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89화>
대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몬스터의 습격으로 인해 생긴 피해와 테러의 피해가 설사 같다 할지라도, 테러에 대한 파급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현지 미국 뉴스에서는 테러 사건에 대해 다루었고, 조사 중 테러리스트의 국적이 한국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되면서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만큼 발언권 또한 무겁다.
미국 헌터 기관은 만약 해당 테러의 근원지가 한국이라면, 한국은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발표했다.
일전 한국에서 불쾌한 상황이 있었던 만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과 한국의 사이가 급격히 벌어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던 이호성은 사과를 깨물어 먹으며 피식 웃었다.
에이스의 만행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호성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게 어이가 없었다.
미국에서 온 에이스는 서울의 절반가량을 터트리고 다녔다.
그런데 고작 빌딩 하나 날려먹었다고 저 난리라니.
이호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 먹은 사과를 쓰레기통에 던져 놓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민성의 전문 전담 요리사로 일하게 된 장웅은 주방을 정리 중이었고, 바가지는 걸레를 들고 청소 중이었으며, 민성은 산책을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툭툭-
“발 치워.”
바가지가 걸레를 들고서 이호성의 다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발을 치우니 이호성이 딛고 있던 자리를 바가지가 슥슥 닦았다.
“완전 하인이 따로 없군.”
이호성이 바가지를 보며 피식 웃자, 바가지가 이호성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개보단 낫지.”
바가지가 그렇게 말하곤 다시 바닥을 북북 닦았다.
이호성의 이마에 혈관이 빠직 돋았다.
바가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이호성을 무시하고 청소를 계속했다.
바가지를 노려보던 이호성은 벨소리를 듣고 휴대폰을 꺼냈다.
민성의 전화였다.
이호성은 기민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헌터님.”
- 차 시동 걸어 놔.
“알겠습니다. 식사하러 가시는 거죠?”
- 그럼 너랑 놀러 가겠냐?
“바, 바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이호성은 한숨을 쉬었다.
분명 메뉴를 물어볼 텐데, 어디로 가야 하지?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던 이호성은 고개를 팩 들었다.
아직 몬스터 습격으로 인한 후유증이 남아 있는 상태라 식당 문을 연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웬만한 곳은 다 문이 닫혀 있을 터.
이호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성의 차 뒷좌석에 민성이 탔다.
“출발하자.”
민성의 명령과 동시에 차가 움직였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으시면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러 가 보시는 건 어떠세요?”
“그렇지 않아도 외국으로 가려고 했었다.”
민성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하하. 그럼 바로 모시겠습니다.”
이호성은 내비게이션에 ‘워프 게이트’를 목적지로 찍고 운전하면서 백미러로 민성을 훔쳐봤다.
“헌터님.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난 건 알고 계신가요?”
“몰라.”
“일전에 헌터님이 미국 헌터를 때려눕힌 데다가, 현재 테러리스트가 한국인으로 추정되고 있답니다. 해서 좀 시끄러운 와중이에요.”
민성은 그딴 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무신경하게 창밖을 보기만 했다.
“일본은 어떠세요?”
“어디든 상관없어.”
이호성은 민성이 혹여나 미국으로 간다고 할까 봐 내심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안도했다.
워프 게이트.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간 이동’이라는 신기술을 구경하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있었다.
그런 탓에 워프 게이트를 찾은 민성과 이호성은 예상치 못했던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그 불편함의 근원은 매스컴을 타고 유명해진 이호성이었다.
“오! 이호성이다!”
“이호성이라고?”
“워프 게이트 타러 왔나 봐!”
“요즘 잘나가더니, 역시 이런 사람들이 타는구나.”
1회 이용에 1억 2천이 넘어가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사장을 방문하듯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온 이호성이 새삼 대단해 보이는 건 물론, 그 유명세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어? 하는 사이에 이호성의 주변으로 순식간에 사람이 가득 찼다.
사람들이 일제히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 어플로 이호성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사방에서 카메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성은 그런 이호성을 버려두고 유유히 워프 게이트 건물 안으로 편안하게 들어갔다.
“허, 헌터님! 헌터님!”
어린 팬들은 이호성을 만지고 머리카락을 뜯으며, 심지어 얼굴에 뽀뽀까지 했다.
유명세가 강한 탓에 함부로 싸가지 없는 행동을 했다간 국민 역적이 될 수도 있기에, 이호성은 억지웃음을 띠며 그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민성은 데스크로 가서 워프 게이트 사용을 요구했다.
꽁지머리의 데스크 여직원이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고 하자, 민성은 시키는 대로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넘겨주었다.
데스크 직원은 신분증의 바코드 넘버를 확인하자마자 놀란 얼굴이 되었다.
비용을 받지 않는 프리 패스 코드가 떴기 때문이다.
워프 게이트의 프리 패스 자격은 대통령 정도의 VVIP만 받을 수 있었다.
전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민성의 프리 패스 코드를 확인하게 된 데스크 직원은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프리 패스 코드 뒤로 추가 내용이 기입되어 있었다.
시크릿 코드.
워프 게이트 이용에 대한 기록은 물론, 극비의 인물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데스크 직원은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성을 보고 황급히 티켓을 출력해서 공손히 내밀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VVIP 게이트 룸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휘황찬란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고급스러운 방이 민성의 시야에 들어왔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더불어 한쪽에는 다과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민성이 다과상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멈춰 서 있자, 안내 직원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민성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출발 시간은 정해져 있나?”
“아, 아니요. 언제든지 편하신 대로 가실 수 있습니다. 급하시면 워프 게이트의 편의 시설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해 드릴까요?”
“아니. 먹으면서 듣지.”
민성이 다과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 게이트 안으로 두 명의 직원이 더 들어왔다.
그들을 보자 안내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혹시나 필요한 게 있으시거나 심부름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에 민성은 간단한 고갯짓만 하며 얼굴을 돌렸다.
다과상에는 과일, 연어, 구운 아스파라거스, 캐비어, 빵, 와인, 샐러드, 참치, 마카롱, 치즈케이크, 쿠키, 초콜릿 등 다채로운 음식들이 화려하게 늘어서 있었다.
뭐부터 먹을지 다과상에 집중하던 차에 VVIP 게이트 룸 안으로 이호성이 들어왔다.
“헌터님. 저 왔습니다.”
민성은 이호성을 흘깃 보았다.
“꼴이 왜 그래?”
머리는 삐죽삐죽하고 티셔츠는 목이 잔뜩 늘어나 있었으며, 얼굴과 목에는 립스틱 키스 자국이 번져 있었다.
“제가 인기가 좀 많더라고요, 하하. 어찌나 징그럽게 굴든지.”
이호성이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했다.
민성은 짧게 혀를 차며 하얀 그릇 위에 음식을 담곤 창가에 가서 앉았다.
원래는 외국으로 가서 곧장 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다과를 간단히 먹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민성이 나이프로 연어를 썰 때, 직원이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서 워프 게이트 시설에 대해 설명했다.
워프 게이트에는 왜 그런 것이 필요한 건지 의문일 정도로 수많은 서비스가 존재했다.
수영장, 헬스장은 기본이고, 프리미엄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으며, 사우나와 객실뿐만 아니라 헬기를 탈 수도 있었다.
설명만 들어도 워프 게이트가 7성급 호텔을 방불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궁금한 사항은 없으신가요?”
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묻자 민성은 손을 휙 휘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직원은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90도로 인사한 후, 민성이 편하게 다과를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주었다.
연어는 입에 넣자마자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린 향이 전혀 없이 깔끔했으며 상큼하기까지 했다.
잘 구운 아스파라거스는 아삭한 식감을 잘 살려 불의 향이 기분 좋게 코끝을 휘저었다.
마카롱을 깨물자 표면이 으스러지면서 혀가 굳어질 것만 같을 정도로 강한 단맛이 입안에 잔뜩 퍼졌다.
단맛은 마치 전기 작살이 혀에 내리꽂히는 듯 강렬했다.
식사를 위해 간소하게 가져온 만큼만 먹기로 했다.
민성은 여유롭게 바깥 풍경을 보며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단맛을 만끽했다.
간단한 다과 타임을 가진 민성은 안내 직원을 따라 워프 게이트실로 이동했다.
긴 복도를 지나 문을 열자, 마치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커다랗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하지만 넓은 공간에 비해 기계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워프 게이트는 던전에서 구한 마법 기술의 구현으로 인해 실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은 워프 게이트가 가동될 때의 파장을 막아 내기 위한 장치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위를 잠시 둘러본 민성이 안내 직원이 가리킨 지정 위치에 섰다.
워프 게이트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안내 직원이 마이크로 설명해 주었다.
“잠깐 졸린다고 생각하시면 되니까. 긴장하지 마시고 편한 마음으로 기다려 주세요. 30초 후 워프 게이트가 가동됩니다.”
잠시 후,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지며 서서히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원이 말한 대로 정확히 30초가 지나자 마법진에서 방출된 오러의 힘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민성은 속성 저항 능력을 완전히 개방하고, 그 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눈을 한 번 딱 감았을 때, 민성은 시공을 초월하여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