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19화>
“왜 우리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겁니까?”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미국 헌터의 부흥만을 생각한 것이오?”
“상생의 길을 버리고 미국의 성장만이 먼저라니, 실망입니다.”
“우리를 단순히 이용할 생각밖에 없던 것이겠지!”
쏟아지는 불만 속에서, 에단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탑 안에서, 월드 헌터 세력 간의 내부 충돌은 결코 좋지 않았다.
“삼천교의 뜻에 의해 저는 운명을 건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또한…….”
설득을 하려 했지만 이미 타국의 헌터장들은 흥분할 대로 흥분해 있었다.
그들은 에단의 변명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더 이상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고, 서둘러 인원 전원을 이끌고 탑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환단을 복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삼천교와의 관계가 미국하고만 두터워지는 걸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에단은 멀어지는 타국의 헌터장과 헌터들을 보며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삼천교, 이 개자식들…….”
에단은 상기된 얼굴로 어금니를 바드득 갈았다.
미국만 특별히 밀어줄 것처럼 하더니, 결국은 모두에게 환단을 나눠 줄 생각이었어.
에단은 심각해진 얼굴을 천천히 들었다.
왜 처음부터 모두에게 환단을 나누어 주지 않고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진행한 것이지?
직접 손대지 않고 코를 풀기 위해, 월드 헌터를 이용해 마인의 탑을 처리할 거라는 생각.
그게 중국의 뻔한 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굳이 이렇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월드 헌터를 지원했다면 훨씬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을 뒤틀었다는 것은 분명 의심해 볼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에단 자신이 그들의 환단을 받아들인 이유는, 중국이 환단을 나누어 준 게 강자의 아량이자 자신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불안감이 에단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 * *
대부분의 헌터들이 일제히 탑에서 내려와 집결지로 돌아왔다.
김지유는 현재 미국 헌터를 제외한 월드 헌터가 환단을 먹기 위해 배식 받듯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환단을 받아먹고 있는 월드 헌터들은 무력해 보였다.
대체 어째서 의문을 품지 않고 곧이곧대로 저 환단을 복용하는 걸까?
혹시 모를 부작용이라든가 해로움 같은 것은 왜 고려하지 않는 거지?
그들은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미국의 환단 복용으로 군중 심리가 발동되었으며, 삼천교라는 이름의 무게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의심은 해야 했다.
시간을 두고 정밀한 검사가 이루어진 다음에, 약을 복용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의심을 버리고 환단을 복용하고 있는 헌터들의 모습을 보면서 김지유는 현 헌터계의 위기를 실감했다.
그들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단을 복용하는 건 그만큼 촉박하기 때문이다.
헌터라는 세계의 균형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래.
김지유가 보기에 그것은 ‘몸부림’에 가까웠다.
희망을 잃은 헌터들의 몸부림인 것이다.
하지만 김지유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확고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도, 아무리 쉬운 길로 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도, 도박이라 할 수 있는 저 무책임한 행위는 납득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삼천교에서 대량 생산해 낸 저 환단이, 부작용이 없는 헌터의 전력을 증강시켜는 대단한 연구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하나 그것은 가정에 지나지 않는 것.
월드 헌터들은 마치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들이 근력 강화제, 집중력 강화제를 복용하는 것처럼 약물에 눈이 먼 듯 보였다.
김지유는 좌절감에 물든 눈으로 그저 이 믿고 싶지 않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 * *
“헌터님, 어디로 가실 생각이세요? 식사하실 거죠?”
워프 게이트 건물로 향하는 길.
이호성이 운전을 하면서 물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자 이호성은 백미러로 민성을 흘긋 보았다.
그는 창밖을 보고 있는 채로 대답이 없었다.
“헌터님?”
“근데 말이야.”
민성이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난 왜 요리를 못하는 거지?”
“…….”
진지하면서도 엉뚱한 질문이었다.
창밖을 보면서 툭 하고 던진 말이지만, 민성의 말에는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게 약간의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은 왜 하신 거예요?”
“마인이라는 것들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 않아. 집요하고, 악하며, 강하기까지 하지.”
“그런데 그게 헌터님 식사하시는 거랑 무슨 상관이신지……?”
“만약 상위 마인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아, 도시가 쑥대밭이 되겠군요.”
“범위는 도시가 아니야. 무대는 전 세계지.”
“아…… 그 정도였습니까?”
“만에 하나 그렇게 돼서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죽는다면. 내가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아, 그래서…….”
“근데 내가 요리를 못하잖아.”
“네. 심각할 정…… 흠흠.”
이호성은 말을 하다가 맞을까 봐 말끝을 흐리고 화제를 돌렸다.
“우리 헌터님은 검술도 잘하시고, 사실 몸으로 하는 건 못하시는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긴 한데. 그러고 보니 좀 신기하긴 하네요.”
그가 예전에 민성과 함께 요리 학원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고선 사시나무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집으로 가자.”
민성이 말했다.
“장웅에게 식사를 준비하라고 일러둘까요?”
“아니.”
“외식하십니까?”
민성은 잠깐의 침묵을 지켰다가 입을 열었다.
“다시 만들어 봐야지.”
민성의 말에 이호성은 화들짝 놀랐다.
만약 장웅이 민성이 만든 음식을 먹기라도 한다면…….
그건 상상만으로도 꽤 참혹했다.
“으음…… 헌터님. 그 혹시…… 요리를 다시 만드신다는 얘기시죠? 만드시면 혼자 드세요. 그거 진짜 위험하거든요. 장웅 할아버지. 은근히 나이도 많으신데 헌터님이 만든 거 드셨다간 진짜 요절하는 수가…….”
민성이 이호성을 노려보았다.
이호성은 헛기침을 하면서 워프 게이트 건물을 향해 액셀을 더 세게 밟았다.
* * *
민성이 워프 게이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호성은 90도로 숙였던 허리를 천천히 세우며 가늘어진 눈으로 민성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1조가량의 정제된 블랙 미스릴을 받아 들고 한다는 게 요리 고민이냐…….
이 와중에?
저쪽에서는 무슨 난리가 났을지 모르는데?
이호성은 입에 담배 한 가치를 물고 한숨을 푸우 내쉬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이호성이 박수를 쩍쩍 쳤다.
* * *
집으로 돌아오자 민성의 전담 셰프 장웅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슬리퍼를 신고 거실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런데 호성 군은……?”
장웅이 민성의 뒤를 살폈지만 더 이상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는 없었다.
“나는 워프 게이트를 탔고, 그 녀석은 거기서 대기 중.”
“아, 그러시군요.”
장웅이 이해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미리 전화를 주지 않으셔서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성은 허리에 양손바닥을 얹고서 짧게 한숨 쉬었다.
“이번엔 내가 만들어 보려고. 저번에 실패해서 별로 기대하고 있진 않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고 답답해서. 밥도 제대로 못 해 먹는다는 게 웃기잖아? 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방법을 다 가르쳐 주는데.”
장웅이 민성을 보며 웃음 지었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바로 시작하자고.”
민성이 소매를 걷고, 주방으로 이동했다.
* * *
고민 끝에 메뉴가 결정됐다.
요리 학원에서의 실패 이후로는 처음으로 하게 되는 요리다.
메뉴는 비교적 쉬운 난이도를 가진 계란말이.
장웅은 레전드 셰프였고, 그런 만큼 계란을 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냉장고에 계란은 충분한 양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실패를 한다고 해도 다시 만들 수 있을 만큼.
“좋아. 계란말이 요리 순서는?”
민성이 집중하는 눈으로 장웅을 보며 물었다.
“우선 파, 당근, 양파를 잘게 썰어 보시죠.”
민성은 미리 세팅되어 있는 도마와 놓여 있는 재료 앞으로 가서 칼을 잡았다.
휘리리릭! 파라락!
민성의 손끝에서 요리용 칼이 현란하고 화려하게 회전하며 파와 당근, 그리고 양파를 잘게 썰기 시작했다.
장웅은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며 입을 벌렸다.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장웅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것이 바로 지존의 칼놀림…….
눈 깜짝할 사이에 재료 손질을 끝마친 민성이 장웅을 보며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이제 계란을 풀어 보도록 하죠.”
장웅의 말대로 민성은 계란을 깨트려 풀기 시작했다.
계란은 총 다섯 개.
민성은 거품기로 계란을 휘저었다.
엄청난 속도였지만, 민성의 거품기 사용은 놀랍게도 방울 하나 튀지 않을 만큼 정교했다.
역시 완벽한 솜씨다.
“대단하십니다. 일류 셰프의 재능을 타고나셨습니다. 요리의 수준이란 본디 속도와 정교함에서 승부가 나기 때문이죠.”
장웅이 칭찬을 했지만 그럼에도 민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당시 요리 학원에서도 그랬듯 손질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월등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맛이 없는 수준을 넘어서서 독극물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제 잘게 썬 파, 양파, 당근을 계란에 넣고, 후추 조금과 가는 소금을 조금 넣어 섞어 주시면 됩니다.”
민성은 장웅이 시키는 대로 후추와 소금을 썼다.
“헌터님. 양이 너무 많습니다.”
민성은 한 움큼 쥔 소금을 보다가 장웅의 말대로 양을 줄였지만, 장웅은 계속해서 그 양을 줄이라고 말했다.
결국 민성이 느끼기에 거의 집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정도가 돼서야 장웅의 승인이 떨어졌다.
민성은 소금을 투하시키고, 후추도 아주 조금만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장웅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품기로 소금과 후추, 그리고 양파, 파, 당근이 잘 섞이도록 섞은 후, 프라이팬을 달구었다.
달구어진 팬 위로 식용유를 투하.
장웅의 말대로 중약불에서 계란물 1/2를 팬에 부었다.
치이이이이이익!
계란물이 급속도로 익기 시작했다.
“팬을 들어서 한쪽 면이 먼저 익도록 한 다음, 돌돌 말아 주시면 됩니다.”
장웅은 민성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덕분에 민성은 손쉽게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설명을 들은 대로 한쪽 면부터 익히면서 계란을 돌돌 말았다.
그걸로 끝.
간단한 계란말이의 결과였다.
다 구운 계란말이를 그릇 위로 올리자, 아주 조금 탄 자국이 있긴 했지만 요리 학원에서의 결과물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음식이 보였다.
민성이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한 점 먹어 보았다.
훌륭한 계란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뭐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장웅이 그릇을 다른 쪽으로 치웠다.
“이제 제 설명 없이 혼자서 한번 만들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