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90화>
* * *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면 조금 졸릴 수 있다고 했지만 민성은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저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니, 일본의 워프 게이트 건물로 이동되어 있었다.
일본 안내 직원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출구로 나오자, 일본의 고급 세단 차량과 운전기사가 준비된 상태였다.
일본에 온 김에 식사도 하고 온천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민성은 이호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마자 통화가 연결되었다.
- 헌터님. 무사히 도착하셨나요?
“그래. 여기를 기점으로 멀지 않은 곳에 맛집이랑 온천 위치 알아내서 보내.”
-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차에 타자 곧바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식사와 온천을 함께할 수 있는 주소지였다.
민성은 운전기사에게 휴대폰을 보여 주었고, 운전기사는 친절한 미소로 인사하며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밖에 도열하고 있던 워프 게이트 직원들이 멀어지는 민성의 차량을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창문을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앞머리를 휘날리게 만들었다.
주머니 안에 있던 바가지는 저도 바깥이 보고 싶은지 꾸물꾸물 기어 나와 유리창에 매달렸다.
하늘은 먹구름이 끼며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할 듯처럼 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와 일본 야외의 풍경을 바가지와 함께 보고 있기를 잠시, 어느덧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운전기사가 알려 왔다.
도착한 곳은 일본의 전통적인 숙박 시설, 료칸이었다.
방을 배정받고 안으로 들어가자, 다다미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내부가 보였다.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편하게 쉬어 가면 되겠군.’
민성은 주인장에게 식사와 온천을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바가지는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들어가 휴식을 취했고, 민성은 료칸에서 준비해 둔 유카타[浴衣(욕의)]로 갈아입었다.
준비를 마치고 다다미 문을 열자, 정원이 보였다.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와, 연못에서 대나무 줄기를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가 보였다.
힐링이 되는 듯한 풍경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민성은 곧 식사가 시작될 거라는 얘기에 자리를 이동했다.
* * *
식사를 하는 곳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바 형태로 되어 있는 다찌석밖에 없었지만, 이 방이 귀빈을 모시는 다찌 룸이라고 직원은 설명해 주었다.
다찌석 바 너머에 있는 요리사가 민성을 보고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해 왔다.
민성은 그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정중한 태도로 음식을 하나하나 놓아주었다.
다양한 음식들이 식탁 위로 올라오는 걸 지켜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즐겁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맛일까?
민성은 기대감이 어린 얼굴로 식사 시작을 준비했다.
* * *
먼저 옥수수를 갈아서 만든 스프를 맛보았다.
옥수수의 달달함과 고소함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 마치 스위스에서 요들송을 듣는 것만 같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기분.
시작부터 입이 즐겁군.
이어서 맛있게 훈제한 비프 로스트로 넘어갔다.
입에 넣자마자 그대로 녹아 버린다.
더불어 특제 미소 소스를 뿌린 가지 구이는 최상급의 사랑스러움을 자랑했다.
100년간 땅바닥에서 자다가 1등급의 침대에 누운 기분이랄까.
혼란스러울 정도로 맛있군.
다음으로는 흑돼지 베이컨으로 만든 시져 샐러드.
신선한 야채의 맛과 상큼함이 독특하면서도 성공적인 변화를 꾀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만 같은 상쾌함과 더불어 흑돼지 베이컨의 깊이가 배 속을 따듯하게 만드는 듯했다.
일본 요리란 이런 거였군.
좋다.
만족하여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중에, 메인 요리가 드디어 등장했다.
메인 요리는 스테이크였다.
레어로 나온 고기의 빛깔이 조명을 받아 마치 예술품처럼 반짝거렸다.
스테이크만 먹는 줄 알았는데, 새하얀 쌀밥도 나왔다.
쌀밥과 함께 스테이크를 먹는 모양이었다.
민성은 재빨리 새하얀 쌀밥 위로 스테이크를 올렸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하얀 쌀밥과 스테이크의 조합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태를 자랑했다.
보기에 좋은 게 맛도 좋다는 건 분명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같았다.
민성은 하얀 쌀밥과 스테이크를 올린 숟가락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푹신하고 달콤한 밥알의 맛, 스테이크의 완벽한 부드러움과 그 육즙의 단맛이 하모니처럼 어우러지며 입안에서 축제를 벌였다.
행복하군.
일본의 료칸 식사에 매료된 민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 료칸의 식사에 만족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분명 그 인간은 정상이 아니리라.
추가 메뉴를 주문할까 하다가, 메뉴판을 봐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미 포만감이 적당하여 식사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 * *
식사를 마치고, 민성은 맥주 한 캔을 구입했다.
온천을 하면서 맥주를 먹기 위해서다.
맥주 캔 하나만 들고서 온천탕이 있는 야외로 나갔다.
더운 여름임에도 그늘이 져 있고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민성은 뜨거운 온천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뜨겁고 후끈한 열기가 금세 몸을 개운하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딸칵!
민성은 캔 맥주 뚜껑을 따고, 하반신을 온천물에 담근 채로 맥주를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시원한 맥주가 따끔따끔하게 목을 넘어가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단숨에 캔 맥주 절반가량을 비워 버린 민성은 긴 숨을 후- 하고 뱉어 내며, 온천물로 팍팍 세수를 했다.
그리고 뒤로 기대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음?
바가지가 제 몸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목욕통을 끌고 오더니 흑마법으로 물을 퍼올리고서 그 안에 들어가 반신욕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런 바가지를 보며 피식 웃던 중에 근처에 놔둔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확인해 보자, 발신자가 중앙 기관의 총군주 김지유였다.
민성은 통화 거절을 누르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후우…….”
온천물이 뜨거워서 정신적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이 든다.
띠링!
이번엔 문자 메시지가 소리가 울렸다.
민성은 미간을 구기며 메시지 내용을 보았다.
[전화 안 받으면 찾아갈 거예요. 일본이죠?]
한숨을 쉰 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거야.”
민성이 짜증을 담아 말했다.
- 워프 게이트는 어땠어요?
협박을 해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김지유가 밝은 톤으로 물었다.
“뭐, 쓸 만하던데.”
- 약속한 대로 강민성 씨는 워프 게이트 이용이 무료니까 편하게 사용하시면 돼요. 모든 금액은 우리 헌터 기관에서 지불한답니다.”
“그런 시답잖은 걸 말하려고 전화한 건 아닐 텐데.”
- 휴, 알았어요. 다름이 아니라…… 마인의 탑이 생겨나고 마인들이 세상 밖으로 유출되기 시작한다면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나게 될 거예요. 만약 민성 씨 말이 사실이라면.
“…….”
- 전 세계 헌터들이 모두 마인의 탑으로 향하게 되겠죠. 그들이 힘을 합한다면 탑을 클리어할 수 있을까요?
“몰라.”
- 하긴, 아직 강민성씨는 월드 헌터들의 수준에 대해 잘 모르실테니까. 영상을 하나 보내 드릴게요. 영상 다 보시면 다시 전화 주세요.”
전화가 끊어지고, 김지유가 말했던 대로 헌터들의 사냥 영상이 메시지로 도착했다.
극비리에 촬영된 기밀 자료.
영상 안에서는 화이트 드래곤을 잡고 있는 헌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화려한 전투 끝에 드래곤을 쓰러트리는 월드 헌터들의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영상을 모두 본 민성이 김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떤가요?
그녀가 기대감이 서린 목소리로 물어 왔다.
“애들 장난 수준.”
민성이 딱 잘라 말했다.
그에 김지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인 한 마리만 만나도 그 인력으로는 10분을 버티지 못할 거다.”
- 10분이라니……!
방금 영상에 나온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들이 포함되어 있는 레이드 부대였다.
그런 부대가 10분 안에 전멸이라니.
김지유가 충격에 빠지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 ……민성 씨가 말한 마인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요. 설명해 주셨으면 해요.
“싫다.”
하지만 민성은 귀찮음이 가득 밴 목소리로 말했다.
- 부탁이에요…… 이건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요.
“더 설명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까.”
민성은 그 말을 끝으로 휴대폰 배터리를 분리하고 뒤로 던졌다.
뒤이어 민성이 온천탕에 얼굴만 빼놓고 몸을 푹 담갔다.
뜨거운 물의 수증기가 얼굴을 훑으며 지나간다.
얼굴에 묻은 물기를 손바닥으로 닦아 내며 긴 숨을 내뱉었다.
마치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이나 몸이 시원하다.
일본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민성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 * *
김지유는 열병처럼 뜨겁게 끓는 이마를 붙잡고 창밖을 보았다.
강민성이 한 말을 듣고 사실상 머릿속이 붕괴되어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멍한 기분이었다.
강민성에게 보내 준 자료는 전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월드 헌터들의 레이드 영상이었다.
그런 월드 헌터의 전력이 마인 한 마리에게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전멸 당할 수준이라고……?
그건 곧, 지구 인류가 마인들에 의해 씨가 마르게 될 거라는 얘기와 다를 게 없었다.
김지유는 아랫입술을 깨물고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 팔자 좋게 온천욕이나 할 수 있는 거야, 이 사람은!?”
화가 나다가도 한편으로는 또 이해가 되기도 해서, 요즘 김지유는 자신의 감정이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마인이라는 건 결국 마인의 탑이 나타나야만 하는 거고, 아직 마인의 탑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민성이 일상을 즐기고 있는 것을 뭐라고 할 순 없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어쩌면 인류의 미래는 정말 강민성이라는 남자 한 명에게 달린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 더 설명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민성의 말이 메아리처럼 머리에 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놈들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김지유는 숨을 가다듬었다.
강민성만 의지할 수는 없다.
준비를 해야 해.
인류의 재앙에 맞서 싸울 준비를.
현재 미국은 한국에 대해 배신감과 모욕감에 치를 떨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 대화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를 트고 마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였다.
그때 비서실 문이 열렸다.
“총군주님. 미국 헌터 마스터로부터의 연락입니다.”
때마침 온 연락.
김지유는 쓰고 있던 은테 안경을 벗으며 옷걸이에 걸어 둔 재킷을 걸쳐 입었다.
“바로 연결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