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21화>
* * *
하와이 호놀룰루에 위치한 최고급 리조트.
민성은 해변 앞 선베드에 누워 선글라스를 낀 채,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겼다.
지나가던 미녀들이 민성을 보며 서로 웃거나 얼굴을 붉히곤 했다.
민성의 잘생긴 얼굴도 그렇고, 완벽하게 균형 잡힌 근육질의 몸매는 해변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조차 여성들에게는 마음을 설레게하는 데 전혀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민성은 그런 여성들의 시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다른 쪽이었다.
“주인님-!”
바가지가 손에 제 머리만 한 코코넛을 들고서, 마법 보드를 타고 모래 위로 미끄러지듯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민성은 천천히 상체를 바로 세웠다.
몸을 일으키자 에잇 팩의 복근이 화를 내듯 꿈틀거린다.
그걸 보고 지나가던 미녀 한 명이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민성은 그런 여자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다가 바가지가 준 코코넛을 넘겨받았다.
“헤헤. 줄을 서느라 오래 걸렸어요.”
바가지가 칭찬 받으려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수고했다.”
민성이 짧게 말하며 코코넛 음료를 두 눈에 자세히 담았다.
그냥 코코넛에 뚜껑 따고 빨대를 꽂아 넣은 형태다.
코코넛의 맛은 어떨까?
민성은 빨대로 음료를 쭉 빨아 먹어 보았다.
코코넛 음료를 한 모금 먹은 민성은 눈살을 확 찌푸렸다.
“왜 그러세요?”
흙장난을 치던 바가지가 민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맛없어.”
민성이 들고 있던 코코넛을 뒤로 휙 던지곤 다시 선베드에 누웠다.
“오렌지 쥬스로 사 와.”
“네, 주인님!”
바가지가 마법 보드를 타고 또다시 음료를 사기 위해 멀어졌다.
햇빛을 받으며 바다의 풍광을 감상하길 잠시, 바가지가 오렌지 주스를 들고 돌아왔다.
얼음이 가득 담긴 커다란 유리컵 안에 든 오렌지 주스가 노란빛을 찬란하게 빛냈다.
민성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하늘과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보았다.
달달 새콤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즐기며 기분 좋은 휴양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문득 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놈’이 필요했다.
민성은 휴대폰을 들어 이호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호성이 전화를 받았다.
- 네, 헌터님.
“시킨 건?”
- 네.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빨리 마무리하고 여기로 와.”
- 어디신데요?
“호놀룰루 엑스 호텔 앞 해변.”
- 하, 하와이요!?
“내가 입금해 줄 테니까 돈 걱정 말고 워프 게이트 타고 바로 튀어 와.”
- 오! 알겠습니다. 금방 끝날 것 같으니까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워프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이호성은 들뜬 목소리였다.
민성은 전화를 끊었다.
다시 풍경을 보며 여유를 즐기려던 민성은 월드 헌터가 떠올랐다.
그에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 기사들을 읽어 보았다.
뉴스 기사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대부분은 월드 헌터에 관한 소식이었다.
마탑을 클리어하기 위해 떠났던 월드 헌터가 집결지로 다시 돌아왔다는 뉴스였다.
마탑에서 사망한 헌터의 숫자는 40명에 육박.
민성은 느끼지 못했지만 현재 전 세계는 연거푸 이어지는 월드 헌터의 사망 소식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가 극심한 때였다.
이렇게 휴양지에 사람이 많은 것도, 실은 그 두려움에 의해 살아 있을 때 조금이나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심리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민성이었기에, 그는 그저 월드 헌터를 향한 비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옆으로 던졌다.
바가지가 쌓고 있던 모래성 위로 휴대폰이 떨어져 내렸다.
모래성은 휴대폰에 의해 와르르 무너졌다.
바가지는 울 것 같은 눈길로 민성을 올려다보았지만, 민성은 그저 일광욕을 즐길 뿐이었다.
* * *
집결지의 분위기는 선명했다.
패잔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분위기였다.
호기롭게 패기를 갖고 9층 플로어에 도전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한 마리의 마인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3마리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벽에 부딪쳤다.
마인 1마리와 3마리의 차이는 천지차이였다.
중국, 혹은 강민성이라는 한국의 헌터가 나서지 않는다면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환단을 먹는 건 결국 의미 없는 깜짝 파티에 지나지 않았으며, 1조 원의 돈을 들여 마인의 검을 산 오세아니아 헌터장 역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헌터들은 자괴감과 허탈감에 빠져 여기저기서 넋이 나간 얼굴로 먼 곳을 볼 뿐이었다.
집결지의 천막 안, 헌터장들의 분위기 역시 습한 공기처럼이나 축축했다.
여느 때와 달리 회의는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회의장 안에 있는 헌터장들의 생각이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이 강민성을 독점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는 것.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 * *
워프 게이트는 기대와 달리 별것 없었다.
다만 분명히 강민성은 몇 번이나 워프 게이트를 경험해도 별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우우욱…… 난 왜 이렇게 멀미가 심한 거야.”
이호성은 워프 게이트에서 나와 배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바가지 옷 챙기랴, 헬기 구하랴, 헬기 주차장이 달린 건물 구하랴.
여러모로 너무 바빠서 제대로 먹은 것도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젠장, 마냥 편할 줄만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군.”
이호성은 차를 렌트하고 담배를 피우며 민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인의 탑이 있던 집결지에 꽤 오래 있었던 탓인지, 이렇듯 화창한 날씨를 보니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마탑은 여러모로 끔찍했지.”
이호성은 마탑을 떠올리다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근데 호놀룰루까지 난 왜 부른 거지?”
불현듯 뒤늦게 불안함이 솟구쳤다.
굳이 자신을 호놀룰루까지 부를 필요는 없잖아?
급한 거면 전화로 처리해도 됐을 텐데, 자신을 호놀룰루까지 불렀다는 건 분명 뭔가 거기서 시킬 일이 있다는 걸 테고.
“후우.”
이호성은 긴장된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그저 식당을 찾아보라는 별 볼 일 없는 명령이기를 기대했다.
* * *
“……예?”
이호성이 선베드에 누워 있는 민성을 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개 구해 오라고.”
분명 잘못 들은 거라고 이호성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바다 안에 들어가서 조개를 구해 오라니.
제정신인가?
‘그냥 사 드시면 되잖아요.’라는 말은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100%.
주변에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있든 관계없이 그가 자신을 때려죽일 듯이 팰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단순한 결과값이니까.
이호성은 뒤를 돌아 바다의 지평선을 보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펼쳐져 있는 바다.
저기 들어가서 조개를 구해 오라니……. 이럴려고 부른 거였냐…….
“하아…….”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입술 밖으로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혼자였다면 자연스럽게 한숨 뒤로 욕이 시원하게 붙었겠지만 속마음으로만 할 수밖에.
X발.
“안 가냐?”
“갑니다. 근데 수경이라도 있어야…… 제가 해녀도 아니고…….”
“바닷물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으면 수경을 찾아도 좋다.”
이호성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마치 생을 끝내러 가는 사람처럼 바닷속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 * *
탑 레이드는 전면적으로 중지됐다.
현재의 전력으로는 마탑을 클리어할 수 없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지유는 강민성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현실은 분명해진다.
인류를 위해, 미래를 위해 이 세상의 중심에 서야 될 자는 자신이 아니라 강민성이다.
결정을 내렸으면 굼뜨지 않아야 한다.
다른 헌터장들보다 한발 더 빨리 움직여야 돼.
지금은 눈치 싸움의 클라이맥스에 가깝다.
아직은 집결지에서 헌터장들 어느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분명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강민성을 직접 포섭할 생각들을 머릿속에 굴리고 있을 것이다.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건 자신뿐.
김지유는 그들이 회의를 하는 사이, 본부로 전화를 걸어 강민성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전해 들은 위치는 하와이 호놀룰루였다.
* * *
“하악! 하악……! 더 구해 올까요?”
이호성이 창백한 얼굴에 쫄딱 젖은 채로 물었다.
“이 정도면 됐어.”
민성은 이호성이 구해 온 조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조개가 모였다.
“근데 이걸 어떻게 드시려고요?”
“이렇게.”
민성의 눈에 일순 섬광과도 같은 빛이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기현상이 시작되었다.
이미 한번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걸 이런 식으로 사용하리라고는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손한 게 아닐까?
둥실.
이십여 개의 조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상태로 허공에서 순식간에 연기를 피우며 익기 시작했다.
……이기어검술로 조개를 굽다니.
이걸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이기어조개술?
모르겠다.
그냥 존X 혼란스럽다.
이호성은 마치 봐선 안 될 것을 본 것만 같은 얼굴로 허공에서 구워지고 있는 조개를 멍하니 보았다.
허공에서 조개 입이 열리고 있었다.
미친……!
민성은 순식간에 잘 구어진 조개 하나를 집어 쏙 빨아 먹었다.
뜨겁지도 않냐!
아아…… 왜 화가 나는 거지.
저런 엄청난 기술, 저렇게 쓰라고 있는 게 아닐 텐데.
마력 소모도 엄청난 거 아니냐고.
“헌터님. 그런 엄청난 능력을 조개 따위에게 쓰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이호성이 참다 참다 물었다.
“뭐 어때.”
민성이 조개껍질을 바닥에 툭 버리고 두 개째를 먹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감히 이기어검술로 구운 조개를 저도 먹어 봐도 될까요?”
“먹어.”
민성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이호성은 허공에 떠 있는 조개를 집으려다 흠칫 놀랐다.
“이거 잡으면 손가락 잘리는 거 아니에요? 오러가 감싸고 있을 텐데.”
“아, 그런가?”
민성이 몰랐다는 듯이 말했다.
이호성은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냥 안 먹겠습니다.”
이기어검술로 구운 조개구이가 어떤 맛일지 궁금했는데, 그 호기심 때문에 손가락이 날아갈 뻔했다.
이호성은 조개를 맛있게 먹고 있는 민성을 지켜보다가 탑에서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