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16화>
* * *
2천억이라는 큰돈을 힘 한번 들이지 않고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은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다 끝난 건가?”
민성의 물음에 이호성이 살짝 가까이 붙었다.
“아직 템이 하나 남았습니다. 전에 헌터님이 마인을 죽이고 획득했었던 템인데요. 이건 완전히 수준이 다른 물건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이며 타국이며 모두 저들끼리 합의를 보고 경매 기준가로만 구입을 했어요. 하지만 이 아이템을 경매가로 출시하면…….”
“이호성.”
“네……?”
“1조에 팔아.”
꿀꺽.
이호성은 소리가 크게 날 정도로 침을 삼켰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니다.
분명히 들었다.
강민성은 말했다.
1조에 팔라고.
진짜 미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가 막힌 액수다.
아이템 한 개에 1조라니.
이호성 자신으로서는 몇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감히 구매할 수 있을까 싶은 금액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더듬거리며 대답한 후, 굽혔던 다리를 세워 그들에게 돌아갔다.
“……남은 아이템은 하나. 이 아이템의 경매 시작가는 1조입니다.”
에단이 검을 집어 던졌다.
“히익!”
이호성이 식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에단이 던진 검은 이호성의 발 바로 한 치 앞에 박혀 들어갔다.
이호성이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떴다.
“지, 진정하세요. 일단 얘기를 들어 보시라고요.”
“정도라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기껏 경매에 참여해 줬더니, 이제는 뭐? 아이템을 1조에 팔아? 에라이!”
“이런 xxx xxxxx xxxx!”
“xxxx! xxx!”
“xxxxxxxxxx!”
사방에서 패드립을 포함한 욕이 소나기처럼 난무했다.
아오, 이 월드 헌터들이 진짜.
“진정들 좀 하세요. 지금 팔려는 아이템은 이전에 팔았던 아이템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거니까. 그리고 저한테 욕 좀 하지 마세요. 저도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니까요?”
‘차원이 다른 아이템’이라는 말에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던 헌터장들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피가 잔뜩 거꾸로 치솟아 있는 얼굴들이었다.
“흠흠…….”
이호성은 한차례 헛기침을 하고 아이템을 소개했다.
“이번에 소개할 아이템은…….”
이호성이 마인의 검을 템 창에서 꺼내 들었다.
무기를 들자마자, 강렬한 기의 파동이 검에서부터 쏟아져 나와 이호성의 몸을 휘감았다.
‘마인의 검’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성난 어둠의 힘을 사방으로 표출해 냈다.
그것을 보고 월드 헌터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이호성은 검의 능력이 몸에 고스란히 전해져 옴에 놀랐다가, 뒤늦게 미련을 털어 내고 마인의 검이 가진 스펙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 스펙의 능력치를 듣는 순간, 예상했던 대로 월드 헌터들은 눈이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모두의 눈에 욕심이 꽉꽉 들어찼다.
마인의 검은 충분히 그럴 만한 스펙을 가진 녀석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일 듯이 욕을 해 대던 헌터들은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아이템은 경매가가 아닙니다. 가격은 1조. 물론 사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경매로 넘어가게 되겠지만,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봐서는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이호성이 빙긋 웃었다.
“누가 살 겁니까?”
미국 쪽에서도 아무리 환단을 먹고 강해졌다고는 하나, 헌터에게 있어 최고의 검은 지독한 소유욕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내가 사겠소.”
에단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아메리카 대표 헌터장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에단. 당신의 아이템 최우선권은 9층 입성 이후부터였잖소. 이 물건은 우리에게 양보를 해 주시오.”
에단이 아차 싶은 얼굴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의 말대로, 차후 아이템의 선구매 권한은 9층에서부터 효력이 생기는 걸로 구두 계약이 되어 있었다.
지금의 층수는 8층.
미국이 아닌 타국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게 맞았다.
괜한 욕심을 부려 신뢰를 잃는 일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에단은 아쉬움을 삼키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호오, 이것 봐라?
이호성은 속으로 박수를 짝짝 쳤다.
이렇게 되면?
“이 마인의 검을 사고 싶은 건 비단 남아메리카 헌터장님뿐만이 아닐 것 같은데요?”
이호성이 불을 지폈다.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각 헌터장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도 저 물건에 관심이 있소!”
“우리도!”
“우리 쪽도 마찬가지요!”
각 헌터장들이 지지 않겠다는 듯 나섰다.
그들에겐 8층에서 마인의 검을 사는 것이 유일한 우선 구매 권한이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마인의 검을 사겠다는 헌터장들이 속출했다.
이호성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슬쩍 올라갔다.
미적지근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1조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마인의 검 앞에서 흥분해 있었다.
이호성은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서로 사겠다고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니, 저들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호성은 민성을 보았다.
그는 월드 헌터가 시끄러워지고 있는 마당에도 여전히 벽에 등을 댄 채로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이호성은 그런 민성을 보며 피식 웃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월드 헌터들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강민성은 절대 사람으로 안 보인다.
저거 분명 괴물일 거야.
이호성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옥신각신 떠들고 있는 헌터들을 응시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흥분한 월드 헌터들의 모습에 이호성은 소리 나지 않게 킥 하고 작게 웃었다.
* * *
끼이이이이익.
새하얀 차량이 집결지 중심에 와서 멈춰 서고, 운전석에서 로브의 사내가 내렸다.
집결지는 텅 비어 있었다.
모두 탑 안으로 사라진 후라, 집결지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만큼 한산했다.
로브의 사내는 잠깐 주변을 훑어본 후, 차량 뒷문을 열었다.
그러자 쌓여 있는 박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박스를 오픈하여 안에 들어 있는 환단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러곤 시선을 돌려 마인의 탑을 응시했다.
후드 안에서 로브 사내의 한쪽 눈빛이 마치 탑의 뇌전처럼 새하얗게 번쩍였다.
* * *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월드 헌터들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누가 이 ‘마인의 검’을 1조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먹을 것인지 결정이 난 것이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이 허우적거리는 꼴이 재밌어서 이호성은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마인의 검’은 내가 살 것이다.”
마인의 검을 사겠다고 말한 헌터장은 꽤 의외의 인물이었다.
강한 헌터들이 많은 남아메리카의 헌터장이 마인의 검을 먹는 데 유력한 후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과 달리 마인의 검을 구매할 기회를 가지게 된 이는 오세아니아를 대표하는 헌터장이었다.
그리고 이호성은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어차피 1조 원이라는 돈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헌터장이라면 누구나 지불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때문에 공평한 결정이어야 했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토록이나 훌륭한 무기를 구할 수 있는 건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공정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당하게 추첨을 선택한 듯했다.
헌터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는 자들이 추첨을 한다고 상상해 보면 이게 꽤 웃기다.
모여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결국 그런 거였군.
이호성은 웃음을 지으며 오세아니아 헌터장과 거래를 시작했다.
1조 원에 달하는 정제된 블랙 미스릴을 받고, 이로써 모든 거래가 끝이 났다.
* * *
이로써 아이템 정리는 끝.
이제 약속대로 9층으로 출발해야 할 때다.
민성의 손짓에, 월드 헌터들이 9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먼저 9층으로 가는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동안, 이호성이 민성을 보며 정말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헌터님.”
“왜.”
“방금 총액 1조 2천억 원을 버셨네요. 제가 경매사로 나갔지만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1조 2천억. 하하…… 헌터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탑 안에서 그냥 1조에 팔 생각을 하시다니, 역시 그릇이 다르십니다.”
이호성이 넋 나간 듯 웃었다.
“시끄러워. 이 정제된 블랙 미스릴이라는 거. 현금 가치가 확실한 건가?”
“그 부분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블랙 미스릴의 효용 가치는 놀라우리만큼 넓거든요. 건축부터 시작해서, 예술품은 물론, 과학 연구에도 쓰이는 최고급의 물질이기 때문이죠.”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압축된 양이기는 하지만, 처분하려면 충분히 처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의 금덩이처럼 시세가 곧잘 오르기도 합니다.”
“설명은 그 정도면 됐고.”
민성이 목을 비딱하게 꺾어 앞서 가는 월드 헌터들을 찌푸린 눈으로 보았다.
“앞으로 템 창 가득 찼다고 이런 식으로 경매하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은데.”
“으으음…….”
민성의 말에 이호성은 답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다 민성을 보았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호성이 불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랄까, 어쩐지 말씀드리기가 좀 무섭네요.”
“왜?”
“으음……. 그게 이걸 말씀드리면 왠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요.”
“말해.”
“인챈트입니다.”
이호성이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했다.
“인챈트라면 무기나 방어구를 강화하는 걸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 확률이 높거든요. 여기는 탑 안이고, 인챈트가 템을 정리하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걸 나한테 말하는 게 왜 위험해?”
민성이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이호성을 보았다.
“헌터님은 인챈트를 하면 안 될 아이템도 할 것 같아서요. 마인의 검만 해도 사실상 +0부터 터지니까요.”
민성은 싱겁다는 듯 웃었다.
“헌터님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템도 막 지르겠죠.”
퍽!
민성이 이호성의 정강이를 찼다.
“……하악!”
전신을 울리는 지독한 고통에, 이호성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죄, 죄송합니다.”
“그럼 앞으로 무기나 방어구는 인챈트를 하고, 별 볼 일 없는 잡템은 저 녀석들에게 팔아 버리면 되겠네.”
민성은 말을 마치고 앞서 걸었다.
이호성은 민성의 등을 보며 정강이를 문지르면서 ‘똥 싸가지’라고 주문을 외우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 * *
9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몬스터는 다행히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진짜 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9층에 올라왔고, 그런 만큼 헌터들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긴장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