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삼시세끼 87화>
* * *
로브의 사내는 출발 직전인 항공기 기내 안에서 휴대폰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메일에 나와 있는 작전 자체는 심플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신분을 위조하고 미국에 테러를 가한다.
그리고 귀국.
그게 전부였다.
만약 테러가 성공한다면 미국은 범인을 찾기 시작할 거고, 그 범인이 한국 국적의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즉시 미국과 한국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 골이 깊어지리란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로브의 사내는 휴대폰을 끄고, 기내 시트에 몸을 편안히 기대고서 눈을 감았다.
곧 항공기가 출발한다는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 * *
로브의 사내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준비되어 있는 차량을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약 2시간을 달린 끝에 목적지였던 시가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로브의 사내는 휴대폰으로 지도를 한 번 더 확인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점차 빨라졌다.
밤이 깊었다.
하늘에 둥근 달이 선명하게 떠 있었고, 그런 외국의 밤거리를 걷는 로브의 사내는 마치 밤 고양이처럼 가볍고 날렵하게 움직였다.
골목길을 꽤 오랫동안 걸은 끝에 파란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작은 집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입구 밑에 화분 아래에 있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은 거실의 중앙에 서서 탁자 위에 놓인 물건들을 체크했다.
조작된 신분증을 지갑 안에 넣고, 마석 폭탄이 들어 있는 가방을 입구 쪽으로 옮겨 놓은 뒤, 마지막으로 인피면구를 들어 욕실로 이동했다.
인피면구란 사람 가죽으로 된 얼굴 가면이다.
인피면구를 착용하고 변장 과정을 거치자, 로브의 사내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어설픈 느낌은 없다.
조작된 신분증과 대조해 보니 감쪽같이 닮았다.
그냥 그 사람 자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놀라운 변장 능력이었다.
준비를 모두 마쳤음을 인지한 로브의 사내는 거실로 돌아와 TV를 켰다.
한국에서 미궁을 클리어했다는 소식과 함께, 한국 헌터와 미국 헌터 간의 마찰이 있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다시 TV를 끈 뒤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30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그는 소파에 등을 깊숙이 묻으며 숨을 골랐다.
고요한 공간 안에서 째깍째깍 손목시계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로브의 사내 귓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 * *
이호성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온몸을 누가 망치로 두드려 대기라도 한 듯 근육통이 극심했다.
“씌불놈. 씌불…… 씌불…….”
이호성은 욕을 중얼거리다가, 번쩍 정신을 차리며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
계산을 해 보니 많이 자 봐야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할 것 같았다.
“씌불놈…….”
결국 그는 알람을 다섯 개 정도 걸어 놓은 뒤에야 단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눈을 잠깐 감았다고 생각했을 때, 알람이 울렸다.
이호성은 시뻘겋게 핏줄이 오른 눈으로 시계를 보았다.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알람시계를 박살 내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지만, 필사적으로 그 감정을 가라앉히며 침대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피곤해. 피곤하다고, 씌불놈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랗게 소리를 쳐 보자 그래도 조금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으나, 몸은 여전히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요리사 얘기는 좀 쉬고 나서 할걸. 빌어먹을, 젠장, 망할!”
앞으로는 생각을 조금 하고 나서 제안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온몸에서 몬스터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호성은 남아 있는 힘을 쥐어 짜내 빡빡 문질러 피 냄새를 없앤 후, 깔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샤워만 했는데도, 몬스터 수백 마리는 잡은 것만 같은 피로도가 온몸에 내려앉았다.
“아…… 피곤해.”
이호성은 잔뜩 지친 얼굴로 머리를 말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뒤, 차를 타고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오전 10시라는 애매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가게 안은 한산했다.
햄버거 세트 하나를 주문하고 받아 온 그는 햄버거를 뜯어먹으며 노트북을 켰다.
“아니, 1시까지 요리사 구해 오라는 게 말이 되나, 진짜? 무슨 마트 들러서 야채 사 오는 것도 아니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요리사에 대해 검색했다.
한데 현직의 유명한 요리사들 같은 경우에는 모두 커리어를 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어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좀처럼 데려오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연락을 취해 봤지만, 개인 전담 요리사를 할 생각은 없다는 게 그들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골치 아프네.”
이호성은 빨대로 콜라를 쭉 빨아 마시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면 분명 안 좋은 일이 벌어리지라는 건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충분히 학습되었다.
최근 들어 강민성이 다시 예민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사려야 할 때라는 걸 이호성은 직감하고 있었다.
아마, 몬스터를 잡느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 주요 요인이겠지.
“어쩌지?”
불안한 눈빛으로 동공이 흔들리던 이호성은 이내 눈을 반짝거렸다.
“그래! 현직은 어려우니 비교적 시간이 많을 법한, 은퇴한 요리사를 알아봐야겠어.”
그는 재빨리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은퇴한 요리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이호성의 눈에 유독 크게 들어오는 요리사 한 명이 있었다.
‘미슐랭 쓰리 스타’라는 어마어마한 경력의 커리어를 달성한 이 요리사는 레스토랑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새로운 요리 공부에 뛰어든 남자였다.
단순히 양식뿐만이 아니라, 한식, 중식 등 각국의 모든 요리에 대해 전문 분야를 넓혀 가고자 했던 것이 그가 은퇴한 이유다.
여러 장르의 음식을 마스터한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강민성에게 붙여 주기에는 최적의 인물.
하지만 문제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72살이라니…….”
이호성은 화면에 띄워져 있는 은퇴한 전설의 요리사를 보며 목을 긁적였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 않나?”
어차피 최후의 선택지였다.
그런 만큼 전화로 대충 물어보지 말고, 직접 찾아가서 간곡하게 부탁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일단 부딪쳐 보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가면서 설득 전략도 고민해 봐야겠어.”
이호성은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은퇴한 전설의 요리사를 찾기 위해 서둘러 패스트푸드점을 나섰다.
미션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졸리지가 않고 외려 머릿속이 또렷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성공하자!
이호성은 오직 성공만을 머릿속에 새기며 자신의 주차된 차량을 향해 뛰어갔다.
* * *
은퇴한 전설의 요리사.
이름은 장웅.
올해로 72세.
그림자 길드를 통해 소재지를 파악해 보자, 다행히도 서울에서 멀지 않은 인천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림자 길드의 정보대로 찾아가자, 유명세에 걸맞게 커다란 3층짜리 단독주택이 보였다.
“집에 있어야 할 텐데.”
이호성은 긴장한 얼굴로 벨을 눌렀다.
벨을 몇 번이나 눌렀지만 문이 열리거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야? 없나?”
뒷걸음질 쳐서 미어캣처럼 위를 쳐다봤지만 별달리 소득이 있을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이호성은 휴대폰을 꺼냈다.
주소지로 오면서 전화도 몇 번이나 해 봤으나 전화기는 계속해서 꺼져 있었다.
이호성이 답답함에 뒤통수를 벅벅 긁을 때, 바닥에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의아한 얼굴로 옆을 돌아본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옆에, 거대 근육질의 백발노인이 장을 봐 왔는지 하얀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비닐봉지 밖으로 기다란 파가 삐져나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다시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
바로 자신이 찾던 은퇴한 전설의 요리사, 장웅이었다.
크네…….
이호성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그를 보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장웅은 그런 이호성을 건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자네는 누군데 우리 집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건가?”
헌터도 아닌데 상당한 위압감이 있다.
눈앞에 있는 이 노인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건 첫 만남부터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요리사 할아범이 꼴은 왜 이래?
아무리 더운 날씨라지만, 유명세도 있는 양반이 흰 러닝, 반바지에 슬리퍼라니.
상상했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호성이라고 합니다.”
뒤늦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장웅은 본론이 뭐냐는 눈빛으로 이호성을 지켜보았다.
“긴히 제안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표정을 보니 꽤 까칠해 보이는데.
거절하려나?
거절하겠지? 그럼 뭐라고 설득해야 하지?
이호성이 속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자네, TV에서 봤어. 최근 활약을 하고 있는 헌터였지, 아마?”
“하하. 네, 뭐.”
이호성이 머쓱하게 웃었다.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 이런 노인네를 찾아와 주다니 기분이 이상하구먼. 날도 더운데 그러고 있지 말고 들어오시게.”
그는 먼저 앞서 걸어가더니 문을 열었다.
이호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런 그를 따라 잘 관리된 정원을 지났다.
후후.
유명세라는 게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군.
완전 다행이야.
럭키다, 럭키!
이호성은 입가에 번지려는 웃음기를 서둘러 지워 표정 관리를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인사를 하며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장웅은 어느새 장 봐 온 것들을 냉장고에 넣고, 다도상을 차리고 있었다.
“차는 좋아하는가? 괜찮으면 이리 와서 앉지.”