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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삼시세끼-92화 (92/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92화>

이내 현관문이 열리고, 이 저택에서 처음 만나는 남자가 나타났다.

이호성이었다.

장시아는 자신을 마중 나온 이호성을 빤히 보았다.

넋 나간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이호성을 보면서, 가뜩이나 불편했던 그녀의 표정이 더 크게 어그러졌다.

“할아버지 안에 있어요?”

장시아의 물음에 잠시 멍하게 있던 이호성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들어와. 네가 장시아지?”

“뭐야, 초면부터 왜 반말이래.”

장시아가 콧방귀를 뀌며 이호성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장웅이 거실에서 나와 손녀인 시아를 맞았다.

“우리 귀여운 손녀. 잘 찾아왔네?”

그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시아를 안아 뺨을 부볐다.

“으윽! 따가워요. 그만해, 할아버지.”

장웅이 민성과 이호성의 시선에 헛기침을 하며 시아를 놓아주었다.

“인사하거라.”

장웅의 말에 장시아는 건성으로 짧게 까딱거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장시아예요.”

“예의를 갖춰서 해야지. 다시 해.”

장웅이 근엄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마지못해서 다시 90도로 인사했다.

민성은 장시아를 빤히 보았다.

그녀는 민성의 시선에 살짝 겁을 먹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서워…….’

태어나 저런 차가운 눈빛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예쁜 얼굴 덕분에 늘 귀여움을 받아 왔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헌터라고는 해도, 이렇게 단순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 정도라니.

그때, 민성이 조용히 커피 잔을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을 듯했다.

“할아버지…… 나 지금처럼 그냥 혼자 살면 안 돼요?”

장시아가 처량한 눈으로 장웅을 보며 부탁했다.

하지만 장웅은 부드러운 미소로 손녀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줄 뿐이었다.

“너를 지켜 줄 분들이시다. 착하게 지낼 수 있지?”

장시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네네.”

장웅이 장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 * *

민성은 목을 돌려 짧게 스트레칭을 한 후, 침대에 걸터앉았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졸음이 몰려왔다.

이곳은 마계가 아니니 졸리면 자면 된다.

그래서 이 현세가 좋은 거다.

이불을 덮어 눈을 감자마자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편안하게 잘 수 있다는 건, 먹는 것 다음으로 깊은 안락감을 선사했다.

민성은 이내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 * *

이호성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새하얗고 긴 다리를 걸친 채 TV를 보고 있는 시아를 훔쳐보았다.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가 서구적인 미모로 톱클래스라면, 장시아는 한국적인 미모가 빛을 발했다.

거기다 저 모델처럼 긴 다리에 볼륨감 있는 몸매는 전혀 한국적이지가 않다.

개미허리에 가슴과 골반의 볼륨감은 절대 아시아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도저히 훔쳐보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이다.

장시아.

그녀는 이호성의 이상형 그 자체였다.

24살이라고 했었나?

내가 올해로 서른한 살이니까 나이 차이가 조금 나네.

하지만 띠동갑도 아니고 7살 차이면 나쁘지 않…….

“저기 아저씨. 기분 나쁘니까 자꾸 변태처럼 훔쳐보지 말아 줄래요?”

이호성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아, 안 훔쳐봤거든.”

장시아는 화들짝 놀란 이호성을 보며 혐오스럽다는 듯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고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이호성은 그런 그녀를 다시 훔쳐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도도한 것도 너무 매력적이야.

곁눈질로 그녀를 흘끔흘끔 보던 이호성은 순간 TV를 보고 흠칫 놀랐다.

“어? 잠깐만. 채널 돌리지 말아 봐.”

이호성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장시아가 못마땅한 얼굴로 채널을 뉴스에 고정시켰다.

주방 정리를 마치고 거실로 나온 장웅도 팔짱을 끼고 뉴스에 집중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던전이 사라지는 우호적인 현상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 역사적인 현장의 순간을 특파원이 전달해 드립니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특파원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서 현재 던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설명하며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카메라가 특파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아가자, 허공에 떠 있던 던전이 점점 반투명한 형태로 변하고 있는 과정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를 보며 이호성은 물론 장시아와 장웅까지 놀란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처음 던전이 나타났던 때와 너무도 비슷했다.

“던전이 없어지고 있어요!”

장시아가 기뻐하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호성과 장웅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지금 시점에 나타난 변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호성과 장웅은 그 본질을 캐치해 냈기 때문이었다.

이호성이 벌떡 일어나자 장시아가 깜짝 놀라며 이호성을 보았고, 장웅 역시 잔뜩 그늘이 진 얼굴로 이호성을 응시했다.

이내 이호성이 굳은 표정을 한 채 민성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었다.

“……?”

이호성은 의아한 눈으로 민성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방문을 열기만 하면 어김없이 눈을 떴던 민성이었다.

자고 있는 중에도 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기 보호 의식은 깨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 거지?

이호성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민성을 불렀다.

“헌터님. 헌터님?”

꽤 소리를 내서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은 여전히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뭔 잠을 이렇게 깊게 주무신대? 일본 가서 푹 쉬고 왔으면서.”

민성을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하던 이호성은 짧게 한숨 쉬었다.

어차피 지금의 현상은 언제든 일어나게 될 일이었다.

단지 예상보다 그 시기가 빨랐을 뿐.

단순한 찌라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문제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긴 하지만, 민성이 일어나고 나서 이 사실을 전해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호성은 조용히 민성의 방에서 나왔다.

장시아는 영문 모를 표정이었고, 장웅은 어떻게 되었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에 이호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깊게 주무시네요. 일단은 상황을 좀 지켜보죠.”

장웅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장시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되게 좋은 상황 아니에요? 다들 왜 이렇게 심각해요?”

장웅은 진실을 모르는 장시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꾹 안아 주었다.

“할아버지?”

시아를 꼭 안고 있는 장웅의 눈빛은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 * *

이호성은 눈썹을 빡빡 긁었다.

왜 안 일어나는 거지?

벌써 노을이 져 하늘이 서서히 어둑해지고 있다.

초저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민성은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쯤 되면 무슨 병이라도 도진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 불안함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강민성이 없다면 마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에게 듣기로 마인의 힘이란 그만큼 공포스러운 수준이었으니까.

이호성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민성이 자고 있는 방을 보았다.

초조함이 가슴속에서 커다란 파문이 되어 퍼져 나갔다.

깨우자.

이건 보통 사안이 아니야.

단잠을 깨워 얻어터지는 한이 있어도, 깨워야 한다.

너무 오래 자고 있어.

이호성은 민성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전히 강민성은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은 채 민성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헌터님, 헌터님!”

어깨를 꽤 세게 흔들었는데도 민성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 왜 이래, 진짜. 엉덩이를 걷어찰 수도 없고 미치겠네. 이거 어디 아픈가?”

이호성은 민성의 이마에 손을 대어 보았다.

열은 없다.

코에 손을 대 보자 호흡도 정상이다.

안색을 살펴봐도 전혀 문제는 없었다.

“근데 왜 안 깨어나는 거야? 이 중요한 시기에 겨울잠 자는 것도 아니고.”

이호성은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꽉 쓸어 올렸다.

“환장하겠네, 진짜.”

불안함과 답답함이 섞여 든 얼굴로 민성을 내려다보았다.

강민성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결국 이호성은 짧게 혀를 차며 민성의 방에서 나왔다.

“아직 주무시고 계신가?”

거실에 나온 장웅이 물었다.

“네.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네요. 이러다 영영 자는 건 아닌지…….”

“거, 무슨 그런 불길한 말을 하는가!”

장웅의 호통에 이호성은 머쓱한 얼굴로 코를 문질렀다.

“손녀 따님은요?”

“친구들 만난다길래 시기가 좋지 않다고 말렸더니, 삐져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네.”

“그렇군요.”

“아, 아까부터 자네 전화가 계속 울리는 것 같던데.”

“죄송합니다.”

이호성은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을 찾았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부재를 확인했다.

[클랜장님 X됐어요. 던전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다 우리 백수 되는 거 아닐까요?]

[정부도, 헌터 기관도 이렇다 할 얘기도 없고…… 미치겠네요.]

[알거지 될 각인 듯합니다, 클랜장님.]

[기술이라도 배워야 할까요…….]

단체 메시지 방에서 다이아몬드 클랜의 클랜원들은 직업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에 이호성은 던전이 존재하는 한 시민들의 두려움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중립적인 자세를 지켜갈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그제야 격동적이던 단체 메시지 방이 다소 안정화를 찾아가는 듯했다.

이호성은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 놓고 주머니 안에 넣은 뒤, 깊게 한숨 쉬었다.

만약 마인의 탑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곳에 클랜원들을 데려갈 수는 없다.

마인의 탑은 사지(死地)나 다름없으니까.

머지않아 현세의 지옥이 펼쳐질 거라는 사실에 이호성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와중에 강민성은 죽은 듯이 자고 있으니 불안감은 배가되고 있었다.

깨어나겠지.

이호성은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집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오늘따라 공기가 서늘하다.

뜨거웠던 여름이 서서히 끝나 가고 있는 것인지, 미래의 두려움 때문에 체온이 내려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호성은 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 연기를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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