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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29화 (129/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29화>

잔뜩 긴장한 채로 몬스터를 주시하고 있던 이호성은 너무 놀라서 그저 입을 벌린 채 눈만 끔뻑였다.

바가지가 칵칵 웃음과 동시에 언데드 마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바닥이나 벽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이호성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바가지를 돌아보았다.

안면에는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

“아이템 주워, 똥개. 이건 주인님한테 안 줘도 돼. 네가 먹어.”

바가지가 그림자 보드를 타고 이호성 주변을 뱅뱅 돌며 말했다.

“응? 어, 어어! 고마워.”

이호성은 땀에 젖은 채로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주웠다.

제기랄…….

그는 아이템을 주우면서 끔찍한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마인을 언데드로 부릴 수 있게 되면서, 바가지의 전투 능력은 어느새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이제 도저히 바가지와 전투 능력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호성은 잔뜩 주눅 들어 앞서 가는 바가지를 시무룩하게 뒤따랐다.

바가지 덕분에 탑을 나가는 건 안전해졌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참담해진 이호성이었다.

* * *

바가지와 함께 뭍으로 올라왔다.

지각한 경험이 있었기에, 바가지는 그림자 보드를 타고 이호성을 구조대처럼 죽죽 끌어 주었다.

그 덕분에 이호성은 헤엄을 치지 않고도 쉽게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덕분에 편하게 왔어. 고맙다, 바가지.”

이호성은 바가지에게 간단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옷을 무겁게 하고 있는 물기를 짜면서 주변을 훑었다.

집결지에는 여전히 헌터들이 있었다.

“분위기가 왜 이래, 또?”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에 봤던 기운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 집결지의 공기를 수놓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던 이호성은 이내 민성의 명령을 떠올렸다.

이번에도 지각을 한다면 분명히 강민성이 쉽게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호성은 서두르기 위해 차량을 찾으러 나섰다.

“……어라?”

그가 입을 살짝 벌리며 눈 밑을 긁적였다.

“왜 없지?”

이호성이 미간을 폭 찌그러트렸다.

있어야 할 차가 보이지 않았다.

빠르고 멋진 라페라리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

바가지가 이호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차가 없어. 있어야 할 차가 왜 없는 거냐고.”

이호성이 짜증스러워하는 얼굴로 머리를 박박 긁다가 어찌 된 영문인지 물어보기 위해 집결지의 헌터들을 찾아갔다.

“혹시 여기 있던 차. 못 보셨어요?”

이호성이 물었다.

집결지의 한 헌터는, 이호성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고 차량이 어떻게 됐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목격자였다.

“삼천교에서 헌터가 왔어요. 7명. 헌터장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서. 그 삼천교 헌터 중 한 명이 멋대로 차를 타고 가 버리더군요.”

그 말에 이호성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들어 보였다.

“아니, 차키가 나한테 있는데 어떻게……?”

“능숙하더군요. 마치 전문털이범처럼 손쉽게 문을 따고 시동을 걸어 버리던데요?”

이호성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래 묵은 것만 같은 스트레스가 묵직하게 올라와 뒷골을 뻑뻑하게 만들었다.

“그,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시겠죠?”

집결지 헌터는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휘휘 저었다.

“네, 감사합니다.”

이호성은 꾸벅 인사를 하고 답답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바가지. 찾을 수 있겠어?”

이호성이 바가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바가지는 미동이 없었다.

이미 차량을 찾기 위해 흑마법 스킬 중 하나인 망령술을 펼친 듯했다.

이호성은 잠자코 바가지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바가지가 가느다란 뼈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저쪽이야. 따라와, 똥개.”

바가지가 그림자 보드를 타고 앞서 갔다.

이호성은 어금니를 바드득 갈았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젠장……!

* * *

7인의 삼천교 헌터 중 한 명.

눈매가 가늘고, 라면같이 구불구불하면서도 긴 머리에, 호리호리한 체구의 사내.

‘왕웨이’는 문짝을 쾅 닫고 차에서 내렸다.

그는 제멋대로 보닛 위로 올라가 뒤통수를 받치고 누웠다.

“……헌터장이니 뭐니, 일단 자리만 맡아 놓고 놀아야겠다. 계집이랑 놀면서 술이나 왕창 먹어야겠어. 뭐라 하는 것들도 없겠지, 뭐. 크크큭.”

집결지는 이래저래 시끄러웠다.

조용한 곳에서 편안하게 한숨을 자고 싶었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기분 좋게 자고 있는 와중에, 그는 불편한 감각이 몸을 쭉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왕웨이는 눈을 번쩍 뜨고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그리고 한쪽 방향을 주시했다.

그곳에서부터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후, 인간 하나와 손바닥만 한 작은 해골이 나타났다.

왕웨이는 불편함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 앞에 나타난 이호성과 바가지를 보았다.

이호성은 무릎을 짚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고, 바가지는 검은 혼 불이 타오르는 눈으로 왕웨이를 노려보았다.

“……뭐냐, 너희들은?”

왕웨이가 자신의 단잠을 방해한 이호성과 바가지를 느슨하게 보며 물었다.

이호성은 숨을 가다듬고선 손을 부채질하듯 흔들었다.

“거기서 내려와요, 빨리.”

이호성이 말했다.

랭귀지 워치에 의해 그 내용이 해석되었다.

왕웨이는 앞니를 혀로 쭉 빨다가 침을 툭 멀리 뱉었다.

그의 침이 이호성의 발아래에 떨어졌다.

이호성은 뭐 저런 게 다 있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왕웨이는 누런 이빨이 훤히 드러나도록 웃음 지었다.

“이 차, 네 거냐?”

왕웨이가 이호성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물었다.

이호성은 얼굴이 붉어졌다.

속에서 뜨거운 게 치밀었지만, 그가 삼천교의 헌터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섣불리 싸우려 들 수가 없었다.

“우리 차 맞아요. 그러니까 내려오세요. 급해요, 우리.”

이호성이 짜증을 참으며 말했다.

그에 왕웨이가 템 창에서 직도(直刀)인 환수도를 꺼냈다.

그리고 투박하면서도 패도적으로 보이는 환수도를 휘휘 흔들었다.

“집결지에 있던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냐, 넌. 그 몬스터는 또 뭐고?”

이호성은 눈을 감고 한숨 쉬었다.

“그 차의 차주는 한국의 강민성이라는 헌터님이고요. 지금 저희는 심부름…….”

왕웨이는 킥킥 웃었다.

“아아, 들었어. 한국의 꽤 엄청난 헌터가 있다고. 탑을 혼자 9층까지 뚫었다지? 마탑의 불빛은 확인했어.”

이호성은 눈매를 좁혔다.

말하는 투를 보니, 강민성을 알고 있음에도 쉽사리 물러설 것 같지가 않았다.

이호성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바가지도 있기 때문에 평범한 헌터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지만, 상대는 삼천교였다.

민성도 없는 마당에 섣불리 공격적으로 굴 수가 없었고, 삼천교 자체가 딱 봐도 쉽게 구슬려질 것 같은 인간 군상이 아니었다.

“계속 거기서 죽 치고 있으실 겁니까?”

이호성이 지친 얼굴로 묻자 왕웨이의 눈에 살심이 파고들었다.

“말투가 영- 거슬리네.”

왕웨이가 차 보닛에서 천천히 내려왔을 때, 이호성은 혀를 차며 템 창에서 데스나이트의 검을 꺼냈다.

강민성의 명령을 받은 이상, 상대가 누구든 길을 막는 자가 있으면 베어서라도 가야 했다.

왕웨이가 흥미롭다는 듯이 길쭉하게 웃었다.

“깡다구 좋은데, 한국 놈.”

왕웨이의 환수도에서 파란 오러가 진하게 맺히며, 검이 웅웅! 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이호성은 침을 꿀떡 삼켰다.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지금 왕웨이가 뿜어내는 기세는 가히 비범했다.

저 칼을 휘두르는 즉시 몸이 2등분으로 양단될 것만 같은 찌르르한 긴장감이 온몸에 밀려들었다.

왕웨이가 앞으로 한 발을 내디디려는 그때.

슉슉슉!

검은 형체들이 나타났다.

검은 로브를 쓴 세 명의 키 큰 사내들이 왕웨이를 에워쌌다.

“흑랑대…….”

왕웨이가 거슬린다는 눈빛으로 낮게 말했다.

“강민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인물과는 접촉을 삼가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세 명의 검은 로브 사내들 중 한 사내가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왕웨이가 신경질적인 숨을 짧게 토했다.

긴장한 상태로 왕웨이를 주시하던 이호성은 왕웨이가 환수도를 다시 템 창에 집어넣는 걸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왕웨이는 저벅저벅 걸어 이호성의 코앞에 섰다.

그런 왕웨이를 흑랑대가 주시했다.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거다.”

왕웨이의 이리 같은 눈에 이호성은 그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충고하는데, 안 보는 게 좋을 겁니다.”

왕웨이가 픽 웃었다.

“뭐?”

“그쪽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으세요. 괜히 그러다가 비명횡사한 사람을 한두 번 본 게 아니…….”

왕웨이가 이호성을 노려보며 손에 오러를 실어 공격을 하려는 찰나.

파파파팟!

흑랑대가 왕웨이의 부근에 가까이 섰다.

“멈추십시오.”

흑랑대 세 명이 동시에 말했다.

왕웨이는 땅을 보며 쿡쿡 웃었다.

“아…… 이 참새 새끼들. 진짜 더럽게 짹짹거리네, 정말.”

흑랑대를 번들거리는 눈으로 보던 왕웨이가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이호성을 향해 웃었다.

“꼭 다시 보자?”

그가 그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떠났다.

흑랑대는 왕웨이가 멀어지기를 기다린 후에야 소리 없이 사라졌다.

마치 공간 이동을 하듯 빠른 속도였다.

왕웨이와 흑랑대가 사라진 뒤, 이호성은 차를 보며 한숨 쉬었다.

“X발, 이제는 간땡이가 부어서 삼천교랑도 맞짱을 다 뜨려고 하네. 어우, 이 노예 정신. 대단해요.”

이호성은 자조적으로 혀를 차며 세워져 있는 차로 걸어갔다.

바가지가 쫄랑쫄랑 이호성을 따라갔다.

* * *

“그 마약 중독자 같은 부지깽이 놈 때문에 괜히 시간만 잡아먹었네.”

이호성은 대형 마트 앞에 차를 세우고, 투덜거리며 내렸다.

바가지가 펄쩍 뛰어 이호성의 옷을 잡고 암벽 등반을 하듯 올라가 어깨에 앉았다.

“안 내려가냐?”

이호성이 바가지를 째려보며 말했지만, 바가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호성은 이내 포기하고 마트 안으로 들어가면서 바로 장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리 문자를 보내 놨기 때문에 장웅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 음! 그래, 호성 군.

“예, 셰프님. 지금 마트 들어왔거든요?”

이호성은 통화를 하면서 식품 코너 쪽으로 이동했다.

마트가 워낙 넓어서 웬만한 재료는 다 구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요리를 해야 되는데, 아무래도 좀 난이도가 쉬우면서도 괜찮은 게 어떤 게 있을까요? 엇? 코리안 푸드 코너도 있네요! 와, 별게 다 있는데요? 쩐다, 여기.”

- 어차피 요리를 하나만 해야 되는 건 아니잖나. 이 것저것 해야 할 텐데.

“그렇죠.”

- 일단 계란 한 판은 기본.

이호성은 장웅이 시키는 대로 메뉴를 골라 나갔다.

차근차근 메뉴를 찾아 모두 고른 다음에는 프라이팬과 냄비와 같은 식기를 찾으러 다녔다.

장웅 덕분에, 마트에서 오랜 시간을 잡아먹지 않고 금세 장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장을 너무 많이 봐서 템 창이 거의 가득 찼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몰라,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이호성은 계산을 마치고 마트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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