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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05화 (105/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05화>

* * *

“헉! 헉! 헉!”

이제 겨우 5층으로 내려왔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급해서인지 벌써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는 가운데.

“으으, 어지러워.”

이호성이 손에 들고 뛴 탓에 바가지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이호성은 잠깐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너도 뛸 수 있지?”

이호성이 바가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지럼증에 비틀비틀하던 바가지가 이호성을 향해 검은 눈을 부라렸다.

“주인님이 시키면 빨리 가면 될 것이지! 너 때문에 나까지 고생이잖아, 이 멍청한 똥개야!”

“뭐? 똥개!? 이게 진짜-!”

이호성은 홧김에 바가지를 걷어차려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야야, 우리끼리 이럴 시간 없어. 1시간 안에 도시락을 가져와야 한다고. 나 먼저 간다.”

이호성이 바가지를 두고 먼저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바가지가 숨차게 뛰고 있는 이호성을 앞질렀다.

“헉, 헉! 뭐야? 바가지, 저거- 왜 이렇게 빨라?”

이호성이 앞서 가는 바가지를 보며 놀란 얼굴로 입을 벌렸다.

바가지는 새로운 스킬인 것인지, 검은 그림자를 타고 마치 빙상 위에 있는 것처럼 미끄러지듯 앞서 가고 있었다.

“아, X발. 부럽다. 어우, 숨차!”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서 가는 바가지를 부러운 듯이 보던 이호성은-

미끄덩!

“억!?”

발이 미끄러지며 허공에 떠 버리고 말았다.

쿵!

허리부터 떨어져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아,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미끄러워?”

이호성은 인상을 쓰며 축축한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내 그 축축한 무언가가 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피잖아. 피……?”

몸에 흥건하게 묻은 피를 불쾌하게 털어 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뭔 피가 이렇게 많지?

이곳 4층을 지난 뒤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르지 않은 피라니.

마인의 피라서 그런 건가?

“아, 몰라.”

이럴 때가 아니다.

젠장! 시간이 없어.

그리고 어쩐지 바가지가 없으니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꼭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호성은 앞서간 바가지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질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

“칵칵칵!”

바가지가 1층 마탑 입구에서 허리에 양손을 얹고 승리자인 것처럼 웃어 댔다.

“헉……! 헉! 헉! 헉!”

이호성은 충혈된 눈으로 바가지를 쏘아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스킬 써서 빨리 간 주제에 잘난 척이야.”

“칵칵칵! 똥개 역시 느리다. 칵칵칵!”

바가지가 배를 잡고 넘어갈 듯이 웃어 댔다.

“재밌냐? 재밌어? 그리고 너 물속에 들어가 본 적 없지?”

순간 이호성이 마인처럼 웃었다.

바가지는 웃음을 멈추고 흐릿해진 검은 안광으로 이호성을 보며 입을 벌렸다.

“수영은 할 줄 아냐? 이 뼈다귀야. 너 분명 그냥 물속에 잠겨 버리고 말걸? 네가 스킬이 있어 봤자 날아다니는 스킬까지는 없을 거 아니야.”

“너한테 붙어 가면 되지.”

“누가 너 같은 거 달고 가 준대? 누구 좋으라고?”

“치사해, 똥개!”

“뼈다귀니까 숨은 안 쉬어도 될 테고. 이리저리 물속에서 떠밀리다 뒈져 버려라, 크크큭!”

이호성이 승리의 미소를 던지며 먼저 마탑 입구로 몸을 던졌다.

바가지가 화들짝 놀라며 그런 이호성을 뒤쫓았다.

* * *

첨벙! 첨벙!

이호성은 시간 안에 강민성의 도시락을 배달하기 위해 엄청난 파워로 파도를 뚫으며 수영을 했다.

물론 마음만큼 속도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가지가 혼자 고생할 생각을 하니 힘이 솟았다.

근데 이 자식…… 진짜 가라앉아서 물속에서 미아가 되거나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런 이호성의 걱정은 같잖은 기우에 불과했다.

“칵칵칵!”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리자 이호성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보았다.

촤아악!

그곳엔 바가지가 그림자를 보트 삼아 타면서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칵칵칵!”

바가지는 웃음을 터트리며 헤엄을 치고 있는 이호성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바닷물이 튀어 이호성의 얼굴로 끼얹어졌다.

“젠장!”

자유자재로 바다를 거니는 바가지를 보며 이호성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똥개, 안녕-”

바가지가 순식간에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호성은 잠시 수영을 멈추고 퀭한 눈으로 그런 바가지를 바라보았다.

* * *

“보트 좀 가져오지, 망할 바가지 놈.”

이호성은 투덜거리며 뭍으로 올라와 물기를 쭉 짜냈다.

미역처럼 젖은 머리를 짤 때, 바가지가 아장아장 뛰어와 칵칵 웃었다.

이호성은 발로 바가지를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차량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때.

“잠깐.”

누군가 이호성의 걸음을 막아섰다.

이호성은 얼굴에 묻은 물기를 손바닥으로 닦아 내며 대각선에 비스듬히 선 사내를 보았다.

이곳 집결지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미국 헌터 같았다.

“탑에서 혼자 나온 겁니까?”

사내가 물었다.

이호성은 차고 있던 랭귀지 워치를 작동시켰다.

강민성의 랭귀지 워치에 비하면 수준이 한참 떨어지지만, 그래도 가성비가 좋은 제품으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요?”

이호성이 영어로 되물었다.

“탑 안으로 조사단이 들어갔을 텐데, 보지 못했습니까?”

이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요. 먼저 내려가던데요?”

사내의 얼굴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먼저 내려갔다니…… 조사단은 아직 복귀하지 않았습니다만?”

이호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 쪽을 의심하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사내는 이호성의 몸을 주의 깊게 훑었다.

“그럼 탑 안에 들어간 헌터 중 한 명. 그는 아직 탑 안에 있는 건가요? 왜 그 혼자 탑에 남은 거죠?”

이호성은 취조라도 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도시락을 배달해야 하니까.”

이호성이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대답했다.

그에 사내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락?”

“그래요. 빨리 갖다 줘야 하니까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마세요. 급하다고 진짜.”

이호성은 서둘러 차량으로 움직였다.

사내는 멀어지는 이호성과 바가지를 지켜보다가 집결지 회의 천막장으로 이동했다.

* * *

부하의 보고를 듣고, 천막 안에 있는 헌터장들은 여러 가지 감정이 생겨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호성이 탑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는 조사단이 먼저 내려갔다고 했고, 조사단은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불어 저 무시무시한 탑으로 도시락을 배달 간다는 이호성의 말 역시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정말…….”

미국 헌터 마스터 에단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먹을 콱 말아 쥐었다.

저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탑을 어디서 나타난지도 모를 한국 헌터가 뚫고 있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고, 조사단의 행적이 끊긴 것도, 도시락을 배달한다는 얘기도 하나같이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에단은 거친 눈길로 부하를 쏘아보았다.

“이호성이라는 놈이 돌아오면 다시 탑에서의 행적에 대해 소상히 알아봐라.”

에단의 명령에 부하가 인사를 올리고 나갔다.

헌터장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에단.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여기서 죽 치고 있는 것보단 우리가 직접 탑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상 탑을 돌파할 수 있는 건 현재 강민성이라는 한국의 헌터 한 명뿐이오.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헌터와 함께 탑에 대한 정보라도 얻어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소만.”

“이대로 있어 봐야 탁상공론밖에 되지 않는 일. 외려 이렇게 두고만 보다가는 저 귀중한 헌터를 잃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그를 서포터해서…….”

그에 에단이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주도권은 모두 한국이라는 소국에 넘어가게 될 거요.”

에단의 말에 잠시 회의장 안에 침묵이 돌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길지 않았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인류의 위협이 될 탑을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동의합니다. 어차피 세계 정사의 실권은 중국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탑으로 따라 들어가 그를 서포터해야만 합니다.”

“어차피 강민성이라는 자가 아니면 답도 없는 상황 아니오?”

헌터장들이 하나둘 소리를 높이자, 에단은 그만하자는 신호로 손을 살짝 들었다.

“생각을 조금 더 해 봅시다.”

에단은 한국의 졸개가 되고자 하는 헌터장들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강민성이라는 놈을 탑 안에서 서포터하게 되면, 그토록 무시했던 한국이라는 나라가 실권을 휘두르려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실권의 영역 아래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나라, 미국이었다.

물론 이미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한국의 강세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적어도 시간은 벌어야 했다.

한국으로부터 휘둘리게 될 미국의 위치를 뒤집을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이 필요하다.

에단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 * *

워프 게이트 부근에 위치한 상가에 도착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이라고 해 봐야 이호성밖에 없었지만, 나라에서 지원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워프 게이트 근처에는 의외로 꽤 다양한 가게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이호성이 필요로 했던 도시락을 파는 곳도 있었다.

“포장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알바생이 도시락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이호성은 그 비닐을 받고 곧바로 차로 돌아와 운전석에 탔다.

그는 스트레스가 오른 얼굴로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조수석에서 춤을 추고 있는 바가지를 보다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이호성이 음악을 뚝 끄고 바가지를 보았다.

음악이 끊겼음에도 바가지는 여전히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신났냐? 놀러 나왔어?”

바가지가 조수석 바닥에 철퍽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출발해, 똥개.”

“저게 진짜 말끝마다……. 어휴, 늙는다, 늙어. 너 내가 시간이 없어서 봐준다.”

“너 나랑 붙으면 죽을 텐데.”

바가지가 고개를 드르륵 돌려 검은 불길이 타오르는 안광으로 이호성을 보며 말했다.

그에 이호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도시락이 든 비닐봉지를 바가지에게 떠넘겼다.

“이거나 잘 들고 있어. 늦으면 안 되니까.”

도시락 배달 임무의 중요성에 대해선 바가지도 동의하는 바였기 때문에 말없이 이호성이 준 비닐봉지를 꽉 붙잡았다.

그러다 이호성을 보았다.

“근데 이거 템 창에 넣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아하?”

“우리 똥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구나.”

“닥쳐.”

이호성은 도시락을 템 창에 넣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조금 빠듯할 듯싶어 이호성은 액셀을 깊게 밟았다.

차가 빠르게 나아가자 옆에서 바가지가 재밌다는 듯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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