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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04화 (104/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04화>

* * *

“조사단장님.”

부하의 부름에, 조사단의 장을 맡은 마이크가 사색에서 깨어났다.

그는 조금 커진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조사단 헌터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명령권은 자신에게 있었고, 계속 탑 안으로 들어갈지 그만 복귀할지 선택을 해야 할 때였다.

마이크는 무거운 표정으로 좌중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임무는 끝났다. 돌아간다.”

마이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조사단 헌터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민성이 앞서간 방향을 한 번씩 보았다.

조사단 헌터들의 눈빛은 마치 미지의 영역을 좇는 듯했다.

마이크도 민성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어둠이 잔뜩 서려 있었다.

걸음을 옮기는 사이, 마이크의 등 뒤에서 조사단 헌터들의 대화가 오갔다.

“한국의 헌터라고 하던데. 정말 강하군.”

“어떻게 그렇게 작은 나라에서 저런 헌터가…….”

“말이 안 돼……. 월드 헌터도 몬스터 하나에게 도륙을 당하다시피 했는데. 인간이긴 한 건가?”

“믿을 수가 없군.”

마이크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은 동료들을 지키거나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힘을 합했음에도, 이 탑에 대한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헌터 한 명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그것도 단신으로.

이 사실을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에게 보고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탑에 대한 주도권은 모두 한국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고, 레이드에서도 민폐만 끼치는 허접한 소국이라 여겼던 한국이 헌터계에서 최고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세상일 한 치 앞을 모른다지만, 정말…… 기가 막히는군.’

마이크가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지을 때, 문득 발소리가 들렸다.

……?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탑 내부가 어두워 발자국 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렸다.

몬스터?

그 소리에 마이크를 비롯한 조사단 헌터들의 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만약 마인급의 몬스터라면 살아남기가 불가능할 터.

동공이 커지고 온몸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숨조차 쉬기 어려운 긴장이 지속되던 가운데, 발자국 소리의 주인이 가까워지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를 쓴 남자였다.

전신을 가리는 회색 로브에 오른손에는 커다란 박도를 들고 있다.

헌터였군.

다행히 몬스터가 아니었어.

조사단 헌터들은 몬스터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 듯 긴 숨을 푸우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이크는 로브의 사내를 보며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

몬스터가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누구지?

“집결지에서 온 헌터십니까?”

마이크가 그와 거리를 줄이며 예의를 담아 물었다.

그에 로브의 사내가 미약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일순 로브에 가려진 얼굴이 드러났다.

길게 난 흉측한 상처로 인해 감겨 있는 한쪽 눈.

그리고 그 반대로 떠져 있는 눈에는 서슬이 생겼다.

심장이 철렁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났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집결지 헌터가 아니야!

마이크가 놀란 얼굴로 황급히 입을 떼려는 순간, 그보다 더 빨리 로브의 사내의 박도가 움직였다.

높게 올라간 박도가 마이크의 앞가슴을 베어 냈다.

감히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마이크의 갑옷이 깨지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

마이크가 힘 빠진 신음 소리를 내며 의문이 담긴 눈으로 로브의 사내를 보다가, 철퍽 무릎을 꿇고 앞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 것처럼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보던 조사단의 헌터들이 일제히 분노에 찬 얼굴로 로브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조사단장님!”

미국 헌터들이 마이크를 부르며 달려가 치료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미국 헌터들은 눈물을 머금었고, 타국의 헌터들은 긴장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로브의 사내를 쏘아보며 병장기를 바짝 들었다.

“너 뭐야? 뭐냐고!”

조사단 헌터 한 명이 소리쳤고, 다른 이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로브의 사내는 무감정한 얼굴로 천천히 그들에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단칼에 조사단장 마이크를 베어 버린 헌터다.

조사단 헌터들은 로브의 사내가 다가옴에 따라 뒷걸음을 쳤다.

마이크가 죽음으로써 남은 인원은 아홉.

그럼에도 조사단 헌터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로브의 사내를 향해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 가운데, 마이크의 부하였던 한 미국 헌터가 분노에 찬 얼굴로 로브의 사내를 향해 달려갔다.

검을 들고 휘두르기 직전.

서걱!

로브의 사내가 쥐고 있는 박도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미국 헌터의 머리를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목이 잘린 미국 헌터의 몸체가 바닥에 전봇대처럼 넘어가고, 공중에 뜬 머리는 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로브의 사내는 제대로 된 준비 동작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여유를 대변했고, 이에 따라 조사단 헌터들은 공포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탑 안이다.

그를 상대로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씩 제거당하는 것보다는 조사단 전원이 한 번에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생각은 남은 8명의 조사단 헌터들 공통의 생각이었다.

눈짓을 주고받은 조사단 헌터들이 무기를 들고 주변으로 퍼져 일시에 공격에 들어갔다.

스킬 효과가 번쩍이며 로브의 사내를 향해 검기가 몰아쳤다.

그러나 로브의 사내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검기가 근처에 올 때까지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기에 베이기 직전.

츠팟!

로브의 사내는 마치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타깃을 잃어버린 조사단 헌터들이 당황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필 때.

서걱! 서걱!

살과 뼈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로브의 사내는 조용하고 빨랐으며, 단단한 갑옷과 방어 스킬도 손쉽게 무너트렸다.

조사단 헌터들의 눈에 로브의 사내는 탑 안에서 만났던 몬스터들과 다를 바 없는 괴물이었다.

“비, 빌어먹을.”

“제기랄!”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실감한 조사단 헌터들의 얼굴에 눈물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눈물은 순수하게 죽음을 앞둔 공포였다.

조사단 헌터들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그저 로브의 사내가 조사단 헌터들을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로브의 사내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남은 헌터들을 죽여 갔다.

로브의 사내의 무기, 박도가 궤적을 그리면 어김없이 헌터들의 목숨이 날아갔다.

서걱!

마지막으로 남은 조사단 헌터가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뒤로 철퍽 넘어갔다.

로브의 사내는 피로 물든 박도를 들고 원형 형태로 죽어 있는 조사단 헌터들을 훑어보았다.

이어 그는 고개를 들어 민성이 있을 방향을 어두운 눈으로 길게 보았다.

그러다 곧 시선을 거두며, 템 창에 피가 뚝뚝 흐르는 박도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시체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핏자국을 남기며, 시체가 바닥을 쓰는 소리만이 허공 속에 울려 퍼졌다.

* * *

“……벌써 7층이네요.”

이호성이 7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입구를 보며 멍하니 말했다.

마인은 물론이고 악몽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몬스터들을 처치하면서 7층 입구 앞에까지 이르렀다.

“이호성.”

“네, 헌터님.”

탑 입구를 보던 이호성이 민성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민성이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

이호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민성을 보았다.

“도시락 좀 갖고 와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호성은 순간 이해를 하지 못하여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내려갔다가 다시 오기 귀찮으니까, 네가 배달하라고.”

순간 머리 위로 벼락을 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민성은 치킨 배달 주문이라도 한 사람처럼 편안하게 계단에 누웠다.

이호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내려가다가 몬스터나 마인이 나타나면 어쩌죠!?”

“몰라.”

민성이 관심 없다는 듯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

‘야, 이 개새X야……. 그렇게 나 몰라라 하지 말라고, 제발!’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입 밖으로는 그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기 헌터님……. 가다가 제가 죽는 건 괜찮지만, 만약 제가 죽는다면…… 배달은 배달대로 안 돼서 헌터님 배가 엄청 고프실 텐데요.”

그에 민성이 주머니 안에 꽁꽁 숨어 있는 바가지를 꺼내서 이호성에게 던졌다.

바가지가 팽그르르 돌아 이호성의 품에 폭 안겼다.

“둘이 갔다 와. 1시간 준다.”

이호성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1시간이라니…….

이호성은 자신의 가슴팍에 안겨 있는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바가지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 검은 눈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제한 시간 1시간의 미션.

이미 명령은 떨어졌다.

민성의 명령은 거스를 수 없다.

그건 지금까지 그를 겪어옴으로써 이미 체득한 부분.

‘빌어먹을.’

이호성은 바가지를 한 손에 들고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반면 계단에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의 표정은 마치 고급 침대에 누워 있는 것만큼이나 편안했다.

어슴푸레한 빛이 민성을 비추었다.

마인의 탑 안에서, 계단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민성의 모습은 마치 그림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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