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07화>
사방으로 황금빛이 번져 나갔고, 그 빛에 노출된 바가지와 이호성의 몸이 급격히 굳어 가기 시작했다.
“우, 움직여지지가…….”
이호성이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이내 입까지 굳어 버려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속박과 둔화에서 벗어난 몬스터가 이호성에게 빠르게 기어가 보라색 빛을 머금은 손톱을 뻗었다.
몸이 굳은 탓에 이호성은 그저 그 손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퍼억!
몬스터의 손이 이호성의 복부를 관통했다.
“어……?”
굳어 가던 몸이 다시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배를 꿰뚫은 몬스터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들자 인간의 얼굴을 한 몬스터가 입을 좌우로 찢어 웃었다.
피로 물든 몬스터의 웃는 얼굴이라니.
악귀처럼 보였지만, 무서운 건 그게 아니다.
나 이대로 죽어……?
뒤늦게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아…….”
이호성은 아직 굳은 얼굴을 천천히 뒤로 돌렸다.
허, 헌터님.
혹시 모를 희망을 담아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엄청난 고통이 뇌를 찔렀고.
파아아악!
몬스터가 이호성의 배를 관통시켰던 손을 뽑아내자 배에서 대량 출혈이 일어났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흔들리는 시야.
“쿨럭……!”
이호성은 한 움쿰의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급격히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쇼크가 머리를 흔들었다.
헌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외려 고레벨 헌터로서 체력이 높은 탓에 죽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한처럼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고통에 제대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서서히 죽어 가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바가지가 당황한 듯 이호성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지난 기억이 주마등처럼 이호성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헌터가 되어 클랜을 만들고 뒷골목을 전전긍긍했던 시기. 그리고 강민성을 만나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이 놀랍도록 선명하고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 장시아랑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 해 봤는데…….
눈꺼풀이 절반쯤 감기고 초점이 흐릿해졌다.
“정신 차려, 이 똥개야!”
회복 마법을 쓸 수 없는 바가지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런 바가지의 외침은 이호성에게 희미하게만 들렸다.
이미 의식의 반이 날아가고 있었다.
몬스터는 그런 이호성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시듯이 웃었다.
그때, 바가지가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오러의 힘과 맞먹는 어둠 속성의 검은 칼날이 화살처럼 몬스터의 전신에 박혀 들었다.
푸부부부북!
“키아아아아아아악!”
몬스터가 머리를 뒤로 젖히며 허리를 활처럼 휘면서 괴성을 질렀다.
사방으로 재차 황금빛이 퍼지며 그 빛의 영역에 노출당한 바가지의 몸이 또다시 굳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몬스터는 눈앞의 먹잇감.
죽어 가는 이호성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기다란 혀와 칼날 같은 이빨이 드러났다.
몸이 굳어 버린 바가지는 무력하게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덥석!
몬스터가 이호성의 목덜미를 흡혈귀처럼 깨물었다.
그리고.
콰드득!
몬스터의 이빨이 이호성의 목 살갗을 뚫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파아아아악!
공중으로 피가 마치 강렬한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호성은 그에 완전히 힘을 잃고 흐느적거리며 바닥으로 툭 쓰러졌다.
몬스터는 자신의 온몸을 피 칠갑으로 도배해 놓은 채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바가지에게 악령 같은 얼굴을 돌렸다.
몬스터가 바가지에게로 방향을 틀어 공격적으로 기어가려고 하던 그때.
쿠드드드득!
뒤에서 살과 뼈가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몬스터는 움직임을 멈춰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바꾸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호성이 마치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윽고 이호성의 몸에 혈관이 돋아 오르며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의 머리카락 역시 새빨갛게 물들어 갔다.
바가지가 화들짝 놀라며 흠칫 어깨를 떨었다.
꼼짝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호성이 재생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온몸에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이호성은 마치 좀비처럼 일어났고, 그의 배에 뚫려 있던 구멍은 순식간에 복원을 거치고 있었다.
두 눈은 핏빛으로 가득 차 있고, 입 아래로는 침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침은 바닥을 부식시켜 연기를 피워 올릴 정도였다.
몸은 근육이 커지면서 덩치가 두 배는 불어나 있었으며, 신체에서 발화되는 오러의 열기로 투기가 솟구쳐 올랐다.
“크와아아아아아!”
이호성이 마치 포효하듯 짐승처럼 소리 질렀다.
당황한 몬스터는 이호성이 완벽한 재생을 이루기 전에 공격을 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굳은 몸이 풀린 바가지가 흑마법을 캐스팅했다.
검은 연기가 마치 밧줄처럼 몬스터의 하체를 묶었다.
몬스터가 바가지에 의해 묶여 버린 사이, 이호성이 폭발적인 속도로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새하얀 검신의 자태를 가지고 있던 이호성의 무기.
데스나이트의 검.
그 검은 담금질된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마치 용암과도 같은 쇳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아아아!”
이호성이 휘두르는 시뻘건 데스나이트의 검이 몬스터의 오른쪽 가슴부터 옆구리까지 내리그어졌다.
서걱!
살을 잘라 내는 소리와 동시에 몬스터의 상처 부위에서 불꽃이 폭발하는 듯한 대미지가 터졌다.
퍼엉! 펑! 퍼어엉!
몬스터는 허공을 날며 팽이처럼 돌다가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이호성은 그대로 달려가 지면을 박차고 뛰어 역수로 잡은 데스나이트의 검을 몬스터의 몸통에 박아 넣었다.
푸부북!
[헬 파이어 발동]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으로 검은 연기와 불꽃이 섞인 폭발이 사방을 휩쓸었다.
연기가 사라지고, 바가지의 시야에 전투의 결과가 보였다.
몬스터는 잿더미가 되어 서서히 파편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이템이 떨어져 내렸다.
“와…… 세다, 똥개.”
바가지가 진심으로 감탄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온몸에서 새빨간 열기를 뿜어내며 근육질의 뒤태를 보이고 있던 이호성이 천천히 바가지를 돌아보았다.
몬스터를 쓰러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호성의 두 눈은 여전히 마인처럼 새빨간 핏빛으로 가득했다.
“헐……?”
바가지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크으으아아아아아아!”
이호성이 괴물 같은 괴성을 지르며 데스나이트의 검을 치켜들어 바가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악! 똥개가 미쳤어!”
바가지가 그림자 보드를 타고 달아났다.
그런 바가지를 향해 이호성이 폭발적인 스피드로 뒤쫓았다.
순식간에 바가지의 등 뒤에 이른 이호성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바가지에게 내려치기 직전.
스르륵!
그가 눈을 감으며 이내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가지는 놀람이 가득한 검은 눈으로 그런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 * *
끔벅끔벅.
이호성은 눈을 깜빡였다.
천장에 그려진 마인의 벽화가 보였다.
나 죽은 거 아니었나?
이호성은 슬쩍 상체를 일으켜 보았다.
생각보다 몸이 멀쩡해서 이상했다.
옷이 찢어진 사이로 복부가 보였다.
자신의 복부에는 몬스터에게 당했던 커다란 흉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기로, 자신은 몬스터에 의해 배가 관통당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완벽히 회복되고 흉터밖에 없는 거지?
의아하게 생각하던 이호성은 옆을 보았다.
벽에 등을 댄 채 잔뜩 경계하고 있는 바가지가 보였다.
“야, 바가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 왜 살아 있냐?”
바가지는 여전히 불신이 가득한 검은 눈길로 이호성을 보았다.
“똥개. 정신 돌아온 거야?”
“뭔 소리야, 이게?”
바가지는 이호성이 의식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호성은 깜짝 놀란 얼굴로 콧구멍과 입을 크게 벌렸다.
“뭐? 내가 그랬다고? 그리고 너도 공격했다고?”
이호성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말하자 바가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이게 각성한 버서커 특성이었구나.”
“그럼 똥개. 광견병 걸렸어? 미친개 되는 거야?”
“헛소리 하지 마, 해골바가지야.”
이호성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얼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 순간 번뜩! 하고 뭔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시간! 시간 얼마나 지났어?”
이호성이 다급하게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된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다.
“야! 네가 먼저 헌터님한테 가야 할 거 아니야!”
바가지가 이호성을 보며 한숨 쉬었다.
“네가 템 창에 도시락 넣어 놨잖아!”
“아……!”
이호성이 침음을 삼켰다.
“그, 그랬구나…… 어, 어쨌든 빨리 가자.”
이호성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죽다 살아났음에도 불구하고, 강민성이 명령한 시간 안에 도시락을 배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는 이호성이었다.
* * *
민성은 자고 있었다.
어떻게 마인의 탑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걸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인간이다.
“헌터님?”
이호성의 부름에 계단에 누워 있던 민성이 천천히 눈을 떴다.
민성은 상체를 일으키며 바가지가 들고 있는 도시락을 가져오라고 조용히 손짓했다.
바가지가 탁탁 뛰어가 도시락을 넘겨주었다.
“늦은 것 같은데.”
민성이 흘리듯이 툭 말했다.
이호성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사이, 바가지가 설명을 했다.
왜 늦었는지에 대해서.
“죄송합니다. 헌터님.”
이호성이 꾸벅 머리를 숙였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성은 비닐 안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도시락 내용물은 흐트러짐 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급하게 구해 온 도시락치고는 훌륭했다.
아니,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만한 도시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