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03화>
에단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숨을 쉬기조차 어려워졌다.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에단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민성의 시선을 받아 내다가 이내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무, 무례를 용서하시오.”
그에 민성이 어깨로 에단을 쿵 치고 지나갔다.
에단은 휘청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단순히 어깨가 부딪쳤을 뿐임에도 에단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부하가 놀란 얼굴로 에단의 표정을 살폈다.
민성이 탑의 방향으로 향해 걸어가자, 수백의 헌터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에단은 탑으로 향하고 있는 민성의 뒷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당장…… 조사단은 저 한국의 헌터들을 따라가 정체를 확인토록 하라.”
* * *
김지유가 마인의 탑으로 가는 민성을 따라가려 했지만, 민성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어린애처럼 굴지 마라. 방해만 될 뿐이다.”
그 말에 김지유는 더 이상 할 말을 할 수가 없는 듯 그저 무겁게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이호성은 민성을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헌터.
무려 에단을 눈빛으로 굴복시키다니.
이호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마인의 탑도 혼자 쓸어버리려고 하는 양반인데 오죽할까.
이호성은 짧게 혀를 차며 민성을 따라갔다.
오늘도 살아서 탑을 나올 수 있으려나?
가고 싶어하는 김지유와 달리, 늘 죽음을 걱정하는 이호성이었다.
* * *
조사단의 단장은 최초에 탑을 수색했던 마이크가 다시 맡게 됐다.
미국의 조사단 헌터들은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에, 타국 헌터들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함께 가겠다는 헌터들을 이끌고, 조사단장 마이크가 다시 탑으로 가기 위해 보트에 올랐다.
보트를 타고 가면서 마이크는 앞서 가고 있는 강민성과 이호성을 보며 혼란스러운 얼굴이 됐다.
“왜 보트가 아무렇지 않은 거지?”
그는 앞서 가고 있는 민성과 이호성이 타고 있는 보트를 보며 당혹스러워했다.
탑이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거칠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민성과 이호성이 타고 있는 보트는 흔들림 없이 아주 편안하게 탑으로 가고 있었다.
보트를 버려야 할 지점을 이미 훨씬 일찍 넘어선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보트는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반해 조사단이 타고 있는 보트들은 벌써부터 위태위태하게 바이킹처럼 흔들렸다.
“약속 지점이다. 다들 보트를 버려.”
조사단장 마이크가 명령을 내렸다.
헌터들이 앞서 가는 민성과 이호성의 보트를 보다가 뒤늦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사이 민성과 이호성은 탑 아래에서 이미 진입을 시작하고 있었다.
수영을 하던 각국의 조사단 헌터들이 그런 민성과 이호성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헤엄을 치느라 각국의 조사단 헌터들은 민성과 이호성보다 훨씬 늦게 탑에 들어가게 되었다.
때문에 1층에 도착했을 때 민성과 이호성의 모습은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벌써 멀어진 듯했다.
10명에 불과한 조사단들은 이미 탑의 공포를 경험해 봤기 때문에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조사에 임했다.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는 죽음의 공포가 눌려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헌터들의 시체가 보였다.
조사단은 용기를 가지고 전진을 계속했다.
한데 아무리 탑을 누벼도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1층은 확실히 비어 있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의 출입구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조사단 전체는 소름이 쫙 끼치는 걸 느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정말로 열려 있어…….”
마이크가 입구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문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간 건가?”
그는 조사단원들을 돌아본 후에 고개를 끄덕이곤 다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긴 나선형 계단을 타고 2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순간, 조사단은 일제히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조사단이 충격을 먹은 이유는 다름 아닌 몬스터가 죽은 흔적.
그 흔적이 남아 있어서다.
벽과 바닥에 몬스터의 피가 낭자했으며, 사방 여기저기에 몬스터의 살점이 널려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앞서 나간 이가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에, 조사단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조사단 중 카메라를 든 헌터가 그 흔적을 꼼꼼히 촬영했다.
마이크는 경외감이 서린 눈으로 민성이 지나갔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버리고 간 부하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 * *
쿵, 쿵, 쿵, 쿵, 쿵.
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
바닥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복도의 먼 끝 어둠 속에서, 수십 마리의 마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학!”
이호성과 바가지가 서로 기겁하는 얼굴로 민성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
“이제 좀 할 만하겠네.”
마인들을 보며 민성의 눈이 하얗게 번쩍였다.
민성의 오른손에 잡힌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꽈르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의 마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기는 마치 채찍처럼 휘어지며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듯 흉포하게 꿈틀거렸다.
격전을 앞두고 이호성과 바가지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사이 마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인지, 명령을 받은 것인지 소멸을 불사하고 민성을 향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민성의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뻗어져 나온 빛의 줄기가 마인들의 몸을 휩쓸고, 마인에게서 검은 마력의 힘이 민성을 향해 포격하듯 쏟아졌다.
콰광쾅쾅쾅, 콰아아앙!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리고 먼지가 솟았다.
이호성과 바가지는 그저 움츠린 채로 전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 * *
“……이게 무슨 소리지?”
조사단 헌터들은 위쪽에서 큰 소음이 나자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에 집중했다.
잠시 소리가 멈추는 듯했다가 폭음과도 같은 강렬한 소리가 벽을 뚫고 내려왔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부하 한 명이 말했다.
마이크는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조사단원들이 그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올라가나요?”
부하가 재촉하듯 물었다.
마이크는 여전히 위를 올려다보며 눈살을 구겼다.
“우리의 임무는 그가 정말로 플로어를 개방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1층이 클리어됐듯 2층도 분명 클리어가 됐을 거야. 최대한 빨리 3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라!”
조사단장 마이크가 외쳤다.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조사단원들은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 * *
마인이 입을 벌렸다.
그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일반적인 인간의 피부 정도는 삽시간에 녹여 버리는 검은 연기.
민성은 그 검은 연기를 가볍게 뚫고 마인의 이마에 오리하르콘 단검을 박아 넣었다.
푹!
단검이 머리에 박히자 마기의 폭발과 함께 마인의 머리가 터졌다.
민성이 다음 타깃의 마인에게 이동했다.
오리하르콘 단검이 일직선의 빛을 그었고, 그 빛의 선은 마인의 몸을 두 개로 분리시켰다.
피가 반달 모양으로 바닥에 쫙 퍼졌다.
민성은 하얗게 식은 눈으로 좀비 떼처럼 덤벼드는 마인들을 보며 오리하르콘 단검을 바닥에 박았다.
콰아아아아앙!
바닥이 깨지면서, 그 균열에서 마기의 힘이 솟구쳐 마인들에게 다발의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마기의 빛줄기가 마인들의 몸과 머리를 관통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마인들이 전진을 멈추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 * *
“……이, 이게 대체!”
마이크가 3층의 광경을 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충격을 먹은 건 조사단 헌터들 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탑 3층에 엄청난 양의 피가 퍼져 있는 걸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보면서도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온통 피로 가득한 공간에서 헌터들은 거대한 중압감에 사로잡혔다.
“그만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조사단 부단장이 말했다.
부단장의 말에 마이크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확인을 끝마쳐야 한다. 우리 조사 임무는 앞서 들어간 저 두 남자가 정말 탑을 클리어했는지를 확인하는 일. 우리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진한다.”
마이크의 말에 조사단 헌터들이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 * *
분명 전투를 치르고 있을 테니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조사단은 좀처럼 앞서 나간 두 명의 헌터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투 중일 것이 분명한 소리들이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조사단은 침착히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갔다.
무작정 속도를 내지는 않았다.
만약 남아 있는 몬스터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조사단이 몰살당하는 건 확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전진하는 데 있어 조심에 조심을 더했다.
그리고 약 10여 분이 흘렀을 때, 마침내 조사단은 먼저 탑에 들어간 두 헌터.
강민성과 이호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사단은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 어려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단 한 마리의 마인에게 월드 헌터 전체가 몰살당할 뻔했다.
그런데 저 앞에 당당히 나서고 있는 사내는 혼자서 역으로 마인들을 몰아붙이고…… 아니, 죽이고, 아니…… 학살하고 있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마인들이 죽으면서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죽어 가는 그 소리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다.
짧디짧은, 성인의 팔목 길이 정도에 불과한 단검을 들고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이동하며 마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베어 내는 민성의 모습은 전신(戰神) 그 자체였다.
민성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조사단의 헌터들은 입을 벌린 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손으로 심장을 뜯어내고, 그것을 폭발시키며, 검으로 마인들을 마치 두부 잘라 내듯 베어 내며 휩쓸어 가는 모습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조사단은 알고 있었다.
마인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그렇기에, 강민성의 무력은 소름 끼칠 수밖에 없었다.
* * *
민성은 템 창에서 수건 하나를 꺼내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마인의 피 냄새는 질기고 강하다.
마치 살아 있는 거머리처럼이나 끈적끈적했다.
마계에서는 피를 닦을 시간조차 없었지만, 이럴 때면 현실에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피가 잔뜩 묻어난 수건을 바닥에 버리고 뒤를 흘깃 보았다.
조사단으로 보이는 외국인들 열 명 정도가 멍하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사이에는 이호성과 바가지도 끼어 있었다.
민성이 찌릿 시선을 주자, 이호성이 민성의 근처로 뛰어와 아이템을 줍기 시작했고 바가지는 주머니 속으로 뛰어들어 왔다.
민성은 조사단 헌터들을 잠시 응시하다가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