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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94화 (94/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94화>

똑똑!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문 너머로 장시아가 보였다.

그녀는 착 달라붙는 나시를 입고 있었다.

옷이 얇은 데다가 가슴 부근이 파여 있어, 가슴골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잘록한 허리에 큰 가슴.

이호성은 입을 반쯤 벌리고 그 신체 부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자신도 모르게 장시아의 가슴을 빤히 보고 있을 때.

“어딜 보는 거야, 이 변태 새끼야!”

장시아가 손바닥으로 이호성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뺨을 맞자 정신이 확 들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쿵!

방문이 닫히며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났다.

“그게 아니고, 같이 영화 한 편 보러…….”

묵묵부답.

이호성은 처량하고 서글픈 얼굴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저렇게 어리고 예쁜 미녀랑 무슨 데이트겠냐.

“어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을 때, 계단에서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장시아가 소파에 앉아 있는 이호성의 뒤에 다가와 섰다.

“변태 아저씨.”

이호성은 긴장한 표정으로 시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왜?”

가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이호성이 되물었다.

“아까 뭐라고 그랬어요? 영화?”

“아니야, 됐어.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

이호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시아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호성을 빤히 보았다.

“아저씨, 나 좋아해요?”

그는 뜨끔한 얼굴이 되었다.

“아저씨 헌터죠? TV에 나왔던.”

그녀의 물음에 이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이 아저씨 보고 싶대요. 같이 가서 애들이랑 놀아 주면 영화 보러 가 줄 수도 있는데. 싫으면 말고요.”

그가 눈을 크게 떴다.

호흡이 가빠지는 듯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인연의 흐름?

“가, 가야지. 당장 가야지. 뭐? 지금? 지금 가면 돼?”

이호성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일단 좀 씻고 나와요. 면도도 안 해서 지저분해 보이니까.”

“오케이. 바로 준비하고 나올게.”

허겁지겁 욕실로 뛰어가는 이호성을 보며 장시아는 도도한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휴대폰 메시지를 보냈다.

* * *

사방이 컴컴했다.

완전한 어둠.

강민성 자신은 그 어둠 안에 서 있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하거나 초조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반사 신경과 전체적인 감각은 눈보다 빠르니까.

‘그보다 여긴 어디지?’

마치 우주 속에 버려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리는 약간 몽롱하다.

환술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멀리서 빛을 띤 점이 보였다.

그 점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영상을 만들어 내며 민성의 옆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영상 속에는 과거 자신에 대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민성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스쳐 지나가는 영상을 응시했다.

태어나 울음을 터트렸던 아기의 모습부터 시작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모습.

부모님의 교통사고 장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라던 모습.

할아버지의 장례식.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자랐던 추억.

과거가 담긴 영상은 아주 오랫동안 나타났다.

영상이 끝이 난 건, 민성이 마계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다시 컴컴한 암흑이 사방을 삼켰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번쩍! 하고 갑작스럽게 빛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사방이 새하얀 공간으로 변하며 하나의 존재가 민성의 눈에 보였다.

단정한 검은 머리에,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년 같은 느낌의 남자였다.

그는 나무 의자에 앉아 가벼운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넌 뭐고, 여긴 어디지?”

민성이 끝이 보이지 않는 새하얀 공간을 훑어보며 물었다.

“나에 대한 질문, 이곳에 대한 질문은 별로 의미가 없어. 중요한 건 당신과 내가 처음으로 만났다는 사실일 뿐이야.”

민성은 미간을 구기며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템 창을 불러 봤지만, 템 창은 나타나지 않았다.

“딱히 환술이라는 느낌이 없는 걸 보면 꿈속이라도 되는 건가”

“맞아. 당신을 꿈을 꾸는 중이지. 편안한가?”

남자의 물음에 민성은 살짝 언짢은 표정을 내보였다.

“당신 때문에 좀 불편한 것 같은데, 지금.”

남자는 바닥을 보며 가볍게 웃음 지었다.

악의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웃음이었다.

그에 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신이라도 되는 건가?”

“나 같은 게 어찌 감히 신일 수 있겠는가? 나는 단지 그대에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야.”

민성이 얘기해 보라는 듯 남자를 직시했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깊고 묘한 눈빛으로 민성을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금 전 자신의 과거를 봤겠지. 지금 기분은?”

“글쎄. 별 감흥은 없는데.”

민성이 덤덤하게 말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시 열었다.

“두 번째 질문. 마계에서의 기억은 빠짐없이 선명한가?”

남자의 눈이 파랗게 번쩍였다.

그가 질문을 던진 바로 그 순간부터 마계에서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엄청난 속도로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량의 정보였고, 과다한 정보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민성은 이마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그러다 이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처음 마계에 갔던 순간부터, 마인들과 치열하고 잔혹하게 싸워 왔던 순간들이 뇌리에 선명하게 뿌리를 내리듯 각인되었다.

“하아…… 하아!”

민성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얼굴이 붉어지고 눈에는 핏발이 올랐다.

고통이 생생하게 올라온다.

절대 꿈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다.

100년간의 기억이 완전히 민성의 뇌리에 저장되었을 때, 그제서야 고통은 사라졌다.

민성은 가라앉은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난 싸우자고 그대를 찾은 게 아니야. 증명이 필요했을 뿐.”

민성은 그의 여유로운 태도가 못내 거슬렸지만, 꿈속에서 누군가와 싸워 본 적은 없었다.

움직임 자체가 그의 손안에서 통제되고 있는 듯했다.

즉, 물리적 가치가 완전히 상실되어 있다는 의미.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어야 한다.

여긴 의식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니까.

민성의 눈빛을 보며 남자가 짧게 한숨 쉬었다.

“이 공간 안에서 내게 그런 감정을 품는 건 무의미한 일이야. 실망이군.”

그는 안타깝다는 듯 민성을 보며 말했다.

그때, 민성이 눈을 감았다.

마음의 검을 현상하는 단계, 심검(心劍).

무의 완전한 극의에 이르러야만 도(導)의 형태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물리 가치가 존재하는 현세에서의 심검과, 의식 안에서의 심검은 그 도를 달리하는 법.

물리 가치가 존재하는 현세가 아니라면, 지금까지 꿈꿔 왔던 수준의 심검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금껏 그 작은 가능성의 출발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심검에 도전한다.

민성이 눈을 뜬 순간, 민성의 눈에서 광채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남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민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을 지나, 민성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단단하고 날카로운 검이 민성의 가슴 앞에 형체를 이루며 나타났다.

남자는 마치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도 보는 듯 극도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도취된 듯한 표정으로 민성이 마음으로 만들어 낸 검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상상 이상이야. 당신이란 존재는.”

남자가 황홀함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민성의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졌다.

민성의 심검이 남자를 향해 쇄도했다.

번쩍이는 뇌력의 빛을 휘감은 민성의 심검이 남자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얇은 상처가 생기며, 피가 아니라 마치 유리 파편과도 같은 흔적이 허공에 흩날렸다.

그가 놀란 눈으로 다시 민성을 보았을 때, 민성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새 남자의 등 뒤에 선 민성이 남자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남자가 연기처럼 사라지며 심검은 허공만을 베었다.

-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남자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치듯 울렸다.

민성은 가쁜 숨을 내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새하얀 공간에서 남자를 찾으려 했지만, 그는 완전히 종적을 감춘 뒤였다.

걷고 또 걸었으나 그의 존재는 보이지도 감지되지도 않았다.

새하얀 공간은 끝이 없는 듯 이어졌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내 의식이 완전히 무거워졌다.

* * *

마인의 탑은 처음 나타났을 때 온통 검은 빛으로 가득했다.

한데 그런 마인의 탑에 빛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불이 켜지는 것처럼 단 1층에만 그 강렬한 빛을 만들어 냈다.

미국은 그 빛이 던전 플로어(Floor)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즉, 지금 마인의 탑에 오픈되어 있는 층수는 총 1층이라는 얘기였다.

탑의 높이는 어마어마했고, 1층은 당연히 최하단부에 불과했다.

미국 헌터 마스터, 에단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짓뭉갰다.

부서진 탁자 파편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분명 예상대로라면 한국에서 먼저 무릎을 꿇어 와야 정상이건만, 한국은 역으로 자신들이 외려 손을 뻗도록 만들고 있었다.

“간악한 것!”

이대로 관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던전 플로어가 더 높아지기 전에 시작해야 돼.’

결단이 섰다.

에단은 벌떡 일어나 조사단장을 호출했다.

조사단장이 마스터 룸을 빠르게 찾아와 인사를 올렸다.

“지금 당장 탑으로 조사단을 파견할 것이다.”

에단의 말에 조사단장은 조금 놀란 눈빛이 되었지만, 이는 곧 충심으로써 냉정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받들겠습니다.”

“최정예 2급 조사단으로 1층만 수색하고 와. 무리하지는 말고.”

“예.”

조사단장이 인사를 하고 마스터 룸을 나갔다.

에단은 노기가 지워지지 않은 얼굴로 창밖의 풍경을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한국에게 당한 치욕은 반드시 백배, 아니, 천배로 돌려주리라.

에단의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마스터 룸을 울렸다.

* * *

조사단장에게 임무를 부여받은 2급 조사단 팀장 마이크는 던전 클리어 출정을 즉시 준비했다.

조사단원들이 속속들이 야외 캠프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사이 팀장 마이크는 간부들과 함께 1층 던전 클리어에 대한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작전 회의가 끝날 무렵, 헌터들의 소집이 완료됐다.

이제 출정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

팀장 마이크는 천막을 손으로 걷어 내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약간 흐트러져 있던 2급 조사단 부대가 일제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마이크는 작전 내용을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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