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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97화 (97/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97화>

“군단장님 말씀대로 각국의 헌터들은 우리를 그저 방패막이로 이용할 생각이겠죠.”

군단장의 얼굴이 굳어지자 김지유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뜻대로 움직여 줄 생각은 없습니다. 탑에 진입하면 우린 최후방에서 정보만 챙길 거예요. 헌터들에게 아이템에 집착하거나 욕심 부리지 말고, 정보 파악에만 집중하고 최대한 안전거리를 유지해 줄 것을 전달해 주세요.”

군단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놈들이 분명 그냥 안 둘 텐데…….”

“미궁이 그랬듯 탑은 결국 인류를 위협하는 적입니다. 그 적 앞에서, 에단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 해도 우리 헌터들을 건드리진 못할 겁니다. 애초에 탑은 공동의 목표이니까.”

“그럼…….”

“침묵을 지켜야죠. 우리 헌터들에게 절대 타국 헌터들의 자극에 동요하거나 반응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군단장이 곧바로 김지유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움직였다.

타국의 헌터들이 김지유와 군단장을 이상하다는 듯이 흘겨보았지만 그뿐이었다.

뒤이어 헌터들이 몰려 있는 기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외부인의 집결지 출입이 현 시간부로 엄격히 통제되었다.

* * *

현재까지 불이 밝혀진 탑의 층수는 단 1층뿐이다.

조사단의 정보에 의하면 몬스터의 수는 하나.

하나라고는 하지만 보스급의 능력을 가진 몬스터이며, 숨겨진 필드나 몬스터가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

집결지에 모인 헌터들의 공동 목표는 수색이 아닌 1층 클리어다.

300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보트를 타고 벼락이 내려치고 있는 탑으로 향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일정 지역에 이르자, 작전대로 헌터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첨벙첨벙!

300명의 헌터들이 수영으로 바다를 가르며 탑으로 접근했다.

역대 최고 규모의 숫자.

그 수많은 헌터들이 탑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300명의 헌터 전원이 마인의 탑 1층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인원 제한이 걸려 있는 건 아닌가 우려가 됐지만, 다행히 전원이 탑 안으로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헌터들은 머리와 옷에 묻은 물기를 짜낸 뒤 템 창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김지유 역시 물기를 마저 털어 내고 자신의 무기인 레이피어를 꺼내 들었다.

그때, 미국 헌터 마스터 에단이 김지유 앞으로 걸어왔다.

“최전방으로 가 보는 게 어떻겠소?”

김지유는 주변의 타국 헌터들을 보았다.

그들은 냉랭한 표정으로 김지유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서 시간 끌지 말고 고기 방패나 되라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우리를 굳이 최전방으로 보내겠다는 건 어떤 의미죠, 에단?”

에단은 콧방귀를 꼈다.

“이번 공격대 파티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텐데? 처지를 좀 깨달으시지.”

분위기를 봐선 딱히 한국이 전방에 설 거라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닌 듯했다.

그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눌러 주고 싶다는 유치한 갑질에 지나지 않았다.

“흥! 한국은 도움은커녕 늘 민폐밖에 끼치지 않는군. 후방에서 구경만 하다가 숟가락 얹고 돌아갈 생각인가 본데, 더 이상 민폐는 그만두고 뭍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소? 레이드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어 보이는데.”

에단이 경멸하는 눈으로 김지유를 보며 말했다.

얼굴이 붉어지고 속이 뜨거워졌지만 김지유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숨을 골랐다.

에단은 그런 김지유의 모습에 픽 하고 웃음을 흘리곤 몸을 돌렸다.

“집결지에서의 작전대로, 각국의 수색조가 나뉘어서 전방을 맡게 될 겁니다. 겁이 나는 분들은 빠지셔도 좋소. 단, 탑에서 구한 아이템의 분배는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겁니다.”

에단이 지시를 내리자, 한국을 제외한 모든 헌터들이 정열을 갖추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전 헌터국의 수색조 헌터들이 나뉘어서 전방을 맡게 될 것이란 작전은, 한국을 제외하고 진행된 집결지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

그것은 즉 한국의 중앙 기관만 몰랐던 작전이었다.

한국은 집결지에서 이루어전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아니, 김지유는 회의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타국의 헌터들은 바보가 되어 버린 한국의 헌터들을 보며 쿡쿡! 비웃음을 흘리고 지나갔다.

“뭐, 주워 먹을 거 없나 하고 왔나 본데?

“구역질 나네, 정말.”

“냄새 나는 나라로구만.”

“저런 것들도 헌터라고, 하하.”

“버러지 같은 것들.”

수치심과 모멸감에 한국 헌터들이 몸을 떨었다.

만약 자극에 반응하지 말라는 김지유의 명령이 없었다면, 분명 싸움이 일어나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었다.

한국 헌터들은 모두 붉어진 얼굴을 아래로 숙였다.

귀족 같은 삶을 살아왔던 한국 중앙 기관의 헌터들에게 있어, 지금과 같은 모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각국 헌터들이 앞서 나가고, 한국 헌터들만이 최후방 쪽에 남았다.

“……자국민을 위해서라도, 미래를 위해, 인류를 위해. 힘들겠지만 견뎌 주세요.”

김지유가 감정을 누르며 냉정하게 말했다.

총군주의 말에 헌터들은 자존심을 씹어 삼켰다.

* * *

마인의 탑 1층의 관리자.

마인, 보더러.

그는 탑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대량의 헌터들을 수정구를 통해 보며 웃음을 흘렸다.

인간계의 상위 헌터들이 대부분 모여든 것 같지만, 그의 눈에 그들은 그저 한꺼번에 손에 잡힌 먹잇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인과 인간이 가진 힘의 차이는 그 정도로 큰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검은 학살자.’

최근 검은 학살자가 인간계에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소문에는 그놈이 최근에 마인 하나를 죽였다고 했다.

아, 거기에 소마인까지 하나 더.

그게 사실일까……?

마인 보더러는 수정구를 통해 한참 동안이나 헌터들을 살펴봤지만, 검은 학살자라고 할 만한 이의 존재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나 검은 학살자라면 자신의 기척을 숨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것이다.

우선…… 검은 학살자가 정말 존재하는지.

그 사실을 알아보는 것이 마인 보더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큰일이었다.

수정구를 보고 있는 마인 보더러의 붉은 눈이 점차 검게 변해 갔다.

그가 천천히 길고 가느다란 손을 들어 올리자, 그 손에서 검은 기운과 파란 기운이 섞이며 수정구 안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마인 보더러가 수정체에 흘려보낸 마력의 힘으로 인해 탑의 1층에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칼을 든 시커먼 유령과도 같은 형체의 몬스터.

그 검은 유령의 칼에는 오러의 힘이 맺혀 있었다.

검은 유령들이 일제히 헌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 * *

대화가 사라졌다.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소리 외에는 어떠한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모두 공통적인 마음이었다.

방심했다가는 큰일을 치를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끔찍한 악몽은 이제 막 그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르!

탑 1층 전체가 흔들렸다.

300명의 병력들은 일제히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조사단이 뒤로 빠지고, 그 자리를 탱커들이 메웠다.

무기를 든 검사들이 모두 탱커들 뒤로 자리를 잡았다.

마탄 사격수나 활을 든 헌터들은 각자의 무기를 전방을 향해 겨누었다.

이내 시야에 몬스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유령들을 본 헌터들은 굳은 얼굴로 전투를 준비했다.

“사격 개시.”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탄환과 화살이 검은 유령들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하지만 대형을 이루고 시작된 그들의 작전은 쓸모가 없었다.

환영(幻影)이다.

탄환과 화살이 스쳐 지나가자, 달려오던 검은 유령들의 몸이 초록색 연기로 변하며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천장과 벽에서 검은 유령들이 튀어나와 헌터들을 공격했다.

몬스터가 지닌 오러 맺힌 검은 최고의 장비를 갖추고 있는 헌터들의 몸에 손쉽게 대미지를 입혔다.

갑옷이 깨지고 투구가 날아가며, 목이 찢어지고 팔다리가 날아갔다.

하지만 워낙 헌터들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완전히 밀리는 형태는 아니었다.

상대의 공격에 적응하자마자, 헌터들은 일시에 검은 유령들을 죽여 나가기 시작했다.

10분간의 전투가 이어졌고 검은 유령을 모두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각국의 헌터들을 이끌고 있는 헌터장들의 얼굴은 심각했다.

분명 미국에 의하면, 단 한 마리에 의해 미국 수색조가 괴멸당했다고 했다.

검은 유령들이 그 몬스터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수색조가 만났던 건 탑 1층의 보스 몬스터일 터.

결국, 겨우 하급에 속하는 몬스터들에 의해 발생한 20명의 사상자는 엄청난 손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현실의 그림자가 헌터들의 얼굴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 * *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높은 등급의 헌터들이.

예민해진 헌터들은 스트레스 해소 삼아 씹을 거리가 필요했고, 그 화살은 전부 한국의 헌터들에게로 향했다.

타국의 헌터들은 당장이라도 한국의 헌터들을 때려잡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형성했다.

헌터장들이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으나 이미 균열은 일어난 후였다.

한국으로 향했던 날카로운 칼은 옆으로 번져 갔다.

“얼빠진 소리 하고 있네. 당신네 나라 헌터들이 죽었어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겠어?”

“그렇게 약소국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신들이 전방 수색을 맡아 주시죠?”

불만을 가득 담은 말들이 오가며 이내 목소리도 높아졌다.

헌터들의 분위기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었다.

* * *

마인 보더러는 확신했다.

이 안에 검은 학살자는 결코 없다는 것을.

검은 학살자가 힘을 숨기고 이런 무리에 조용히 숨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검은 학살자가 인간계에 존재한다는 소문도 거짓이 아닐까?

검은 학살자는 분명히 마계에서 죽었다.

이미 죽은 인간이 인간계에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크히히!

불안의 요소가 사라졌음을 확신하자 안도감은 이내 자유로움으로 표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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