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30화>
* * *
왕웨이는 심기가 불편했다.
흑랑대만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놈의 목을 베고 발로 머리통을 으깨 버렸을 것이다.
왕웨이는 ‘빌어먹을 참새 새끼들-’ 하고 중얼거리며 손에 쥔 호두 두 알을 빠득빠득 굴렸다.
그러다 그가 시선을 돌렸다.
주위에 월드 헌터들이 보였다.
그들은 장비를 점검하거나 휴식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왕웨이와 눈이 마주치자 월드 헌터들은 모두 흠칫 어깨를 떨며 시선을 피했다.
‘쓰레기 같은 것들…….’
왕웨이는 그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가관이로구나.
아무리 헌터들이 강해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판다고들 하지만, 환단 때문에 저런 꼴들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한 대의 차량이 집결지 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자신이 훔쳐 탔던 고성능 차량.
즉, 이호성과 바가지가 타고 있을 차였다.
그 차를 보며 왕웨이의 눈이 요사스럽게 번쩍였다.
왕웨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흑랑대가 없음을 인지한 왕웨이가 순식간에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이호성은 차에서 내리면서 하품을 했다.
최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졸음이 몰려왔지만, 천둥 벼락이 치는 마인의 탑을 보자 민성에게 빨리 가야 한다는 사실이 인지돼 잠이 조금 깨는 듯했다.
이호성은 벨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바가지를 데리고 보트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걸음을 옮기면서 주변을 훑었다.
집결지는 별달리 다를 것 없는 분위기였다.
월드 헌터들은 도살장에 갇힌 강아지 같은 얼굴들이었다.
이호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보트에 올랐다.
보트를 출발시키면서 템 창을 열어 재료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빠짐없이 구매했는지, 레시피 종이도 템 창 안에 잘 보관되어 있는지.
준비는 완벽했다.
문제는 탑 안에서의 요리뿐이었다.
재료 체크를 끝마치고, 이호성은 느긋하게 담배를 피웠다.
잠시 후, A파트 지점이 다가오고 있을 때 이호성은 바가지를 톡톡 두드려 깨웠다.
“야, 이제 가야 돼.”
바가지가 어그적거리며 일어나 보트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이호성도 담배를 버리며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진짜 피곤하다. 그렇지 않냐, 바가지?”
이호성이 목을 기역 자로 꺽은 채 터덜터덜 걸으며 말했다.
바가지는 대답 없이 이호성의 벨트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무거우니까 좀 떨어져, 이 자식아.”
이호성이 손가락을 딱 튕겨서 딱밤 때리듯 바가지의 머리를 때렸으나.
때앵!
“아아악!”
단단한 탓에 이호성의 손가락만 부울 뿐이었다.
“크으으으으!”
이호성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며 자신의 손을 꽉 잡았다.
손가락이 깨질 듯이 아팠다.
빨갛게 부어오르는 손가락을 보며 한숨과 함께 신음을 흘리던 이호성은 갑작스러운 발자국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삼천교 7인의 헌터 중 한 명인 왕웨이가 변태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호성의 눈이 커졌다.
“당신이 왜 여기……!?”
이호성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왕웨이는 쿡쿡 웃으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아무래도 흑랑대가 여기까지는 미처 쫓아오지 못한 모양이야. 집결지에 내가 없다는 걸 눈치채고 마탑으로 온다고 해도. 그땐 이미…….”
왕웨이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네 머리는 그 바닥을 굴러다니겠지.”
놀란 눈을 깜빡이며 왕웨이를 보던 이호성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아니, X발. 진짜 나한테 왜 이래요. 내가 시비 건 것도 아니고, 당신이 훔친 차 받으러 간 건데.”
왕웨이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첫째, 한국의 헌터 강민성이라는 놈에게 흥미가 있다. 그놈 능력으로 마탑 9층 플로어까지 불을 밝혔다고 들었는데, 궁금하거든. 어느 정도의 실력일지.”
이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뭔데요?”
“네가 마음에 안 들어.”
이호성은 왕웨이를 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제가 잘못했으니까 그냥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난 죽여야겠는데?”
왕웨이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 관심 있다고 하셨던 강민성 헌터한테 모셔 드릴게요. 어떠세요?”
“걘 위에 있겠지. 널 죽이고 올라갈 거야. 어때? 재밌지?”
왕웨이가 기름지게 웃으며 말했다.
이호성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갔어, 저 자식.
현재의 마탑 플로어는 1층.
삼천교의 헌터를 상대로 민성이 있는 9층까지 도망가는 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선 놈과 싸워서 이기거나, 흑랑대라는 놈들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버틸 수 있을까?
꿀꺽…….
굵은 침이 목을 넘어갔다.
그때, 왕웨이가 웃으며 템 창에서 환수도를 빼내 들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마치 살인에 중독되어 미친, 연쇄 살인마 같은 얼굴이었다.
이호성은 바가지를 흘깃 내려다보았다.
어느 정도 자신은 있다.
바가지는 세 마리의 마인을 부린다.
그 수많은 월드 헌터조차 마인 세 마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아무리 삼천교의 헌터라고 해도 고작 한 명.
가능성이 영 없는 건 아니야.
“야, 바가지. 준비됐어? 마력 충분하지?”
바가지가 검은 혼 불의 안광을 불태우며 양손을 들었다.
어느덧 바가지의 손에는 푸른 오러가 불길처럼 맺혀 있었다.
이호성은 왕웨이를 쏘아보았다.
쫄 것 없어.
바가지가 마인을 소환했다.
사아아아아악!
세 마리의 언데드 마인이 허공을 베어 내며 균열의 공간 사이에서 나타났다.
“호오-”
왕웨이는 바가지가 마인 세 마리를 불러내자, 신기하다는 듯 마인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제법인데? 대체 뭐 하는 물건이냐, 그 해골 인형은.”
왕웨이가 킥킥 웃자 이호성은 자신의 표정이 점차 굳어짐을 느꼈다.
‘저 녀석…… 마인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전혀 겁먹지 않았어.’
이호성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설마 이미 상대해 본 적이 있다는 건가? 아니, 그건 불가능해. 탑이 나타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순한 허세일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이호성이 고개를 팩 돌려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저놈 엄청 강할 거야. 마인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 마법 공격 연쇄도 이어져야 할 거다.”
이호성의 말에 바가지의 검은 안광이 더 짙은 어둠으로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세 마리의 마인이 왕웨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호성의 눈에 마인이 움직이는 건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지만, 왕웨이는 완벽하게 반응했다.
……뿐만 아니라.
쇄애애애애애액!
마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태어나 단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왕웨이의 환수도에서 오러의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며 마치 회오리처럼 회전했다.
왕웨이의 눈이 섬광을 머금은 듯 하얗게 번쩍였고, 달려드는 마인들의 몸이 오러의 회오리에 휘감기면서 몸이 뒤틀리는 소리가 똑똑하게 귓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콰드드드드득!
현존하는 최강의 몬스터, 마인.
그 세 마리가 왕웨이의 일수에 마치 찌그러진 캔처럼 변해 바닥을 뒹굴었다.
바가지가 소환한 언데드 마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어 있었다.
이호성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왕웨이를 보다가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바가지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언데드 마인이 죽은 걸 보고 있었다.
뚜벅뚜벅!
왕웨이가 환수도를 어깨에 걸친 채 걸어왔다.
이호성과 바가지는 본능적으로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설마 이 마인 세 마리만 믿고 날뛴 건 아니지?”
왕웨이 역시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다는 듯 이죽거렸다.
“뭐야? 진짜 이게 다야?”
왕웨이가 화를 내듯 물었다.
“이것들은 대체 9층 플로어까지는 어떻게 올라간 거야.”
그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환수도를 휘둘렀다.
쩌저적!
마치 육중한 무언가가 갈라지고 뜯겨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새파란 검기가 이호성과 바가지를 동시에 공격할 만한 범위로 날아왔다.
바가지가 흑마법으로 마법 배리어 장막을 펼쳤고, 이호성은 데스나이트의 검을 세로로 세워 검기를 불어넣었다.
콰콰콰콰콰콰콰! 쿠우웅!
왕웨이의 검기가 바가지의 방어막을 깨트렸고, 이호성의 몸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며 지나갔다.
이호성은 검을 세워 머리와 몸통 쪽은 보호했지만, 팔다리에 깊은 상처가 남고 말았다.
“크읏!”
이호성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다 철퍽 엉덩방아를 찧었다.
단 한 수에 팔다리가 깊게 베이면서,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의 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바가지도 대미지에 후유증이 남았는지 엎드려 쓰러진 채 일어서지 못했다.
다만 치명상이 아니라는 게, 어쩌면 왕웨이가 일부러 힘을 조절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세 마리의 언데드 마인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힘만 보아도, 애초에 그를 제압하거나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젠장…….”
입 밖으로 피가 줄줄 흘렀다.
팔다리만 찢어진 것이 아니라, 오러의 대미지 영향으로 몸 안쪽으로도 무리가 다소 간 것 같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꼴을 보아하니, 강민성이라는 헌터에게 업혀 다닌 쓰레기들에 불과했어. 기대한 내가 바보지.”
왕웨이는 정말로 실망했다는 표정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다만…… 강민성이라는 놈은 궁금하긴 하군. 너희들을 보면 홀로 9층 플로어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확실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어서 만나고 싶군.”
그는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웃음 지으며 바가지의 머리 위로 발을 얹었다.
“이봐.”
왕웨이가 이호성을 불렀다.
이호성은 피를 흘리며 왕웨이를 노려보았다.
“이 해골 인형 말인데, 그 강민성이라는 놈이 아끼는 건가?”
“그 발 치워, 이 개X끼야…….”
왕웨이가 눈가를 손으로 덮으며 쿡쿡 웃었다.
“눈물겹군.”
퍽!
왕웨이가 바가지를 발로 걷어찼다.
가벼운 바가지는 힘없이 날아가 기둥에 맞고 바닥에 퍽 떨어져 내렸다.
바가지의 검은 안광이 약해지며 바가지가 꿈틀거리자 미세한 뼈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어때? 이런 식으로 괴롭히면 그 강민성이라는 헌터가 열 좀 받으려나? 응? 크큭!”
왕웨이가 바가지의 몸통을 밟아 비벼 댔다.
바가지가 왕웨이의 발길에 힘없이 흔들렸다.
“그만둬!”
이호성이 화난 얼굴로 피를 입 밖으로 뿜으며 소리쳤다.
“아아…… 재미없다. 그냥 터트려야겠어.”
발로 바가지의 머리를 으깨 버리려던 왕웨이는 이내 발을 치우고 검을 역수로 잡았다.
“아니지. 이 녀석의 머리통을 따로 들고 9층으로 올라가야겠어. 그놈 얼굴이 꽤 볼 만할 것 같으니까.”
그리고 이호성을 보며 늘어지게 말을 이었다.
“넌 여기서 그냥 죽는 거고. 오케이?”
왕웨이가 바가지의 머리통을 깨트리기 위해 환수도를 서서히 들어 올리려고 할 때.
“아직 안 끝났어. 이 재수 없는 개자식아……!”
그가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이호성을 응시했다.
이호성은 데스나이트의 검으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
푸욱!
데스나이트의 검이 이호성의 배를 뚫었다.
그리고.
“푸우우우!”
이호성은 입 밖으로 피를 분수처럼 뿜었다.
왕웨이는 떨떠름한 얼굴로 이호성을 보았다.
“엉? 너 뭐 하냐? 머리가 어떻게 됐어? 갑자기 웬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