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17화>
이제부터는 일반적인 탑의 몬스터가 아니라, 마인이 나타난다.
일전에 마인에게 참담한 결과를 맞이한 적이 있는 헌터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9층의 탑은 지금까지의 플로어와 다를 것 없이 유사한 분위기였으나, 체감적으로 느끼는 헌터들의 감각은 완전히 달랐다.
차가운 공기가 맴돌고 있음에도 땀이 솟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미국 헌터들은 타국의 헌터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삼천교에서 준 환단을 먹고 강해졌다는 것은 몸으로 확인했으며, 탑 안의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확신을 얻었다.
그 강해진 힘이 마인에게 통하는지 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바람대로 마인이 나타났다.
인간과 유사한 얼굴형과 몸체를 가졌으며 온몸은 시커먼 잿빛이고 눈은 피를 머금은 듯 붉다.
월드 헌터들이 마인을 발견하고 일제히 자신의 버프 능력을 가동시켰다.
사방에서 색색의 버프 형태를 표시하는 오러의 빛이 터져 나왔다.
선제공격에 당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이 최선두로 마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에단이 직접적으로 먼저 나서게 되면서, 월드 헌터들도 자신감을 갖고 마인을 향해 돌격했다.
에단을 비롯한 월드 헌터의 총공격이 마인 한 마리를 향해 쏟아부어졌다.
그사이 민성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왜 한 마리밖에 없지?
자신이 8층 플로어를 쓸어버릴 때만 해도, 마인은 무더기로 흘러나왔다.
양상이 달라진 것 같은 9층의 분위기에 수상함을 느낀 건 오직 민성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그 의문의 해결책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민성은 월드 헌터와 한 마리의 마인이 전투 중인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전에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며 후퇴했었던 월드 헌터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에단을 필두로 미국 헌터들이 마인의 대미지를 받아 주면서, 외려 조금씩이나마 딜을 넣고 있는 게 보였다.
미국 헌터들의 급격한 성장에 대해 민성도 의문을 품었지만, 이내 신경을 끄고 템 창에서 삼각 김밥 하나를 꺼냈다.
* * *
삼각 김밥은 비닐을 벗기는 방식이 특이하다.
우선 중앙 부분에 위치한 가운데 절취선을 당겨서 뜯어낸다.
그다음 양쪽의 비닐을 서로 벗겨 내고 나면, 귀여운 삼각 김밥의 알몸이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민성은 고운 빛깔을 가진 삼각 김밥을 한입 깨물어 먹어 보았다.
바삭!
김이 바삭 소리를 내면서 부서지고, 밥알과 그 안의 주재료의 맛이 느껴졌다.
이 삼각 김밥은 참치 마요 맛.
어?
김밥이라고 해 봐야, 그저 식어 빠진 김밥 맛일 거라고 생각해 별 기대가 없었는데, 그 예상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특별한 맛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마요네즈 소스의 맛이 기가 막히다.
참치는 부드럽게 씹히고 적절하게 달다.
적절한 짠맛과 적절한 단맛의 조화는 한입 먹자마자 감탄을 자아냈다.
두 번째 먹어 보자,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 밥에다가 마요네즈를 마구마구 뿌려서 참치 캔 하나를 쏟아부은 다음, 숟가락으로 팍팍 섞어서 그대로 먹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자신의 요리 실력을 떠올려 보면 그냥 사 먹는 게 나을 듯했다.
민성은 깔끔하게 삼각 김밥 하나를 위장 속으로 넣은 후,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 * *
삼각 김밥을 먹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벌써 부상자들이 상당수 속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상자가 나오는 만큼 마인 역시도 대미지를 입어 가고 있었다.
놀라운 결과였다.
비록 마인 한 마리라고는 해도 전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고,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건 사실상 미국 헌터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공격력과 속도, 그리고 방어 능력까지.
현재의 미국 헌터들은 타국 헌터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마인에게 직접적으로 대미지로 타격을 주고 있는 건 오로지 미국 헌터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이호성과 바가지는 호시탐탐 막타 먹는 것만을 기다렸다.
굳이 민성이 나서지 않아도, 막타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바가지는 마인을 언데드로 부릴 수 있다는 것에 눈에서 검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 *
대미지가 중첩되면서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마인이 결국 빈틈을 보였을 때, 이호성과 바가지가 서로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이호성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휘둘렀고, 바가지는 미리 외워 둔 주문을 영창함으로써 흑마법을 마인에게 쏟아부었다.
검은 안개가 마인을 휘감고, 검은 안개에서 칼날과도 같은 검기가 소용돌이쳤다.
그 파장에 월드 헌터들은 공격을 멈추었다.
이호성은 검을 찌르려 했지만 도저히 틈이 나오지 않았다.
검을 찌르려면 바가지가 만들어 낸 공격 마법 범위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위험했다.
이호성이 치사하다는 눈빛으로 바가지를 노려볼 때, 바가지가 막판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파멸의 저주.
심연의 어둠이 마인의 피부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암흑 피해가 중첩되면서 마인의 검은 피부에서 용암과도 같은 물질 덩어리가 피처럼 뚝뚝 흘러내렸다.
“끼아아아아아아악!”
마인이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를 내며 죽어 갔다.
그리고 이내.
마인이 죽기 직전, 바가지의 머리 위로 황금빛의 느낌표가 번쩍! 하고 나타났다.
이대로 죽여 버리면 마인을 언데드로 부릴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바가지는 마인이 죽기 직전에 부활 스킬을 준비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바가지의 부활 스킬이 마인에게로 스며들었다.
마인의 폭발한 신체가 아이템을 뿌리며 액체처럼 변해 바닥에 쭉 퍼졌다가, 다시 서서히 재생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미국을 포함한 월드 헌터들이 경악한 눈으로 부활을 거쳐 재생되고 있는 마인을 보았다.
거의 90퍼센트 복원한 마인의 발아래에 커다란 마법진이 쿵! 하고 나타났다.
마법진에서 강렬한 빛이 솟구쳐 올라 재생된 마인의 몸을 휘감았다.
진한 검은 연기가 마인을 완전히 에워쌓다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훅 퍼져 나갔다.
월드 헌터들이 깜짝 놀라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을 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마인을 보고 바가지가 칵칵 웃으며 제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마리의 마인을 언데드로 부릴 수 있게 된 바가지였다.
* * *
바가지는 쉴 새 없이 커다란 가분수의 머리를 뒤로 젖히며 칵칵 웃었다.
“어이구, 그렇게 좋냐?”
이호성이 바가지를 째려보며 물었다.
바가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또다시 칵칵 웃기만 했다.
“빌어먹을. 아주 지 혼자 다 해 먹는구만.”
그가 신경질 난 얼굴로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부러움에 얼굴을 잔뜩 구겼던 이호성은 월드 헌터들의 시선을 느끼고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부러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어마어마한 눈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호성은 턱을 북북 긁으며 모른 척 그들의 시선을 회피했다.
* * *
“끝까지 막타고 아이템이고 저희들끼리 다 해 먹다니…….”
“일은 우리가 다 하고, 젠장!”
“미국 덕분에 굳이 저 자식들 없어도 할 만할 것 같은데…….”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X발…….”
“양아치 자식들. 끝까지…….”
불만이 거칠게 쏟아져 나왔다.
가장 큰 공적을 차지해야 할 건 자신들인데, 일방적으로 모든 공로를 빼앗겨야만 하니 울분이 터질 수밖에.
특히나 미국 헌터들의 배 아픈 심정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 분노는, 굳이 강민성이 없어도 탑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와 자신감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헌터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듯 올랐다.
* * *
에단이 민성의 앞으로 찾아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건이 너무 박하오.”
에단의 말을 듣자마자 민성은 헛웃음을 잇새로 흘렸다.
“왜? 마인 한 마리 잡아 보니까 이제 슬슬 욕심이 생기나?”
에단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당당한 눈빛으로 민성을 쏘아볼 뿐이었다.
민성은 그런 에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희들끼리 해 봐, 그럼. 거래는 이걸로 끝. 계약 파기. 됐나?”
“……뒤끝은 없는 거요?”
“물론이다.”
민성이 미소를 남기고 몸을 돌려 9층 플로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 * *
이호성은 민성과 함께 탑을 내려가면서도 그의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놓고 계약을 파기하자고 나오는데, 그걸 쿨하게 받아 주다니.
뭐지?
애초에 월드 헌터니 뭐니 같이 레이드할 생각 따위는 없었던 건가?
하긴, 생각해 보면 호랑이나 늑대보다도 흉악한 인간이 순한 양처럼 월드 헌터랑 섞이는 것 자체가 이상하긴 했다.
처음부터 이럴 거면 탑은 왜 온 거야?
단순히 ‘마인의 검’을 1조에 팔자고 그런 건 아닐 테고.
이호성은 물어볼까 하다가, 그 질문은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일단은 안전하게 탑을 나가는 게 우선이니까.
“으으음…….”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걸 보고 이호성은 고개를 돌렸다.
바가지가 민성의 주머니에서 머리만 밖으로 내민 채, 월드 헌터들이 있는 쪽을 미련이 가득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인을 더 언데드로 만들고 싶은 표정처럼 보였다.
이호성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이대로 그냥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우리의 힘으로 마인을 하나 잡았다고는 하나, 플로어의 난이도는 점점 더 어려워질 텐데…….”
“아무리 더럽고 치사한 조건이지만, 지금이라도 가서 그를 설득해 다시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요?”
“에단. 당신이 가기 힘들다면 우리들이 직접 가서 그를 데려오지요.”
“사소한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는 건 안 될 일입니다.”
불만을 쏟아 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사방에서 빗발치는 불안 섞인 웅성거림에, 에단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마인의 탑에서 현재 클리어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건 오직 미국 헌터들뿐이었다.
환단을 먹었기에 마인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나머지 타국의 헌터들은 사실상 머릿수만 채우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런 것들이 천지도 모르고 나불거리고 있으니 에단으로서는 속에서 뜨거운 울화통이 치밀었다.
처음에 강민성에게 숙이고 나온 건 마인과의 싸움에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인이 클리어 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생각은 다소 달라졌다.
이대로 강민성에게 끌려다니는 것보다는, 차후에 강민성을 설득하더라도 당장은 마인을 처치하고 아이템을 챙기면서 경험치를 먹는 게 우선이었다.
게다가 이대로 강민성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다면, 훗날 강민성에 의해 월드 헌터 전체가 고립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터.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라는 욕망이라는 괴물만큼 성장력이 빠른 것은 없다.
‘강민성의 욕망’이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를 어느 정도는 막아설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