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28화>
* * *
집결지에 도착했다.
월드 헌터들은 마치 초상이라도 난 것처럼 축 처져 있었다.
시한부나 다름없는 삶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민성은 그런 월드 헌터들의 심정 같은 건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으며 생수를 마시면서 탑을 응시했다.
“이호성. 도시락은?”
이호성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헌터님이 드실 식사는 최고급 도시락들로 템 창에 세팅해 놓았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출발.”
* * *
뉴욕에 위치한 워프 게이트.
그곳에서 7명의 중국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추럴하면서도 세련된 복장에, 왼쪽 가슴에는 작은 배지 하나를 달고 있었다.
그 배지는 그들이 삼천교의 헌터이며, 앞으로 세계 헌터장의 자리를 역임하게 될 것이라는 증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게이트실에서 나와 고급스러운 대기실에 앉았다. 차량이 오고 있는 중이라 약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
인원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7명 모두 과묵했기 때문에 대기실은 조용했다.
그들은 서류를 살피거나, 태블릿 혹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고요한 침묵 가운데, 7인의 헌터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강민성이라는 놈이 혼자서 탑을 올라갔다며. 강할까, 그놈?”
“상부에서 하달된 명령 이외에는 관심 갖지 마라.”
“어차피 정리해야 할 녀석인데 뭘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 건지.”
“그나저나 헌터장 놈들은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집결지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큭큭! 헌터장 새끼들, 빠져 가지고. 집결지로 가면 교육 좀 해야겠어. 딸랑 리무진 한 대만 보내다니.”
저마다 한마디씩 했을 무렵, 직원이 차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7인의 삼천교 헌터는 여유롭게 워프 게이트 건물을 나섰다.
* * *
“후우우-”
민성의 입에서 짙은 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민성의 발아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마인들이 굴러다녔다.
마인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이호성과 바가지가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죽기 직전까지만 대미지를 준 것이었다.
“먹어.”
민성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이호성과 바가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으아악! 실패했어.”
“내 거 건들지 마, 이 뼈다귀야!”
이호성과 바가지가 서로 마인을 잡겠다고 아옹다옹했다.
그런데 그 순간.
체력을 회복한 마인 하나가 이호성과 바가지를 노리고 있음을 본 민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채애애애앵!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마인의 손톱에 부딪쳤다.
금빛 스파크가 튀면서 이호성과 바가지를 노렸던 마인의 손이 튕겨져 나갔다.
막타만을 신경 쓰고 있던 이호성과 바가지가 화들짝 놀랐다.
“정신들 안 차려?”
민성의 목소리에는 화가 담겨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느덧 또다시 한 마리의 마인이 꿈틀거리며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이호성과 바가지는 동시에 마인을 향해 공격했다.
이미 다 죽어 가는 마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마인들의 체력과 방어력이 높은 탓에 마인들은 서서히 다시 회복하고 있었다.
“너희들 무슨 의사냐? 마인들 살리러 왔어?”
이호성과 바가지는 마인을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지만, 워낙 마인의 숫자가 많아 외려 이호성과 바가지의 힘이 빠지고 있었다.
지켜보던 민성이 이내 쯧 하고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전부 다 멈추고 뒤로 물러서.”
민성의 명령에 의해 이호성과 바가지가 즉각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민성이 짧게 혀를 쯧 하고 차며 오리하르콘 단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마기의 오러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인들을 향해 쏟아졌다.
솨아아아아아아아!
마인들이 그대로 흩어지는 파편이 되어 소멸했다.
* * *
집결지에 7인의 삼천교 헌터가 도착했다.
월드 헌터들은 리무진에서 내린, 삼천교에서 나온 헌터들을 굳은 얼굴로 응시했다.
7인의 삼천교 헌터들도 집결지로 내려오면서 월드 헌터들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에는 비웃음이 듬뿍 담겨 있었다.
월드 헌터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자신들을 훑어보고 있는 7인의 삼천교 헌터들에게 그저 나약하게 눈치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헌터장들도 마찬가지인 입장이었다.
“오셨습니까?”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이 헌터장들을 이끌고 7인의 삼천교 헌터들을 맞이했다.
삼천교 헌터 중 한 명이 에단의 다리를 걷어찼다.
“윽……!”
에단의 무릎이 퍽! 하고 부서지면서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헌터장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에단과 삼천교 헌터를 번갈아 보았다.
“달랑 차 하나 보내는 건 무슨 개매너야? 직접 모시러 와도 이쁘게 봐줄까 말까 한 판국에.”
“……크윽.”
“어…… 이거 봐라. 대답 안 해?
삼천교 헌터로부터 살기가 쏟아졌다.
“……죄, 죄송합니다.”
에단이 깊게 머리를 숙이며, 신음을 삼키고서 대답했다.
삼천교 헌터가 시선을 거두자, 힐러가 뛰어와 에단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했다.
월드 헌터들은 에단을 보다가 퀭한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인의 탑이 나타나고 중국이 세계 무대로 나오게 되면서, 월드 헌터들은 그야말로 무너지고 말았다.
높은 곳에 있다가 추락할수록 대미지는 큰 법.
그저 자신들은 중국이라는 세계 앞에서 힘에 굴복당한 하나의 장기짝에 불과했고, 그 사실은 월드 헌터들의 마음을 서서히 죽여 가고 있었다.
“마인의 탑. 그리고 강민성에 대한 브리핑을 준비하도록 해.”
* * *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닦아 낸 수건을 바닥에 툭 버리며 앞장서서 걷다가 멈춰 섰다.
민성이 갑자기 멈추자, 민성에게 혼났던 이호성과 바가지가 긴장한 채 민성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쯤이면 되겠네.”
민성의 말에 이호성은 민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눈치채고 템 창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호성이 템 창에서 꺼낸 건 ‘불고기 도시락’이었다.
“헌터님. 식사하실 거죠?”
“그래.”
이호성이 돗자리를 깔자 민성이 그곳에 앉았다.
이호성은 도시락을 까서 놓아 주고 젓가락도 뜯어 주었다.
“월드 헌터들도 어찌하지 못하는 마인들을 이렇게 쉽게 요리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런 속도라면 금세 탑을 클리어하겠는데요? 뭐, 층수가 좀 높긴 하지만요.”
이호성이 존경의 의미가 담긴 눈으로 민성을 보며 말했다.
한데 젓가락을 들고 불고기 도시락을 먹으려던 민성이 마치 동상처럼 멈춰 있었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을 이상하게 보았다.
“……왜 그러세요?”
“이호성.”
민성이 이호성의 이름을 불렀다.
“네. 헌터님.”
“문득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이요?”
주머니 안에 있던 바가지도 궁금한지 빼꼼 머리를 내밀어 민성을 주시했다.
“꽤 괜찮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무슨 아이디어요?”
이호성이 약간의 불안감이 담긴 눈으로 민성을 보며 묻자, 민성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런 식은 도시락 같은 건 먹을 이유가 없었어. 플로어를 클리어하면서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게 무슨……?”
“해 먹자.”
“……예?”
“만들어 먹자고.”
“뭘요?”
“뭐든.”
“그러니까…… 재료를 사서, 여기 탑 안에서 요리를 해 드신다고요?”
“그래.”
“누가 요리를 해요?”
“네가.”
“저 요리 할 줄 모르는데요?”
“요리 학원에서 선생이 재능 있다고 했잖아. 장웅한테 전화해서 레시피도 받아 적어 와. 네가 할 수 있는 걸로.”
“아니, 근데…….”
이호성은 뭔가를 설파하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받아들였다.
민성이 아이디어를 생각한 그 순간부터 탑 안에서 밥을 해 먹는 건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고, 그걸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지금 마트 가서 재료랑 버너, 부탄가스 사고 레시피 적어 올게요.”
“버너는 필요 없다. 바가지가 마법으로 데우면 되니까.”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갔다 올게요. 바가지 데려가도 될까요? 혼자 가면 위험하니깐요.”
민성이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야, 바가지. 가자, 따라와.”
바가지가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눈치를 살피다 같이 가야 할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 * *
“정말 대단한 인간이다. 이젠 하다하다 마인의 탑에서 밥을 다 해 먹을 생각을 하냐.”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이호성은-
“정신 사나워, 좀!”
-이마에 혈관이 빠직 세우며 소리쳤다.
이에 그림자 보드를 타고 주변을 동그랗게 뱅뱅 돌던 바가지가 앞으로 향했다.
그러곤 마인을 소환했다.
언데드로 얻게 된 마인은 총 세 마리.
하급 마인이기는 해도, 세 마리나 되는 마인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바가지에게 있어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세 마리의 마인이 그림자 보드를 타고 있는 바가지가 움직이는 대로 졸졸 따라다녔다.
이호성은 바가지가 소환한 마인들을 보며 입꼬리를 내렸다.
“저게 진짜. 야, 다시 돌려보내. 몬스터도 안 나왔는데 마력 아깝게 왜 부르냐? 그리고 무섭다고.”
이호성이 짜증을 부리자 바가지가 칵칵 웃으며 무시했다.
여전히 마인을 계속 애완견처럼 데리고 있는 바가지를 이호성이 얄미운 듯이 보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몬스터가 왜 안 보이지?”
벌써 5층을 지나 4층으로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헌터님이 쓸고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양반은 못 되는 몬스터가 나타났다.
“야, 바가지! 몬스터다!”
이호성이 소리쳤다.
바가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림자 보드에서 내려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몬스터는 킹 블러드 베어.
거대 비만에 인간을 닮은 이족 보행의 몬스터였다.
몬스터의 온몸에는 새빨간 핏줄이 거의 빈틈없이 돋아 있어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외형이었다.
그리고 그런 외형만큼 엄청나게 강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호성은 긴장한 얼굴로 템 창에서 데스나이트의 검을 꺼내 들었다.
“야, 바가지. 저번처럼 네가 둔화랑 속박 마법을 걸면 내가 접근해서…….”
번쩍!
바가지의 눈에서 검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쉬이이이이이익!
한 마리의 마인이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억!
마인이 기다란 손톱을 휘갈기자, 킹 블러드 베어의 온몸이 한 번에 터져 버리고 말았다.
뼈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바가지가 소환한 언데드 마인들은 순식간에 아가리를 커다랗게 찢어 벌리며 그 뼈와 살점을 본능적으로 뜯어 먹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점이나 뼈를 삼키지 못했다.
몬스터의 사체가 파편이 되어 흩어지며 이내 바닥에 아이템을 떨어트렸기 때문이다.
마인들은 멍청하게 왜 먹을 게 없는지 혼란스러워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