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09화>
“정말요? 정말이에요, 주인님?”
“그래.”
“와아아아!”
바가지는 마치 놀이공원에 가자는 부모님의 말을 들은 아이처럼 잔뜩 들뜬 채로 민성에게 달려가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키며 민성을 은근하게 보았다.
자신에게도 뭐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뭐?”
바가지와는 다르게 자신을 쳐다보는 민성의 시선은 한없이 차갑기만 했다.
……젠장.
* * *
마인의 탑에서 나와 육지로 올라왔다.
이호성은 민성의 발길질에 어김없이 이번에도 헤엄을 치고 오고 있었다.
그사이 민성은 바위에 걸터앉아 마인의 탑을 보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불은 총 8층.
마인의 탑은 그 불빛 위로도 높게 솟아 있었다.
저걸 언제 다 뚫을까 싶지만, 마인도 죽일 수 있고 아이템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마계랑 다르게 놀이처럼 올라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이번엔 바가지를 한번 제대로 키워 볼 생각이었다.
만약 바가지가 특성 마인을 언데드로 부릴 수만 있다면 앞으로 탑을 올라갈 때 굳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마계처럼 무더기로 마인이 쏟아지는 건 아니니까.
물론 플로어 숫자가 높아질수록 마인의 수가 불어날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면 별달리 문제될 것은 없을 일이었다.
이호성을 기다리는 사이, 민성은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의 시선에는 조사단의 실종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섞여 있었고, 더불어 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신인류, 혹은 괴물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민성은 불쾌감과 짜증이 가득 배어든 눈으로 그들을 훑었다.
민성의 몸에서 거대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 강대한 기운에,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헌터들이 해쓱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헌터들로부터 관심이 거둬지자, 민성은 헤엄을 치면서 육지를 향해 오고 있는 이호성을 빤히 보았다.
그때, 김지유가 민성의 앞으로 다가왔다.
“민성 씨와 호성 씨를 쫓은 조사단이 있었어요. 그들은 지금 행방불명 상태고, 탑에서 나왔던 호성 씨와 대화를 나눈 미국의 헌터는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미국 측에서 민성 씨를 의심하고 있어요.”
민성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관점에서 한없이 느릿느릿한 이호성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김지유가 그런 민성을 응시했다.
“민성 씨. 미국 쪽에서 분명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자신들의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해 수를 쓸 게 틀림없어요.”
“그래서?”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를 일이니.”
“김지유.”
민성이 그녀의 이름을 짤막하게 부르며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민성의 시선을 가까이서 받은 김지유는 조금 긴장한 상태로 그의 눈빛을 마주 보았다.
민성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기타 능력자로서의 힘.”
그가 짧게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그 힘에 의해 꽤 예쁨을 받아 오며 살아온 것 같은데, 넌 무능한 데다 심지어 물러 터졌어.”
민성의 냉정한 말에 김지유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정신 차려라, 김지유.”
“……무슨 뜻이에요?”
“정의를 핑계로 한국의 국력에 힘을 실으려는 목적이겠지.”
“아니에요.”
김지유는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함부로 나서지 마라. 한심할 뿐이니까.”
“…….”
김지유가 붉어진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
“그동안 널 내버려 둔 건 네가 중앙 기관의 기타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무능하지만 적어도 중앙 기관의 통치자니까, 통치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 일을 너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내버려 뒀던 것뿐이야.”
민성이 차가운 눈으로 김지유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약소국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도, 의존할 생각도 집어치워. 이젠 한심함을 넘어 이쪽에서 지칠 지경이니까.”
김지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흔들리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틀었다.
본인의 무력함에 대한 자책이 스며든 것처럼 보였다.
민성은 그런 김지유를 한심하다는 듯 응시했다.
그때, 이호성이 물기를 짜면서 민성의 앞에 섰다.
“헉! 헉! 헌터님! 헉! 헉! 가시죠.”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던 이호성은 민성과 김지유 사이에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자 멍한 얼굴로 그저 눈을 깜빡였다.
민성이 바위에서 일어나고 먼저 걸음을 옮기자, 이호성은 영문 모를 얼굴로 앞서가는 민성을 뒤따랐다.
* * *
이호성은 운전을 하면서 민성의 눈치를 살폈다.
얼핏 보기에 김지유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중앙 기관의 기타 능력자이자 통치자인 그녀를 울린 것도 엽기스럽지만, 대체 무슨 있었던 걸까?
바가지가 민성의 주머니 안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와 민성의 허벅지에 올라가 앉았다.
“아으으…… 으으…….”
바가지가 골골 앓는 소리를 냈다.
이호성이 바가지를 흘깃 돌아보며 물었다.
“바가지, 넌 또 왜 그래?”
민성도 자신의 허벅지에 앉아 있는 바가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으, 햇빛이 너무 싫어. 아으으…….”
바가지는 괴로운 듯 민성의 허벅지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몸부림쳤다.
“햇빛에 일정 이상 노출이 되어 괴로운 거다. 아마 그동안은 참았던 모양이야.”
“바가지가요?”
“그래. 내가 밥 먹을 동안 방어구 가게 좀 알아봐.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옵션이 있는지 알아보고, 바가지가 입을 수 있는 걸로 하나 만들어 와. 최대한 빨리.”
“네.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다가 용기를 냈다.
“저 그런데 헌터님. 중앙 기관 총군주의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던데. 무슨 일 있었습니까?”
이호성이 결국 용기를 내서 질문을 던졌다.
“무능하고 주제 넘는다고 몇 마디 했을 뿐이야.”
이호성은 식은땀 한 줄기를 흘렸다.
그런 거였냐.
묵직한 팩트 폭행 보소.
그걸 면상에다 대고 말하다니, 역시 강민성이랄까.
정말 대단한 인간이다.
게다가 그토록 성스러워 보이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그런 차가운 말을 던지다니.
이호성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태도였다.
정말 세상 혼자 사는군.
어떤 의미로는 부럽기도 하다.
이게 바로 지존의 삶인가…….
“밥 먹자.”
“어디로 모실까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소고기 집으로.”
민성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호성의 호슐랭 가이드! 출발합니다!”
“처맞기 전에 입 닫고 운전해.”
“……예.”
* * *
바가지는 언제 아팠냐는 듯 민성의 벨트에 대롱대롱 매달려 애교를 피워 댔다.
전형적인 애완 펫의 모습이었다.
다시 괜찮아진 것 같아 일단은 다행이지만, 최대한 빨리 바가지의 방어구를 만들어 줘야겠다고 민성은 생각했다.
워프 게이트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민성과 이호성, 그리고 바가지 일행은 한국에서 가장 값비싼 가격대를 자랑하고 있는 소고기 집에 도착했다.
돼지고기는 먹어 봤으니 이번엔 소고기.
그리고 이왕 먹는 거라면 스트레스도 좀 풀리게 최고의 소고기집에서 먹고 싶었다.
비싼 만큼 극상의 품질을 맛보게 될 것은 자명한 일.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호성이 예약한 곳은 고급스러운 한옥집처럼 생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 가게다.
[화랑 갈비 본점]
간판은 손글씨로, 꽤 유명한 명필이 그린 듯 힘이 차 있고 화려했다.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잘 차려입은 지배인이 예약을 확인하고 곧장 룸으로 안내를 도와주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이호성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민성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배인과 함께 룸 안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보았다.
· 화랑 생갈비 (국내산 한우) 200g 칠미 소금 94,000
· 화랑 생갈비 즉석 양념 (국내산 한우) 200g 96,000
· 화랑 꽃등심 (국내산 한우) 150g 95,000
· 한우 특상 생등심 (국내산 한우) 130g 67,000
민성은 우선 눈에 보이는 메인 메뉴를 눈에 담아 꽃등심 2인분과 생갈비 1인분을 주문했다.
지배인은 친절한 미소를 얼굴에 걸고서 메뉴판을 회수하고 룸을 나갔다.
민성이 따뜻한 물수건으로 손을 닦을 때.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종업원이 기본상을 내주었다.
기본 반찬은 간단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깔끔해 보이는 물김치다.
숟가락을 들어 맛을 보자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다음 반찬으로는 더덕구이 무침.
양념이 잘 배어 있고, 더덕의 향이 기분 좋게 코끝을 삭 스치고 지나갔다.
더덕구이를 먹는 동안 화롯불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다른 직원이 접시 위에 아주 깔끔한 자태로 놓인 생갈비를 가져왔다.
고기에 난 칼집이 매우 규칙적이며 마치 눈송이가 묻어난 것만 같은 환상적인 마블링이 유려하게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