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38화>
- 내 황금 고블린을 사고 싶다고? 얼마나 줄 건데?
이호성은 이마에 혈관이 빠직 굵어지는 걸 느꼈다.
어린놈의 자식이 더럽게 싸가지 없네.
이호성은 속으로 아랍 에미리트 왕자를 욕했지만, 겉으로는 가식적인 미소를 짓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혹 원하시는 금액이 있으시다면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 난 별로 돈 욕심이 없는데?
아랍 에미리트 왕자가 놀리듯이 말하며 쿡쿡 웃었다.
이 자식, 날 놀리고 있어.
황금 고블린으로 갑질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을이 별수 있나.
원하는 대로 맞춰 주는 수밖에.
……젠장!
“부탁드립니다. 그 황금 고블린이 저희에게는 꼭 필요해서요.”
- 아니, 그러니까 얼마에 살 거냐고.
“100억을 드리겠습니다.”
이호성이 눈치를 살피며 딜을 제안했다.
- 싫어.
“그럼 120억까지…….”
- 싫은데.
이호성은 줄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좋습니다. 그럼 200억에……!”
- 응, 싫어.
“얼마를 원하시는 건지 말씀을 해 주셔야 제 쪽에서도 금액을 맞출…….”
- 안 팔 건데?
“……네?”
- 안 팔 거라고. 그깟 돈 천억이든 2천억이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근데 황금 고블린은 내가 알기로 세상에 하나뿐이거든. 그걸 내가 팔고 싶겠냐, 멍충아?
이호성은 인내의 끈이 탁 하고 풀리는 걸 느꼈지만, 가까스로 무너지는 감정을 다잡았다.
“저 그럼…… 애초에 팔 생각이 없으셨던 거군요.”
- 당연하지, 바보야. 푸하하하하하핫!
아랍 에미리트 왕자가 손가락질을 하며 자지러지듯이 웃었다.
이 새X가…….
이호성은 영상에 비친 아랍 에미리트 왕자를 보며 한 소리 하려다가, 그 지독한 감정을 씹어 삼켰다.
“부탁드립니다. 그 황금 고블린이 꼭 필요합니다…….”
- 왜?
“네?! 아, 그것이-”
- 팔아 줄까?
“네! 부탁드립니다. 원하시는 가격은 최대한 맞춰-”
- 근데 황금 고블린이 왜 필요한데?
“그러니까-”
- 그래서 얼마까지 줄 수 있어? 최대한 줄 수 있는 금액이 얼마야?
이 새X가 진짜.
이호성은 인내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질 것만 같았지만 안간힘을 다해 참았다.
“적정가로 최대 300억까지는 어떻게든…….”
- 100조 주면 팔게.
“……네? 100조라니…… 그런 터무니없는-”
- 싫으면 말고.
달칵.
- 뚜우. 뚜우. 뚜우…….
전화가 끊어졌다.
이호성은 살인 충동이 깊게 박힌 눈으로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하…… 이 귀여운 어린 노무 새애끼이이이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호성이 휴대폰을 노려보면서 발악하듯이 온몸을 떨며 소리 질렀다.
“아, 열 받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 X나 열 받네? 안 팔 거면 이 개 호랑 말코 같은 노무 새끼야아아아아아아! 처음부터 안 판다고 해야지, 사람을 가지고 놀아!? 어어어어엉!?”
이호성은 휴대폰을 집어 던지려다 주머니에 넣곤 뒷골을 잡아 고개를 팍 젖혔다.
“아…… 스트레스…….”
그가 벤치에 털썩 앉아 담뱃갑을 꺼냈다.
“다 폈네.”
모든 것을 텅 비운 듯한 눈으로 담뱃갑을 내려다보던 이호성은 담뱃갑을 확 구겨 던진 후,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 새X. 애초에 황금 고블린도 없었던 거 아니야?”
이호성이 아랍 에미리트 왕자 소년을 의심하고 있던 그때, 전화가 울렸다.
“누구야, 또. X발.”
발신자를 확인해 보자 '주군 강민성‘이었다.
이호성은 퀭한 눈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헌터님. 전화 받았습니다.”
- 어디야?
이호성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한차례 살폈다.
“집결지 부근입니다.”
- 밥 먹는다. 호텔로 와라.
“네.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그는 마치 노인같이 변한 얼굴로 벤치에서 일어섰다.
* * *
객실 안. 민성은 손에 들고 있는 수건을 빤히 보았다.
수건이 엄청나게 부들부들하다.
호텔 수건이 좋은 건 알고 있지만, 이곳의 수건은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이호성에게 수건을 바꾸라고 일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민성은 머리를 뽀송하게 말렸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기분이 좋다.
머리를 다 말리고 헤어 드라이기를 내려놓았을 때, 욕실에서 바가지가 물기를 흘리며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민성은 수건 하나를 바가지에게 던져 주었다.
커다란 수건이 바가지를 훅 뒤덮었다.
바가지는 꼬물거리며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려고 애썼다.
옷을 입고 외출 준비를 마칠 때쯤 이호성이 로비에 도착했다는 메시지 알람을 볼 수 있었다.
옆을 보자 어느새 몸을 다 닦은 바가지가 바지를 주섬주섬 입고 있는 게 보였다.
민성은 바가지가 옷을 다 입을 때까지 기다렸다.
캐주얼한 옷을 입으니 진짜 인형처럼 보였다.
빠르게 옷을 다 입은 바가지가 폴짝 뛰어 민성의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갔다.
민성은 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객실을 나섰다.
식사는 호텔이 영업을 재개한 만큼 호텔 식당에서 할 생각이었다.
로비에서 만난 이호성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전체적으로 금빛 조명을 갖춘 고급스러운 곳이 보였다.
화려한 와인셀러에 진열된 와인들이 보이고, 그릇과 프라이팬 같은 것들이 마치 예술품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민성은 넓은 중앙 홀을 지나, 밝은 느낌을 가진 창가 쪽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통유리로 된 창밖은 당연히……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바깥의 거리는 마치 자신과 이호성을 제외하고는 마치 인류가 멸족한 것만 같았다.
만약 마인에 의해 정말로 지금 보는 이 거리처럼 전 세계의 인간이 모두 죽어 버린다면…….
민성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요리할 사람이 없다니.
그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헌터님?”
이호성의 부름에 사색에서 깨어났다.
부드러운 음악 배경 소리가 뒤늦게 들리고, 지배인이 옆에서 공손한 자세로 서 있는 게 보였다.
민성은 메뉴판을 펼쳤다.
요리 하나를 골라 이호성 것까지 두 개를 시켰다.
이호성은 자신의 음식까지 시켜 주자 행복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주문을 마친 뒤, 민성은 기본적으로 강렬함을 탑재하고 있는 눈으로 이호성을 직시했다.
음식을 먹을 생각에 밝은 표정을 하고 있던 이호성의 얼굴이 금세 썩은 죽처럼 변했다.
“그…… 짐꾼으로 쓰기에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조건을 찾았습니다만…….”
민성의 눈빛이 살짝 밝아졌다.
“그래?”
“저, 그런데……. 쉬울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알아듣게 말해 봐.”
“황금 고블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온몸이 황금으로 되어 있고, 주머니도 황금으로 되어 있죠. 그 안에 엄청난 양의 물건이나 아이템이 저장 가능합니다.”
“몬스터?”
“몬스터인기는 한데, 짐꾼으로 활용이 가능한 몬스터입니다. 본래는 소문만 무성했었는데, 알아보니까 아랍 에미리트의 왕자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총군주를 통해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황금 고블린이라는 게 정말로 실존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 아랍 에미리트 왕자 새…… 아무튼 그 녀석이 좀 짓궂더라고요. 얼마에 살 거냐고 묻길래 큰 가격을 제시했습니다만…….”
이호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팔 생각이 없었어요. 그 녀석.”
이호성이 그렇게 보고를 끝마쳤을 때,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그 아랍 에미리트 왕자라는 놈이 어디서 거주하고 있는지 알아봐.”
이호성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찾아가시려고요?”
“찾아가야지.”
민성이 그렇게 짤막하게 말할 때 음식이 나왔다.
민성은 포크를 들었다.
웨이트리스가 가져온 건 바로 옥돔 구이.
민성은 그 비주얼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끝판왕이다.
겉은 그대로 튀겨져 있고, 속은 완벽한 정도로 익어 있다.
보고만 있는데도 침샘이 폭발했다.
뼈는 이미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민성은 포크로 표면을 푹 찔렀다.
튀겨져 있는 겉면을 뚫고 바삭! 거리는 소리를 내며 포크가 촉촉한 살점을 뜯어 냈다.
민성은 기대감이 꽉 차오른 상태로 옥돔 구이를 먹어 보았다.
한입 먹자마자 그는 미간을 구기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아…….”
맛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파괴하면서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준다.
기름진 튀긴 비늘의 맛은 엄청나며, 속살은 그야말로 부드러움의 극치다.
이 옥돔 구이보다 맛있는 생선 구이가 세상에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드러움이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존재할 수 있다니.
민성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 *
식사를 마무리한 민성은 물을 마시며 이호성을 보았다.
그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민성의 시선에 이호성이 고개를 들었다.
“헌터님, 주소 파악했습니다. 총군주인 김지유 씨가 월드 헌터 쪽으로 접촉해서 아랍 에미리트 왕자와의 약속을 받아 냈답니다.”
“내 차량은?”
“아, 그건 제가 오면서 확인했습니다. 삼천교 쪽에서 같은 차량으로 준비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 쪽에서 의견을 받아들여 헬기 착륙장을 만드는 중이라고 하는데, 헬기 착륙장은 만드는 데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요.”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바로 출발하자.”
민성이 식당을 나갔다.
* * *
삼천교에서 준비한 라페라리 차량을 타고 민성과 이호성, 그리고 바가지는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차를 운전하면서 이호성은 내심 놀랐다.
중국 삼천교의 헌터를 죽였음에도, 그 책임에 면책권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삼천교 쪽.
삼천교에서 강민성과의 마찰로부터 완전히 도망갔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보통 차도 아닌 라페라리 차량을 다시 받아 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민성의 영향력은 가히 황제의 위엄에도 맞먹을 정도인 것 같았다.
강민성의 힘에 대해 감탄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워프 게이트 부근에 이르고 있었다.
* * *
워프 게이트를 타고 아랍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워프 게이트 태워 주셔서.”
민성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시했다.
그사이 바가지는 더운 나라로 오게 되자, 전신을 덮을 수 있는 로브로 갈아입었다.
이호성도 주변을 살피며 덥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민성만이 더운 날씨에 무관했다.
잠시 후, 차가 도착하자 이호성이 운전대를 잡았다.
오랜 시간을 달려 아랍 에미리트 왕자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멀리 보이고 있었다.
그의 저택은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물론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저택도 그가 소유한 저택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대저택 앞에 도착해, 이호성이 입구 앞에 차를 정차시키고 벨을 눌렀다.
곧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십니까?
저택의 가정부로 추정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랍 에미리트 왕자를 만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