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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26화 (126/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26화>

* * *

이튿날 오전.

미국을 포함한 월드 헌터는 집결지로 모이라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삼천교.

진정제를 받기 위해서는 삼천교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월드 헌터들은 약속된 시간 안에 집결지로 향했다.

수백에 달하는 월드 헌터가 집결지에 모두 모였을 무렵, 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급 스포츠카의 배기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월드 헌터들은 긴장감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이 켜켜이 쌓인 눈으로 삼천교의 헌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집결지 앞으로 빨간색 스포츠카가 급정거하며 차를 세웠다.

운전석에서 로브의 사내가 서류 가방을 든 채 천천히 내렸다.

로브 사내가 주위를 훑자, 월드 헌터들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모두 그 시선을 피했다.

로브 사내는 차 문을 쾅! 닫으며 집결지 회의 천막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런 그를 헌터장들이 뒤따랐다.

로브의 사내가 상석에 털썩 앉자, 뒤늦게 헌터장들도 굳은 얼굴로 좌석을 채웠다.

월드 헌터들이 사방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로브의 사내가 깊게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헌터장들이 로브 사내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는 한쪽 눈이 없었다.

한 쪽 눈에는 검에 베인 듯한 긴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하나의 눈은 거칠었으며, 또한 차가웠다.

로브의 사내가 무거운 박도를 꺼내 테이블에 내던지듯 놓았다.

쾅!

박도가 떨어지는 소리에 헌터장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철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의견은 하나로 모아졌나?”

로브 사내가 낮은 저음으로 물었다.

헌터장들은 일제히 로브 사내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로브 사내의 눈이 살기로 짙어졌다.

“X같이 머리만 끄덕이지 말고 말로 대답해.”

로브 사내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은 톤이었지만, 헌터장들을 뒤흔들기에는 충분한 박력이었다.

“Sir!”

헌터장들이 일시에 긴장으로 굳은 채 대답을 외쳤다.

그들이 눈치를 보는 사이, 로브 사내가 천천히 일어나 테이블에 내려놓은 박도 손잡이를 잡았다.

헌터들의 눈알이 모두 로브 사내가 쥔 박도를 따라갔다.

쿠웅!

박도의 날 끝이 테이블에 찍혔다.

테이블의 진동을 느끼며 헌터장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아마 그런 생각들을 했을 거야. 적당히 시간을 끌면서 희생양 하나 잡아 진정제를 분해해 연구한다. 그리고 진정제를 직접 만든다.”

뜨끔한 헌터장들이 극도의 긴장 상태로 숨을 삼켰다.

“너희들은 지금 하루라도 빨리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 진정제를 받고 싶을 거고.”

헌터장들은 마음이 꿰뚫린 것 같아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어린아이도 할 만한 그런 예측을 우리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로브 사내가 손에 쥔 박도를 테이블에 아주 느릿하게 그었다.

그그그그극!

나무 테이블이 긁히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헌터장들에게 끔찍하게 들렸다.

“우린 당신 앞에서밖에 진정제를 먹을 수 없을진대, 어찌 연구용 진정제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릴 향한 의심은 그쯤에서 거두어 주십시오.”

한 헌터장의 말에, 로브 사내가 헌터들의 속을 들여다보려는 눈빛으로 하나하나의 표정을 살폈다.

* * *

회의장에 삼천교의 사람과 월드 헌터들이 모여 있는 사이, 김지유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월드 헌터가 집결지에 깔린 상황이다. 직접 타고 온 차에 진정제가 들어 있을 리는 없었다.

분명 이 근처.

집결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 틀림없어.

월드 헌터들은 오늘 오전 중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삼천교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헌터들이었다.

그런 헌터들이 쉽게 죽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김지유는 진정제를 찾기 위해 중앙 기관의 병력을 풀어 주변 부근을 샅샅이 수색해 나갔다.

* * *

월드 헌터들은 마치 심지가 타듯 속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김지유가 진정제를 확보하면, 상황을 전달받은 헌터가 사인을 주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애타게 기다리는 사인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월드 헌터들은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지켜보고 있는 로브 사내의 눈치를 살피며, 김지유가 진정제 확보에 성공하기를 기원 중이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당신들 표정.”

로브 사내가 어깨에 박도를 걸친 채, 헌터장들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며 거슬린다는 듯이 말했다.

헌터장들은 진정제 확보 소식이 오기만을 피 마르게 기다렸고, 로브 사내는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 * *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어제부터 수색을 계속해 왔지만, 월드 헌터들이 진정제을 먹어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물건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김지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그런데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절대 멀리 숨겼을 리가 없으니……,

‘설마 집결지의 땅속에?’

그런 생각이 들자 아찔함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대로 연구용 진정제를 구할 수 없다면, 월드 헌터의 목숨은 삼천교가 죽을 때까지 틀어쥐게 된다.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인 상황!

하지만 집결지 내의 땅속에 숨겼다면, 삼천교 헌터의 눈에 발각되지 않고서 땅을 파내는 건 불가능했다.

김지유는 일그러진 얼굴로 집결지 방향을 돌아보았다.

* * *

월드 헌터들은 체념했다.

진정제를 먹어야 할 시점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김지유가 진정제를 찾아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미 기회는 물 건너간 것이라고 봐야 했다.

로브 사내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체크한 뒤,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계약서였다.

삼천교의 헌터가 헌터장들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계약서.

도장을 찍으면 즉시 효력을 일으키는 마법 계약서인 만큼 헌터장의 책임감과 무게는 그만큼 무거웠다.

서류가 헌터장들의 앞에 한 장씩 놓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끌 수도 없었다.

진정제를 받아야만 환단 중독으로 인한 사망을 막을 수 있었다.

김지유가 진정제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계약은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로브 사내가 진정제를 꺼내기 전에, 김지유가 먼저 물건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안타까움이 헌터장들의 가슴을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었다.

헌터장들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들었다.

* * *

김지유는 좌절했다.

중앙 기관 병력을 모두 쏟아부어 최선을 다해 움직였지만, 삼천교에서 숨겨 둔 진정제는 찾아내지 못했다.

만약 추측대로, 집결지의 땅속에 묻은 거라면 진정제를 확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삼천교 헌터의 코앞에서 진정제를 훔친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시도니까.

김지유가 힘을 잃은 얼굴로 축 늘어졌다.

중앙 기관의 헌터들은 그런 김지유를 씁쓸한 눈으로 보며 함께 침음을 삼켰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인간의 발소리라고 할 수 없는, 작은 발자국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어……!?”

“우와아앗!”

“깜짝이야!”

“뭐야!?”

주변이 술렁였다.

김지유는 축 늘어트렸던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곳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중앙 헌터 기관의 헌터들 사이로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마법 리치 인형.

바가지다.

김지유는 넋이 나간 눈으로 바가지를 보았다.

귀엽게 정장 차림을 한 바가지가 뒤뚱거리며 걸어와 김지유의 발아래에 서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넌.”

김지유가 놀란 눈으로 바가지를 내려다보며 말을 흐렸다.

“주인님이 이거 구해서 전해 주라고 해서 왔어요.”

바가지가 품 안에서 삼천교의 진정제 한 알을 꺼내 보여 주었다.

김지유는 화들짝 어깨를 떨었다.

“어, 어떻게 구한 거야, 이걸?”

“집결지 땅속에 있었어요. 제 언데드로 땅을 파서 한 개만 구해 왔죠.”

그녀는 바가지가 들고 있는 진정제를 충격이 가시질 않은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눈이 글썽거렸다.

“받아도 되는 거니?”

“그럼요. 주인님이 주라고 했으니까요.”

김지유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주인님은 안 왔어요.”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미소 지었다.

“혼자 온 거야?”

“아니요. 똥개랑 같이 왔는데요.”

김지유는 살짝 당황했다.

“누구보고 똥개래, 자꾸. 이 망할 뼈 해장국 같은 놈아.”

이호성이 김지유를 향해 씩 미소 지으며 나타났다.

김지유는 이호성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바가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감사히 받겠다고 전해 줘. 그리고 너도 정말 고마워.”

김지유가 환단을 조심스럽게 챙기며 인사했다.

그에 바가지가 기분 좋다는 듯 커다란 머리를 젖히며 칵칵 웃었다.

* * *

월드 헌터들이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로브 사내는 계약서를 거두어 가방에 넣은 뒤, 박도를 들고 일어섰다.

“조만간 삼천교에서 사람이 올 거다. 자리를 내줄 준비들을 하도록.”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월드 헌터들 사이로 걸어가 그들이 밟고 있는 땅의 중심부에 멈춰 섰다.

로브 사내의 시선이 주변을 차갑게 훑자, 월드 헌터들은 주눅이 든 채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로브 사내는 박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박도 주변에 오러의 입자가 맺혀 들며 강렬한 힘의 파동이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로브 사내는 그대로 땅을 향해 박도를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앙!

집결지의 땅이 폭발하듯 깨지며, 흙과 돌의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더불어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그 구덩이 속에 말끔한 상태의 철제 박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 사내는 구덩이로 훅 내려가, 철제 박스를 구덩이 밖으로 던졌다.

쿵!

묵직한 박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로브 사내는 위로 올라와 박스의 뚜껑을 거칠게 열었다.

덜컥!

뚜껑이 열리자 박스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약이 나타났다.

중독 현상을 진정시켜 주는 진정제였다.

로브 사내가 박도를 어깨에 걸치고서 턱짓하자, 헌터들이 진정제를 먹기 위해 로브 사내 앞으로 줄을 섰다.

그때, 헌터장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김지유가 약을 구했다는 소식을 신호로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헌터장들은 로브 사내의 눈치를 살피며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약을 구했다.

진정제를 분석해서 만드는 건 시간문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미 삼천교에서 헌터장의 자리를 넘겨받았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그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삼천교와 강민성의 사이에서, 월드 헌터는 생존과 자국의 자리를 되찾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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