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113화 (113/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13화>

그의 말대로다.

자신은 무능했다.

늘 중앙 기관의 총군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국의 미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이마에 손을 얹고서 무너지듯 축 처져 있던 김지유는 천천히 눈을 떴다.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자신은 총군주로서 헌터장으로의 책무와 책임이 있었다.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이다.

‘힘들다고 괴롭다고 주저앉으면 안 돼.’

자신이 잘못한 건 맞다.

부족한 것도 맞아.

그렇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어.

김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천천히 일어나 집결지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식사를 끝마쳤다.

“훌륭해.”

민성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게리 골드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때, 천막 안으로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이 들어왔다.

에단의 눈짓에, 게리 골드가 작은 목소리로 민성이 만족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에단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을 정리할 것을 지시했다.

게리 골드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식사가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오.”

에단이 가식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민성은 휴지 하나를 집어 입을 닦고 바닥에 던졌다.

“치워.”

민성이 턱짓으로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가리키자, 에단의 얼굴이 뒤틀렸다.

그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억지웃음을 입가에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휴지를 주워 근처의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먼저 1층에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어.”

민성의 말에 에단은 잠시 그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탑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실 수는 없겠소?”

“입 아프다.”

그 말을 끝으로 민성이 천막 밖으로 나갔다.

에단은 민성이 나간 방향을 노려보며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붉혔다.

이내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려다 어금니를 바드득 갈며 참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당하는 끔찍한 대우였다.

에단은 충혈된 눈으로 민성이 나간 방향을 쏘아보았다.

* * *

민성이 시킨 대로 에단을 중심으로 한 월드 헌터들은 마인의 탑 1층에 모였다.

헌터들이 민성을 기다리며 대열을 정비하는 중에, 미국 헌터들만이 서로 소곤거리며 잡담을 나누었다.

“환단을 먹고 나니까 확실히 기운이 달라.”

“빨리 확인해 보고 싶다. 우리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놀랍군. 고작 환단 하나로 이렇게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니.”

“이런 환단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소름이 끼칠 지경이야.”

“대체 그곳엔 어떤 놈들이 살고 있는 거야?”

타국의 헌터들이 저들끼리 소곤거리는 미국 헌터들을 흘깃흘깃 보았다.

미국 헌터들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받게 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헛기침을 하거나 머쓱한 얼굴로 장비를 점검했다.

그러면서 미국 헌터들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강민성’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전위(前衛)를 맡고, 긴급 상황에만 한국의 강민성이 지원을 한다는 건데. 그 강민성이라는 한국의 헌터. 얼마나 강한 거지?”

“중국의 헌터와 비빌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일까?”

“아마 그럴지도. 탑을 혼자서 클리어해 나갈 정도니까.”

“새삼 중국의 수준이 놀랍게 느껴진다.”

“빌어먹을…… 놈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느낌이야.”

“저급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강민성에 대한 화제는 다시금 중국으로 넘어갔다.

헌터들은 중국의 막강한 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 시점, 뒤늦게 김지유의 중앙 기관이 탑 1층에 합류했다.

월드 헌터들은 강민성에 의해 탑 레이드가 출발하게 됨으로써, 더 이상 노골적으로 김지유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은밀한 따돌림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한국을 빼놓고 먼저 월드 헌터들이 탑에 들어왔다는 것이 이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강민성은 한국의 중앙 기관을 커버해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탑 레이드 조건에 김지유나 중앙 기관 헌터들을 위한 특혜는 없었으니까.

김지유와 중앙 기관의 헌터들은 그런 그들의 태도에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는 듯, 장비를 점검하는 데만 집중 했다.

* * *

민성이 마인의 탑 1층에 도착했다.

민성만을 기다리고 있던 바글바글한 인원의 시선이 민성에게로 일제히 쏟아졌다.

“저 남자가 한국의 강민성이군.”

“저 옆의 한국인 하나랑- 소환수인가, 저건?”

“막타를 먹는다고 했었지.”

“엄청난 쩔이군. 젠장.”

“소환수가 특이하네. 해골이라니, 처음 보는데?”

“저런 소환수도 있구나.”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순 났지만, 헌터장들의 시선에 소란스러움은 착 가라앉았다.

이윽고 에단의 지시에 따라 이동이 시작됐다.

마인에게 당했던 기억은 모든 헌터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자리 잡아 있었다.

그런 만큼 본격적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발자국 소리만이 탑 내부를 저벅저벅 울렸다.

김지유는 민성이 나타났음에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고수했다.

그녀는 그저 흘끔 민성을 돌아보기만 할 뿐이었다.

* * *

로브의 사내는 텅 빈 집결지에서 먼눈으로 마인의 탑을 응시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로브의 사내가 탑을 보며 느릿하게 전화를 받았다.

- 상황은?

수화기 너머로 휠체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획대로 되고 있어.”

- 마무리될 때쯤 연락해. 중국 입국도 그렇고, 처리할 일들이 몇 가지 있으니까.

“알았어.”

- 조금만 더 힘내라. 머지않았어. 다 왔다.

“그래.”

로브의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탑에 머물러 있었다.

“……강민성.”

로브의 사내가 낮게 혼잣말했다.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던 로브 사내의 한쪽 눈빛에서 일순 촛불과도 같은 흔들림이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갔다.

* * *

“쟤네들은 왜 갑자기 싸우겠다고 설치는 걸까요? 아무리 헌터님에게 숙이고 들어왔다고는 해도, 뭔가 갑작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앞서 가는 월드 헌터들 뒤, 꽤 떨어진 곳에서 이호성이 민성과 함께 걸으며 말했다.

민성이 관심 없다는 태도를 취하자 이호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숨겨진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닐까요? 애초에 남들에게 뭐 뺏기기 싫어하는 게 기득권층의 특성이니까요.”

“중국의 수준은 어느 정도지?”

문득 민성이 물었다.

“음…….”

이호성이 잠깐 생각을 정리한 끝에 입술을 열었다.

“워낙에 드러난 게 많이 없어서요. 대부분 소문 같은 것들만 많고. 하지만 확실한 건, 저기 저 월드 헌터들조차 중국 앞에선 명함 내밀기조차 힘들다고…….”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이내 앞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예상치 못했, 1층에서의 몬스터 출연이었다.

* * *

헌터들은 당황했다.

분명 8층까지 불을 밝혔으니 더 이상 잔재되어 있는 몬스터는 없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는 상황.

전투가 발생했음을 자각한 헌터들이 몬스터를 향해 일제히 무기를 겨누며 마법적 버프 효과를 끌어올렸다.

9개의 목을 가진 거대한 뱀을 월드 헌터들이 둘러싸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 헌터들이 마주친 몬스터 히드라는 일반적인 미궁에서 보스급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당연히 헌터들은 대치와 동시에 커다란 긴장감에 휩싸였다.

“저도 헌터님에게 도시락을 가져가면서 몬스터를 만나긴 했었지만, 이상하네요. 분명히 클러어된 구간인데, 어째서 저런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걸까요? 그것도 여긴 1층에 불과한데.”

이호성이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며 민성을 보았다.

“몰라.”

민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관심 없는 시선으로 헌터들을 지켜보았다.

그 시점.

바가지가 이호성의 다리를 쿡쿡 찔렀다.

“막타! 막타!”

바가지가 막타를 먹어야 된다며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을 재촉하듯 가리켰다.

이호성이 아차하며 월드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바가지와 함께 뛰어갔다.

민성은 그 모습을 보며 팔짱을 꼈다.

탑을 올라가는 건 대체로 지겨운 시간이 되겠지만, 녀석들을 키우는 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감당하기 힘든 지겨움이 계속되어도 버텨 내야만 한다.

민성은 지독한 지겨움을 견디는 눈으로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 * *

‘와…… 대박이다, 진짜.’

이호성은 침을 꼴깍 삼켰다.

월드 헌터들 사이에 끼어서 그들의 전투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들이 회쳐 놓은 몬스터를 바가지와 자신이 꿀꺽할 거라는 사실은 더더욱 충격적이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뭐랄까.

이래도 되나 싶은 염치 불구한 심정이었다.

“대미지는 확실하게 들어가고 있다. 밀어붙여!”

“힐러들은 몬스터의 독성 대미지에 집중하도록!”

사방에서 지위를 가진 헌터들이 명령을 쏟아 냈다.

헌터들이 히드라를 향해 갖가지 무기로 공격을 퍼붓고, 마법을 쏟아부었으며, 화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사방에서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그중에서도 단연 미국 헌터들의 존재감이 빛을 발했다.

히드라의 피부는 너무 단단해서 사실상 미스 대미지가 많았는데, 미국 헌터들은 타국의 헌터들과는 대조적으로 확실하게 히드라의 피부에 상처를 내면서 출혈량을 늘려 가고 있었다.

확연하게 눈에 띄는 차이다.

더 놀라운 점은 미국의 마스터 에단의 활약이 눈부시다는 점이다.

서걱!

에단이 히드라의 9개의 커다란 대가리 중 하나를 잘라 냈다.

헌터들이 모두 일시에 감탄과 놀람이 번진 눈으로 에단을 보았다가, 고통스러운 쇳소리를 내는 히드라를 향해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게 되자, 히드라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급격하게 하향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호성과 바가지는 눈을 반짝이며 막타를 먹기 위해 타이밍을 계산 중이었다.

막타는 이호성과 바가지 둘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이호성과 바가지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야, 바가지. 당분간 막타 나한테 줘라.”

“싫어.”

바가지는 히드라를 노려보며 짤막하게 거부를 표했다.

“넌 레벨도 높잖아. 레벨도 없어졌으면서 뭐가 그렇게 욕심이 많아?”

“너랑 내가 같아?”

이호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바가지를 보았다.

“야, 난 인간이야.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마법 인형 주제에.”

“응. 똥개. 이것도 내가 먹을 거야-”

바가지가 흑마법을 캐스팅했다.

강인해 보이던 히드라는 이미 월드 헌터들의 총공격에 의해 죽음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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