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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36화 (13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36화>

민성이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등급이 높은 만큼 잘 깨집니다. 그래도 제일 좋은 템인 듀란달은 성공하셨네요.”

민성은 심드렁하게 받아들이며, 다시 인챈트를 무차별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눈 밑이 퀭해지고 뺨이 움푹 파였다.

지금 대체 얼마가 날아가고 있는 걸까?

금액이 너무 커서 산수도 되지 않았다.

민성이 아이템 인챈트 러시를 끝마쳤을 때, 템 창에 남은 건…….

[마인의 듀란달 +7]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엄청 잘 뜨셨네요. 듀란달이 7까지 떠 버리다니…….”

“무기 마법 주문서 남은 거 더 없어?”

이호성의 얼굴이 마치 슬라임처럼 녹아내리듯 변했다.

“무기 마법 주문서도 없고요. 듀란달이 7까지 뜬 것도 거의 기적입니다. 이제 제발 그만 질러 주세요.”

이호성이 거의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민성은 ‘마인의 듀란달 +7’을 템 창에 던져 넣었다.

이제 민성의 템 창에 들어 있는 무기는 오리하르콘 단검과 마인의 듀란달밖에 없었다.

이호성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헌터님. 그 마인의 듀란달은요. 팔지 마세요. 어떤 가격으로 팔아도 헐값에 넘기게 되는 셈이 될 테니까요. 전 세계에 헌터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최고의 무기일 겁니다.”

민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러면 앞으로 탑을 올라갈 때 이런 식으로 러시하면 템 창은 꽤 비워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이호성, 네 템 창은 냉장고처럼 쓰면 될 거고.”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템 창에는 음식 재료랑 무기 마법 주문서와 갑옷 마법 주문서만 채워 놔.”

이호성의 뺨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다.

“헌터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듀란달 러시는 제발 자제해 주세요.”

“내가 알아서 해.”

민성이 이호성을 빤히 보며 말했다.

이호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헌터님이 최대한 이익을 볼 수 있도록 무기를 지켜 드리고자…….”

“됐고. 잡템 넣을 공간이 부족할 텐데. 템을 넣을 수 있는 마법 주머니 같은 건 없나?”

“있어요. 있는데, 그게 문제가 좀 많습니다. 템이 사라지거나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럼 결국 사람을 쓰는 수밖에 없겠네.”

“아무래도 마인의 탑이라 잡템용 짐꾼도 꽤 강해야 할 텐데, 중앙 기관의 김지유 씨가 가장 적합…….”

“아니, 위험하다. 걘 탑 안에서 죽으면 곤란해.”

민성이 선을 그었다.

이호성은 민성을 의아하게 보았다.

“어째서요? 어!? 헌터님, 드디어 여자에게 관심이 생긴 겁니까?”

이호성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김지유는 중앙 기관의 총군주다. 총군주의 역할이라는 게 있어. 그 여자가 죽으면 그 자리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 대체할 사람이 있었다면-”

민성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마 처음 그 여자가 거슬린다고 생각했을 때 죽여 버렸을지도 모르지.”

필요에 의해 살려 두고 있다는 민성의 말은 이호성에게 끔찍하게 들렸다.

이호성은 창백한 표정으로 식은땀 한 줄기를 흘렸다.

김지유가 만약 총군주로서의 가치가 없었다면, 민성이 정말로 그녀를 죽였을 수도 있겠다 싶자, 이호성은 새삼 강민성이 악마처럼 보였다.

“그, 그, 그래도 최근에는 헌터님 눈치도 많이 보고, 꽤 헌터님을 위해서 신경 쓰는 것 같던데요? 헬기도 그렇고, 하하하.”

이호성이 어색하게 웃자 민성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난 객실에서 좀 쉬고 있을 테니까 쓸 만한 짐꾼이 있는지 알아봐라.”

“알겠습니다.”

민성이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호성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여튼 피도 눈물도 없다니까. 찔러도 분명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야, 진짜로.”

그가 으으! 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호텔을 나섰다.

“그나저나 짐꾼은 어디서 구한다냐.”

이호성은 막연한 미션에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 * *

삼천교 헌터들은 집결지에 새로 보수하여 만든 천막 회의장 안에서 굳은 안색을 펴지 못했다.

그들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으나, 그들의 머릿속을 꽉 잡고 있는 생각은 오직 ‘강민성’이라는 존재 하나였다.

한국의 헌터, 강민성.

강하다는 건 미리 정보를 받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히 월드 헌터들을 통제하며 탑을 정복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강민성은 완전히 계산 밖의 인물이었다.

앞으로 만약 삼천교의 공문에 의해 임무 중 강민성과 충돌하게 된다면?

이에 대한 가정을 삼천교 헌터들 모두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회의적이었다.

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란 말인가!?

그것만이 삼천교 헌터들이 공통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 * *

로브의 사내는 거대한 전각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삼천교’라는 글자가 적힌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로브의 사내는 그 간판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빠르게 안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넓은 마당에 세 갈래의 길이 난 삼도(三途) 중심부 부근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초저녁 시간이었으나 먹구름이 끼어 있어 하늘은 어두웠다.

그 가운데, 로브의 사내가 후드를 벗었다.

상처 입은 눈과 번쩍거리는 한쪽 눈이 드러났다.

“한재혁, 인사 올립니다.”

로브의 사내가 천천히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자신의 이름을 한재혁이라 밝힌 로브 사내는 엎드린 채 미동도 없이 기다렸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전각의 문이 열리면서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등장에 로브의 사내 한재혁은 머리를 더 깊이 조아려 이마를 차가운 바닥에 대었다.

그림자가 움직였다.

발자국 소리가 전각의 마당인 삼도 위로, 마치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림자의 주인이자 삼천교의 주인이 엎드린 한재혁의 머리맡에 멈춰 섰다.

그가 가까이 서자, 한재혁의 머리 위로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한재혁이 느낀 오한은 삼천교주의 존재감으로부터 비롯된 온도였다.

“지금까지 잘해 주었다.”

걸걸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거대한 마기에 의해 그의 목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재혁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임무를 맡길 것이다.”

엎드리고 있던 한재혁의 살아 있는 한쪽 눈의 동공이 팽창되었다.

그의 눈은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다.

“……받들겠습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고요한 정적을 차가운 바람 소리가 깨트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삼천교주가 한재혁에게 명령을 떨어트렸다.

“집결지에 내가 보낸 7명의 아이들이 있을 테지?”

“……명하신 대로입니다.”

“꽤 근질거려 하겠군.”

“…….”

머리 위로 웃음소리가 스산하게 퍼졌다.

한재혁의 하나밖에 없는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마지막 임무를 명하여 주십시오.”

한재혁이 빠르게 말했다.

“거처로 돌아가면 내 뜻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교지가 너의 마지막 임무이니라.”

한재혁은 미세하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민호를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십시오. 부탁드리옵니다.”

그가 애타는 한쪽 눈으로 바닥을 보며 말했다.

삼천교주는 그런 한재혁을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피도 섞이지 않은 형제이거늘, 어찌 그리 인연이 단단히 엮여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웃음소리가 조금 더 깊어졌다.

“그 녀석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넌…….”

삼천교주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몸을 돌렸다.

“임무를 완수하면 자유를 얻을 것이다. 너도, 너의 형제도. 그리고 네가 진짜로 원했던 것까지도.”

한재혁의 머리 위로 드리웠던 그림자가 사라지자, 홀로 남은 한재혁이 머리를 들었다.

그의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 차, 지독한 공허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 * *

도저히 적임자가 없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 봐도 짐꾼으로 쓸 만한 헌터가 떠오르지 않았다.

김지유는 중앙 기관의 총군주라는 이유로 실격.

그렇다면 대체 누구를 짐꾼으로 기용하라는 거야?

월드 헌터는 사실상 이제 삼천교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짐꾼을 하겠다고 따라나설 리가 없지.

환단을 안 먹은 건 한국의 중앙 기관뿐.

하지만 설령 그 인원을 빼 온다고 해도, 그들이 마인의 탑에서 짐꾼이 아니라 짐 덩어리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걸리적거리기 시작하면 강민성의 성격에 가만히 내버려 둘 리도 없을 터…….

빌어먹을, 그럼 아무리 봐도 결국 짐꾼으로 쓸 만한 사람은 없는 거잖아.

이호성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강민성에게는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게 있고, 그래서 명령을 내렸으면 반드시 완수해야만 했다.

그건 지금까지의 불문율이었다.

‘X발, 어차피 처맞으면 레벨도 오르는데, 그냥 포기하고 놀다가 ‘못 찾았습니다!’ 하고 당당하게 나가 버려?’

어차피 얻어터지는 건 매한가지잖아?

레벨도 오르고 1석 2조인데, 뭐. 안 그래?라는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잊고 있었어.

그 인간이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인지.

무쓸모라고 생각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목을 싹 쳐 버리겠지.

하하.

젠장, 어쩌지.

그냥 중앙 기관의 병력을 짐꾼으로 빼서 하단층에 배치시켜야 하나?

하지만 클리어 구간 플로어도 결국은 몬스터가 나타나잖아.

일반 몬스터만 나타나도 중앙 기관의 병력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봐도 이번 미션은 역시 깨끗하게 실패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어느새 터덜터덜 걸으며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니, 집결지 부근에 이르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월드 헌터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저것들은 탑에 들어가지도 않을 거면서 왜 집결지에 죽 치고 앉아 있는 건지.”

이호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까운 벤치에 털썩 앉았다.

“그나저나 진짜 이걸 어쩌지.”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휴대폰으로 헌터들이 주로 거래하는 아이템 사이트에 들어갔다.

아무리 찾아봐도 역시나 아공간 아이템들 중 제대로 된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아공간 아이템은 불량이 많아서, 아이템을 넣어 놓으면 아이템이 파괴되거나 증발해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더군다나 그런 아이템조차도 넣을 수 있는 수량은 한정적이었다.

“그냥 포기하자. X발.”

한숨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칙 붙였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이호성은 갑오징어같이 구겨진 얼굴로 발신자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받았다.

“누구십니까아.”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지 말끝이 길게 늘어졌다.

- 장웅일세.

강민성의 전담 셰프, 장웅이었다.

“아, 셰프님!”

이호성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허리를 세웠다.

“그때 말씀해 주신 레시피로 김치찌개는 잘 만들어 먹었습니다, 하하! 헌터님이 좋아하셨어요. 전화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 됐네. 바쁠 텐데 무슨. 그보다 헌터님이 좋아하셨다니 다행이야.

“하하, 그러게요. 저도 엄청 긴장했었는데 바가지가 불 조절도 잘했고, 그럭저럭 잘 넘어간 것 같습니다. 다음 요리가 걱정이지요, 뭐.”

- 잘하겠지. 그런데 목소리에 왜 그렇게 힘이 없나?

이호성은 먼 곳을 보며 긴 한숨을 또 내쉬었다.

“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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