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99화 (99/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99화>

* * *

민성은 워프 게이트를 통해 곧장 뉴욕으로 넘어갔다.

뉴욕 워프 게이트 건물에서 맨해튼 집결지까지는 거리가 꽤 있는 데다, 맨해튼 자체가 위험 지역이라 그곳으로 가는 택시가 없어 난감했지만, 이는 쉽게 해결되었다.

워프 게이트 직원들이 운전기사를 소개해 준 것이다.

덕분에 오래 걸리지 않아 민성은 곧장 맨해튼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한국과 달리 뉴욕의 어두운 하늘에선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창밖을 보는 중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리드미컬한 흑인의 목소리가 기분 좋게 귓속으로 들어왔다.

그때 바가지가 주머니에서 꾸물거리며 나왔다.

바가지는 민성의 허벅지 위에서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흐느적거리는 꼴이 우스워 잘 웃지 않는 민성조차 바가지를 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반면 운전기사는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앞만 보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 * *

“총군주님! 헌터님이 깨어나셨습니다. 여기로 오시나 봅니다.”

이호성의 말에 김지유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정말 일어났어요?”

재차 확인하기 위해 묻는 김지유를 향해 이호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김지유는 한시름 놨다는 얼굴로 깊은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었다.

“정말 잘됐네요, 정말.”

그러다 일순 김지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런데 지금 민성 씨가 여기에 오면 혹여나 분란이 생기지는 않을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늘 그랬듯이 헌터님은-”

이호성이 탑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실 겁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요?”

김지유는 작게 웃었다.

“아무리 강민성 씨라고 해도 혼자서 저 탑을 해결할 수는…….”

“아니요.”

이호성이 단호하게 부정했다.

“헌터님은 해결하실 겁니다. 저 끔찍한 탑을요.”

잠깐 생각에 잠겼던 김지유가 엷게 웃었다.

탑을 보고 있는 이호성의 눈에는 일말의 의심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는 ‘확신’이라는 두 글자가 비쳐 보였다.

* * *

집결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뛰어오고 있는 이호성이 보였다.

차가 떠날 때쯤, 이호성이 민성의 앞에 도착했다.

“헌터님! 오셨습니까.”

이호성이 90도로 꾸벅 인사를 했다.

민성은 이호성 너머로 보이는 마인의 탑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1층까지밖에 안 열렸다며?”

이호성이 민성의 시선을 따라 마인의 탑을 보고선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마세요. 그 마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센지, 난다 긴다 하는 전 세계 헌터들 수백 명이 반타작 나 버렸답니다.”

“가자.”

“……네?”

이호성이 흘깃 민성을 보며 되물었다.

“가자고.”

“어디를요?”

“마탑이지, 어디긴 어디야.”

민성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앞장섰다.

* * *

X발.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닌데, 막상 이렇게 도착하자마자 탑으로 갈 줄은 몰랐다.

고소 공포증 환자가 예기치 않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랄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강민성이랑 같이 다니다 보면 이제 이런 기분은 익숙할 만도 한데, 목적지가 마인의 탑이잖아.

적응이 되겠느냐고!

이호성은 극도로 긴장한 얼굴로 민성을 따라나섰다.

* * *

민성이 먼저 보트에 올라탔다.

이호성이 뒤따라 보트에 타려 할 때, 멀리서 2명의 헌터 병사들이 뛰어왔다.

“당신들 뭐야!?”

당연히 보트 사용은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이호성이 멍하니 뛰어오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을 때-

“시동 걸어.”

민성이 명령했다.

이호성은 할 수 없이 보트 시동 장치를 당겼다.

우르릉!

보트의 엔진에 시동이 걸리면서 물살을 가르며 보트가 앞으로 나아갔다.

“당신들 미쳤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뭐 하는 거야!? 돌아와, 얼른!”

병사들이 소리쳤다.

멀리서 그 광경을 헌터들이 의아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병사들은 지친 건지, 이내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호성은 보트 난간에 걸터앉아 그런 병사들을 지켜보다가 입에 담배를 물었다.

“1층밖에 오픈이 안 되어 있으니 헌터님이라면 잡을 수 있겠죠? 전에도 잡았으니까. 그 마인 말이에요.”

“넌 죽을 수도 있겠지.”

민성이 먹먹한 바다의 풍경과 천둥 벼락이 치는 하늘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호성은 담배를 피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전 죽을 수도 있는 거죠.”

심란한 표정으로 담배를 뻑뻑 피우던 그가 앞쪽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헌터님. 근데 파도가 잔잔하네요. 아까까지만 해도 파도가 엄청 높아 보였는데.”

“내가 조절하고 있는 거다.”

이호성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민성을 올려다보았다.

“파도를요?”

“그래. 왜?”

“아닙니다.”

이호성은 짧게 헛웃음을 흘리다 다 피운 담배를 바다에 버리고 일어섰다.

탑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 * *

민성은 이호성과 함께 마치 회오리처럼 탑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어두운 의식이 잠깐 스쳐 지나간 후,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탑 안이었다.

대기실은 없다.

진입과 동시에 던전은 시작되었다.

민성은 어두운 탑 안을 마치 안방처럼 편안하게 거닐었다.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반면 이호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움츠린 어깨로 경계하기 바빴다.

민성은 심기가 불편했다.

탑은 휑하고 넓었다.

그게 이유였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나와라.”

민성이 으르렁거리듯 차갑게 내뱉었다.

그 음성이 사자후가 되어 천지를 울리듯 탑 안에 울려 퍼져 나갔다.

* * *

“-헉!?”

마인 보더러는 헛바람을 삼켰다.

온몸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뭐야, 이 소리는!?”

순간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정신없이 수정체를 통해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해 보았다.

인간 두 명이었다.

저 두 놈 중 한 놈이 지른 목소리인가?

별달리 마력이 크게 깃든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몸이 격한 거부감을 표하는 건가?

설마-

“검은 학살자?”

마인 보더러는 굵은 침을 꿀떡 삼켰다.

“아닐 거야…… 그래도, 한번 확인은 해 보자.”

보더러가 긴장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서 검고 푸른 마력이 수정체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 * *

“어떤 정신 나간 두 놈이 멋대로 보트를 타고 탑으로 가 버렸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회의실에 있던 헌터장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미쳤군.”

“죽고 싶어 환장한 놈 같은데 내버려 둬. 그런 놈이면 일찍 죽는 게 차라리 나을 테니.”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헌터장들이 모두 탑에 들어간 민성과 이호성을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때-

“탑에 들어간 건 어느 국 헌터야? 확인 안 됐어?”

“얼핏 언어를 듣기로는 한국의 헌터 같았습니다.”

에단은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 나라로구만.”

에단이 서늘한 눈으로 부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시답잖은 보고로 우리 사간을 방해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부하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인사를 올리곤 천막을 나갔다.

천막 안의 헌터장들은 탑으로 들어간 두 명의 인물을 가벼운 해프닝으로 취급하고 다시 무거운 회의를 시작했다.

* * *

“어쩐지 지금까지 봐 왔던 던전이랑은 느낌이 사뭇 다르네요.”

이호성이 말했다.

민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마인을 해치우고 싶었다.

오랜 잠을 잔 끝에 먹는 식사 한 끼가 그리울 뿐이다.

“여기나 저기나 온통 숨어 있는 놈들뿐이군.”

“헌터님이 정말 유명하신가 봅니다. 그 지옥이라는 곳에서도 말이에요. 헌터님 별명이 검은 학살자였나요? 그때 마인이 그렇게 말한 것 같던데.”

“날 그렇게 불렀지.”

민성이 건조하게 말했다.

별로 추억할 만한 게 아니라는 듯이.

“세계적인 헌터들이 마인 하나한테 박살이 나서 도망 나왔다고 하던데. 헌터님은 그런 마인들을 얼마나 죽였으면 학살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건지…….”

이호성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암튼 대단하세요.”

그가 혀를 내두르는 그 순간, 뭔가가 민성의 감각에 감지되었다.

분명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민성의 예감은 적중했다.

칼을 든 희미한 검은 형체.

마인 보더러가 ‘검은 유령’이라고 이름 붙인 몬스터였다.

칼을 든 검은 유령들이 엄청난 속도로 민성에게 돌진해 왔다.

민성은 그런 검은 유령들을 보며 천천히 템 창에서 오리하르콘 단검을 꺼내 들었다.

파지지지직!

손에 쥔 오리하르콘 단검에서 새하얀 뇌력이 휘감겼다.

“장난하나…….”

민성이 심기가 상한 얼굴로 오리하르콘 단검을 횡으로 베었다.

꽈르르르릉!

뇌력이 공간을 찢어 내듯 발출되며, 마기를 머금은 검기가 수십에 달하는 검은 유령들의 몸을 휩쓸었다.

퍼벙 펑!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닥이 깨지고, 벽에 금이 갔다.

유령들의 몸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황색 모래 먼지처럼 흩어졌다.

민성을 향해 돌진해 오던 검은 유령은 마치 한낱 일장춘몽의 꿈이었던 것처럼, 민성의 칼질 한 번에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바람에 머리가 날린 이호성은 오랜만에 보는 민성의 무위에 넋이 나간 듯,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거, 거, 거, 거, 검은 학살자다!

틀림없어.

마인 보더러의 전신에서는 땀이 땀샘을 뚫고 줄줄 흘러내렸다.

쿵쾅! 쿵쾅! 쿵쾅! 쿵쾅!

몇 년 전 상급 마인을 만났던 때 이후로, 최고조의 긴장감이 정수리를 묵직하게 눌렀다.

“거, 검은 학살자인 거야. 놈은 살아 있었던 거였어.”

검에서 천둥 벼락이 치는 걸 보고 마인 보더러는 놈이 ‘검은 학살자’임을 확신했다.

“어쩌지? 어쩌지? 어떻게 해야 돼? 1층을 전담하고 있는 건 나뿐이라고.”

그가 수정체를 보며 벌벌 떨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슴에 파문처럼 번졌다.

“안 돼! 소멸하고 싶지 않아!”

마인 보더러는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덜덜덜덜!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몸이 느껴졌다.

이미 칼이 들어온 것처럼 등과 목이 서늘했다.

얼마 전의 소문은 사실인 듯했다.

마인과 소마인 하나가 죽었다는 소문.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본래 마인이란 죽음과 고통, 그리고 혼란을 먹고사는 동물.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결정을 내렸다.

‘검은 학살자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결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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