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삼시세끼-91화 (91/352)

<귀환자의 삼시세끼 91화>

* * *

스크린 룸에서 비서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오른쪽 벽면에 홀로그램으로 스크린 화면이 나타났다.

잠시 후, 스크린 위로 노기 서린 표정의 미국 헌터 마스터, 에단의 얼굴이 나타났다.

김지유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소식 들었습니다. 유감입니다.”

김지유의 말에 에단이 벼려진 칼날 같은 눈빛을 드러냈다.

- 테러 현장에서 한국인의 신분증이 발견됐소. CCTV에 찍힌 얼굴과 신분증의 인물이 일치했고.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그는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그를 상대로 김지유는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중앙 기관과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이번 사건은 테러리스트의 독단적인 소행으로 추정…….”

- 신규 미궁 던전이 나타났을 때 다급히 구조를 요청한 주제에, 우리 헌터들을 무시했었던 한국의 중앙 기관이 아닌가?

김지유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지유가 깊게 머리를 숙였다.

에단은 김지유의 사과에 콧방귀를 뀌었다.

- 한국의 헌터 한 명이 우리 지원 팀장 칼리스를 폭행했다고 들었소. 그 헌터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넘겨주시오.

그에 김지유가 이성을 찾은 눈으로 에단을 직시했다.

“그것은 감정적인 요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 뭐라?

에단이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대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비밀을 알려 드리죠.”

- 비밀?

“파일을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얘기는 그 이후에 나누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시답잖은 얘기라면 각오해야 할 거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김지유는 곧장 비서에게 소지하고 있던 USB 자료를 미국 헌터 기관의 메일로 보낼 것을 명령했다.

잠시 후, 메일을 확인한 에단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김지유가 그림자 길드로부터 입수한 정보.

USB에는 마인의 탑, 그리고 마인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 이게 정말 사실이오……?

“미국의 헌터 마스터. 속히 헌터 정상 회담을 열어 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 회의 후 다시 연락드리겠소.

에단이 굳은 얼굴로 노트북을 덮었다.

* * *

워프 게이트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이호성이 말끔한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푹 쉬고 오셨습니까, 헌터님.”

이호성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외국에선 대화가 불편해. 일전에 던전 안에서 만난 놈이 외국어를 해석해 주는 시계를 차고 있었잖아. 그런 거 살 수 있나?”

“네. 살 수 있습니다.”

민성이 눈썹을 찌푸렸다.

“왜 진작 얘기 안 한 거지?”

“최근에 상용화되어서 시중에 풀렸다고 하더라고요.”

이호성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일단 시계부터 사고 집으로 돌아가자. 장웅한테 식사 준비하라고 일러두고.”

“네. 헌터님.”

민성은 스트레칭을 하며 앞장서서 워프 게이트 건물을 빠져나왔다.

* * *

언어를 번역해 주는 시계는 상당한 고가였지만, 민성은 금전 감각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유명한 브랜드의 랭귀지 워치를 결제했다.

무려 2억 원이 넘는 최고 금액의 랭귀지 워치.

민성은 그 시계를 손목에 차고 테스트를 해 보았다.

이호성이 외국어를 말하자, 시계가 즉각 해당 언어를 번역해 주었다.

앞으로 해외에서 언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더 이상 없을 듯했다.

“좋네.”

민성은 시계 구입을 마치고 이호성과 함께 차로 돌아왔다.

이호성이 운전석에 오르면서 입을 열었다.

“아, 참. 헌터님. 일전에 처분하라고 하셨던 아이템, 모두 끝마쳤습니다. 굳이 급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시간을 두고 고가에 판매했고요. 모두 헌터님 계좌로 이체했습니다.”

“금액은?”

“1,020억가량입니다. 돈 많으신 분들 많더라고요. 워낙에 귀환 물건이라 희소성이 커서 그런지, 경매가 하늘을 뚫을 기세였습니다.”

민성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이건 매매 영수증입니다.”

이호성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됐어. 맞겠지.”

민성이 치우라고 손짓하자, 이호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영수증을 다시 품 안에 넣고 차를 출발시켰다.

* * *

이호성은 운전을 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만 원도 아니고 천억 원이 넘는 돈이다.

그 돈을 자신이 꿀꺽하고 해외로 튀었다면 한평생 온갖 미녀란 미녀는 다 끼고 슈퍼카를 몰면서 거대 저택에서 생을 마감했겠지.

물론 그건 마인이라는 찌라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이 있어야겠지만.

만약 마인이라는 찌라시가 없었다면, 자신은 강민성이 맡긴 아이템을 처분하고 해외로 도망갔을까?

진지하게 자신에게 그 질문을 던져 보았다.

혼란스럽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레벨은 800이 넘는다.

중앙 기관에 소속되어도 곧장 정예 멤버로 활동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엄청난 레벨.

이 레벨은 강민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본래 투자라는 건 최대의 효율을 일으키는 법이고, 나발이고 간에…… 죽기 딱 좋은 게 강민성과 함께 걷는 길이다.

어휴, 마인의 탑만 아니었어도 바로 돈 들고 튀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이호성은 코를 훌쩍였다.

그나저나 강민성은 천억이 넘는 돈이 계좌로 들어왔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정녕 인간인가?

…….

훗.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군.

그는 악마다.

그것도 악마를 잡아먹는 악마.

그냥 거역하지 말고 운전에나 집중하자.

* * *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콧속으로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장웅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일부러 아침은 걸렀다.

현재 배 속은 배고픔으로 거세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담 요리사 장웅이 새하얀 요리복을 입은 채로 민성과 이호성을 맞았다.

“오셨습니까. 식사 준비해 뒀습니다.”

민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욕실에 가서 손만 씻고 나와 바로 식탁 앞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새하얀 쌀밥과 간장게장이 놓여 있었다.

다른 반찬은 없고, 오직 쌀밥과 간장 게장뿐이다.

“게장이라면 숙성할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민성의 물음에 장웅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물건입니다. 장을 봐 온 재료도 있지만, 먼저 이 게장을 점심으로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민성은 호감이 담긴 시선으로 게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군.”

엷은 미소와 함께 젓가락을 들었다.

간장 게장이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간장이 베이스니 짜지는 않을까?

그런 의문을 품고 흰쌀밥을 한 술 떠서 먹고, 다리가 연결된 부위 하나를 들어 깨물어 먹어 보았다.

짜작!

껍질이 살짝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게장의 맛이 입안으로 쑥! 하고 밀려 들어왔다.

민성은 눈을 번쩍 떴다.

그냥 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나게 달면서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다.

신선한 게장의 향기에 비린내는 조금도 없었다.

민성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장웅이 민성의 밥 절반을 덜어 게장 몸통의 내장과 함께 비볐다.

장웅이 다 비벼진 게딱지 밥을 민성의 앞에 놓아주자, 민성은 이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아!”

순간적으로 욕을 할 뻔했다.

너무 맛있다.

전신이 저릿저릿해질 정도로 극도의 희열을 파생시키는 맛이다.

민성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게딱지 밥을 보았다.

이래서 밥도둑이라고 했었던 거군.

간장 게장에는 순식간에 밥을 삭제하게끔 만드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민성은 자세를 고쳐 잡고 폭풍 흡입을 시작했다.

게딱지 밥을 퍼먹고, 다리와 연결된 몸통 살을 깨물어 먹고, 흰쌀밥도 퍼먹었다.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한 끼의 식사를 해치웠다.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맛있다.

간장 게장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건가?

아니다.

이건 장웅이라는 요리사가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식재료다.

그의 숙성 능력이 빛을 발했기에 이런 마법의 맛을 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장웅의 간장 게장.

꿀맛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그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장웅.”

민성의 부름에 장웅이 정중히 목례했다.

“아마 한동안 이 간장 게장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정말 맛있는 점심 식사였어.”

장웅이 부드럽게 웃음 짓자 민성이 짧게 숨을 토해 내며 식탁 앞에서 일어났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성심껏 준비하겠습니다. 저 그런데…….”

장웅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민성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주억였다.

“말해 봐.”

“제게 손녀딸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서 헌터님과 함께 지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모가 있을 텐데?”

“일찍 여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여기서 같이 지내려는 이유가 뭐지?”

“인류에 큰 재앙이 도래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헌터님의 전담 요리사로 일을 시작한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민성은 잠깐의 고민 끝에 장웅을 직시했다.

“딱 거기까지.”

장웅이 머리를 들어 민성을 보았다.

“거기까지다. 그 이상 내가 손녀딸까지 책임질 여유는 없다는 얘기다.”

장웅이 미소를 지으며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민성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기 위해 컵을 들자, 장웅이 다가왔다.

“제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민성은 컵을 장웅에게 넘기고 거실로 나왔다.

게장을 너무 순식간에 해치워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더 먹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런 아쉬움이 식사의 즐거움을 이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마당 정원으로 나가 눈을 감고 햇살을 받았다.

마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태양빛.

민성은 마치 광합성을 하듯 햇빛이 내리쬐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태양의 열기와 정원의 향기를 음미했다.

그러기를 잠시, 장웅이 커피를 들고 옆에 섰다.

그 인기척에 눈을 뜨고 커피를 받았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카페인이 기분 좋게 전신에 퍼져 나갔다.

* * *

장웅의 손녀딸 장시아.

올해로 꽃다운 나이인 방년 24세.

170cm의 늘씬한 키에 황금 비율을 가졌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의 생머리를 가진 그녀는 청초한 한국적인 미모가 빛을 발했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인형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빼어났으며, 작은 얼굴에 분명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어 세간의 사람들이 엘프라고 불러도 납득할 만한 수준의 아름다움이 결정체를 맺었다.

하지만 그런 요정 같은 우월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반항기가 잔뜩 실려 있었다.

“대체 내가 낯선 사람들이랑 왜 같이 살아야 하는 건데?”

그녀는 뺨을 부풀리며 신경질적으로 캐리어를 끌고서 민성의 저택 앞에 멈춰 섰다.

“할아버지 때문에 못 살아, 정말.”

장시아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마음을 먹은 듯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마당 문이 열렸다.

그녀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몸만 한 캐리어를 끌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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