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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100화 (100/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100화>

* * *

민성은 걷고 또 걸었다.

마치 꿈에서 새하얀 공간을 계속해서 걸었던 느낌과 비슷했다.

그러고 보면 그 꿈은 뭐였지?

꿈은 생생했다.

마치 현실처럼.

대체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꿈속의 그놈은 누구일까?

단순한 꿈으로 치부하기엔 뭔가 마음에 걸렸다.

일주일이나 잠이 든 것도 충분히 이상했다.

민성은 미간을 구부리다가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더 생각해 봐야 답을 찾을 수 없을 일이었다.

계속해서 움직이며 탑 안을 구경했다.

미술관에라도 온 것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편안하게 걷고 있었지만, 탑을 보면 볼수록 마인들의 취미에 역겨움이 밀려왔다.

벽에는 온통 마인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마인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도 보였다.

민성은 발로 그 조각상을 밀어 찼다.

조각상이 민성의 발길질에 우르르! 무너졌다.

이호성은 그 광경을 보며 얼굴이 해쓱해졌다.

“왜, 왜 그러세요.”

이호성이 무섭다는 듯이 말했다.

“꼴 보기 싫잖아.”

민성이 다시 마인을 찾기 위해 감각을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펼치며 걸었다.

그때, 감각에 뭔가가 걸려들었다.

먹잇감이 서서히 자신의 거미줄을 타고 이동해 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민성이 제자리에 서서 미동이 없자, 이호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민성을 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사아아아악!

마치 종이가 예리한 칼날에 베이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마인이 어둠을 가르고 나타났다.

“헙!”

이호성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뒷걸음질 쳤다.

일전에 마인을 만난 적이 있다.

납치를 당했고, 고문을 당했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이호성의 몸을 꽁꽁 옭아매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 즉시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마인의 모습은 이호성에게 있어 공포 그 자체였다.

민성의 등 뒤로 숨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반명 민성은 조용히 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냈다.

오리하르콘 단검의 날이, 탑 안에 있는 어슴푸레한 달빛과도 같은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묻겠습니다. 당신이 ‘검은 학살자’입니까?”

마인 보더러가 물었다.

“그래.”

민성이 솔직하게 답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사실을 확인하자, 마인 보더러의 동공은 격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고대의 전설처럼 들려오던 검은 학살자를 눈앞에서 만나게 된 마인 보더러는 그 사실만으로도 거친 호흡을 흘렸다.

“더 할 말 없으면-”

“검은 학살자님.”

“……?”

마인 보더러가 천천히 민성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아래로 조아렸다.

“검은 학살자님이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고자 하시면 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 * *

마인 보더러의 말에 이호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 세계 최고의 헌터들이 마인의 탑 1층에 들어섰지만, 그들은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그 모든 원인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마인 보더러에게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게 강한 몬스터인 마인 보더러 가 지금 민성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강민성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무릎을 꿇고 길을 열겠다고 한 것이다.

이호성은 새삼 강민성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새롭게 체감되었다.

강민성은 그 정도의 남자였다.

……미친.

이 순간.

이호성은 잠깐이지만 그의 돈을 들고 외국으로 도망갈 생각을 했던 자신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김지유는 탑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호성이 의문의 인물과 탑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강민성이겠지.

괜찮을까……?

자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인의 탑.

저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직접 다녀와 봤으니까.

“강민성 씨…….”

김지유는 탑을 보며 낮게 읊조렸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김지유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그가 부디 안전하게 다치지 않고 돌아와 주기를 바랐다.

* * *

“2층으로 안내를 해 주겠다고?”

민성이 무릎 꿇은 마인 보더러를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렇습니다. 부디 제게 아량만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검은 학살자시여.”

“안내해, 그럼.”

민성의 턱짓에, 마인 보더러는 마치 임금을 모시듯 공손한 자세로 일어나 눈치를 살피며 앞장섰다.

민성이 마인 보더러의 등 뒤로 바짝 붙었다.

“허튼 수작을 하거나 잔머리 굴리면 네 세포 하나하나를 찢어서 죽일 거야.”

그에 마인 보더러가 공포에 물든 얼굴로 민성을 돌아보며 덜덜 떨었다.

“무, 물론입니다. 제가 감히 어찌 그런 불손한 태도를 취하겠습니까.”

민성이 가늘게 웃었다.

“내가 네놈들을 모를 것 같냐.”

민성의 웃음에 마인 보더러는 그저 다시 앞을 보며 떨리는 발을 힘겹게 움직였다.

검은 학살자를 등 뒤에 두고 걷는 것만으로도 고통인 듯 보더러는 신경 쇠약에 걸린 것만 같은 모습으로 앞장섰다.

* * *

마인 보더러를 따라 꽤 오랫동안 걸었다.

길고 넓은 탑의 복도를 걸은 끝에, 민성은 웅장한 나선형 계단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마인 보더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민성은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나선형으로 된 계단은 굉장히 길고 높았다.

너무 높아서 천장 쪽은 마치 밤하늘만큼이나 컴컴했다.

시선을 내리자 검은 빛이 펄처럼 일렁이고 있는 계단의 출입문이 보였다.

“열어 드리겠습니다.”

마인 보더러가 그렇게 말하며 2층으로 가는 열쇠를 주섬주섬 꺼냈다.

마법 언어가 새겨진 열쇠였다.

그 열쇠를 꽂아 돌리자.

파아아아아아앙!

유리가 한순간에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굳게 닫혀 있던 나선형 계단의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민성이 마인 보더러를 빤히 응시했다.

필요 이상으로 오래 지속되는 시선에 마인 보더러는 불안감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올라가시면 됩니다. 검은 학살자여.”

그가 어색하게 아부성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런 건 왜 만든 거냐.”

“네?”

“마인의 탑. 이런 건 왜 만들어서 이리로 넘어오는 거냐고. 짜증 나게.”

마인 보더러는 바짝 얼어붙은 얼굴이 되었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탑에 배치된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모른다?”

민성이 되물었다.

“네, 네. 그렇습니다.”

민성이 얇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마인 보더러는 몸에 핏기가 빠지는 걸 느꼈다.

그가 뒷걸음질 쳤다.

“살려 주십시오. 정말입니다. 전 하수인에 불과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거짓말.”

민성이 낮은 소리로 말하며 무정한 눈으로 마인 보더러를 보았다.

“히, 히익!”

마인 보더러가 종이 베는 듯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려 했으나, 민성은 그 균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의 목을 움켜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콰아아아아앙!

마인의 벽화가 그려진 벽이 깨지면서, 보더러는 민성의 손에 목이 붙잡힌 채 소량의 피를 뿜었다.

목을 쥔 손에 힘을 주자 그가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빨간 눈이 더 붉어지면서 이내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크윽! 컥! 정말입…… 니다. 저는, 아무것도…….”

“네가 말한 게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어. 넌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으니까.”

“이, 이런 빌어먹을 인간 자식……!”

민성이 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천천히 뽑아냈다.

콰지지지지직!

민성의 손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이 나오는 걸 보고 마인 보더러는 울먹였다.

“쿨럭! 컥! 크흑, 크흐흐흐흐흑. 문 열어 줬잖…….”

민성이 오리하르콘 단검을 그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푸욱!

콰지지지직!

꽈르릉, 꽈아아아앙!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뇌력의 마기가 흘러나와 보더러의 전신을 태우듯이 지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인 보더러는 찢어지는 비명 소리를 내며 전신의 절반 이상이 시커먼 핏물로 녹아내렸다.

몸 대부분이 슬라임처럼 녹아 버린 그가 이내 소멸하면서 아이템을 떨어트렸다.

민성은 창고 정리를 하듯 갓 등급의 아이템 두 개와 잡템을 템 창에 넣고 이호성을 돌아보았다.

“닦을 것 좀 줘 봐.”

이호성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뛰어가 달달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갖다 바쳤다.

“왜 이렇게 떨어?”

민성이 이호성의 떨리는 손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헌터님. 헌터님은 모르시나 본데, 헌터님 존X 무서워요. 그냥 있을 때도 무섭지만, 이렇게 싸울 때는 진짜 숨 쉬기도 힘들다고요.”

민성이 헛웃음을 흘리며 오리하르콘 단검과 몸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 낸 뒤, 손수건을 이호성에게 휙 던져 주었다.

그리고 탑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을 앞장서서 밟았다.

* * *

긴 나선형 계단을 올라 마인의 탑 2층에 도착했다.

이곳도 1층처럼 벽화가 있었다.

1층에서는 마인을 신성화시키는 화려함이 테마였다면, 이곳은 마인들의 악취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다.

마인이 인간을 죽이고 고문하는 벽화가 바닥과 천장, 벽에 늘어서 있었다.

이호성은 그런 벽화를 보며 괴로운 얼굴이 되었다.

“헌터님…… 헌터님은 이런 세상에 다녀오신 겁니까?”

“떠올리게 하지 마라. 지금도 충분히 끔찍하니까.”

민성이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 안에서 바가지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바가지는 이제 움직임이 몸에 익었는지 마치 곡예단처럼 팽그르르 돌며, 10점 만점에 가까운 자세로 착지해 멋들어진 자세를 취했다.

민성이 황당하다는 듯 바가지를 보다가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 점점 더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너희들 레벨 좀 올려야겠어. 다들 경험치 먹을 준비 해라.”

민성의 말에 이호성은 헙! 하고 헛바람을 삼키며 주먹을 쥐고서 둘리 춤을 췄다.

바가지는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칵칵 웃었다.

“까불지 말고 집중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이호성과 바가지가 급격히 진지한 자세로 바뀌었다.

“근데 헌터님. 마인한테 저희 공격이 들어갈까요?”

“마인 살을 떠서 입에라도 넣어 줘?”

민성이 차가운 눈으로 이호성을 보았다.

“아, 아닙니다. 헌터님. 반드시 대미지를 넣겠습니다.”

이호성이 땀을 뻘뻘 흘렸다.

바가지는 그런 이호성을 보면서 칵칵 웃었다.

이호성은 바가지를 얄밉다는 듯이 쏘아보았지만, 바가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민성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이호성도 앞서 가는 민성을 보며 배에 힘을 꽉 주었다.

* * *

“2층에 불이 켜졌다.”

한 남자의 말에 집결지에 모여 있는 헌터들이 하나둘 탑을 보면서 놀란 얼굴이 되었다.

곧 집결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1층에만 켜져 있던 불이 2층에도 켜진 것이다.

헌터들은 의아했다.

정체불명의 두 남자가 탑으로 들어간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2층에 불이 켜졌다.

혹 플로어를 클리어를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은 터무니없는 추측이라고 판단되었다.

세계적인 헌터 전체가 들어가서 몬스터 하나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그런 곳을 두 명의 헌터가 클리어하고 2층으로 올라갔을 리는 없다.

두 헌터는 죽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동적으로 2층에 불이 켜진 거라고, 헌터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헌터들의 불안감이 커지며 되레 자신감은 점점 더 작아졌다.

탑에서의 공포가 여전히 트라우마가 되어 그들의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희미하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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