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15화>
에단은 이호성을 쏘아보며 눈썹을 역팔자로 만들었다.
“왜 올라가지 않고 멈추는 거요? 샌드위치 때문에?”
에단의 말에 이호성은 난감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9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이템을 정리하시랍니다. 템 창이 꽉 찼거든요.”
에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얻은 아이템을 우리들에게 처분하겠다?”
“그렇습니다. 방식은 경매로 진행합니다.”
“하…….”
에단이 기가 찬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호성은 이해가 간다는 듯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에단은 어처구니가 없는 눈길로 샌드위치를 다 먹고 손을 털고 있는 민성을 보았다.
그런 민성과 에단의 눈이 마주쳤다.
에단은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어차피 갑질이란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순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받아들여야겠지.
“……해당 사안을 전파하고 올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게.”
에단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자신로 돌아가 우선 헌터장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 전달했다.
헌터장들의 표정이 일시에 일그러졌다.
막타 경험치에 아이템 독식도 모자라, 이제는 독식한 아이템을 탑 안에서 팔아 치우려고 하고 있는 한국인 헌터의 결정에 헌터장들은 기가 차서 화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에단만큼은 그런 헌터장들과 달리 냉정함을 유지했다.
“어차피 우리가 경매를 수락하지 않으면, 그는 탑을 올라가지 않을 겁니다. 우선은 템을 안고 가야겠지요.”
액수가 좀 들겠지만, 현재로서는 에단의 말대로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강민성이 아니면 탑을 올라갈 수 없으니, 돈을 써서 그의 아이템 창을 모두 비워 내야만 했다.
“한데 만약 저 악독한 자가 경매가를 너무 높게 잡아 버리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긴 하는군.”
“맞는 말이오. 플랜B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헌터장들의 우려에 에단은 이를 갈았다.
“저자가 어떠한 조건을 내걸든 우리는 받아들여야만 하오. 다른 대안이 있으면 말씀들을 해 보시지요.”
에단의 말에 헌터장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던전이 나타난 이래, 우리 미국의 1년 국방비만 이천조가 넘어가는 실정이오. 던전이 사라지고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을 만한 탑이 나타났는데, 돈을 아끼는 것은 바보 같은 짓. 우리 미국이 총경매 아이템 중 50퍼센트를 부담하겠소.”
그에 헌터장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50퍼센트라면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걸 떠안겠다고 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에단은 그 뒤에 조건을 달았다.
“대신…….”
에단이 악센트를 주며 말을 이었다.
“9층에 입성한 이후, 본격적으로 상위 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나온 아이템에 대한 구매권은 우리 미국이 가질 수 있도록 동의해 주시오.”
에단의 말에 헌터장들은 신음을 흘렸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다.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에단은 그런 그들을 보며 입가에 실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경매로 가면, 자본으로 우리 미국을 이길 수 없을 거요. 괜히 서로 저 한국의 하이에나에게 돈을 날릴 필요는 없을 텐데.”
에단의 말이 쇄기가 되었다.
헌터장들은 아쉬웠지만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에단이 내린 결정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럼 대답은 들은 걸로. 첫 번째 경매는 우선 각 헌터장이 하나씩 사는 걸로 시작하도록 하겠소. 입찰권은 자유 형식으로.”
에단이 룰을 정해 대화를 마무리하고, 이호성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화폐 종류는?”
“정제된 블랙 미스릴입니다.”
종이 화폐는 위험하다.
가장 확실한 화폐는 미스릴이다.
현 시대 최고의 가치를 가진 물질이니까.
그래서 이호성은 화폐로 정제된 블랙 미스릴을 선택했다.
“예. 음…… 그럼 바로 진행을 할까요?”
“그러지.”
이호성은 그들이 준비되었음을 민성에게 알렸다.
경매를 시작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이호성은 한숨을 내쉬며 월드 헌터가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이동했다.
* * *
“시작하기 전에 담배 한 대만 피워도 될까요?”
이호성의 부탁에 에단이 그러든지 말든지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호성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고 시원하게 한번 뿜어냈다.
늙는다, 늙어, 아주.
월드 헌터들은 잡아먹으려면 강민성이나 잡아먹을 것이지, 하나같이 자신을 원수 대하듯 찢어 죽일 듯이 쳐다본다.
그럴 만도 하지.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막타를 먹는 것도 그렇고, 템을 독식하는 것도 그렇고, 그 독식한 템을 파는 것도 그렇고.
모두 강민성의 결정이지만, 지X을 할 수 있는 대상은 강민성이 아니라 허약해 빠진 자신일 테니까.
결국 분풀이 대상 같은 거겠지, 나란 놈은. 젠장.
바가지라도 옆에 있으면 동질감이라도 느끼겠는데, 놈은 허구한 날 주머니 속에 숨어 있는 데다가 애초에 인형이다 보니 느끼는 게 다를 거다.
반면 제아무리 강민성이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독재자를 모시고 있지만, 사실 강민성이 없으면 자신은 거의 개미 목숨이 아닌가?
저 월드 헌터 중에 한 놈이라도 마음먹는다면 자신을 소리 없이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남는 게 아주 일이구나.
어휴.
이호성은 어느덧 다 태운 담배를 보고 아쉬움을 느꼈다.
한 대 더 피우고 싶었지만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여전히 월드 헌터들은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눈빛으로 한마음이 되어 쏘아보고 있었다.
간다, 가. 이 자식들아.
그나저나…… 하다 하다 이제는 경매사 노릇을 다 하네.
하하.
이호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월드 헌터가 모두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경매를 시작하기 위해 템 창을 띄웠다.
어디 보자, 어떤 것들이 있나?
어라…… 잠깐만.
이게 있었네?
이거 잘하면 분위기가 웃기게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1층에서 8층까지 올라오면서 만난 몬스터들이 뱉어 낸 아이템들도 대단하긴 했지만, 이 아이템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템 창 안에는 일전에 앞서 마인의 탑에 왔을 때, 민성이 마인을 죽이고 얻은 아이템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홀로 오오라에 가까운 빛을 뿜어내는 물건.
마인을 죽이고 나서 얻은 아이템이라 그런지, 다른 물건들과는 차원이 다른 포스를 풍겨 낸다.
[마인의 검]
등급 : 신화(GOD)
공격력(작은/큰 몬스터) : 30 / 31
한 손/양손 : 한 손
옵션 : 민첩+30, 힘+18, 추가 타격치+38
재질 : 순수한 마석
인챈트 : +0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
손상 여부 : X
교환/매매 : 가능
레벨 제한 : 없음.
(기술) 특성 : 높은 확률로 ‘스턴(Stun)’
숨을 쉬고 있는 건지조차 잊고 넋을 잃은 채 아이템을 쳐다보고 있게 된다.
높은 확률로 대상을 기절시키는 스턴 기술이 들어가며, 옵션은 자신이 잘못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엄청나다.
더불어 레벨 제한이 없다.
이런 아이템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지금 저기 불만 가득한 얼굴로 서 있는 월드 헌터들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아마 눈에 불을 켜고 침을 질질 흘리며 서로 사겠다고 난리 브루스를 추게 될 것이다.
솔직히 이호성의 입장에선 강민성의 명령으로 이 말 도 안 되는 강제 경매를 시작하긴 했지만, 잡템을 처리하고 나서 마지막에 짠- 하고 이 아이템을 등장시키면…… 판은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큭큭, 은근히 재밌겠는데? 이 경매?
이호성은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짐짓 무거운 목소리로 외쳤으나, 월드 헌터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미적거리지 말고 어서 팔기나 해라, 양아치야.’라는 눈빛이었다.
이호성은 더 오버하지 않고 경매사로서의 본분을 찾기로 했다.
템 창에서 적당한 물건 하나를 꺼내 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 올렸다.
“첫 번째 경매 아이템. 이카루스의 깃털입니다.”
꽤 괜찮은 아이템을 골랐다고 생각했지만, 월드 헌터의 반응은 역시나 무미건조했다.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이 먼저 손을 들었다.
“내가 사지.”
에단이 손을 들어 입찰하는 걸 보고 이호성은 혀를 내둘렀다.
“더 입찰하실 분 없습니까?”
주변을 훑어봤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누가 더 큰 금액을 주고 입찰하겠냐는 시선.
이호성은 속으로 훗 하고 웃었다.
그래.
아마 너희들은 최소 낙찰가로 템 창을 비울 생각인가 보군.
하지만 그 얼굴들이 막판에 가서는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구나.
젠장, 그건 그런데, 자신은 ‘마인의 검’과 같은 신화급 아이템을 살 수 없다는 게 애통했다.
파락호 출신으로 여기까지 와 놓고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가?
이호성은 콧물을 들이켜며 경매를 계속했다.
경매는 지루하게 진행됐다.
각국에서 최소 경매가로 입찰하고 낙찰되는 게 반복됐다.
아프리카, 중동,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대표 헌터장들이 아이템을 하나씩 샀다.
남은 헌터장은 아시아에 속하는 한국의 김지유였다.
모두의 시선이 김지유에게로 쏠렸다.
혹시 같은 한국인이라고 이번 경매에서 빼 주는 건 아닌가 하는 뾰족한 시선들이 쏘아지고 있었다.
음…… 어쩌지? 헌터님에게 따로 물어봐야 하나?라고 생각할 쯤, 김지유가 손을 들었다.
“입찰합니다.”
그녀가 직접 손을 들어 경매에 참여했다.
이호성은 따로 수고할 필요를 덜어 기분이 좋았지만, 김지유가 입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한 월드 헌터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어차피 같은 나라 사람이니 돈을 내도 그게 그거 아니냐는 식의 불만이었다.
다시 경매가 이어졌다.
자신의 템 창에 있는 걸 다 팔고, 민성에게 가서 그의 템 창에 있는 것도 받아 와 다시 팔았다.
팔고 팔고 또 팔아서, 마지막으로 남은 일반 템까지 팔고 나자, 템 창에 있는 블랙 미스릴의 값은 약 2천억 원을 넘어 있었다.
이호성은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민성을 보았다.
진짜 세계적인 깡패다.
자기가 경매 시작가를 잘 잡아서 불만이 크게 튀어나오지 않게 팔아먹은 건 둘째 치더라도,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양아ㅊ…… 됐다. 말을 말자.
“이제 끝난 건가?”
에단이 징그럽다는 듯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호성은 에단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해 준 뒤 민성에게로 갔다.
“헌터님.”
민성이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템 대부분은 처리했고요. 총 판매된 금액은 한화로 약 2천억 원입니다.”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이호성은 강민성에게 2천억 원에 달하는 ‘정제된 블랙 미스릴’을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