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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02화 (10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02화>

김지유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호성에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이호성 씨.”

“네?”

“탑에 대해서 얘기 좀 해 주세요. 이 사람은 어차피 물어도 잘 대답도 안 해 줄 것 같으니까.”

반짝거리는 김지유의 눈빛에 이호성은 민성의 눈치를 살폈다.

“말씀을 드려도 될지…….”

이호성이 자신 없이 말끝을 흐렸다.

“괜찮죠?”

김지유가 방긋 웃으며 민성을 보았다가 다시 이호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은가 봐요. 어서 말해 봐요.”

김지유가 재촉했다.

이호성은 잠깐 눈치를 더 살피다가 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웃고 있던 김지유의 표정은 설명을 들으면서 점점 굳어져 갔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듣게 되자 느낌이 사뭇 달랐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최상급의 헌터들이 학살당했다.

단 한 마리의 마인에게.

그런 마인을 강민성이 쓰러트렸다.

그 누구와도 아닌 혼자서.

단신으로.

그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김지유는 새삼스레 경외하는 시선으로 민성을 보았다.

그를 만났을 때, 그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웃음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계의 재앙이라고 할 만한 탑이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민성이라는 남자는 그 존재만으로 자신에게 안도감을 전해 주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를 대체할 수 있는 헌터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얼마나 남았어? 멀었나?”

민성이 눈을 뜨며 물었다.

“곧 도착합니다. 한 5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이호성이 액셀을 깊게 밟았다.

차량이 쏜살처럼 텅 빈 뉴욕 맨해튼의 도로를 질주했다.

* * *

“그게 사실이야?”

“그렇습니다.”

부하의 보고는 기가 막혔다.

멋대로 탑에 들어간 두 명의 정신 나간 이들이 살아서 돌아왔다.

그것도 3층의 불을 켠 채로.

그리고 한국의 중앙 기관 총군주가 그 두 남자와 함께 집결지를 벗어났다.

단순한 문제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김지유에게 연락을 해 보자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인 거야……?”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은 초조하게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 * *

민성은 워프 게이트를 타고 이호성이 보내 준 주소대로 한국의 식당에 도착했다.

민성이 자리에 앉자, 김지유가 민성의 맞은편에 앉았다.

메뉴판을 집어 고민 끝에 메뉴를 결정했다.

사실 이 고민은 차를 타고 워프 게이트를 타면서도 계속했던 고민이었다.

민성은 벨을 눌렀다.

“육회 비빔밥 하나.”

돌솥 비빔밥도 맛있어 보이지만, 돌솥 비빔밥의 경우 돌솥이 뜨겁기 때문에 육회가 익어 버린다.

때문에 제대로 된 육회 비빔밥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돌솥이 아닌 일반 육회 비빔밥으로 주문을 했다.

“저도 같은 걸로요.”

알바생이 메뉴판을 수거하고 인사 후 물러갔다.

김지유는 민성에게 물을 따라 주고 수저를 놓아 주었다.

“정말 놀랐어요. 민성 씨가 오랫동안 잠든 것도 그렇고, 깨어난 것도 그렇고. 탑 2층 플로어까지 클리어한 것도 그렇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놀라워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나라 헌터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김지유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아부는 집어치우고 본론을 꺼내.”

민성이 건조하게 말하자 김지유는 강민성답다는 듯 웃었다.

“사실…… 두려웠어요. 세계 유명 헌터들이 모두 모였지만, 탑을 처음으로 경험한 후로 절망적이었어요. 인류는 이제 끝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김지유가 마른침을 삼켰다.

“탑은 몇 층까지 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강한 몬스터들이 있는 걸까요. 물론 민성 씨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더더욱 잘 알게 됐지만, 아무래도 정보도 부족하고…….”

그에 민성은 피식 웃었다.

웃어 버린 민성을 보고 김지유는 의문이 담긴 시선을 그에게 보냈다.

그때,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육회 비빔밥 두 그릇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왜 웃었어요?”

“그냥.”

민성이 숟가락을 들면서 대답했다.

“말해 봐요. 사람 궁금하게.”

“그냥……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난리를 치는 게 웃겨서. 그래서 웃었을 뿐이다.”

김지유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요?”

“적어도 나한텐. 그리고 지금부터 밥 먹을 거니까 말 걸지 마라.”

민성이 식사를 시작했다.

* * *

육회 비빔밥의 그릇은 금빛의 유기그릇이었다.

그릇의 색감이 한층 더 음식 맛을 깊어 보이게 만든다.

민성은 숟가락을 들고 고추장을 덜어 육회 비빔밥을 삭삭 비볐다.

육회와 야채가 밥알과 함께 빨갛게 물들며 서로 섞여 나갔다.

비빔밥 역시 귀환 이후 처음 먹는다.

민성은 한 숟갈을 크게 떠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우물.

단맛과 매운맛이 빠르게 민성을 물들였다.

고추장의 양념 비율 배합은 기가 막혔다.

달짝지근한 비빔밥의 맛이 일품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육회 고기의 산뜻한 식감은 즐거운 기분을 끌어 올려 주었다.

푹신하게 씹히는 밥과 야채의 조합.

비빔밥은 이것이 바로 마성의 매력이지.

실로 폭력적인 맛이다.

비빔밥이 괜히 한국의 간판 음식이 아니다.

한국 전통의 힘이 입안에서 춤을 추듯 노는구나.

살짝 입안이 텁텁하다 싶은 순간, 콩나물국과 빨간 물김치를 먹으면 상쾌함이 두 배!

정말 기가 막힌 맛이다.

한 입. 두 입.

거침없이 들어간다.

그래, 비빔밥은 그래야지.

순식간에 유기그릇 속에 들어 있는 비빔밥이 줄어 갔고, 이내 민성은 숟가락으로 삭삭 긁어 마지막 밥알 하나까지 입안으로 훔쳐 냈다.

다 먹고 난 후에도 입안에 단맛이 그대로 기름칠된 것처럼 남아 있다.

더 먹고 싶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비빔밥은 이렇게 아쉬움이 남아야 훌륭한 마무리라고 민성은 생각했다.

그렇게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 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거창하지 않지만, 육회 비빔밥은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했다.

이호성의 메뉴 선택은 이번에도 역시 기가 막혔다.

* * *

식사를 마치고 워프 게이트로 돌아가는 길.

김지유는 말이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민성도 창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그 침묵에,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의 침묵 끝에.

김지유가 흘깃 민성을 보곤 입을 열었다.

“항상 차를 타면 창밖만 보네요.”

“…….”

“이유라도 있어요?”

민성은 여전히 창밖을 보며 숨을 깊게 마쉬었다가 내쉬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민성이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이 사라지게 만들지 않을 거다.”

김지유는 놀란 눈으로 민성을 보았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의외네요. 강민성 씨가 그런 말을 하니까.”

“…….”

“아닌가? 그 누구보다 지금의 세상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강민성 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차량이 워프 게이트 건물 앞에 도착했다.

민성은 바로 차에서 내려 먼저 건물로 걸어갔다.

김지유는 그런 민성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일관성 있는 남자라니까.”

* * *

이호성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결지로 돌아왔다.

차량이 집결지 안으로 들어오자 헌터들이 차량을 보며 웅성거렸다.

몇몇 사람들이 황급히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헌터장들 전체가 천막 안에서 나와 민성과 이호성, 그리고 김지유가 있는 차량 쪽으로 걸어왔다.

민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는 헌터장들을 보았다.

“아마 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강민성 씨가 누구인지. 이것저것 물어볼 거예요.”

김지유가 옆에서 불안한 듯 말을 이었다.

“마찰을 빚기보단 대화를 통해서…….”

철컥!

민성은 끝까지 듣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을 닫으며, 공격적인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는 헌터장들을 보았다.

총 7명이다.

그들 모두 헌터장임을 표시하는 뱃지를 달고 있었다.

이호성과 김지유도 뒤늦게 차량에서 내렸다.

김지유는 민성의 옆에 섰고, 이호성은 민성의 앞에 경호하듯 위치했다.

“탑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고 나온 거지?”

미국의 헌터 마스터 에단이 대표로 민성을 향해 물었다.

그 물음은 김지유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죽이고 나왔지.”

민성이 짧게 말했다.

통역사의 말에 에단의 눈이 커졌다.

“지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내게 그런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냐!”

에단이 노기 띤 얼굴이 되자 김지유가 나서서 중재했다.

“진정하세요, 에단. 이 남자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녀의 말에 에단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헌터장들의 표정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충격에 의해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하하하……!”

에단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이 두 명의 남자가 탑으로 들어가서 3층까지 불을 밝히고 왔다? 한국의 총군주. 당신은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거요?”

“그렇습니다.”

김지유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수백에 달하는 세계적인 헌터들이 공격대를 짜고 들어갔음에도 제대로 된 싸움조차 시작하지 못했소. 그런데 두 명의 헌터가 2 플로어를 공략했다? 지금 그 말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요?”

“믿은 안 믿든 사실을 전했을 뿐입니다.”

수많은 헌터들이 에단과 대치하고 있는 민성과 이호성, 그리고 김지유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요, 한국의 총군주.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유 말이오.”

김지유는 짧게 한숨 쉬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기 제 옆에 있는 이 헌터. 이 남자는 한국의 헌터이며, 탑을 클리어할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진 헌터입니다.”

백 명에 달하는 헌터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성에게로 꽂혔다.

“흥. 시험해 봐도 좋겠소이까?”

에단이 비웃음을 입가에 걸며 묻자, 김지유가 난처한 얼굴로 민성을 돌아보았다.

목을 삐딱하게 꺾어 에단을 보고 있던 민성은 천천히 에단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에단의 바로 코앞에 서서 그의 두 눈을 응시했다.

“해 봐. 그 시험.”

민성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근데…… 그 시험, 네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민성의 말에 순간 에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김지유가 달려왔다.

“우리끼리 이럴 필요 없어요.”

그녀가 에단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에단. 확인하고 싶다면 직접 조사단을 파견해서 탑을 확인하면 될 일이잖아요.”

에단이 민성을 노려보다가 부하를 불렀다.

“지금 당장 조사단을…….”

“아니.”

민성이 에단의 말을 잘랐다.

“계속해.”

민성이 서늘한 눈으로 에단의 두 눈을 보자 김지유는 초조한 표정이 되었다.

“민성 씨…….”

“입 닫아.”

단호하게 말한 민성은 조금 더 가까이 에단의 눈을 보았다.

“시험해 봐. 네 목을 걸고.”

민성이 가진 마기의 힘이 서서히 에단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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