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125화 (125/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25화>

“이 사태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이대로 가다간 중국이 전 세계를 장악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빌어먹을. 환단에 그런 후유증을 유발시키는 함정을 파 놓다니.”

“거기에 넘어간 우리들의 잘못이 큽니다.”

“삼천교의 함정에 당한 이상,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숨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

그때, 천막이 펄럭 소리를 내며 그림자가 나타났다.

모든 시선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이에게로 향했다.

회의실 입구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한국 중앙 헌터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였다.

그녀를 보는 월드 헌터들의 눈에는 복잡한 심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김지유는 그런 월드 헌터들의 시선을 담담히 받으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회의장의 마지막 자리에 앉았다.

“삼천교가 세계를 지배하려고 나선 이상, 이대로 삼천교에게 끌려다녀서는 안 됩니다. 지금부터 이 문제를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죠.”

김지유의 말에 남아메리카 헌터장이 한숨 쉬었다.

“방법을 찾기가 불가능하기에…….”

김지유가 파랗게 일렁이는 눈으로 남아메리카 헌터장을 직시했다.

“불가능하다고 해도, 방법을 찾아야죠.”

남아메리카 헌터장이 손으로 눈가를 덮으며 어금니를 깨물었다가 김지유를 다시 보았다.

“대안이 있는 것입니까?”

김지유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월드 헌터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준비한 내용을 기반으로, 회의를 주체적으로 시작했다.

“월드 헌터 대부분이 환단에 중독되었고, 삼천교의 진정제를 주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이를 계기로 헌터국의 세계 실권을 장악하는 것이 삼천교의 의중이고요.”

김지유가 강렬한 눈으로 월드 헌터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삼천교가 가진 진정제를 분석해서 그 진정제를 제조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환단은 삼천교 사람이 보는 앞에서만 먹었습니다. 중독 현상을 멈춰 주는 진정제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어떻게 그 진정제를 구한다는 겁니까?”

좌중이 침묵하자 김지유는 무거운 눈으로 말을 이었다.

“삼천교 측에선 월드 헌터에게 진정제를 공급할 겁니다. 에단과 미국 헌터들에게 나눠 주었듯. 월드 헌터에게 진정제를 나누어 줄 때, 그사이 저희 중앙 기관이 진정제를 확보하겠습니다.”

김지유의 과감한 결정이 서린 말에, 헌터장들은 침음을 삼켰다.

“삼천교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 목숨은…….”

“목숨을 걸어야죠. 삼천교가 그 사실을 알기 전에 진정제를 분석해 제조법을 알아내야만 합니다.”

“너무 위험한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삼천교가 그런 얕은 수에…….”

“선택은 여러분이 하시죠.”

김지유의 말에 월드 헌터들은 심란한 얼굴이 되었다.

긴 회의 끝에, 그들은 김지유의 뜻을 따르기로 합의하였다.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김지유가 말끝을 흐렸다.

“분명 삼천교 측에서는 정확히 인원수에 맞는 진정제를 준비할 겁니다. 우리가 진정제 한 알을 빼돌리게 된다면, 진정제를 먹지 못하는 헌터가 나올 텐데…….”

“아, 그건 걱정할 것 없습니다. 환단을 먹지 않은 헌터들도 있으니까.”

순간 김지유의 얼굴이 밝아졌다.

“됐네요, 그럼. 이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죠.”

* * *

헬기를 타고 서울의 야경을 보며 사색에 잠겨 있던 민성은 무전 소리에 그 사색에서 깨어났다.

치지직!

- 이호성입니다!

민성은 무전을 손으로 들었다.

“무슨 일이야?”

잠시 후, 이호성의 답변이 무전으로 왔다.

- 급히 보고드립니다. 삼천교라는 중국 세력에 관한 정보인데, 지금 무전으로 보고를 드릴까요?

민성은 무전을 입가에 대고 미간을 구부렸다.

“돌아간다. 기다려.”

- 예, 알겠습니다!

민성이 시키기도 전에, 헬기 조종사는 헬기의 방향을 틀었다.

민성이 탄 헬기가 방향을 틀어 그랜드 월드 타워로 향했다.

* * *

투투투투투투!

프로펠러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며 서서히 착륙장으로 내려왔다.

프로펠러에 의한 바람이 불자 이호성은 손으로 얼굴을 막으며 민성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프로펠러가 멈추며 헬기에서 민성이 내렸다.

이호성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며 민성의 옆에 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민성이 엘리베이터를 타자, 이호성이 따라 타면서 말을 이었다.

“삼천교에서 환단을 나누어 줬었잖아요? 그런데 그 환단의 부작용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삼천교에서 진정제를 주지 않으면 바로 사망에 이른다고 합니다.”

“누가 알려 준 소식이야? 김지유?”

“그렇습니다.”

민성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펜트하우스 거실을 가로지르다 멈춰 서고는 머리를 삐딱하게 꺾었다.

“삼천교에서 진정제를 준다는 건…….”

“네. 삼천교 놈들이 월드 헌터를 통제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헌터님. 헌터님께서 월드 헌터들을 통제할 거라고 하셨잖아요. 삼천교에서 선수를 쳐 버렸는데, 어떻게 하죠?”

“신경 쓸 가치도 없는 것들이다.”

이호성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 네. 그런데 그럼 저희는……?”

민성이 말을 하려는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이호성이 인터폰을 확인했다.

“총군주가 왔습니다. 김지유 씨요.”

“열어 줘.”

통유리 너머로 야경을 보며 민성이 말했다.

잠시 후, 김지유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펜트하우스 층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는 민성의 등 뒤에 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월드 헌터와 나누었던 진정제 확보 작전을 포함한 회의 내용을 전부 말했다.

“……그리고 에단도 해당 사안에 대해 승인했습니다. 이건 이제부터 모든 월드 헌터의 사안에 대한 모든 통제권이 민성 씨에게로 넘어갔다는 걸 의미해요.”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김지유는 짧게 웃음 지으며 민성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펜트하우스에서 물러갔다.

김지유가 나가고 나서 민성은 주변을 훑었다.

“바가지는 어디 있는 거야?”

민성의 물음에 이호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이호성이 펜트하우스 이곳저곳을 찾아보다가 욕실 앞에 이르렀다.

벌컥.

욕실 문을 연 이호성은 황당함으로 인해 처진 눈으로 앞을 보았다.

넓은 욕실의 미니 수영장에서 바가지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헌터님. 바가지 여기 있네요.”

이호성이 힘 빠진 목소리로 말하자, 민성도 욕조 안을 내다보았다.

“어푸! 어푸!”

허우적거리며 수영을 하고 있는 바가지를 보며 민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 뭐 하냐, 거기서.”

민성이 묻자, 바가지가 수영장 난간을 붙잡고 머리를 들었다.

“앗! 주인님! 수영 연습 중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왜 하냐고.”

“만약에 마나가 소실되었는데 물에 빠지면 큰일이니까요!”

민성은 바가지를 빤히 지켜보다가 짧게 한숨 쉬었다.

“열심히 해라.”

민성이 그 말을 남기고 사라진 뒤, 이호성은 바가지를 보며 쿡쿡 웃었다.

“맥주병 주제에 아주 용을 쓰는구나.”

순간 바가지의 눈에서 검은 불길이 서서히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바가지는 주문을 중얼거렸고, 이내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이호성의 몸을 휘감았다.

검은 연기에 의해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 이호성이 천천히 바가지의 앞으로 끌려왔다.

바가지가 수영장 난간 위로 기어 올라와 이호성을 진해진 검은 안광으로 쏘아보았다.

“야, 야야. 왜 그래, 갑자기.”

이호성이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똥개. 같이 놀자.”

“뭔 개소리야! 얼른 안 내려?”

바가지가 칵칵 웃었다.

이호성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어? 어어? 야, 야야! 컥!”

풍덩!

검은 연기에 의해 이호성이 수영장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가지가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칵칵 웃다가 수영장 안으로 다이빙했다.

“사, 사람 살……! 꼬르륵!”

“칵칵칵!”

욕실 안에서 바가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이호성이 바가지에 의해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사이, 민성은 주방에서 냉장고를 열어 식재료를 살폈다.

센스 있게 냉장고 안에는 어떤 음식이든 만들 수 있도록 식재료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요리도 하다 보면 언젠간 늘겠지.

일단 한번 만들어 보자.

간단한 야식으로 어떤 걸 만들어 볼까?

비교적 쉬운 난이도로 해야 할 텐데.

턱을 괴며 고민하던 민성은 그게 좋겠다 싶었다.

우선 시작은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나가자.

민성은 냉장고 문을 닫았다.

오늘의 야식은 정해졌다.

생각해 보면 정말 정말 먹어 본 지 오래되었고, 왜 아직까지 안 먹었을까 싶었던 그것.

바로 ‘라면’이다.

물을 너무 많이 받으면 한강이 되어서 맛이 없어진다는 것 정도는 민성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냄비에 500밀리 정량을 넣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물이 거품을 내며 바글바글 끓었다.

민성은 스프를 뜯어 물에 풀고, 스프로 인해 빨갛게 불어난 물에 면을 투하시켰다.

바글바글 끓는 물이 면을 익히기 시작했다.

어쩐지 정겨운 기분이다.

어렸을 때 라면을 그렇게까지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만큼은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민성은 미소를 지으며 라면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매운 스프의 향이 수증기와 함께 올라와 콧속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적당히 익었다고 판단되었을 때쯤, 불을 끄고 곧바로 최고급 명품 접시에 라면을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을 들고 젓가락을 챙겨 주방 식탁에 앉았다.

이건 절대 맛이 없을 수가 없어.

기대감을 품고서 라면을 먹기 직전.

“날계란을 넣을 걸 그랬나?”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귀환 후 첫 라면인 만큼 순수한 라면의 맛 그대로를 즐기는 게 좋을 것이다.

민성은 훌륭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라면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룩!”

구불구불한 라면이 입안으로 조심스럽게 빨려 들어갔다.

역시 라면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아무리 요리를 못해도 라면은 맛있게 만들 수 있다.

그게 바로 라면의 위대한 점이다.

라면의 수증기가 얼굴에 닿는 느낌도 좋고, 뜨거운 면이 입술을 스치는 느낌도, 입안을 라면의 풍미로 가득 물들이는 감각 역시 훌륭하다.

좋다!

언젠가 추운 러시아 같은 곳에서 라면을 먹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름지기 야외에서 먹는 라면만큼 맛있는 건 없을 테지.

그땐 확실하게 계란까지 넣어서 먹어 보는 거다.

민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셨다.

“후루루룹!”

국물이 입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소리는 마치 현악기의 연주만큼이나 울림이 있었다.

깊고 진한 그 울림의 맛이 뜨겁게 목을 넘어간다.

“하아…….”

감탄의 숨이 흐르고, 그와 함께 몸의 열이 삭 오르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

그리고 야참으로 먹는 라면의 맛이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의 만족감을 채워 줬다.

전담 셰프 장웅이 라면을 만든다면 훨씬 맛있겠지?

과연 어떤 맛일까?

분명 자신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라면이지 않을까?

나중에 꼭 먹어 보자.

민성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가 면을 후루룩 먹고, 새빨간 김치를 한입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잘 익은 배추김치의 맛이 라면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정말 라면은, 버틸 수 없는 ‘마성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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