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101화>
* * *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흘러나온 수십 개의 빛줄기가 마인 하나의 몸통을 관통했다.
“키에에에에에엑!”
마인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전봇대처럼 넘어갔다.
마인이 쓰러지자 이호성과 바가지는 마치 먹이를 먹기 위한 아기 사자들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죽어 가는 마인을 향해 이호성이 칼을 휘둘렀고, 바가지는 흑마법을 쏟아부었다.
그사이 민성은 마인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인이라고 해도 다 같은 마인이 아니다.
마인에도 등급이라는 게 있다.
지금 1층과 2층에서 해치운 마인은 하급에 지나지 않는다.
2층 마인이 1층 마인보다 조금 호전적인 성격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별달리 차이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자신이 마계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를 때쯤 만난 마인들은 이런 수준이 아니었다.
민성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올라가다 보면 그때 당시의 마인도 있을까?
그렇게 사념에 젖었다가 이호성과 바가지를 보았다.
“헉! 헉! 헉! 이 자식 왜 안 죽어?”
이호성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고, 바가지도 축 늘어진 채 힘없이 마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켜.”
민성의 말에 이호성과 바가지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마인을 보자 죽기는커녕 죽어 가던 몸이 재생되어 가고 있었다.
민성이 서늘한 눈으로 마인을 내려다보다가 오리하르콘 단검을 들어 집어 던졌다.
퍼어어어억!
바닥에 피가 쫙 퍼지며 마인의 눈이 흐릿해졌다.
죽기 직전의 상태.
“처리해.”
민성이 말했다.
이호성과 바가지가 동시에 총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불꽃놀이를 하듯 이호성의 검에서 붉은빛과 파란빛이 섞여들며 마인을 향한 공격이 쏟아졌다.
바가지는 암흑 계열의 흑마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민성은 이호성과 바가지를 보며 한숨을 쉴 뿐이었다.
마인은 시간이 지나면 죽을 정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죽지 않고 있었다.
약 10분이 흘렀을 때, 바가지의 검은 어둠이 마인의 몸 안에서 폭발했다.
펑!
[랜덤 대미지 폭발]
[‘바가지’가 마인을 처치하였습니다.]
“헉! 헉! 헉! 헉! 하악!”
이호성이 엎어지며 곧 토할 듯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바가지는 마력을 모두 소모해 흐느적거리다가 바닥에 철퍽 대(大)자로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쾅!
강렬한 이펙트 음향과 함께 바가지의 몸에서 광채와도 같은 황금빛이 번쩍였다.
* * *
[마법 인형 ‘바가지’ 레벨, 호칭, 스킬이 모두 초기화됩니다.]
[마법 인형 ‘바가지’의 공격력과 마법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마법 인형 ‘바가지’의 부활 능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새로운 특성 스킬이 대폭 추가됩니다.]
이호성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로 바가지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바가지의 레벨이 초기화되면서 사라졌다.
그 말인즉슨, 저 해골바가지가 기타 능력자의 범주에 들어섰다는 얘기였다.
조, 조, 존나 부럽다!
이호성은 부러움에 내장이 꼬이는 듯했다.
가뜩이나 레벨이 높던 자식이 이젠 기타 능력자까지 돼 버리다니…….
“칵칵칵칵칵칵칵!”
각성과 동시에 바가지는 마력을 모두 회복한 듯했다.
비실비실하게 다 죽어 가던 바가지가 벌떡 일어나 특유의 춤을 추었다.
온몸에 황금빛 광채를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바가지를 보면서, 이호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탈감을 느꼈다.
결국 난 마인에게 대미지를 넣지 못했던 건가?
제길!
이호성은 엎드린 채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자괴감에 몸부림 치고 있던 그때, 민성이 이호성의 엉덩이를 발로 툭툭 찼다.
이호성이 썩은 오징어 같은 얼굴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먹어라.”
그가 템을 던져 주며 말했다.
이호성은 민성이 던져 준 아이템을 덥석 받아 내려다보았다.
[응고된 마인의 피]
등급 : 신(God)
섭취 즉시 하급, 중급, 상급 마인의 특성 중 하나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마치 선지 해장국의 선지처럼 생겼다.
역한 냄새가 물씬 올라왔지만.
“맙소사, 갓 등급!?”
템의 등급이 굉장하다.
무려 갓 등급의 아이템이다.
갓. 갓. 갓.
신의 권능이 들어 있는 아이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섭취면 먹는 거겠지?
이호성은 바로 입을 크게 벌려 민성이 준 마인의 피를 몰캉몰캉 씹었다.
“윽……!”
마인의 역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로 뱉어 내고 싶을 정도로 역했으나, 이호성은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쉬며 응고된 마인의 피를 씹어 삼켰다.
꿀꺽-!
응고된 마인의 피를 먹은 바로 그 순간.
쿠궁!
[‘플레이어’ 이호성이 특성 진화 과정을 거칩니다.]
이호성의 신체에서 황금빛이 번쩍였다.
[이호성 플레이어가 패시브 특성 ‘버서커’를 습득했습니다. 치명적인 물리, 마법 피해 대미지를 입을 경우, 일시적으로 버서커로 진화합니다.]
결국 맞을수록 강해진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일시적으로.
이호성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되었다.
빌어먹을 내 팔자야. 줘도 꼭 이런 걸 주냐…….
하…… 운도 더럽게 없지.
이호성은 여전히 번쩍번쩍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바가지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전투 상태에 들어서면 저런 모습인 건가.
금빛의 해골바가지라.
간지 나네…….
그에 반해 자신은 버서커.
비교가 좀 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거라도 감사해야지.
부럽다, X발.
이호성이 바가지를 부럽게 보고 있는 사이, 민성은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인이 죽자 3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의 출입문이 열렸지만, 민성은 올라가지 않고 양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계단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이호성이 민성의 옆에 섰다.
“헌터님, 안 올라가십……?”
꼬르륵.
민성의 배에서 난 소리에 이호성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시죠.”
민성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 * *
탑에서 나오자마자 민성은 이기어검술로 멀리 떨어져 있는 보트를 끌어당겼다.
보트가 중력을 거스르며 쾌속으로 날아왔다.
그 덕분에 민성과 이호성은 물에 빠지지 않고 보트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호성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는 듯 보트와 민성을 번갈아 보았다.
“시동 걸어.”
보트를 출발시켰다.
민성과 이호성이 탄 보트가 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우르르, 쾅쾅!
벼락이 치고 거친 파도가 일렁였지만.
민성의 보트 주변은 마치 잔잔한 해수면처럼 편안했다.
“이호성.”
“네, 헌터님.”
“넌 수영해서 와.”
“예?”
민성이 발로 이호성의 등을 밀어 찼다.
“억!”
풍덩!
“어푸! 왜, 왜 이러세요, 헌터님!”
“언제 밥값 할래?”
민성이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듯 물에 빠져 있는 이호성을 보며 보트를 타고 멀어졌다.
* * *
이호성이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 사이, 물기 한 방울 묻지 않은 민성은 넋 나간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집결지의 헌터들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근처의 바위에 앉아 이호성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뭍으로 도착하면 곧장 식사를 하러 갈 생각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시간이 좀 흐른 데다, 마인을 죽이는 데 힘을 써서 그런지 배가 꽤 고팠다.
- 빨리 와.
민성이 음성을 날렸다.
전음(傳音).
민성의 목소리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이호성의 머릿속으로 탑 주변의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 * *
민성의 전음을 듣자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호성은 이를 악물고 헤엄 쳤다.
“헉! 헉! 미X 새X! 미X 새!”
이호성은 욕을 하면서 전속력으로 헤엄쳤다.
그나저나…….
헤엄을 치면서도 강민성의 신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러로 보트를 조종하다니.
저게 인간이냐, X발.
“어푸! 어푸!”
수영을 하며 체력이 빠지면 빠질수록 이상하게도 힘이 점점 차오르는 걸 느꼈다.
이거 버서커 특성 때문인 건가?
신기하네.
이호성은 지칠 만하면 조금씩 차오르는 힘에, 전력으로 수영하며 뭍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바다에서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뛰어 민성의 앞에 섰다.
“도착했습니다, 헌터님. 헉! 헉!”
“뭐가 좋겠어?”
머리에 묻은 물기를 쭈르륵 짜내던 이호성이 민성의 물음에 입을 열었다.
“아, 식사요? 당기는 장르는 없으시고요?”
민성은 먹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결단을 내린 듯 이호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식.”
민성이 ‘한식’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이호성이 젖은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럼 워프 게이트 타고 한국으로 가서 드시죠. 어차피 여기 맨해튼이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서 영업 중인 식당을 찾기가 힘들 겁니다.”
“메뉴는?”
“육회 비빔밥. 한 끼 식사로 꽤 든든하실 겁니다. 돌솥 육회 비빔밥도 있으니까, 메뉴는 취향대로 고르시면 될 거고요.”
이호성이 휴대폰을 꺼냈다.
요즘 휴대폰은 모두 방수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바다를 건넜음에도 휴대폰은 지장 없이 작동이 가능했다.
“주소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워프 게이트가 서울에 있으니까, 가까운 쪽으로 알아봐 드릴까요?”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이호성은 마치 기계처럼 빠르게 맛집을 찾아내 민성의 휴대폰으로 주소를 전송했다.
민성이 자고 있는 동안 이호성은 맛집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주소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헌터님을 워프 게이트까지 모시고,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출발하자.”
민성이 바위에서 일어났다.
“강민성 씨!”
막 떠나려던 그때,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는 김지유가 보였다.
“역시 돌아왔네요.”
그녀가 자신보다 키가 큰 민성을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진심으로 민성이 깨어난 것에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가까이서 보는 김지유의 얼굴은 마치 뛰어난 예술가의 조각품처럼 보였다.
문제는 민성이 여자를 미술품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거지만.
“밥 먹고 와서 다시 들어갈 거니까, 걸리적거리는 것들 없게 해.”
“탑 3층까지 불이 켜졌어요. 설마 민성 씨가 3층까지 올라간 거예요?”
“그래.”
민성이 대충 대답하곤 이호성에게 신호를 주며 움직였다.
김지유는 민성의 옆으로 따라 걸으며 시선을 고정시켰다.
“같이 가요. 할 얘기가 많아요.”
민성은 그녀를 무시하다시피 하며 차량으로 걸어갔다.
* * *
이호성이 운전대를 잡자 민성은 뒷좌석에 탔다.
김지유는 민성의 옆자리에 앉았다.
차가 출발했다.
민성은 창밖을 보고 있었고, 김지유의 시선은 계속해서 민성에게 머물러 있었다.
민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김지유를 돌아보았다.
신경 쓰인다는 듯이 노려보자 그녀가 그저 천사같이 웃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미소였다.
“왜.”
“그냥요.”
그 대답에 민성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