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93화 (93/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93화>

* * *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던전이 사라지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을 눈에 담기 위해, 모두 하나가 되어 사라지고 있는 던전을 바라보았다.

점점 투명해지고 있는 던전을 올려다보면서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으며, 어떤 이들은 기도를 했다.

이제야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다며 마치 파티를 즐기는 듯했다.

더 이상 헌터의 도움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모든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염원했다.

그와 반대로 헌터들은 던전이 사라지고 있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이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건 아닌지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던전이 모두 사라져 육안으로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수많은 이들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건 오직 헌터들뿐이었다.

그사이-

던전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과는 정반대로,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위치한 바다 위로 검은 빛의 형체가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블랙홀을 닮아 있었고,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주변엔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파도가 사납게 출렁이며 블랙홀은 점점 더 그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검은 형체는 세로로 점점 길어지더니 이내 하나의 뚜렷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탑(Tower).

그 검은 탑을 중심으로 파도가 마치 파문처럼 사방으로 밀려 나갔다.

자동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 길을 걷던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목을 돌려 그 끔찍한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 * *

[뉴스 속보입니다. 뉴욕 평화의 여신상 부근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던전이 사라지면서 평화가 찾아오는 듯싶었으나, 던전으로 유추되는 탑이 나타나 새로운 악재가 아닌지 우려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특파원의 영상을 보시죠.]

화면이 전환되었다.

영상에선 탑의 형태를 갖춘 던전이 바다 위에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탑 주변으로 천둥 벼락이 쳤고, 파도는 당장이라도 해일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이 거세게 출렁였다.

더불어 평화의 여신상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불길한 징조의 현상은 점점 더 그 기세가 난폭해져 가는 중이었다.

이호성은 뉴스를 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이마를 탁 짚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마인의 탑을 이렇게 뉴스를 통해 보게 되자, 그 절망감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는 힘없는 얼굴로 일어나 민성의 방문을 열었다.

희망이 섞인 눈으로 안을 보았지만, 민성은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동 없이 잠들어 있었다.

이호성은 답답한 심정으로 민성을 내려다보며 뺨을 씰룩였다.

“잠자는 백설 공주냐. 좀 일어나시라고…….”

불경스러운 말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민성은 아기처럼 잠든 채였다.

“이러다 진짜 세상 멸망하고 눈뜨는 거 아니야?”

딩동!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밖으로 나간 사람은 없는데.

이호성은 의아해하며 민성의 방을 나왔다.

인터폰 앞으로 가자, 압도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가 모니터에 보였다.

중앙 기관 총군주, 김지유였다.

버튼을 눌러 출입문을 열어 주자, 잠시 후 그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민성 씨는요?”

“자고 있습니다.”

“……네?”

김지유는 잠시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물음을 던지곤 눈만 깜박였다.

“자고 있어요. 백설 공주처럼 몇 시간째 자고 있습니다. 잠도 없으신 양반이 오늘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김지유가 이호성을 빠르게 지나 민성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이호성의 말대로 민성이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자 김지유는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민성 씨, 강민성 씨. 일어나요.”

어깨를 잡고 흔들어도 민성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역시 안 깨어나죠?”

이호성이 방문 옆 틀에 기대며 물었다.

“이 사람,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김지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성을 보며 물었다.

“열은 없는 것 같았고, 호흡도 정상인 것 같았습니다.”

이호성의 말에 김지유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꺼냈다.

“중앙 병원이죠? 중앙 기관입니다. 지금 불러 주는 주소로 의료 과장들 좀 보내 주세요. 중요한 환자가 있습니다.”

김지유는 전화를 끊고 메시지로 주소를 보낸 후, 누워 있는 민성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고요한 정적이 민성의 방 안에서 무겁게 흘렀다.

* * *

마인의 탑이 완벽한 형체를 이루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검은 탑은 그 무엇으로도 깨트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해 보였으며, 주변으로는 격랑의 파도가 치고 새하얀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둑어둑해졌을 때,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헌터 기관에서는 새롭게 생성된 검은 탑 주변으로 시민들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했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대피해, 검은 탑과 가까운 거리에는 단 한 명의 인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뉴욕 맨해튼은 마치 폐허의 땅처럼이 스산했고, 도시는 마치 종말을 향해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 * *

국내에서 최고의 병원이라 일컬어지는 중앙 병원에서 의료진이 도착했다.

외과와 신경과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과장들이자, 국내 최고 수준의 힐러 능력을 각성한 헌터 의사였다.

그들은 김지유에게 인사를 올리고 즉시 장비를 챙겨 잠들어 있는 민성의 몸 상태를 살폈다.

자신들의 힐러 능력은 물론 의학적 접근으로도 민성을 체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의료 과장들이 내놓은 답변이었다.

“이상이 없는데 왜 이렇게 오래 자고 있는 거죠? 벌써 이틀째인데.”

김지유의 물음에 의료 과장들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지유는 누워 있는 민성을 보며 짧게 한숨 쉬다가 이호성을 불렀다.

“깨어나면 바로 연락 주세요.”

이호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의료진과 함께 민성의 집을 나섰다.

* * *

미국 헌터 기관의 마스터, 에단은 뉴스에서 보도 중인 내용을 보며 표정을 무겁게 굳혔다.

한국에서 미리 정보를 받긴 했지만 그게 사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한국이 보내 준 정보는 확실한 듯했다.

에단은 TV를 끄고 사무 책상 앞으로 돌아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고민은 첫 탐사 작전에 대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미국 헌터 조사단을 출두시키고 싶었지만,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새로운 미궁이 나타났을 때와는 다르게, 등골이 서늘하다.

자신이 이렇게 느낄 정도라면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에단은 스크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신호가 흐르고 스크린 통화가 연결되었다.

김지유의 얼굴이 떠 있는 영상 화면이 에단의 시야에 들어왔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시간 끌 거 없이 본론부터 얘기하겠소.”

- 말씀하시죠.

김지유가 예의 이성적인 태도로 말했다.

“한국의 헌터 기관이 맨해튼에 나타난 검은 탑 던전을 조사해 줬으면 합니다. 동의하시오?”

그녀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 저희의 힘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단순한 조사단의 개념이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과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힘을 합쳐야 할 때예요.

그에 에단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우리는 이미 뜻을 정했소. 그대의 뜻을 답하시오.”

- 불가합니다. 리스크가 너무 커요. 무고한 생명을 잃게 되는 일이 될 겁니다. 다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지금은 전 세계 헌터들이 힘을…….

에단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 헌터 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건 알 수 있지. 책임감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헌터국과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소. 앞으로 우리는 모든 사안에서 한국을 배제할 것이오.”

- 그런……!

에단은 그 말을 끝으로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담배에 불을 붙이며 창밖을 보았다.

‘약소국 주제에, 정말이지 뻔뻔하기가 하늘을 뚫는군.’

그는 한국의 총군주를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 * *

김지유는 쓰고 있던 은테 안경을 벗으며 짧게 한숨 쉬었다.

미국 측이 원하는 그림은 이미 파악했다.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건 단순한 블러핑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를 위해서라도 그런 허접한 도발에 말려 들어갈 생각 따위는 없었다.

미국 측의 압박에 한국이 휘말려 갈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판단 미스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는 건 미국 측일 것이다.

만약 한국에도 마인의 탑이 나타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재 마인의 탑은 뉴욕 맨해튼에만 있다.

그 얘기는 곧- 미국은 마인의 탑을 상시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고, 그 탑으로부터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껴안아야만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미국 쪽에서 조사단을 파견할 터.

그리고 그 조사단이 전멸한다면, 그제야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김지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약소국으로서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오직 인내를 갖고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 * *

이호성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며 인중을 긁었다.

3일이 흘렀다.

3일 동안 민성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있다.

강민성은 마치 식물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곤히 자고 있었다.

던전이 사라지고 마인의 탑이 생겼지만, 민성이 깨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호성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민성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었다.

민성이 깨어나면 마인의 탑으로 가게 될 거고, 그 자리엔 반드시 자신이 동행하게 될 것이다.

마인의 탑에 들어가자마자 죽고 사는 건 둘째 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개고생의 길에 접어드는 건 필연적인 일.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휴식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탑으로 가게 되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장시아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번 해 볼까?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쿵덕쿵덕 무겁고 빠르게 뛰었다.

어차피 밑져 봐야 본전.

찬스가 있으면 잡아야 돼.

이호성은 결심을 굳히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와 머리를 다듬고 2층으로 올라갔다.

‘영화 한 편 보자고 하는 거야.’

이호성은 주먹을 꽉 쥐고 장시아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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