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08화>
“워프 게이트 건물 근처에서 구한 물건입니다. 생각보다 꽤 괜찮게 도시락을 팔더라고요. 제가 먹어 본 맛집이 아니라서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드셔 보시죠.”
이호성의 말에 민성은 도시락의 메뉴 구성을 확인했다.
우선 새하얀 쌀밥 위에 장어 한 마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잘린 채 줄지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전복 회와 새우튀김, 소불고기, 치킨 윙 두 조각, 각종 반찬과 과일까지.
확실히 한 끼 식사로 제법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을 만한 도시락이었다.
마음에 드는군.
오래 기다린 만큼 배 속은 빨리 음식을 먹고 싶다며 마치 북을 두드리는 듯했다.
민성은 나무젓가락을 뜯어 하얀 밥부터 떴다.
도시락인 만큼 온기는 없다.
감안하고 먹어야겠지.
조금은 뻑뻑한 느낌을 갖고 있는 밥을 한 입 먹고, 밥 위에 있는 장어를 먹어 보았다.
우물우물-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찬도 다 식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은 살아 있다.
마치 X플러스와 같은 대형 마트에서 파는 장어의 맛이랄까.
그래도 의외로 신선도가 잘 유지되어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는 차원이 다르다.
최고 품질의 도시락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운동회를 할 때 돗자리 위에서 할머니랑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물론 이렇게 화려한 도시락은 아니었다.
그때는 그냥 김밥.
김밥이었지.
민성은 엷게 미소 지었다.
다음엔 김밥을 먹어 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젓가락을 놀렸다.
민성이 만족한 표정으로 식사를 이어 가자 이호성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철퍽 주저앉았다.
바가지는 민성의 주머니 속으로 꼬물꼬물 억지로 기어 들어갔다.
민성은 밥 한 젓가락에 사이드 반찬 메뉴인 짭조름한 멸치를 먹고 새우튀김을 들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식은 튀김이었지만, 역시 튀김은 튀김이다.
식었는데도 이렇게 놀라운 파괴력을 발휘하는 건 튀김이 아니고서야 찾기 어려운 맛의 힘일 것이다.
그리고 어쩐지 지금껏 먹어 왔던 음식들과는 묘하게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럴 때가 있다.
인스턴트식품이 기가 막히게 맛있는 때가.
지금이 딱 그랬다.
자주 먹기엔 별로지만, 이렇게 간단히 한 끼를 해치울 때는 도시락만 한 게 없지.
뒤이어 민성은 얇게 양념된 치킨을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밥과 어울릴까?
먹어 보자.
밥을 먹고 윙 치킨을 뜯어 먹어 보았다.
어? 의외로 조합이 상당하다.
이상할 것 같았지만 밥과 치킨의 조합은 꽤 괜찮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치킨과 밥을 제대로 먹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킨과 밥.
치밥이로군.
민성은 이미 치밥이 유명해진 지 오래라는 것을 모르고, 특별한 것을 찾아냈다는 것에 기뻐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가볍게 밥과 메인 메뉴인 장어, 그리고 반찬들을 클리어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과일을 살펴보았다.
과일의 종류는 딸기와 키위, 그리고 오렌지다.
물론 도시락인 만큼 소량.
하지만 알맞은 양이다.
대식가가 아닌 게 다행이야.
민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딸기를 집어 입에 쏙 넣었다.
딸기가 부드럽게 씹히면서 단맛이 360도로 쫙 퍼졌다.
이 도시락에 들어 있는 건 극상의 딸기였다.
마치 딸기밭에 온 것만 같은 가상의 현실감을 준다.
그에 반해 키위나 오렌지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로써 총평을 해 보자면 나쁘지 않다. 아니,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도시락이라는 한계점을 두고 봤을 때,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품질을 갖고 있다는 것은 칭찬해야 마땅할 만한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잠도 잘 자고, 식사도 해서 그런지 몸에 활력이 솟아나는 듯했다.
민성은 다 먹은 도시락을 휙 던져 버리고, 비닐 안에 들어 있던 생수 한통을 들며 일어섰다.
이제 다음 층으로 이동해야 할 때였다.
“가자.”
민성이 앞장서서 나선형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로브의 사내가 집결지에 나타났다.
한창 강민성과 이호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던 헌터들이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를 흘깃 이상하다는 듯 하나둘 쳐다보았다.
몇몇 보안 헌터가 로브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여기는 외부인 통제 구역입니다.”
“마스터 에단을 만나러 왔다. 안내해.”
로브의 사내가 건조한 어투로 말하자 보안 헌터는 코웃음을 흘렸다.
“당신이 뭔데 감히 마스터를…….”
로브의 사내가 고개를 들어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보안 헌터를 응시했다.
보안 헌터는 로브의 사내가 뿜어내는 눈빛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죽음이 목 밑까지 올라와 있음을 느꼈다.
“보고를 올려라.”
로브의 사내가 짤막하게 말했다.
보안 헌터는 가늘게 떨다가 이를 악물며 천막 안에 있을 에단을 찾아가 보고를 올렸다.
잠시 후, 천막 안에서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이 나왔다.
로브의 사내가 품 안에서 명패 하나를 꺼내, 걸어오고 있는 에단에게 던졌다.
에단은 로브의 사내가 던전 명패를 낚아채고서 로브의 사내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헌터장들에게 회의장을 잠시 비워 달라고 해.”
에단의 명령에 부하가 곧장 천막으로 뛰어갔다.
* * *
텅 빈 집결지의 천막 안에 로브의 사내와 에단이 들어섰다.
로브의 사내는 말없이 상석에 앉았다.
에단은 명패를 들고서 그의 옆에 앉았다.
로브의 사내가 던진 명패.
그것은 중국의 대형 클랜 ‘삼천교(芟天敎)’임을 증명하는 명패였다.
“중국 쪽에서 움직임이 있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삼천교에서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소.”
에단이 평소와 달리 다소 자신을 낮춘 모습으로 말했다.
중국.
절대 세력이라 불리는 대륙 최강의 헌터들이 실존하는 곳.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했다.
더군다나 삼천교는 그런 중국 안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에단조차 그 앞에서는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탑. 그것 때문에 온 것이오?”
에단이 기대를 담아 물었다.
로브의 사내는 품 안에서 특수 비닐에 싸여 있는 조그마한 환단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에단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보았다.
“이것이 무엇이오?”
“능력치를 올려 주는 환단이다. 몬스터를 인류의 주적이라고 여기는 건 삼천교도 다르지 않다. 때문에 삼천교는 직접 나서기보다 인류의 힘을 키워 주기로 했다.”
에단은 의심이 깃든 눈으로 환단과 로브의 사내를 번갈아 보았다.
“결정하라.”
로브의 사내가 재촉하듯 말했다.
에단이 어금니를 깨물며 말을 아끼자, 로브의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대가 제안을 거절한다면, 이 환단은 다음 헌터장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에 에단은 초조해졌다.
“……얼마나 효과가 있는 거요?”
에단이 의심과 기대감이 섞인 눈길로 그를 보며 물었다.
“이걸 복용하면, 미국의 헌터만으로도 탑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먼저 먹어 효용을 경험해 보고 나서 부하들에게 나눠 주도록.”
에단이 자그마한 환단을 보며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헌터계를 주름 잡으려 할 것이 틀림없었다.
가뜩이나 한국과의 사이가 벌어진 가운데, 그런 상황이 오는 건 미국에게 최악의 결과였다.
“이걸 복용하면 능력치가 대폭 오른다는 거고, 원한다면 대량의 환단을 주겠다?”
로브의 사내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우선 효용의 가치를 확인해 보고 결정이 선다면 이곳으로 연락해 답변을 남기도록.”
로브의 사내가 명함 한 장을 남기고 로브를 펄럭이며 일어났다.
그가 천막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은 에단은 나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환단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천막 부근으로 오며 그를 불렀다.
“마스터!”
에단은 환단을 황급히 주워 품에 넣었다.
“들어와.”
에단의 허락에 부하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조사단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이호성이란 헌터에게 정보를 알아내러 갔던 제3군단 팀장이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에단이 굳은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 * *
콰지지지직!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이 순식간에 세 마리나 되는 마인을 찢어발겼다.
이내 마인들이 소멸 과정을 거치며 아이템을 떨어트렸다.
하나 이호성은 이미 템 창이 가득 찬 상황이었고, 민성도 템 창에 여유가 없었다.
남은 공간은 세 개의 아이템을 넣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좋아 보이는 아이템 3개만 주워 템 창에 던져 넣은 뒤, 민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몇 층까지 있는 거야, 여긴.”
그가 귀찮다는 듯이 짧게 혀를 차고선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민성이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자 이호성은 안도했다.
급하게 오는 바람에 도시락을 하나밖에 챙기지 않았다.
만약 강민성이 더 높은 층수를 올라가려 하고 또 도시락을 배달시켰다면, 그 끔찍한 과정을 또다시 반복해야만 했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템을 처분하기 위해 탑을 나간다고 하니, 이호성에게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었다.
마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건 덤이었다.
한데 문득 힘없이 걷고 있는 바가지가 보였다.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것이 지금껏 봐 온 모습 중에 가장 우울한 모습이었다.
* * *
“바가지. 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보여?”
이호성의 물음에도 바가지는 대답 없이 땅을 보며 뒤뚱뒤뚱 걸었다.
그때 민성의 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마법 인형 ‘바가지’가 우울해합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햇빛에 노출된 것이 중첩되어 체력이 손상되었습니다.]
[마법 인형 ‘바가지’가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합니다.]
[경고 : 마법 인형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마법 인형을 잠시 봉인하시겠습니까?]
[승인 / 거절]
바가지를 봉인할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민성은 고민 없이 ‘거절’을 터치했다.
그리고 바가지를 보았다.
바가지의 본체는 리치.
기본적으로 어둠에 종속되어 있다.
한데 햇빛에 오래 노출되어 누적된 피로도가 상당한 듯했다.
어차피 어떻게든 해결을 해 줄 테지만, 당장 해 줄 수 있는 위로라고 해 봐야 이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현재 마인들 등급이 올라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머지않아 고유 특성을 가진 중·상급 마인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 네가 놈들을 언데드로 부릴 수 있게 해 주마. 그리되면 꽤 쓸 만할 거다.”
죽어 가던 바가지의 검은 눈이 활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