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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98화 (98/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98화>

* * *

마인 보더러는 등장과 동시에 압도적인 힘을 내보였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헌터들의 공격을 맞고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웃으며 헌터들을 산 채로 씹어 먹고, 팔다리를 뜯어내고, 허리를 분리시켰다.

공격대의 의지가 뿌리째 뽑혀 나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비명이 사방으로 소나기처럼 빗발쳤다.

“공격을 쏟아부어! 고작 한 놈이다! 겁먹지 마라!”

헌터장 한 명이 소리쳤다.

다른 나라의 헌터장들도 총공격을 명령했다.

번쩍이는 각양각생의 공격 스킬이 보더러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전력으로 공격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더러에게 헌터들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헌터들은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에 헌터장들까지 가세했다.

그러자 절대 상처 나지 않을 것만 같던 마인의 피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가 전부였다.

고작 한 마리에 불과한 몬스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이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헌터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퇴, 퇴각! 퇴각하라!”

“탑을 벗어나라!”

“후퇴다!”

결국 헌터장들이 후퇴하라는 명령을 소리쳤다.

마인 보더러가 입을 벌리자, 그의 입에서 쏟아지듯 나온 검은 불꽃이 달아나고 있는 헌터들의 등 뒤를 덮쳤다.

마인 보더러 부근에 있던 헌터들은 몇 걸음을 떼지도 못하고 그의 입김에 의해 몸이 썩어 버렸다.

순식간에 헌터들의 숫자가 도미노 넘어가듯 줄어들었다.

최전방부에 있던 헌터들이 마인에 의해 죽어 가는 동안, 다른 헌터들은 탑의 출구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도망치고 있는 와중에도, 뒤에서 헌터들이 죽어 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 * *

첨벙! 첨벙!

탑을 나와 수영을 해서 집결지로 올라왔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헌터들은 몸에 묻은 물기를 말릴 기력도 없이 초점을 잃은 눈으로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처음 탑으로 가기 전의 그 사기 높은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헌터들의 얼굴에는 절망감과 좌절감만이 배어들어 있었다.

* * *

‘분위기가 왜 이래? 벌써 탑에 갔다 온 건가?’

비행기를 타고 맨해튼 집결지에 도착한 이호성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현재의 분위기는 패잔병 그 자체였다.

세계 무대에서 난다 긴다 하는 헌터들이 모두 모여든 곳이 바로 이곳 맨해튼 집결지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상태들이 안 좋아 보이는 거야?

천막 안에 바삐 들어가는 헌터장들을 제외하고, 집결지 야외에 있는 헌터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이호성의 눈에 부상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건 기본이고, 몸이 썩어 있거나 얼어붙어 있는 이들도 있었다.

힐러 마법으로 치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인의 암흑계 공격으로 인해 치료가 더딘 상황처럼 보였다.

마인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겨우 1층에서 이 정도 타격을 입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호성이 혀를 내두르는 가운데, 헌터장들이 모인 천막으로 향하고 있는 김지유가 보였다.

이호성은 김지유가 나오면 대화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우선 기다려 보기로 했다.

* * *

집결지의 천막 안.

헌터장들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정적만이 허공을 떠다녔다.

그때.

펄럭!

천막 안으로 김지유가 들어왔다.

헌터장들의 시선이 김지유에게로 갔다가, 불쾌감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누구 맘대로 여길 들어오는 거요?”

미국 헌터 마스터 에단이 김지유를 철저히 외부인 취급하며 말했다.

그에 김지유는 에단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중국의 힘을 빌려야만 합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지금 우리가 그걸 몰라서 골치 아프게 회의를 하고 있는 것 같소?”

마피아 보스같이 생긴 유럽 대표 헌터장이 공격적인 눈으로 김지유를 쏘아보며 말했다.

애초에 이들과는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어 보였다.

마인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 것으로 인해 탑 공격대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뜻은 변함이 없었다.

김지유는 짧게 한숨을 쉬며 천막을 나왔다.

그녀가 나간 뒤, 천막 안에는 다시 적막함이 맴돌았다.

“중국에 협조 요청을 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헌터장 한 명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아무리 중국 헌터들이 강하다고 하지만 탑을 클리어할 수 있을까?”

에단의 말대로, 탑의 난이도는 지나치게 높았다.

설령 중국이 나선다고 해도, 상황은 회의적이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인류가 거대한 위기를 맞이한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 * *

김지유는 어두운 하늘과 지옥처럼 보이는 탑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강민성이 깨어난다면 이 막막한 상황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김지유가 강민성에 대해 떠올리고 있던 중 누군가가 다가왔다.

시선을 옆으로 돌려보자 그곳엔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이호성 씨?”

김지유가 놀란 얼굴로 그를 불렀다.

이호성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총군주님.”

“강민성 씨 깨어났어요?”

“……아니요.”

이호성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하자, 김지유는 그 대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뒤늦게 애써 웃음 지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이호성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하. 저기, 그게……. 이 마당에 그냥 가만히 있기도 그렇고. 저도 뭔가 하고 싶어서요. 물론 도움은 안 되겠지만…….”

김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인류를 위한 호성 씨의 노력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에요. 외려 제 질문이 어리석었네요.”

“아닙니다. 그보다 어떻게 된 건가요? 분위기가 좋지 않아 보이는데.”

“잠깐 자리를 옮길까요?”

김지유의 제안에 이호성은 흔쾌히 수락했다.

* * *

“……그, 그게 사실입니까?”

김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은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적인 헌터들이 모두 모였다.

그 어마어마한 세력이 총동원되어 탑을 클리어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도…… 1층에서 반타작이 났다고?

김지유에게 얘기를 듣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300명에 달했던 인원이 지금은 고작해야 150명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최상급 헌터들은 대부분 살아남았어요. 탑에서 죽은 건 모두 그 아래 레벨의 헌터들이었죠.”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2차 레이드가 시작되는 겁니까?”

이호성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확정 난 건 아무것도 없지만, 1차 레이드에서 큰 피해가 일어난 만큼, 당분간 섣불리 움직이긴 어려울 것 같아요. 아마 시간이 좀 걸리겠죠.”

이호성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푹 내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중국은 왜 합류하지 않은 건가요?”

“중국은…… 현 시대에서 가장 비밀이 많은 나라잖아요.”

김지유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번 사안이 보통 일은 아니니까, 중국 쪽에서도 조만간 움직임이 있을 거예요. 지켜봐야죠.”

이호성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민성 씨 상태는 어떤가요? 어디 아픈 곳이 있다거나. 그때 진료 당시에는 별문제가 없었긴 했지만.”

“……괜찮을 겁니다. 헌터님이라면.”

허공을 응시하며 웃는 이호성을 보면서 김지유는 미소 지었다.

이호성이 얼마나 강민성이라는 헌터를 굳게 믿고 있는지 그 마음이 온전하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빨리 좀 일어나주세요, 강민성 씨.’

김지유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기도했다.

아마 이호성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 *

민성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꺼풀을 몇 번 움직이자 시야가 빠르게 잡혔다.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치자, 강한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찌푸린 눈으로 잠시 바깥을 살피다 거실로 나왔다.

“주인니이이이임!”

바가지가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달려와 다리에 들러붙었다.

민성은 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바가지를 털어 내곤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셨다.

너무 오래 자서 그런지 갈증이 심했다.

“내가 대체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야?”

민성이 물 잔을 내려놓으며 묻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던 바가지가 황급히 차렷 자세를 취했다.

“일주일 정도 누워 계셨어요!”

참 오래도 누워 있었다.

어떻게 일주일 동안 잠을 잘 수 있는 거지?

민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 거실 소파에 앉았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목뒤를 꾹꾹 눌렀다.

오래 누워 있어서 그런지 몸이 상당히 뻐근했다.

커피를 한 모금 하고, 바가지가 가져다 준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TV를 틀자마자 급박한 소식을 전하고 있는 뉴스 기자가 보였다.

[현재 뉴욕 맨해튼에서 월드 공격대가 탑 1층 레이드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사상자와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그에 민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바가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리고 왜 아무도 없어?”

민성이 주변을 훑으며 그렇게 말할 때, 현관문이 열리며 장웅과 장시아가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민성이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어나셨군요!”

장웅이 반색하는 얼굴로 뛰어왔다.

“설명해.”

민성이 뉴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장웅은 숨을 한차례 고르곤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 침착히 설명을 시작했다.

자고 있었던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두 듣게 된 민성은 눈을 감고 짧게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이호성 군은 헌터님이 일어나시면 연락을 달라 하고 사라졌습니다.”

민성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바가지에게 전화를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바가지가 뒤뚱거리며 뛰어가 민성의 휴대폰을 찾아오자, 그는 곧장 이호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외 전화로 연결된다는 안내음이 떴다.

민성은 ‘뭐야?’라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봤다가, 통화가 연결된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너 해외야?”

- 헌터님!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역시 일어나실 줄 알았습니다!

“어디냐고.”

- 지금 맨해튼 집결지에 있습니다.

“거긴 왜?”

- 네? 아, 그게…….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탑에 마인 있어?”

- 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전 세계 헌터들이 모여서 공격대를 꾸려 탑에 들어갔는데, 1층에서 반타작이 났답니다. 줄초상인 거죠.

“곧 거기로 넘어갈 테니까 대기하고 있어.”

- 알겠습니다!

민성은 전화를 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저 마셨다.

장웅이 집사처럼 민성의 옆에 섰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저기로 넘어가서 몸 좀 풀고 오면 금방 괜찮아지겠지.”

장웅은 잠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넘어가신다 하심은……?”

“저기 저 탑. 저기밖에 더 있나.”

민성이 턱짓으로 뉴스에 나오고 있는 마인의 탑을 가리켰다.

장웅은 반쯤 입을 벌린 채로 뉴스 화면을 보았다.

“저곳을…… 말이십니까?”

“왜?”

민성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그에 장웅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부디 조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민성은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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