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20화>
장웅이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민성은 코웃음을 흘렸다.
뭐, 어려울 것 있나.
한번 학습이 됐는데 못할 리가 없잖아.
민성은 처음과 달리 자신감을 갖고 계란말이 요리를 시작했다.
조금 전에 했던 것과 다를 것 없이 재료를 손질하고 간을 맞추어, 달궈진 팬에 계란말이를 만들어 갔다.
한데 분명 전과 다를 것 없는 방법으로 계란말이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은 참담했다.
민성은 힘 빠진 가느다란 눈으로 자신이 만든 계란말이를 내려다보았다.
스스로가 만들었다고 믿고 싶지 않은 계란말이였다.
이 정도면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민성은 스스로가 답답했다.
계란말이는 군데군데가 대형 산불이 진압된 현장과 같은 시커먼 모양새를 띠고 있었으며, 다소 멀쩡한 부위를 먹어 보자 코를 때리는 탄내와 지독히도 짠맛이 혀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민성의 두 눈에는 혐오감이 잔뜩 담겨 있었다.
“왜 이렇게 되는 거지?”
민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계란말이를 보며 말하자, 장웅은 소리 없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헌터님. 요리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면 제가 헌터님에게 주제넘은 말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말해 봐.”
장웅이 짧은 고민 끝에 시작했다.
“제가 느끼기에 헌터님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헌터라서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 뵈었을 때부터 결코 평범한 분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느꼈었죠.”
장웅이 엷은 미소로 민성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마 거기에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요리랑 관련이 있다고?”
“아마도 그런 것 같군요.”
민성은 짧게 웃었다.
“신기하군.”
“헌터님은 아무래도…… 마음이 딱딱하게 굳은 것이겠죠, 메마른 땅처럼 갈라지고 또 갈라져 그 마음이 너무나 척박한 땅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
민성은 대답 없이 먼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요리를 함에 있어 기본은 두 가지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 혹은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데 있어 애정을 기울이는 것이며, 두 번째는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를 다루듯 섬세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민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장웅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식사에 대한 소중함을 잃지 않는 마음.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헌터님은 충분히 요리를 잘할 수 있게 되실 겁니다.”
민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장웅은 민성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저는 분명,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합니다.”
민성은 굳은 얼굴로 어금니를 무겁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 요리의 결과가 내 마음이란 뜻이군.”
민성이 엉망진창을 넘어서 징그러울 정도로 타 버린 계란말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장웅은 하하 웃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헌터님은 세상을 구하고 있는 영웅이며, 그에 대한 무게를 견디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누가 영웅이지? 그리고 그딴 무게…… 느끼고 있지도 않다.”
민성은 공허한 시선을 남기고서 주방을 훅 떠났다.
장웅은 거실로 나가고 있는 민성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월드 헌터들이 환단을 복용하면서 물리적 성장통을 겪고 있는 사이, 미국 헌터들도 집결지로 돌아왔다.
미국 헌터들이 집결지로 오자 어색한 공기가 떠다녔다.
사이좋은 동맹 관계에서, 서로를 완벽하게 견제하는 무형의 벽이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지금의 이 벽이 반드시 깨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초조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단지 삼천교에 대한 짜증이 거슬릴 뿐이었다.
에단은 사방을 훑었다.
환단으로 인해 축제 분위기인 다른 헌터들과 달리 김지유, 그리고 한국의 헌터들만이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설마 환단을 먹지 않은 건가……?
에단은 잠시 의심했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가장 약한 나라인 주제에 환단을 먹지 않았을 리…… 가 없는데, 어째서 한국의 헌터들은 저리도 부러워하는 눈으로 타국의 헌터들을 본단 말인가?
에단은 확인을 해 보기 위해 김지유 앞으로 걸어갔다.
“다들 파티 분위기인데, 어쩐지 당신들은 즐거워 보이지가 않는군.”
에단이 말했다.
“신뢰할 수 없는 약품에 모험을 걸 수는 없죠. 몬스터로부터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헌터라면.”
“정말 안 먹은 것이오? 놀랍군. 가장 먼저 환단 앞으로 달려갈 줄 알았는데.”
그에 김지유는 에단을 무시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에단은 한국의 헌터들을 훑어보았다.
하나같이 환단을 먹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게 표정에서 다 드러나고 있었다.
“부하들은 당신 생각과는 다른 것 같은데.”
에단이 비꼬는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김지유는 반응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군주로 의해, 가뜩이나 힘없는 나라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 같군.”
“저 역시 한국의 헌터 한 명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그건 월드 헌터인 당신들 모두 마찬가지 아닌가요?”
끄응.
저 무능한 한국의 머저리가 강민성을 믿고 떠드니 마땅히 대응할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강민성은 한국의 헌터라는 것을.
하지만…….
“그 올곧은 마음, 변치 않기를 바라오.”
에단은 돌아서면서 길게 웃음 지었다.
강민성.
그는 별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분명 한국에서 능력에 비해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을 터.
그 말인즉슨 엄청난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크큭!
멍청한 계집 같으니.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강민성이라는 남자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는 충분히 회유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조 단위의 돈을 척척 받아 가는 걸 보면 분명 녀석은 돈에 욕심이 있다.
‘어쩌면, 그를 최강의 헌터 무기로 기용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적으로 삼을 수 없다면, 아군으로 삼아 버리면 그만이다.
반드시 김지유, 당신에게서 강민성이라는 별을 빼앗아 주지.
에단의 눈이 서슬 퍼렇게 번쩍였다.
* * *
차 안에서 시트를 젖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호성은 마인의 탑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특성 마인을 만나 죽는 게 아닌가 싶어 무서웠는데, 월드 헌터들 덕분에 시간은 벌었다.
그나저나 자신의 주군 강민성은 1조 원으로 뭘 할까?
이호성은 자신에게 1조 원이 있으면 뭘 하고 싶을지 상상해 보았다.
“푸히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났다가 1조 원이라는 거금이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입이 헤 벌어졌다.
“정말 난 놈이다, 난 놈이야. 월드 헌터한테 검 한 자루를 1조 원에 팔아먹다니. 크, 역사적 클래스로구만. 근데 그 돈은 대체 어떻게 써야 다 쓸 수 있는 거지?”
몇 번이나 떠올려 봐도 혀가 내둘러지는 강민성의 수준에 감탄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자신의 주군 강민성이었다.
“이 인간도 하여튼 양반은 못 돼. 흠흠.”
이호성은 목을 가다듬은 뒤,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헌터님. 이호성 전화 받았습니다?”
- 당분간 해외에서 좀 쉴 생각이다. 쓸데없는 걸로 연락하지 말고.
“아…… 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 있어도 되나요?”
- 바가지 옷 다 완성되면 집에 잘 챙겨 두고, 헬기 한 대랑 헬기 착륙장이 있는 집을 알아봐. 그리고 헬기 운전사도 고용하고, 워프 게이트 건물에서 언제나 헬기를 쓸 수 있도록 헬기 전용 착륙장 만들라고 건의해 봐.
뚜우, 뚜우, 뚜우.
“헉…… 헬기랑 헬기 주차장? 와, 대박이네…… 좋겠다.”
잠시 넋이 나가 있던 이호성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아니, 근데 이 새X는 왜 맨날 지 할 말만 하고 끊어? 그리고 내가 네 노예냐? 집사야?”
구시렁거리던 이호성은 일순 ‘하긴,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고 이내 수긍해 버리고선 입에 담배를 물고 차에서 내렸다.
그래도 집결지 쪽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장소라 그런지 하늘이 좋다.
당분간 강민성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와…… 헬기. 역시 스케일이 틀리구나. 아니. 근데 대체 몇 개를 한 번에 시키는 거야. 그리고 뭐? 별일 아니면 연락을 하지 말라고? 내가 연락을 하고 싶겠냐?”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쉬던 이호성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사는 알아서 찾아 먹는다는 얘기인가?”
잠깐 고민하던 끝에 혹시 강민성이 지X할지 모르니 미리 해외 맛집에 대한 정보를 다시 정리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갔는지 알 수도 없고, 그런 거 묻자고 전화할 수도 없고…… 뭘 알아야 맛집 리스트를 정리할 거 아니야. 하여튼 손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니까. 징그럽다, 징그러워.”
이호성은 담배 꽁초를 집어 던지며 넌덜머리를 내면서 공항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나도 워프 게이트 타고 싶다. 대체 몇 시간을 비행기 타고 날아가야 하는 거냐…… 워프 게이트는 1분이면 훅 하고 가는데.”
이호성은 부러운 심정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액셀을 밟았다.
* * *
에단은 타국 월드 헌터와의 관계를 회복시켰다.
애초에 마인의 탑은 공공의 목표였기 때문에, 타국의 월드 헌터들로서도 미국과 굳이 나쁜 사이를 유지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천막 안에서 다시 새로운 회의가 시작됐다.
강민성 없이, 9층 레이드에 도전하는 것.
회의는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길지 않았다.
삼천교의 환단 덕분에 전체 헌터의 전투력 전체가 증강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환단을 먹은 미국의 힘에 의해 마인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9층 플로어를 클리어하는 것이 허황된 꿈만은 아니라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회의가 일찍 끝난 이유였다.
“그럼 내일 오전. 탑으로의 출정을 확정 짓는 걸로 하겠소.”
에단의 말에 헌터장들이 모두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끄덕였다.
* * *
이튿날 오전.
정비를 마친 공격대가 출정을 시작했다.
대인원이 보트를 타고 마인의 탑으로 향했다.
경험이 있기에 그들은 거침없이 일정 지역을 넘어서면서 보트를 버리고 헤엄을 쳤다.
이내 탑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탑 1층 플로어에 진입했다.
바닷물의 물기를 털어 내는 월드 헌터들의 눈에서는 의욕이 불타올랐다.
어서 몬스터가 나타났으면 하는 의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