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31화>
“쿨럭!”
[치명타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패시브 특성 오픈.]
[‘버서커’로 진화합니다.]
[한계 돌파!]
[중첩된 분노로 인해 추가 대미지가 대폭 상승합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
왕웨이가 놀란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이호성의 머리카락이 점점 길어지면서 머리카락 색이 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이호성의 눈이 피가 차오르듯 붉게 변하고, 벌어진 입 안의 송곳니가 길어졌다.
근육이 팽창되고, 혈관이 돋는다.
폭발적으로 증강하는 마력량과 체력량.
뒤이어 이호성 주변의 돌과 흙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어금니를 빠드득 갈며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이내 앞가슴을 내밀고 입을 쩍 벌렸다.
“크와아아아아아아!”
“읏!”
왕웨이가 손으로 눈앞을 가리며 뒷걸음질 쳤다.
거대한 기의 파동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기 때문이다.
“저게 무슨……!?”
이호성이 배 속에 틀어박혔던 데스나이트의 검을 쭉 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배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타아아아아아아앙!
이호성이 지면을 박차며 왕웨이를 향해 뛰어들었다.
눈부신 속도.
그가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데스나이트의 검을 휘둘렀다.
[데스나이트의 검 특성, ‘헬 파이어’의 발동 확률이 100%로 유지됩니다.]
데스나이트의 검이 왕웨이의 환수도와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강렬한 불꽃의 폭발과 동시에 왕웨이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크읏!”
왕웨이가 번쩍 뜬 눈으로 이호성을 노려보았다.
아니, 노려보려 했다.
하지만 헬 파이어의 잔재로 남은 화염 불꽃과 연기로 인해 시야각 안에 이호성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연기와 불꽃을 뚫고 이호성의 데스나이트 검이 얼굴 쪽으로 찔러 들어왔다.
“치잇!”
왕웨이는 신경질적인 숨을 뱉어 내며 환수도로 데스나이트의 검을 올려쳤다.
카아아아아앙!
강렬한 쇳소리가 나며 또다시 헬 파이어가 발동되어 불꽃이 터졌다.
콰아아아앙!
헬 파이어의 대미지 자체는 별 볼 일 없었지만, 문제는 불꽃이 자꾸만 앞을 가린다는 것이었다.
“대체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거야, 이 쓰레기는.”
왕웨이는 보법을 밟아 순식간에 이호성과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이호성은 그 거리를 단숨에 뒤쫓았다.
폭렬적인 맹공격이 왕웨이를 향해 쏟아졌다.
강력한 오러가 담긴 데스나이트의 검이 불꽃을 터트리며 쾌속으로 왕웨이를 수세로 몰아갔다.
“까불고 있어, 이 광견 같은 놈이……!”
왕웨이가 아랫입술을 콱 깨물며 힘을 한 번에 개방했다.
마인을 쓰러트렸던 공격.
비전어뢰참(飛傳魚雷斬).
왕웨이의 환수도에서 검기가 토네이도처럼 회전하며 뒤틀렸다.
그 검기의 파동에 의해 시야를 가렸던 불꽃과 연기가 단숨에 흩어지고, 비전어뢰참이 이호성을 향해 쇄도했다.
‘끝이다. 이 광견 놈아!’
왕웨이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때.
이호성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머리 위로 들어 날아오는 비전어뢰참을 그대로 내리쳤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탑 내부의 땅과 천장이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빨간 화염이 사방으로 번지고 자욱한 연기가 퍼졌다.
왕웨이는 팔을 휘저어 연기를 거둬 내며 앞을 보았다.
죽었겠지?
분명 그러리라고 확신했다.
시간이 지나고 연기가 걷혀 갈 때쯤.
“크르르……!”
마치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설마……!”
이호성이 연기를 뚫고 왕웨이를 향해 뛰어들었다.
화려한 불길을 머금은 데스나이트의 검이 왕웨이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공격력은 강하지만, 단순한 패턴에 당할 왕웨이가 아니었다.
왕웨이는 날아드는 검을 피하고 곧바로 환수도로 이호성의 허리를 베어 냈다.
그런데.
“……!?”
옆구리가 잘려 나갔던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면서 회복되었다.
그리고 이호성을 베어 내는 탓에 자세와 중심이 흐트러진 왕웨이를 향해 이호성이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 공격은 결코 단순하다고 할 수 없었다.
불길을 머금은 데스나이트의 검이 왕웨이의 급소를 노렸다.
위치는 목이다.
불길이 허공을 수놓으며, 데스나이트의 검이 왕웨이의 목 쪽으로 가까이 붙었다.
왕웨이가 반사적으로 어깨를 들었을 때.
터어어어어어어엉-!
육중하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이호성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면서 약 40여 미터를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쿵!
이호성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놓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왕웨이는 마른침을 삼키며 옆을 보았다.
검은 로브를 걸친 세 명이 보였다.
흑랑대였다.
그들이 왕웨이를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책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눈알 파 버리기 전에 그딴 식으로 보지 마라.”
왕웨이가 분노와 짜증이 켜켜이 쌓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이호성이 좀비처럼 일어나 땅에 떨어진 데스나이트의 검을 주워들었다.
“크르르…….”
이호성의 입 밖으로 회색 연기가 피슉피슉 나왔고, 피를 머금은 듯한 두 눈은 마치 마인을 닮아 있었다.
흑랑대의 공격은 일시적으로 전투를 소강상태에 만드는 데에 불과했던 것이다.
“저 새X는 내가 마저 손봐야지?”
이호성과 다시 붙으려는 왕웨이의 앞을 흑랑대가 막아섰다.
“이 이상 지시를 무시하시면 저희로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왕웨이가 웃었다.
“어쩔 수가 없으면 뭐?”
“선배님. 지시 사항은 절대적입니다. 이는 교주님의 뜻을 반하시는 걸로 간주할 수 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왕웨이는 짜증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때, 이호성이 왕웨이와 흑랑대가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한데 지면을 박차고 뛰어 짐승처럼 달려들던 이호성의 움직임이 순간 눈에 띄게 둔해지기 시작했다.
불처럼 타오르던 붉은색의 머리카락은 점차 검게 변해 갔고, 짧아졌다.
피처럼 붉었던 눈도 본래의 형태를 되찾아 갔으며, 길게 자란 송곳니도 짧아졌다.
이내 허우적거리던 이호성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의식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퍽-
바닥에 엎어진 이호성은 미동이 없었다.
잠시 그런 이호성을 지켜보던 왕웨이와 흑랑대.
잠깐의 정적을 지나.
“돌아가시죠. 선배님.”
흑랑대가 재촉했다.
“……죽었으려나, 저 자식?”
왕웨이가 엎어져 있는 이호성과 저 멀리 기둥 앞에 쓰러져 있는 바가지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선배님. 집결지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돌아가셔야 합니다.”
“돌아가셔야 합니다.”
왕웨이는 혀를 차며 미간을 찌푸리고서 흑랑대를 쏘아보았다.
“거 더럽게 뭐라 하네, 진짜. 알았다, 알았어. 간다고!”
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후에, 이호성을 한 번 더 흘긋 보고는 피식 웃었다.
“만약 살았다면 운 좋은 줄 알아라. 뭐, 공문이 떨어지면 조만간 다시 만나겠지만.”
왕웨이가 코웃음을 뿜으며 몸을 돌렸다.
앞서 가는 왕웨이의 뒤를 흑랑대가 소리 없이 따라갔다.
* * *
“으으음…….”
신음을 흘리며 꿈틀대던 이호성은 초점이 분명해지고 의식을 어느 정도 되찾자마자 급격히 통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크으으!”
그는 버서커의 후유증에 의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바가지를 찾기 위해 엎드린 채로 눈알을 굴렸다.
그러다 이호성은 바가지가 바로 자신의 코앞에 털썩 앉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 바, 바가지……! 너 괜찮냐? 쿨럭!”
이호성이 기침을 하며 물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거야, 이 똥개야.”
이호성은 바가지를 보며 히쭉 웃었다.
“하…… 바가지 새끼. 너 괜찮은 모양이구나, 하하…….”
이호성이 벌렁 누우며 통증에 얼굴을 와락 찌푸리면서도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버서커 되면서 설마 그 삼천교 헌터 이겼냐?”
“아니. 흑랑대인가 뭔가가 나타나서 데려갔어.”
“아…… 그랬구나. 잠깐만. 근데 야. 너 의식 없어 보였는데 흑랑대가 와서 막은 건 어떻게 알아? 난 못 봤는데?”
“그거 나 아니야.”
“뭐라고……?”
“그놈에게 얻어맞은 건 내 분신. 난 이미 저 멀리 도망가 있었지.”
이호성이 뱀눈을 하고서 바가지를 노려보았다.
“이 얍삽한 해골. 내가 너 구하겠다고 무슨 짓을 했는데…… 우욱!”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이호성이 뭐라 하려다 배를 붙잡고 몸을 웅크리며 신음을 흘렸다.
“으아…… 저번에 버서커 됐을 때는 이렇게 안 아팠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아픈 거지.”
“포션 없어?”
“있는데, 헌터님 거니까 함부로 먹을 수가 없잖아.”
“오늘도 너 때문에 늦는 건데 빨리 가야지. 포션 먹고 상황 얘기하면 봐주실 거야.”
“그, 그렇겠지?”
“그래, 똥개. 어서 먹어!”
바가지가 재촉했다.
이호성은 템 창을 열어 포션 하나를 꺼내 마셨다.
꿀꺽꿀꺽, 꿀꺽……!
포션을 원샷으로 비웠다.
그리고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새파란 빛의 미세한 입자가 나타나 이호성의 피부 주변으로 날아다니다가 다시금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서서히 통증이 멎고,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던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비싼 포션이어서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바가지의 말대로 몸을 치료하고 강민성에게 빨리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왕웨이에 대해서도 보고를 해야 했다.
“아이고! 에구구!”
이호성은 노인처럼 허리를 붙잡고 죽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 * *
한국의 중앙 헌터 기관은 삼천교에서도 통제를 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한국 헌터들은 환단을 먹지 않기도 했고, 딱히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별달리 그 중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 헌터 기관은 삼천교가 지배하고 있는 집결지에 끼어들지도 못했고, 탑으로 들어갈 명분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
때문에 김지유는 헌터들에게 당분간 한국으로 돌아가 때를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앞으로 강민성과 중국이 부딪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중국이라는 큰 힘을 가진 나라가, 강민성이 마탑을 독점하도록 놔둘 리는 절대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중앙 헌터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헌터들은 힘없이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의 시민들은 좋아할 만한 일이었지만, 김지유의 입장에서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강민성이 없다면 사실상 최약의 헌터국이라는 오명을 전 세계적으로 확인하게 된 계기밖에 남은 것이 없었으니까.
집결지와 조금 떨어진 곳.
그곳에서 홀로 남은 김지유는 굳은 얼굴로 자신의 옷깃을 꽉 힘주어 잡았다.
결과적으로 남은 것이라곤 한 명의 헌터가 진정제를 먹지 못해 사망했다.
그건 자신의 탓이었다.
김지유는 괴로워하는 얼굴로 눈가를 손으로 덮었다.
강민성.
그의 말이 맞았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살아만 있어라.”
그가 말했던 그 말의 의미가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 진정제를 찾겠다고 나선 건, 어설프게 삼천교의 심기만 자극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의 헌터들이 모두 한국으로 귀국하고, 혼자 남은 김지유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울음을 소리 없이 쏟아 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