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12화>
* * *
집결지에 도착한 셰프 게리 골드는 놀람과 감탄이 얼룩진 얼굴로 주변 경관을 훑어보았다.
장관이었다.
헌터들이 집결지에 모여 있는 모습도 그랬지만, 마인의 탑이 풍겨 내는 포스는 충격적일 만큼 압도적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바다.
그곳엔 천둥 벼락이 내려치고 거친 파도가 일렁였으며, 그 중심에서 거대한 어둠을 풍겨 내는 탑의 풍모는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질리게 만들었다.
침을 꼴깍 삼키며 탑의 풍경을 보고 있던 게리 골드에게 한 헌터가 다가왔다.
“게리 골드?”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헌터가 신분을 확인해 왔다.
“아, 네. 제가 게리 골드입니다.”
“지금 바로 요리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문제는 없나?”
“문제없습니다.”
“이쪽으로.”
게리 골드는 탑의 풍경을 한 번 더 돌아본 뒤에, 굳은 얼굴로 헌터를 따라갔다.
야외에는 테이블과 간단한 조리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었다.
열악한 환경이긴 했지만, 한 끼 식사의 요리를 준비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런데, 제가 요리를 만들어 드려야 할 분이 누구죠?”
게리 골드가 헌터를 향해 물었다.
“한국의 헌터.”
그가 짧게 답했다.
게리 골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국의 헌터라고?
자연히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자신을 이 위험한 집결지까지 강제로 불러놓고 음식을 대접해야 할 대상이 아시아 헌터라니.
당연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헌터국으로서의 유명세를 갖고 있었나?
적어도 게리 골드의 머릿속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정보였다.
대체 왜 이 어마어마한 헌터들이 모인 곳에서,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국 헌터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거지?
“대체 한국에 어떤 헌터가 있길래, 다른 헌터도 아니고 그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그에 헌터가 차가운 눈빛을 쏘았다.
목이 서늘해질 만큼 무서운 눈빛이었다.
게리 골드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요리 만들 준비에 나섰다.
사나운 성질인 것으로 유명한 게리 골드였지만, 헌터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자신은 그저 육식 동물에 둘러싸인 초식 동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자칫 하다간 요리사로서 쌓아 올린 부와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헌터들의 세계는 죽음 따위는 일상에 가까운 지독한 세계니까.
“칫!”
그렇다고는 해도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내 게리 골드는 잡생각을 지우며 요리에만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 * *
“헌터님. 요리사가 도착해서 준비 중이랍니다. 식사할 자리를 준비해 뒀으니 이제 슬슬 나오시라는데요?”
민성은 감았던 눈을 떴다.
잠깐 잠에 들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하고 생각하며 차에서 내렸다.
앞장서는 이호성을 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가, 기다란 테이블의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여전히 졸리네.
최근 긴장이 풀리다 보니 인간적인 생체 리듬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목을 꺾어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눈을 감았다.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 * *
미슐랭 셰프 게리 골드는 미국 헌터의 안내를 받아 대형 천막이 있는 곳으로 첫 코스 요리를 가져갔다.
서빙용 카트를 밀면서 천막 안으로 들어간 그는 홀로 상석에 앉아 졸고 있는 사내를 보고 멈춰 섰다.
……자고 있나?
게리 골드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따라 들어온 헌터는 없다.
일단 서빙용 카트를 밀고 사내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요리 접시를 테이블 앞에 놓으면서 사내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잘생겼다.
유명한 스타급 연예인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잘생긴 얼굴.
그때,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게리 골드는 민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두려움이나 공포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감탄이라는 종류의 감정도 아니었다.
오로지 그것은 그저…… 가장 가까운 표현을 찾는다면…… 그래.
경이로움.
경이로움일 것이다.
처음 이곳 집결지에 와서 탑을 본 것과 같은 대자연의 포스가 민성에게서 느껴졌다.
넋을 놓고 그의 존재감에 얼어 있자, 민성의 시선이 찌릿! 하고 게리 골드의 몸을 마치 감전시키듯 울렸다.
그제야 게리 골드는 화들짝 놀라며 현실로 깨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사과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자신의 요리를 맛볼 사람에게 식전부터 이런 불쾌감을 조성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을 느낀 것이다.
민성은 그런 게리 골드를 책잡지 않고, 조용히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게리 골드는 프로 셰프로서의 역량을 증명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식전 음료와 전채 요리, 그리고 샐러드를 가져왔습니다. 본래 차례차례 코스로 준비를 해 드리지만, 동선을 생각해 최대한 맛이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전채 요리 드실 동안, 지금 바로 다음 요리를 가지러 갔다 오겠습니다.”
민성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중요한 식사다. 차질이 없어야 할 것이야.”
식사를 준비하면서 듣고 또 들은 얘기였다.
짐작컨대, 지금 천막 안에 있는 저 한국의 헌터는 아마 헌터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준의 헌터인 것이 아닐까?
월드 헌터가 모두 집결지에 모인 마당에, 그들이 이토록 절절매는 것에 다른 이유를 찾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그러기엔 한국이라는 국적이 너무 생소했다.
게다가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거대한 포스.
특별히 살기 같은 것을 뿜어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렬한 포스에 압도당해 버렸다.
헌터계는 정말 알 수 없는 세계로군.
우선 요리에만 집중을 하자.
게리 골드는 눈을 빛내며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 * *
샐러드는 싱그럽게 맛있다.
발사믹 소스가 과하지 않게, 완벽한 비율에 가깝게 채소들을 휘감고 있다.
그 샐러드의 상큼함은 식사의 시작부터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전채 요리로 나온 것은 관자 요리다.
무려 미슐랭 쓰리 스타에 달하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요리사의 전채 요리.
가히 환상적인 플레이팅은 예술 작품처럼 보일 정도다.
기본적으로 이 관자 요리는 베이컨과 메추리알을 곁들인 음식이었다.
과연 그 맛은 어떨까?
민성은 조심스레 포크로 먹어 보았다.
부드러운 버터 향이 나는 관자는 뜨거운 기름의 온도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베이컨은 바삭했으며, 반숙으로 된 메추리알은 포근했다.
순식간에 즐거운 감각을 폭등시켜, 이 전채 요리의 수준이 놀라우리만큼 높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플레이팅부터 맛과 향까지, 이 음식을 요리한 요리사가 괜히 미슐랭 쓰리 스타라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관자는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식감을 전달해 주었다.
먹으면서도 감탄에 감탄을 이어 붙이게 만드는 전채 요리였다.
전채 요리에 대한 식사를 거의 끝마쳤을 때쯤, 게리 골드가 메인 요리를 가지고 천막 안으로 등장했다.
전채 요리 접시를 거두고, 그 자리를 최고급 메인 요리가 채웠다.
“비프 웰링턴이라는 요리입니다. 가장 비싼 소고기 부위인 안심을 주재료로 썼으며, 근육이 거의 없는 부위이기 때문에 부드럽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소스가 되는 메인 배경은 송로 버섯입니다.”
민성은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고기를 자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서, 페이스트리 안에 파마 햄과 믹서로 갈아 버린 송로버섯에 싸여 있던 안심의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완벽한 시어링에 의해, 핏물이 흐르지 않으면서도 육즙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모습은 가히 일품 중의 일품이었다.
연한 붉은빛의 속살을 수줍게 드러낸 안심의 모습에서 마음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이것이 바로 최고급 요리사가 만든 비프 웰링턴.
민성은 나이프를 써서 먹기 좋게 자른 뒤, 입에 가져가 그대로 넣고 씹었다.
우물우물!
부드러운 빵의 맛과 고급스러운 송로 버섯의 베이스.
그리고 미약하지만 코끝을 톡톡 건드리는 머스타드 향.
파마 햄 때문에 보존된 육즙.
달콤 짭조름한 버섯 필링과의 환상 조합!
민성은 상기된 얼굴로 저도 모르게 숨을 훅 하고 뱉었다.
소고기가 버섯과 함께 레스팅된 요리가 이토록 파괴적인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완벽한 하모니야.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넘어선 천상계의 맛이었다.
“훌륭하다.”
민성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음식을 칭찬하는 소리를 냈다.
게리 골드는 빙긋 미소 지으며 민성의 칭찬에 고개를 숙여 보였다.
민성은 황홀한 맛의 향연에 젖은 채 식사를 이어 나갔다.
* * *
김지유는 집결지 부근의 텅 빈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초점이 없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몇 시간을 이렇게 있었는지조차 잊어 먹었다.
띠링!
문득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떴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자 다시 마인의 탑으로 출발한다는 소식이었다.
전방에는 월드 헌터가 위치.
위급 상황에 강민성이 나서며, 경험치와 아이템은 모두 강민성 쪽으로 한다는 조건하에 출발하는 레이드였다.
최전방에 강민성이 아니라 월드 헌터가 앞장선다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왜 이런 위험한 선택을 한 걸까?
강민성이 그렇게 시킨 걸까?
아니.
강민성은 그런 것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결국 월드 헌터 쪽에서 먼저 이 레이드를 제안했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위급 상황에 강민성이 나선다는 조건이 있지만, 그렇다 해도 사상자가 속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그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차라리 뒤에서 후방 서포터를 자처하는 게 훨씬 안전했을 텐데.
김지유는 짧게 한숨 쉬며 헛웃음을 흘렸다.
마음은 지금 당장 집결지로 돌아가 자신도 무언가를 해야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강민성의 차가운 평가가 여전히 자신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