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32화>
* * *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호성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바가지는 이호성의 다리에 머리를 대고서 붙어 있었다.
민성은 그런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보며 한숨 쉬었다.
“너희들이 약하니까 자꾸 그렇게 당하는 거다.”
“…….”
이호성과 바가지는 마치 벌 서는 아이들처럼 말없이 고개만 푹 숙였다.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질 거다. 정신 차리고 실전에 집중해라. 너희들이 강해져야 내가 없는 곳에서 맛집을 지킬 수 있으니까.”
“……네.”
“……네, 주인님.”
이호성과 바가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똑바로 대답 안 해?”
민성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이호성과 바가지가 동시에 ‘네에에에에에에엣!’ 하고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
“재료랑 레시피는 확실하게 챙겨 왔나?”
“물론입니다!”
이호성이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밥 먹자.”
민성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이호성이 돗자리를 깔고 템 창에서 장비를 주섬주섬 꺼냈다.
먼저 꺼낸 것은 밥솥.
그다음으로 프라이팬과 냄비, 그리고 접시와 수저.
식재 장비를 모두 꺼내 놓은 다음, 이호성이 템 창에서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가 꺼낸 재료는.
쌀, 김치, 돼지고기, 양파, 대파, 청양 고추, 다진 마늘, 고춧가루, 국 간장, 새우젓이었다.
“김치찌개?”
민성이 물었다.
“네. 김치찌개입니다. 아무래도 첫 요리다 보니까 쉬운 난이도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요. 장웅 셰프도 그렇게 추천했어요.”
민성은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호성이 생수로 손을 깨끗이 하고, 가장 먼저 물을 부어 쌀부터 빠르게 씻었다.
김치찌개의 육수는 장웅의 레시피대로 냄비에 쌀뜨물을 준비했다.
쌀뜨물에 잘 썰어진 돼지고기를 넣고 손을 털었다.
“야, 바가지. 이제 네가 나설 때가 됐다.”
이호성의 부름에 바가지가 쫄랑쫄랑 걸어왔다.
“불을 너무 세게 하면 타 버리니까 적당해야 돼. 할 수 있겠어?”
바가지가 자신 있다는 듯 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이호성은 긴장된 숨을 내쉬었다.
불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탑 안에서 밥을 해 먹기 힘들어진다.
“좋아, 그럼. 가 보자. 저기 밥솥에는 중불 정도로 불을 켜 주고, 여기 김치찌개에는 조금 더 강한 불을. 할 수 있겠어?”
“몰라. 해 봐야 알지.”
이호성이 긴장한 얼굴로 바가지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자칫 불이 너무 세지면 큰일이야. 헌터님 한 끼 식사가 날아가 버리고 만다고.”
그제야 바가지도 다소 긴장하는 듯했다.
자신의 주인이 얼마나 한 끼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바가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마법을 이런 식으로 활용해 본 적은 없어서인지 바가지는 머뭇거렸다.
“바가지.”
민성의 부름에.
“앗! 네, 주인님!”
바가지가 화들짝 놀라며 민성을 돌아보았다.
“실패해도 괜찮다.”
민성의 말은 충분한 응원이 되었다.
바가지는 밥솥과 냄비가 있는 쪽으로 팩 돌아서며,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마력을 컨트롤했다.
바가지의 눈이 검게 타오르며 뼈 손가락에 오러가 몽글몽글 맺혔다.
흑마법의 발현.
츠팟!
밥솥과 냄비에 동시에 흑마법의 검은 불이 붙었다.
“호오오! 두 개를 한 번에 켰어. 자신감 좋은데!? 그리고 불도 좋……!”
이호성이 웃으며 감탄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야, 야야야! 불이 너무 세. 좀 낮춰 봐.”
“알겠어!”
바가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불의 힘을 낮추려고 노력했다.
불의 힘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이호성은 즉각 움직였다.
바가지가 발현한 흑마법의 불은 힘이 좋아서, 순식간에 냄비가 팔팔 끓고 있었다.
이호성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팔팔 끓는 물에 김치와 김치 국물을 넣고, 다진 마늘과 간장, 그리고 고춧가루를 장웅의 레시피대로 정량에 맞춰 넣었다.
“아, 맞다. 새우젓.”
이호성은 잠깐 허둥대다가 새우젓을 찾아 김치찌개에 넣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한번 휘휘 저은 뒤, 마지막으로 대파를 들었다.
대파는 썰려져 있지 않아서 이곳에서 잘라야 했다.
이호성은 템 창에서 식칼을 꺼내, 왼쪽 손으로 대파를 잡고 오른손에 쥔 식칼로 대파를 삭삭 쳐 냈다.
잘려 나간 대파가 김치찌개 위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벌써부터 김치찌개의 냄새가 연기와 함께 자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호성은 긴장된 숨을 내쉬며 찌개가 끓어 가고 있는 현장을 지켜보다가-
“아, 맞다, 밥!”
뒤늦게 밥의 상태를 체크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타진 않았겠지?
이호성은 조심스레 밥솥의 뚜껑을 열어 보았다.
바가지의 불꽃은 신비로웠다.
화력이 세서 익히는 속도는 빠른데, 타지는 않는다.
정말 완벽한 불의 능력이었다.
“좋아, 완벽해.”
이호성은 만족한 얼굴로 웃음 지으며 다시 뚜껑을 닫았다.
밥은 이제 뜸만 조금 더 들이면 끝날 듯했고, 김치찌개는 이미 완성형에 가까웠다.
“바가지, 이제 김치찌개 냄비 불은 꺼도 돼.”
이호성의 말대로 바가지는 바로 불을 껐다.
잠시 밥솥을 지켜보다가 이호성이 번쩍 손을 들었다.
“스탑!”
이호성이 외쳤다.
바가지는 밥솥을 데우던 불도 팟! 하고 꺼트렸다.
“어떻게 됐어?”
바가지가 밥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호성은 뚜껑을 잡아 열었다.
새하얀 김이 올라오면서 윤기가 좔좔 흐르는 흰쌀밥의 자태가 보이자, 그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고서 뒤로 발라당 넘어갔다.
“대성공이야. 해냈다, 바가지.”
그에 바가지가 와아아! 하고 양팔을 높게 들고서 이호성 주변을 동그랗게 타닥타닥 뛰어다녔다.
그사이.
민성은 숟가락을 들고 김치찌개의 국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이호성이 벌떡 상체를 일으켜 그런 민성을 지켜보며 침을 꿀떡 삼켰다.
그리고.
민성은 픽! 하고 작게 웃었다.
“맛있다. 잘 만들었어.”
이호성이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며 성취감의 기쁨을 표현했다.
바가지도 신이 난 듯 이호성의 머리 위로 올라가 칵칵 웃으며 이호성의 머리카락을 쥐고 흔들었다.
“아악! 아퍼, 인마!”
이호성이 바가지를 떼어 내고 있는 사이, 민성은 밥솥의 밥을 밥그릇에 덜고, 국그릇에 김치찌개도 덜어 냈다.
“밥 먹자.”
민성의 말에 이호성도 바가지를 뒤로 휙 던지고,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식사를 시작하려는 민성과 이호성 사이에 바가지가 와서 앉았다.
“맛있겠다.”
이호성은 국자로 김치찌개를 푸면서 웃었다.
“네가 무슨 맛을 안다고 맛있겠다고 하냐?”
이호성이 놀리듯이 말하자 바가지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미, 미안.”
이호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사과를 표했다.
민성은 템 창에서 마석 하나를 빼서 던져 주었다.
바가지는 입을 크게 벌려 마석을 아작아작 단숨에 씹어 먹고는 기분이 좋아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 * *
예상보다 훨씬 밥이 잘됐다.
하얀 쌀밥은 마치 기름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바가지의 마법 불로 익힌 밥맛은 어떨까?
한 숟가락 떠먹어 보았다.
단맛이 예술적으로 쫀득쫀득하게 혀를 휘감는다.
훌륭하군.
기가 막히게 맛있다.
민성은 다시 밥을 떠서 그 위에 김치찌개의 김치와 돼지고기를 얹었다.
그리고 한입.
꿀꺽.
부드럽고 진한 김치찌개의 맛이 입안에 풍성하게 그 맛을 전하며 목을 넘어갔다.
돼지고기의 기름기에서 배어 나온 뜨거운 김치찌개의 구수하고 깊은 국물 맛은 최고였다!
“이호성. 아주 잘 만들었다.”
민성이 칭찬했다.
이호성도 하하 웃으며 김치찌개를 퍼먹었다.
이런 곳에서 먹으니 어쩐지 더 맛있는 것만 같은 건 착각일까?
마인의 탑에서 먹는 김치찌개의 맛은 조금도 모자랄 것 없이 최고의 한 끼였다.
이전엔 식은 도시락을 먹어서, 김치찌개의 힘이 여느 때보다 훨씬 더 파괴력 있게 느껴진 것일지도 몰랐다.
이렇든 저렇든, 좋군.
해 먹길 잘했다.
뜨거운 김치찌개의 진한 국물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분명하게 전달해 주었다.
뜨거운 김치찌개 국물이 식도를 넘어가는 느낌은 따뜻하며, 또한 포근했다.
잘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와 함께 밥을 떠먹으면 순식간에 밥은 위장 속으로 사라진다.
특히나 도톰하고 부드러운 돼지고기의 맛은 풍부한 식사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결국 눈 깜짝할 사이에 밥그릇을 뚝딱 비웠다.
맛있다!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였다.
설거지는 바가지가 마법으로 깨끗하게 해치웠다.
* * *
이호성은 내심 왕웨이에 대해 민성에게 얘기하면, 민성이 그 자식을 당장 죽여 버리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그건 바보 같은 희망 사항이었다.
밥을 처먹는 내내 한마디도,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민성은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단지 빨리 탑을 정리하고 배가 고파지면 밥을 해 먹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그렇지.’
이호성은 양쪽 입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저 인간은 우리가 죽을 뻔했든, 뭐든 별 관심도 없어.
냉혈한!
이호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9층 중심부 부근을 지날 무렵.
몬스터가 나타났다.
몬스터의 머리 위에는 ‘전설의 해적 선장’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바가지를 닮았다.
커다란 키와 체격만 다를 뿐.
중세 시대 해적 복장을 한 몬스터의 넙적한 칼자루에서 새파란 오러가 넘실거렸다.
“헌터님! 저 녀석은 바가지랑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호성이 호기롭게 외쳤다.
민성은 눈곱만큼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할 수 있습니다. 부디 맡겨 주십시오.”
민성은 한숨을 쉬며 해 보라고 턱짓으로 지시했다.
이호성과 바가지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비장하게 전투를 준비했다.
* * *
이호성과 바가지를 키우는 이유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자신이 강하다고 해도, 전 세계에 퍼진 몬스터로부터 맛집을 지키는 건 힘들 테니까.
하지만 이호성에게도 바가지에게도 탑은 그 난이도의 허들이 너무 높았다.
답답하고 귀찮지만, 결국 시간을 투자해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민성은 팔짱을 끼고 이호성과 바가지가 싸우는 걸 지켜보았다.
바가지가 속박과 둔화 스킬을 사용했다.
그 이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호성이 몬스터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데스나이트의 검이 날아들었다.
전설의 해적 선장은 속박과 둔화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호성의 공격을 해적 칼로 손쉽게 막아 냈다.
이호성은 당황했으나 다시 이를 악물고 공격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바가지가 뒤에서 공격 마법을 퍼붓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민성은 이호성과 바가지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답답한 표정으로 한쪽 눈살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