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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27화 (127/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27화>

* * *

민성은 눈을 떴다.

현세의 세상에 익숙해진 만큼 요즘따라 잠이 많아졌다.

조금의 살기만 느껴도 바로 눈을 뜨긴 하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기에 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었다.

잠을 푹 잔 덕분에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민성은 거실로 가서 이호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헌터님.

“어떻게 됐어?”

- 성공했습니다. 바가지가 김지유 씨에게 잘 전달했어요. 이야, 바가지 놀라운데요? 이런 능력도 있고.

민성의 명령에 의해 바가지는 언데드로 부리고 있는 마인을 조종해, 약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바가지는 망령술과 더불어 마인을 조종하는 힘이 뛰어났고, 이번 기회에 확인된 바가지의 그런 능력은 앞으로도 꽤 쓸 만할 것 같았다.

“곧 집결지로 갈 거다. 탑으로 갈 준비해.

- 알겠습니다. 이따가 뵙겠……!

민성은 전화를 끊고,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정원으로 나갔다.

여름이 지난 가을 오후의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민성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집결지로 가기 전 여유로운 커피 타임을 즐겼다.

* * *

‘개수가 부족해.’

로브 사내가 굳은 얼굴로 텅 빈 박스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인원에 맞게 진정제를 준비했다.

삼천교에서 실수했을 리는 만무하다.

월드 헌터들이 진정제를 먹는 과정 또한 꼼꼼히 지켜보았다.

누군가 앞서 박스 안에서 진정제를 탈취해 가지 않은 이상, 개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야, 약이 왜 없는 거죠?”

아직 약을 먹지 못한 마지막 한 명의 헌터가 공포에 떨면서 말했다.

로브 사내는 헌터장들을 눈으로 훑었다.

헌터장들은 로브 사내의 시선을 회피했다.

째깍째깍.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약속된 시각, 진정제를 먹지 못한 마지막 헌터가 입 밖으로 피를 분수처럼 뿜었다.

“어어억…… 야, 야야, 약을 주세요. 제…… 발, 커억!”

헌터들이 경악한 얼굴로 죽어 가는 헌터를 보았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약을 가져간 것 같은데…….”

로브 사내가 섬뜩한 예기가 흐르는 눈으로 좌중을 훑었다.

“환단을 먹음으로써 네놈들의 몸에 퍼진 것은 단순한 중독 현상이 아니다. 지금쯤이면 독을 통해 몸 안에서 독벌레가 태어났을 거다. 진정제를 먹지 않으면 그 벌레가 네놈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먹는 것이지.”

로브 사내가 비웃음을 섞어 말을 이었다.

“약을 구했다고 안심하지 마라. 독벌레는 하루가 다르게 성충으로 성장하고, 지금의 약으로는 중독 현상을 막지 못하게 될 테니까.”

월드 헌터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네놈들이 약을 훔쳐봐야 결국 쓸데없는 짓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극도의 공포가 수백에 달하는 월드 헌터들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커억!”

약을 먹지 못한 헌터는 이내 눈을 뒤집으며 숨을 거두고 바닥에 엎어졌다.

미동 없이 누워 있는 헌터를 월드 헌터들이 질린 눈으로 응시했다.

“마인의 탑이 나타나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시기에 왜 이런 짓을 하려고 드는 거냐!”

그때, 한 월드 헌터가 로브 사내에게 울분에 차서 소리 질렀다.

로브 사내는 자신에게 소리를 지른 헌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너희들같이 약해 빠진 놈들이나 하는 생각이지.”

로브 사내의 말에 월드 헌터들이 어금니를 깨물며 신음과도 같은 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로브 사내의 한쪽 눈에 새하얀 빛이 어렸다.

그와 동시에 박도에서 새파란 오러가 물결 쳤다.

“불만을 허락해 준 적은 없다.”

로브 사내가 눈부신 속도로 이동해, 자신을 향해 소리친 월드 헌터를 박도로 내리쳤다.

서걱!

월드 헌터의 몸이 2등분 되면서 그 자리에서 피를 뿌리며 즉사했다.

로브 사내의 얼굴에 피가 튀었지만, 그는 피 묻은 얼굴을 닦지 않고 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듯 월드 헌터들을 노려보았다.

월드 헌터들은 삼천교의 공포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의 시선을 피했다.

로브 사내가 칼을 썼다.

그것은 곧, 통제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 *

민성은 가벼운 검은색 운동복 차림으로 전화기 0번을 눌렀다.

“헬기 조종사 올려 보내.”

- 네. 지금 바로 연락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로비 직원의 목소리가 들리고, 통화는 그걸로 끝.

민성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난간으로 올라서서 아찔한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후우우웅.

바람에 의해 민성의 운동복이 펄럭였다.

민성은 하품을 길게 했다.

“오래 잤는데도 졸리네.”

민성이 물기 어린 눈을 손등으로 문지를 때, 헬기 조종사가 도착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헬기 조종사는 아슬아슬하게 난간 위에 서서 경치를 보고 있는 민성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민성이 헬기 조종사를 돌아보았다.

“시동 걸어.”

“네, 넵.”

헬기 조종사가 발 빠르게 움직여 시동을 걸었다.

프로펠러가 서서히 회전하더니 이내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고속으로 돌아갔다.

민성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착용했다.

“헬멧을 쓰지 않으셔도 괜찮…… 아,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요.”

헬기 조종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목적지 있으십니까?”

“워프 게이트로.”

“그…… 아직 워프 게이트에는 헬기 착륙장이 없어서…….”

“그냥 뛰어내리면 돼.”

“아…… 알겠습니다.”

잠시 충격에 빠졌던 헬기 조종사는 이내 침을 꿀꺽 삼키며 정신을 되찾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헬기가 서서히 부양했다.

투투투투투투투!

거친 소리와 함께 헬기가 워프 게이트를 향해 출발했다.

헬기는 오래 걸리지 않아 워프 게이트 부근에 이를 수 있었다.

확실히 헬기라 그런지 자동차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빨랐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 건물 위에 이르렀을 때, 민성은 헤드폰을 벗고 바로 문을 열었다.

벌컥!

거친 바람이 헬기 내부로 밀려 들어왔지만, 헬기 조종사는 헬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능숙하게 조종했다.

“수고.”

민성은 그 짧은 말을 남기고 헬기 밖으로 몸을 던짐과 동시에 열었던 헬기 문짝을 닫았다.

쿵!

헬기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민성이 아래로 떨어졌다.

쇄애애애액!

중력 그대로 빠르게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의 자세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내 민성이 사뿐하게 땅을 딛는 모습을 헬기 조종사는 입을 떡 벌린 채 지켜보았다.

* * *

민성은 워프 게이트를 통해 뉴욕으로 순간 이동했다.

게이트실에서 나오자 직원이 VVIP인 민성에게 와서 손을 비비며 응대했다.

민성은 짧게 대꾸하고 넓은 로비로 나왔다.

로비의 중앙 부근쯤을 지날 때, 입구 회전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그의 로브에는 굳은 피가 묻어나 있었다.

로브의 사내가 고개를 살짝 들면서 걸어오자, 민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로브 사내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 계속해서 고정되어 떠나질 않고 있었다.

또한, 그 눈빛은 민성이 느끼기에 불쾌하고 불편했다.

“어이.”

민성의 부름에 로브 사내가 민성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민성은 짧게 웃으며, 그가 깊게 눌러쓴 후드를 손끝으로 툭 올려 쳤다.

후드가 뒤로 넘어가면서 로브 사내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긴 검상(劍傷)의 흉터로 인해 한쪽 눈은 감겨 있다.

나머지 한쪽의 검은 눈은 여전히 민성의 심기에 거슬렸다.

“뭘 그렇게 쳐다보냐, 외눈깔.”

민성이 건조하게 말했다.

로브 사내는 민성의 눈을 잠시 보다가, 시선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민성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로브 사내를 지켜보다가 그를 지나쳤다.

* * *

민성은 집에서 챙겨 온 껌 하나를 씹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차를 구경한다고 정신이 팔려 있는 이호성과 바가지가 보였다.

“가자.”

민성의 목소리에 이호성이 반사적으로 담배를 버리고, 입에 구강 청결제를 칙칙 뿌리며 민성에게로 돌아섰다.

“편안히 오셨습니까, 헌터님!”

이호성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주인니이이이임!”

바가지가 이산가족 상봉하듯 민성에게 달려가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때, 이호성이 손으로 휙 하고 새까만 스포츠카 차량을 가리켰다.

“라페라리 모스트로라는 차량입니다. 제로백이 2초 대예요. 최고의 VVIP만이 탈 수 있는 차량입니다. 헌터님 덕분에 이런 차도 몰아 보네요, 크으으!”

이호성이 흥분한 얼굴로 차량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주접 떨지 말고 출발 준비해.”

민성이 조수석에 앉자, 이호성이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와르릉!

마치 낮게 포효하는 듯한 울림이 퍼져 나왔다.

“아, 그리고 헬기랑 차량 면허는 당장이라도 따실 수 있도록 말해 놓았습니다. 전용 구간을 구했으니까 편하게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워프 게이트에 헬기는?”

“그게, 착륙장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답니다.”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니 이호성이 액셀을 밟았다.

휠과 타이어가 제자리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슈퍼카가 빠르게 출발했다.

와아아아아앙!

전에 이호성이 운전하던 차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감이 느껴졌다.

교통 체증도 없는 만큼, 이 차라면 확실히 빠른 시간 안에 집결지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헌터님. 그리고 새로 알게 된 소식들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이호성이 운전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바가지의 능력으로 진정제는 확보했습니다만, 그 진정제를 못 먹은 헌터가 사망했습니다.”

“환단을 안 먹은 헌터가 있다며?”

“월드 헌터 측의 거짓말이었어요. 그냥 희생양 하나 던진 거고, 그게 별 대수냐는 식으로 생각한 거겠죠. X새끼들……!”

민성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진정제를 개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환단을 먹으면 몸 안에 독벌레라는 것이 자란대요. 그래서 삼천교에서 추가로 만드는 약이 아니면 별로 효과가 없는 모양입니다.”

이호성이 답답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삼천교에게 지독하게 당했네요. 멍청한 것들. 아무리 힘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단체로 그런 알지도 못할 약을 함부로 먹다니. 게다가 지들 살겠다고 헌터 한 명을 그런 식으로 희생시키는 걸 보면 자업자득인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헌터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건 문제지만.”

이호성은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인 말을 한 것 같아 슬쩍 민성의 눈치를 살폈다.

“그 삼천교에서 나왔다는 인간.”

“네.”

“어떻게 생겼어?”

“듣기로는 항상 누더기 같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닌다던데요. 그리고 눈 한쪽을 다쳤답니다.”

“그 자식이네.”

“네? 그 자식이요?”

“워프 게이트 로비에서 봤다.”

“보셨다고요? 삼천교의 헌터를요?!”

“그래. 그 외눈깔.”

민성이 살짝 짜증이 난 것처럼 보이자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삼천교……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거슬리긴 해도 월드 헌터나 삼천교나 그놈이 그놈이다. 딱히 날 방해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이호성은 확신했다.

강민성의 성격이라면 분명 삼천교와 부딪칠 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스케일이 감당이 되지 않아, 겨울도 아닌데 몸이 떨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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