표정을 보고 뒤를 돌아보자, 쏠이 울고 있었다.
이호성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야, 쏠. 또 왜 울어?”
그가 물었지만, 한번 울음이 터지면 쏠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닭똥 같은 금 눈물만 계속 흘릴 뿐.
이호성은 쏠이 흘린 금 눈물을 줍고 있는 바가지를 영혼이 빠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출발해.”
민성이 명령했다.
“예. 헌터님.”
이호성이 차를 출발시켰다.
잠시 후.
“와아-?”
감탄사가 들렸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호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쏠이 창밖의 풍경을 보며 환해진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은 것이었다.
“쟨 무슨 조울증인가.”
이호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쏠.”
민성의 부름에, 바깥 풍경을 환한 표정으로 보던 쏠이 민성을 보았다.
“아까 왜 운 거지?”
“가족이 생겼다는 게 기뻐서요.”
쏠은 그렇게 대답하고선 창밖의 풍경을 보며 다시 와아- 하고 좋아했다.
민성은 조용히 쏠처럼 창밖을 보았고, 금 눈물을 다 챙긴 바가지는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몸을 구기며 들어갔다.
광활한 하늘에는 평화로운 오후의 햇살이 한가득 퍼져 있었다.
* * *
워프 게이트를 타고 맨해튼으로 넘어갔다.
민성은 차 안에서 쉬고 있었고, 이호성은 마트에 쏠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시선 집중을 피할 수 없었다.
황금으로 된 고블린이 살아서 걸어 다니고 있으니, 몇 없는 시민들과 일하는 직원들이 놀라며 신기해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호성은 그런 주변의 반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웅과 전화를 하면서 재료를 챙기는데, 문제는 그사이 쏠의 수집욕이 발동해 버린 것이다.
쏠은 해맑은 표정으로 황금 주머니에 음식 재료를 생각 없이 쓸어 담고 있었다.
“아, 셰프님, 잠시만요!”
이호성이 달려가서 쏠의 팔을 잡아당겼다.
“야! 계산하기 전에는 주머니에 넣으면 안 돼!”
그가 소리치자, 쏠은 그 자리에서 입을 벌리며 울기 시작했다.
한두 번 우는 걸 보는 것도 아니라서 이호성은 봐주지 않았다.
“야. 넣은 거 빨리 다시 빼.”
쏠이 울적한 표정으로 자신의 황금 주머니 안에서 꽃을 꺼내 주었다.
“지금 장난 하냐? 꽃 말고 여기서 넣은 것 말이야.”
이호성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에 쏠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마구잡이로 쓸어 담은 재료를 꺼냈다.
“예, 셰프님. 예, 호박이랑…… 아, 진짜, 잠깐만요.”
이호성은 완전히 맥 빠진 얼굴로 쏠을 보았다.
쏠은 주머니에서 엄청난 양의 재료를 끝도 없이 꺼내고 있었다.
“대체 이 많은 걸 언제 쓸어 담은 거야…… 아, 머리 아파.”
이호성이 쏠을 보며 이마를 붙잡고 있다가, 쏠이 이제 다 꺼냈다는 표정으로 빵긋 웃자, 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주머니에 넣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선 다시 장을 보았다.
마치 어린애를 데리고 장을 보는 것만 같은 이호성이었다.
* * *
“헌터님. 쏠 녀석 때문에 자리가 부족해서요. 고성능 SUV 차량 하나 빼 놨습니다. 괜찮으시죠?”
민성이 라페라리 차량에서 내렸다.
“차는 어디 있어?”
“저 SUV 차량입니다. 재료는 전부 다 쏠 주머니에 다 넣어 놓고, 포션 같은 소모성 아이템도 다 챙겼습니다.”
“끝났으면 출발하자.”
민성이 SUV 차량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이호성은 잡초를 보며 빵긋 웃고 있는 쏠을 이동할 차량으로 끌고 갔다.
* * *
집결지에 도착했다.
집결지의 월드 헌터들은 이제 삼천교의 통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전의 모습들과는 달리, 그들은 체력 단련을 하거나, 대련을 하거나, 수영을 하면서 개인적인 수양에 힘을 썼다.
“어쩐지 오늘은 꽤 밝은 분위기이네요. 늘 초상집 같더니 땀 냄새도 나고. 이제야 헌터들처럼 보인달까…….”
이호성이 월드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삼천교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에 민성이 일축했다.
이호성은 민성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개인 훈련을 하고 있던 월드 헌터들이 민성의 파티를 보고 훈련을 멈추었다.
시선이 꽤 오래 이어지자 이호성은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고, 민성은 관심을 끄고 앞서서 걸었다.
이윽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건 뭐지? 새로운 소환수인가?”
“고블린 같은데 온몸이 황금이군.”
“신기하다.”
“……정말 알 수 없는 자들이로군.”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민성의 파티는 월드 헌터들에게 있어 아이러니이자 미스터리이고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들의 호기심은 언제나, 늘 있었다.
다만 그동안은 마인의 탑, 그리고 삼천교의 통제에 따라 적응을 하지 못하고 굳어 있던 것일 뿐이었다.
민성이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을 데리고 보트에 오를 때까지, 월드 헌터들은 민성의 일행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배어들어 있었다.
격정적이면서 휑한 느낌이 섞인 눈빛이었다
민성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분명하게 느꼈으나, 무시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아니었다.
민성의 관심은 오로지 마인의 탑에 살고 있는 마인.
마인뿐이었다.
* * *
마인의 탑 1 플로어.
스타트 플로어에서 시작된 걸음은 느긋했다.
민성은 급하지 않았다.
이호성과 바가지, 그리고 쏠이 느긋하게 걷는 민성을 뒤따랐다.
쏠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이곳저곳을 훑었다.
그러다 식물이 없다는 사실에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한 층, 한 층을 지나 15층까지 올라왔다.
그동안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15층에 도착하자 이호성과 바가지는 긴장했고, 쏠은 여전히 수집하고픈 욕구를 일으키게 하는 아이템이 나타나지 않아 울적한 표정이었다.
오로지 앞을 보며 마인을 죽이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은 민성이 유일했다.
“이호성. 바가지.”
“네! 헌터님!”
“네, 주인님!”
민성의 부름에 이호성과 바가지가 바짝 얼은 채로 대답했다.
“특성 마인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죽을 수 있다. 버서커 특성이 있어도 죽으면 끝이야. 영원히 잠든다는 얘기다. 바가지 너도 마찬가지야.”
“……네.”
“……네.”
“이호성. 네가 버서커가 됐을 때, 마인이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넌 이미 죽었을 거다.”
민성이 냉정하게 말했다.
잊고 있었던 죽음 본연의 공포가 뇌리로 파고들었다.
“살아라.”
민성이 앞서 걸어가며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호성과 바가지는 그 말을- 아니, 그의 명령을 덤덤하게 들을 수 없었다.
15 플로어는 지금까지 겪었던 느낌과는 완전히 상이했다.
죽음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로브의 사내, 한재혁이 삼천교 헌터들이 모여 있는 회의장 안으로 들어와 상석에 앉았다.
그가 공허한 눈으로 삼천교 헌터들을 훑었다.
“지금쯤이면 슬슬 집결지를 벗어나려는 헌터들이 나타날 것이다. 집결지를 불법 이탈하면 즉결 처형한다.”
한재혁의 명령에 삼천교 헌터들은 번거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의 뜻에 반하는 삼천교 헌터들은 없었다.
“강민성은?”
한재혁이 물었다.
“마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그의 부근에 있던 삼천교 헌터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한재혁이 로브의 품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삼천교 헌터들의 눈이 일제히 두루마리로 집중되었다.
삼천교의 교지이자, 공문을 의미하는 두루마리였다.
교주의 뜻이 내려왔다.
삼천교 헌터들은 약간의 긴장과 집중력이 올라간 눈으로 한재혁을 응시했다.
“교주님의 교지다. 교지를 확인하면 즉각 교주님의 뜻을 이행할 준비를 하도록. 그리고 만에 하나…….”
한재혁의 한쪽밖에 없는 눈이 새하얗게 번쩍였다.
“뜻을 끝까지 이행하지 못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될 것임을 명심하라. 두 번의 기회는 없다.”
한재혁이 턱짓으로 두루마리로 된 교지를 가리키자 삼천교 헌터가 일어나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가 교지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어 나갔다.
한국의 헌터 강민성이 마탑을 클리어한다면, 그 즉시 월드 헌터들과 강민성을 살해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삼천교 헌터들은 교지의 내용을 파악하고 나서 별달리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강민성이라는 헌터에 대한 부담감만이 묵직하게 가슴을 누를 뿐이었다.
두 눈으로 분명하게 확인했다.
삼천교 헌터 중 한 명인 왕웨이가 얼마나 처참하게 깨졌는지.
하지만 그것은 왕웨이 한 명이었을 때의 얘기.
수가 불어나면 상황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삼천교 헌터들의 눈빛이 예리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무거워졌다.
곧 거친 풍랑이 일 것이라는 사실이 삼천교 헌터들의 마음 안에 깊숙이 새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