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88화>
다도를 위한 식탁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적당했다.
장웅이 상석에 앉아 차를 타자 이호성은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차를 마셨다.
무슨 차지?
굉장히 향이 부드러우면서도 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듯했다.
“그래. 날 찾아온 이유는?”
장웅의 물음에 이호성은 손에 들고 있던 차를 내려놓고, 자세를 정중하게 고쳐 잡았다.
“제가 모시는 분에게 셰프님을 개인 전담으로 붙이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호성이 긴장이 스며든 얼굴로 말했다.
“개인 전담이라…… 자네는 중앙 소속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누굴 모시고 있다는 거지? 돈이 많은 양반인가?”
장웅이 찻잔을 내려놓고 얼굴을 굳히면서 말을 이었다.
“난 조용히 남은 여생을 요리에 대해 공부하는 걸로 매듭을 지을 생각이네. 더는 일할 생각도, 돈도 명예도 필요가 없다는 얘기지.”
장웅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누구를 모시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식으로 날 찾은 건 무례한 걸세.”
그에 이호성이 무거운 눈빛으로 장웅을 응시했다.
“혹시 슬하에 자식이 있으십니까?”
장웅은 이상한 질문이라는 듯 이호성을 보며 웃었다.
“어째서 그런 걸 묻는가? 설마하니 협박이라도 할 생각인 겐가?”
“협박이 아닙니다. 제 질문에 답을 주십시오. 자녀가 있으십니까?”
이호성이 다시 물었다.
“손녀딸은 있지.”
“곧 인류에 거대한 재앙이 도래할 것입니다.”
순간 장웅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말인가 그게. 자세히 말해 보게.”
“기밀 사항이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지금의 던전보다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 곧 나타나게 될 거라는 사실만 기억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게 자네가 날 찾아온 것과 관계가 있다?”
이호성이 장웅의 눈을 마주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어째서?”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남자. 그런 이를 제가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웅은 확신에 찬 이호성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침묵 끝에 장웅이 입을 열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제가 모시는 분께서 먹는 걸 엄청 중요하게 여기시거든요.”
“…….”
“…….”
“그 인류의 미래라는 분에게 내 요리가 뭘 그리 중요하다고…….”
이호성이 식은땀을 흘렸다.
“사실 먹을 거 아니면…… 인류의 미래고 나발이고, 별 관심 없을 만한 사람이라…….”
말을 하던 이호성은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에 장웅이 피식 웃었다.
“음식의 중요함을 아는 사람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고.”
그는 차를 한 잔 더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은 뒤, 고개를 젖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하지만 굳이 내가 그 일을 해야만 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요리를 잘하는 친구들이야 얼마든지 있을 텐데.”
“중차대한 문제를 그렇게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지요.”
“내 생각엔 그냥 다른 친구들은 바빠서 모두 거절을 한 탓에 날 찾아온 것 같네만.”
뜨끔한 이호성이 황급히 그의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
“하, 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장웅이 작게 웃었다.
“한번 만나는 보겠어. 하지만 그리 큰 기대는 말게. 난 사람 보는 눈이 좀 까다로운 편이니까.”
장웅의 말에 이호성은 시간을 체크했다.
“제 차로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음? 벌써?”
“하하.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하지 않습니까.”
“거참.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셰프님이 체감하시는 것보다 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고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장웅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나 참. 인류의 미래에 내 음식이 뭐라고.”
“부탁드립니다.”
이호성이 장난기가 없는 얼굴로 굳어졌다.
“머지않아 아주 큰일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이호성의 표정을 보고 장웅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엷게 미소 지었다.
“알았네, 알았어. 조금만 기다리게. 나갈 채비를 할 테니.”
“네. 그럼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호성이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장웅이 빤히 쳐다보았다.
“자네도 헌터일 텐데 내가 알고 있는 헌터들과는 분위기가 다르군.”
“네?”
“보통 헌터들은 기득권층이라는 사실에 고양되어,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는 성향이 강한데, 자네에게선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말이네.”
이호성은 쓸쓸하게 웃었다.
“누구 때문에 제가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무슨 소린가, 그게?”
“제가 모시는 분을 만나면 이해하실 겁니다, 아마.”
장웅이 난해하다는 듯 웃었다.
“준비하고 나올 테니 기다리게나.”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확정된 사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호성은 한결 마음의 무거운 짐 하나를 던 기분이었다.
* * *
장웅은 ‘인류의 미래’가 살고 있다는 집을 보았다.
웬만한 기업가의 사장이나 회장이 살 것 같은 곳이라, 꽤 좋은 단독 주택에 살고 있는 장웅으로서도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시죠.”
이호성이 앞장서서 안내를 했다.
벨을 누르자 문은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열렸다.
장웅은 이호성을 따라 넓은 마당을 지나 열려 있는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민성을 보는 장웅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장웅은 태어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봐 왔고 만났으며 겪어 왔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본 자신이었다.
그런 그에게 본능이 알려 주고 있었다.
넘쳐흐르는 저 아우라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아무런 액션도 없이 단순히 앉아 있는 뒷모습만 봐도 결코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져 왔다.
그건 장웅에게 있어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헌터님.”
이호성이 민성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러자 민성이 앉은 채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장웅은 민성과 두 눈이 마주친 바로 그 순간, 심장에 쿵! 하고 묵직한 돌 하나가 떨어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이 감각을 설명할 수 있을까.
민성의 두 눈에는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
장웅은 그런 민성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이호성이 그를 인류의 미래라고 지칭한 이유는 이미 납득된 후였다.
“장웅이라 합니다.”
민성이 소파에서 일어나 장웅에게 걸어가 가까이 섰다.
“강민성이다.”
민성이 손을 내밀었다.
장웅은 악수를 청해 온 민성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에는 수많은 굴곡을 거쳐 온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장웅은 정중히 그의 손을 맞잡았다.
짧은 악수를 끝내고, 민성은 다 마신 커피 잔을 이호성에게 내밀었다.
이호성은 조용히 잔을 받고서 잠시 눈치를 보다가 주방으로 향했다.
그사이 장웅은 민성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호성이 말하기를 나를 만난 이후에 요리를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릴 거라고 하던데. 결정은?”
민성이 장웅을 직시하자, 장웅은 그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맛있는 식사를 책임지고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건조하던 민성의 표정에 작은 미소가 생겼다.
“페이는 이호성이랑 이야기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
“정식 출근은 내일부터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장도 봐야 하고 여러 가지를 살펴봐야 해서.”
“그렇게 해.”
장웅은 고개를 숙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민성은 마당 밖으로 나가 햇빛을 받으며 여유롭게 정원을 산책했다.
그런 그를 지켜보면서 장웅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때, 장웅의 옆에 이호성이 다가왔다.
“이렇게 빠르게 결정을 내려 주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감사합니다.”
“사람에겐 일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오지. 그때마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어.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일세. 그를 보자마자 직감했다네.”
이호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
“대단하네요. 저도 앞으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셰프님처럼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노하우 같은 게 있으세요?”
장웅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겐 귀한 손녀딸이 하나 있지. 대답이 됐나?”
이호성이 장웅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네. 충분히.”
“앞으로 잘 지내 보세.”
장웅이 이호성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 * *
- 준비됐어?
“응.”
로브의 사내가 높은 빌딩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 지금부터 빌딩의 전원이 차단될 거야. 총작전 시간은 5분.
“충분해.”
- 다섯 세고, 시작한다. 5…… 4…… 3…… 2…… 1. 시작.
‘시작’이라는 말과 동시에, 로브의 사내는 귀에 꼽고 있던 블루투스를 빼서 품 안에 넣고 도로를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뛰어든 로브의 사내에 의해 도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울려 댔다.
빠아아앙, 빵빵!
로브의 사내가 땅을 딛고 솟구치는 순간.
콰앙!
땅이 파이면서, 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울렁였다.
경적 소리가 멎고, 순식간에 거리가 공포에 휩싸였다.
그사이 높게 뛰어오른 로브의 사내는 빌딩의 중심부쯤에서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로브의 사내를 보았을 때-
달칵!
정전이 오면서 사무실이 어두워졌다.
로브의 사내는 에이스가 일전에 제조한 마석 폭탄을 사무실 중앙으로 던졌다.
마석 폭탄이 바닥에 떨어져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 5초.
그가 몸을 돌려 깨진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비규환이 시작됐다.
바람에 의해 사무실에는 페이퍼 용지가 날아다니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석 폭탄의 존재는 사무실 사람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위해 사무실 출입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내, 마석 폭탄이 빛을 뿜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동시에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빌딩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미친 듯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로브의 사내는 무너지는 빌딩을 바라보며 덮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는 굉음을 터트리며 무너져 내리는 빌딩을 하얗게 빛나는 한쪽 눈으로 조용히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